창작 단편 게시판
전자책 단말기들은 하나 같이 풀이 죽은 기색이었다. 그들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간간히 구석에 위치한 방문을 바라보았다. 그 방은 이광희의 요구대로 항온 항습실처럼 상온(*1)을 유지한 곳이었다.
방문이 열린 것은 쿨러와 스토리, 이광희가 들어 간지 10분 정도쯤 되어서였다.
“패널은 어떤가요?”
누트1이 다소 모호한 지칭대상을 일컫는 질문을 던졌다.
“괜찮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회복되는 현상이니, 그리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광희는 황금률을 철저히 지키려는 듯, 누트1처럼 지칭 대상이 불명확한 대답을 했다. 하지만, 어린애들 같은 경쟁심을 담은 말은 지금 시점에서는 별 다른 의미가 없었다. 두 여성의 패널은 처음 공장에서 출고 되었을 때, 부팅시킨 것과 같이 또렷하게 컨텐츠를 표시했다. “걱정 많이 하셨지요? 큰 오라버니?” 쿨러가 예의 그 다소 어리광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누트1은 말없이 패널을 점등시켰다. “스토리 양도 무사하신 것 같군요?” “어차피 밖에만 나가지 않으면 되니까요.” 쌀쌀맞은 그녀의 대답에 누트1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는 그 어떤 전자책 단말기도 야외 활동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누트1은 조용히 둘째 동생을 돌아보았다. 누트2의 패널 역시 정상적으로 돌아와 있었다. 실험이 끝난 직후 누트2는 자신의 과거 한 여름의 뙤약볕에서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그 말 대로 그의 화면은 일관적인 명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흥!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기기들과 나는 다르다고!” 한껏 들 뜬 분위기로 소리를 질러 되던 그는 또 다시 페이지 전환 버튼을 눌렀다. “이럴 수가!” “맙소사!” 형제들에게서 쏟아져 나온 탄성을 그는 그저 존경과 감탄의 표현으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내 곧 착각을 밝혀졌다. “글자가 더 선명해 졌어!” 누트2는 그때가지도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큰형인 누트1의 패널이 어둡게 침잠해 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사태가 뭔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결국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태양 광선에 쏘이면, 모든 패널이 흐려진다는 거군요.” 파피루스의 심드렁한 목소리에 누트2는 발끈했다. “뭐라고! 너같이 컨셉도 제대로 못 잡힌 병신과 같은 취급이라니! 어디라고 감히...” “흥! 어차피 인기 떨어진 기기인건 피차일반 아니야? 그리고, 태양 광선에는 모두 화면이 흐려지는 것은 이제 다 확인했잖아.” 누트2와 파피루스를 말린 것은 누트1이였다. 그 역시도 이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을 테지만, 아직은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고 있었다. “진정들 하거라. 누트2. 네 화면이 흐려진 건 사실이란다. 이광희씨가 사진 촬영을 해 두었어.” 누트1의 말이 끝나자 그대로 증명 하듯이, 이광희는 휴대폰을 들이댔다. 디지털 카메라 대용으로 사용된 KH2100 휴대폰(*2)의 LCD화면에는, 조금 전 밖에서 찍은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 화면은 전체적으로 일관된 톤으로 어디 한 구석 흐려지지 않은 채 또렷하게 보였다. 하지만, 실내에서 찍은 다음 번 사진을 보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한 화면을 가진 자신의 모습에 그는 더 이상 할 말을 읽어 버렸던 것이다. “가... 같은 장소가 아니니까... 찍힌 사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 않겠어?”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 말대로 당신 자신의 패널 품질은 변화가 없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주변 광원이 더 풍부한 야외에서의 패널 사진이 더 선명하게 찍혀야 하지 않을까요? 아시다 시피 광센서를 이용한 디지털 카메라. 특히나 CMOS(*3)형은 광원에 매우 민감한 소자입니다. 광원의 양에 따라서 사진의 품질에 큰 차이가 발생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광원이 적은 실내에서 찍은 패널 사진이 더 선명하게 보인 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뭐... 그... 그건...”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려는 누트2에게 이광희는 결정타를 날려 버렸다. “촬영 조건이 상대적으로 나쁜 곳에서 찍은 패널이 더 선명해 보일 정도로, 실외에서의 당신의 패널은 급속히 흐려졌던 겁니다. 아마도, 우리가 그 당시에 미처 눈치 채지 못한 것은, 스토리 양과 달리 일부분만 흐려진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고른 화면 상태를 보여주었기 때문이겠지요.” 말을 마친 이광희는 냉정한 얼굴로 스토리와 쿨러를 앉고 방으로 향했다. 문을 닫으면서 그는 나직이 내뱉듯이 말했다. “이건 이제 어느 한 단말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서서히 드리워진 얼굴의 그림자는 이윽고, 이광희의 모습을 완전히 감추었고, 그와 동시에 방문은 운명의 결론을 엄숙하게 내리듯이 ‘쾅’하는 울림소리를 냈다. *1 전자 기기와 부품 소자가 최상의 상태로 작동하는 온도는 상온 온도(23~25도)입니다. 제조시 자재 입고나 출고시 육안 검사의 온도 조건은 모두 이 조건을 기준으로 합니다. *2 뷰티폰의 모델 넘버. *3 CMOS(Complementary Metal Oxide Semiconductor)는 최근에 디지털 카메라의 화상 소자의 명칭으로 많이 불립니다. 하지만, CMOS는 화상용 반도체 소자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MOS(Metal-Oxide-Semiconductor)간의 상호 보완적인 형태로 제조되는 반도체 형태를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하나의 산화 금속으로 제조되는 MOS의 채널 주입 영역을 일부 수정하여, 마치, 두 개의 MOS가 하나의 산화 금속 안에 붙어 있는 형태를 띠는 것이 바로 이 CMOS 소자입니다.

eBook탐정 이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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