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단편 게시판
이광희가 지나가자 킨들 DX가 흘끔 거리는 눈길로 그를 불러 세웠다. 하지만, 쌀쌀맞은 간호사는 간병인을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
“어이! 탐정 양반! 탐정 나으리! 탐정 선생님! 에.. 또... 탐정씨!”
평소의 그 답지 않게 킨들 DX는 조금은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그렇지만, 탐정 양반이자 나으리이고, 선생님인 아무개 씨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이봐! 탐정 선생. 내 몸 속에 내장된 시계로는 말이지. 우리가 이 뜨끈뜨끈한 전기 장판위에 누운 지 거의 한 시간이 다 되어 가거든. 물론, 내가 이놈의 조그만 극동 지역에서는 3G통신이 안돼서,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누워 있는 시간 정도는 잴 수 있거든.”(*1)
“이제 일어 날 때가 되지 않았나요?”
쿨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제야 이광희는 고개를 들었다. 스토리를 유심히 살펴보던 참이었다.
“네. 일단... 제 생각에 수정을 가해야 할 것 같군요.”
“빌어먹을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우리는 다 불구에 나환자들이나 마찬가지야! 저주받을 e-paper를 채용한 이상 태양 빛에는 다 무력한 거라고!”
파피루스는 거의 반 광분 하듯이 소리쳤다.
“내 생각에는 이광희씨, 태양 광선내의 자외선이 문제라고 봅니다. 이미 외국의 유명 포럼에서도 자외선이 문제라고 하지 않았소? 아, 당신은 영어를 잘 못하시던가?”
누트2의 비아냥거림도 이광희의 표정을 바꾸지는 못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쯧쯧쯧. 당신도 나름 엔지니어라고 자기 지식에 기반을 둔 자존심이 세군 그래. 어떤 이북 기기 개발사와 똑같은 것 같아.”
“저는 그렇게 자랑할 만한 엔지니어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저 관심이 많고 미쳐 있는 부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제 생각이 틀렸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잖아. 남들이 다 이게 문제라고 하는데, 당신은 지금 아니라고 자기 고집만 세우고 있지 않아? 이미 당신이 원하는 대로 실험으로 증명 되었잖아. 그 망할 놈의 태양열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거였어. 문제는 자외선이라고! 외국 포럼도 그렇게 말했다니까.”
누트2의 말에 이광희는 잠시 동안 입을 다물고 그를 바라보았다. 한 동안 닫힌 그의 모습에 누트2는 일종의 승리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입은 다시 한 번 열렸다.
“외국 포럼이 무슨 권위가 있는 곳인가요? 어차피 다 같은 유저 모임인데. 외국 사람들 뇌는 특별하답니까? 눈은 적외선 자외선도 구별할 수 있는 멀티 프리즘이고?”
“뭐라고! 이 작자가!”
“물론, 내 실험은 실패했습니다. 열이 문제라는 걸 증명하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햇빛에 있는 자외선이 문제라는 당신의 근거가 고작 외국 포럼의 게시판 글이라면, 나는 죽어도 인정 못하겠습니다. 근거를 대요! 근거를! 외국인이라는 게 벼슬이고 진리입니까?”
마지막 말에 높아진 억양으로 그가 단단히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의 반응은 스타트 전구가 나간 형광등처럼 느리게 이루어졌다. 말을 마치고 한 참이 지나자 상기된 얼굴과 그게 걸맞은 숨소리가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트2는 직감적으로 이 번 만큼은 제대로 저 바위 덩어리 같은 인간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걸 깨달았다.
“자외선이 문제라고! 자외선! 흥! 그깟 영어 쪼가리 입으로 못 내고 귀로 못 담을 뿐이야. 눈으로는 얼마든지 읽고 해석할 수 있어! 그 좆같은 포럼 글로 알량한 지식입네 깝죽거리는 게 무슨 성경책이라도 돼? 그럼, 당신은 전문가고, 엔지니어야?”
이제 그는 거의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이전까지 보여 주었던 냉정한 모습과 너무도 상반된 반응에 전자책 단말기들은 기가 죽어 버렸다.
“위를 봐! 위를 보라고! 눈이 있다면... 아니, 패널이 있다면 위를 향해서 수직으로 바닥에 누워 보라고! 형광등!”
이광희는 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창백한 백색광을 가리켰다.
“형광등 빛이야 말로 자외선 덩어리 아닌가? 전기 스파크로 일어난 자외선 파장이 내부 형광 물질을 발광시켜서 빛을 내는데, 저거야 말로 자외선 덩어리가 아니냔 말이다!”(*2)
“햇빛에 비하면 저 정도는...”
“아니! 그렇지 않아! 광량은 뒤질지 모르겠지만, 태양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직격으로 받고 있잖아! 햇빛은 공기 중에서 여러 외부 요인 때문에 손실률이 많아! 실내에서는 다들 멀쩡하잖아?”
“젠장! 그럼 대체 뭐가 문제요? 우리는 정말 50K(*3)말대로 저주 받은 거요?”
누트2가 절반은 절망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뒤 이어 누트1의 질문 역시 이어졌다.
“열도 아니고, 자외선도 아니라면, 대체... 우리는 왜 햇빛 속에서 흐려지는 거요?”
“나는 이 문제의 원인이 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실험을 했던 겁니다.”
흥분을 가라앉힌 이광희의 목소리는 다시 평소처럼 밋밋하고 평이했다.
“당신의 가설은 이미 틀렸다고 증명되었지 않소?”
“그렇습니다. 실험 자체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자외선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실외뿐만 아니라 실내에서도 흐려지는 현상이 발생해야 이치에 맞습니다.”
“차라리 자외선이 문제라면 자외선 코팅제라도 바르고 말지.”
파피루스의 말이었다. 그는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인 듯 심드렁하게 모두를 보고 있었다.
“저는 여전히 온도 문제에 무게를 실고 싶습니다.”
“그거야 말로 근거 없는 집착일 뿐 아닌가?”
“쿨러 양이 내 주장의 근거입니다.”
이광희의 답변에 논쟁을 하던 누트2는 살며시 쿨러를 돌아보았다. 쿨러 역시 갑작스럽게 언급된 자신의 이름에 놀란 눈치였다.
“쿨러 양의 그 패널 노이즈 현상은 전형적으로 열에 의한 오동작 현상입니다. 화면이 흐려지는 대신 그렇게 된 것은 저가형 드라이버 IC의 허용 동작 온도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일 겁니다.”
“중국산 싸구려 촌년이 별 수 없었던 거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게 무슨 연관 이길래?”
“말 조심하거라. 누트2.”
누트1이 짐짓 노기 띤 목소리를 냈다. 그 바람에 누트2는 조용해졌다.
“세계 어느 나라도 중국에서 나오는 공산품을 쓰지 않는 나라가 없다. 명품 스타일리쉬 이북 리더라는 소니 PRS도 사실은 중국에서 제조된 자들이다. 되먹지 못한 비하는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말거라.”
누트2를 비롯해서 누트1의 이 호통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대적할 수가 없었다. 그들 모두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다. 누트1의 저 반응의 근원을. 그리고, 그들 스스로도 대부분이 판매국의 이민자라는 사실 또한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기장판 위에서 다들 찜질을 하고 있었던 거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스토리의 차분한 목소리에 이광희는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에는 직사광선에 준하는 열이 전달되지 못해서 실험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전기장판에 닿은 뒷면과 달리, 공기 중에 노출된 패널은 공랭식 냉각 작용을 했다는 말씀이시겠지요?”
“네. 스토리양은 대체 어떻게 그걸... 마치 제 생각을 다 읽고 계시는 것 같군요.”
잠시 놀란 이광희가 말 한 마디를 끊었지만, 표정은 여전히 담담한 상태였다. 방금 전 보여주었던 광기에 휩싸였던 모습은 흡사 다른 사람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맞아요. 당신의 생각을 읽고 있었어요. 같이 다니는 아가씨를 잠시 좀 빌렸지요? 김태희(*4)씨던가요?”
그녀의 의미심장한 패널 각도에 이광희는 자신의 휴대폰을 들어 보았다. 틀림없이 메모 기능 란에 그 말 그대로 입력시켜 놓았었다.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봅니다만.”
“고용주로서 일의 진행 사항을 확인하는 절차라고 봅니다만.”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도도하게 패널을 아래 끝을 올린 스토리는 분명, 처음 출시되었을 때의 그 자태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태도는 이광희의 짧은 과거를 떠올리게끔 했다. 살아가면서 많지 않으면서도 적다고 할 수 없는 여성들과 붙이 치면서, 그가 흥미를 가졌던 부류는 언제나 이런 타입이었다.
“뭐, 틀린 말씀은 아니군요. 일단 고용된 입장이니, 고용 활동에 포함된 도구에 대해서도 고용주가 응당 요구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지루한 법률 용어들을 버무린 듯 한 말을 내뱉었지만, 그는 법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단지, 그의 흥미를 돋우는 이 눈 앞에 있는 이성에게 짐짓 무관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연극대사였다. 하지만, 이 친구에게는 또 다른 저주 받을 장점이 있었다. 생각의 침잠 속으로 한 번 빠져 들기 시작하면, 그 흥미도라는 것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늘 혼자였다. 그리고, 언제나 이런 순간 속에서 해결책을 제시했다. 말하자면, 평생 주변 존재에 대한 무관심을 표명하며, 고독이라는 스스로의 자존감마저 느낄 새도 없이 살아가는 불쌍하지 않은 존재였던 것이다.
지금은 단지 해결책을 찾았을 뿐이다.
*1 킨들 시리즈는 3G 무선 통신 모듈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이를 이용한 간단한 웹브라우징, 위키 검색, 도서 검색및 구입을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3G를 포함해서 휴대폰은 클럭 동기 신호를 받으며 끊임없이 위치 확인을 합니다. 이 기준 클럭 신호는 위성내 표준 시간 신호와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휴대폰은 통화권 지역 내에서는 항상 정확한 표준 시간을 표시합니다. 킨들 시리즈는 자국용(인터네셔널 버전 제외) 3G통신을 지원하기 때문에, 본문에 등장한 킨들 DX는 현재 시간을 정확하게 맞출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타이머 기능은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정확한 시간이 아닌, 시간의 흐름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공장 출고 기준의 시간으로 작동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2 형광등의 발광 원리는 맞지만, 실제로 가정에서 사용하는 일반 형광등이 자외선을 대량으로 방출하지는 않습니다. 스토리의 극적 연출을 위해 어느 정도 부풀려진 설정입니다.
*3 SNE-50K는 삼성 파피루스의 정식 명칭입니다. 파피루스라는 명칭은 개발 기간 중 언론에 알려진 이름이었습니다.
*4 KH2100 뷰티폰은 관련 제품 CF에 김태희씨가 출현해서, 김태희 폰이라는 별칭이 붙어있습니다.

eBook탐정 이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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