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역사 포럼
역사 속의, 또는 현대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들과 관련한 뉴스 이외에 국내 정치 논쟁에 대한 이야기는 삼가해 주십시오.
아래의 글을 보고 문득 떠오릅니다. 병자호란은 임진왜란으로 상처받은 조선을 다시 한번 뒤집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국왕이 일개 장군 앞에 무릎꿇고 비는 슬픈 상황을 연출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치욕... 그리하여 그 이후의 왕 중에는 북벌이라는 허황된 꿈을 꾼 이들도 적지 않았지요.
그런데 과연 병자호란은 반드시 일어났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 그보다는 왕이 항복을 하는 치욕을 겪었어야 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당시 상황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상황은 우선 후금에서 형제의 예를 군신의 예로 고칠 것을 제의했습니다. 그 내용은 명나라와 조선 관계와 별 차이가 없었지만, 조선은 이를 거부하고 싸울 것을 결정합니다. 이에 청으로 이름을 고친 후금은 인질을 요구했으나 이도 불허했기에 청에서는 10만 군사를 이끌고 침공했습니다. 출발한 것이 12월 2일.
그리고 9일이 되어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의주부윤 임경업은 의주(백마산성)을 지켜 방어에 나섰지만 청군의 선봉대를 이를 지나 한성으로 진격합니다.
13일 째에 이르러서야 조정은 청나라의 침공을 알았고 부랴부랴 움직이려 했지만, 청군의 선봉대는 그 다음 날인 14일, 이미 개성에 도달해 있었지요.
조정에서는 그제야 근왕병을 모집하고 장수를 파견하는 등 움직이는 한번 조정은 강화도로 탈출할 생각이었지만, 길이 막혀 도망치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섭니다.
당시 남한산성의 주둔군은 1만 3천. 성을 공략하는데 10배 이상의 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하면(게다가 산성의 특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상황이었을지 모르지만, 준비가 부족했던 나머지 식량이 얼마 되지 않았고 장비도 부족했던 만큼 추운 날씨도 더해져 사기는 계속 떨어졌습니다. 성 밖의 백성들을 들일 여유도 없으니 백성들은 무수히 죽어나가고...
결국 조정에서는 항복을 택하게 됩니다. 패국에 선택이 기회가 없으니 그 조건은 더 없이 가혹한 것이었지만,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 과연 이런 상황이 올 필요가 있었을까요?
우선, 당시 조정은 많은 실수를 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후금(청)의 위세를 잘못 파악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후금의 기세를 생각할 때 가장 좋은 것은 그들이 아직 명을 완전히 먹지 못했다는 것을 이용해 군신의 예를 받아들이되 협상을 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임진왜란으로부터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만큼 전란의 피해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반면, 군 규모는 적지 않았으니 협상 가능성은 충분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당시 조정에서는 청나라를 우습게 본 것인지 아니면 그만큼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그들과 협상조차 거부합니다.
협상을 거부했다면 청나라에서 침공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이에 대비하지 않은 것이 두번째 잘못. 그들이 움직이리라 생각했다면 이에 대비하여 준비를 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신경썼어야 할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청나라의 선봉대가 개성 근처에 도착했을때야 그들의 침공을 알았다니 그야말로 바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결국 당시 조정은 싸울 각오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오직 시간만 끌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엄청난 희생과 손실을 맛본 것이지요.
그들이 무엇을 생각했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아마도 그들은 '체면'을 생각하고 있었던게 아닐까요? 명나라와 손을 잡고 있으니 차마 청나라로 돌아서지는 못하겠고, 청나라가 무섭지만 그들의 뜻을 따르자니 체면이 있고, 명나라와 싸우던 중에 청나라가 군대를 돌릴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하겠지.'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요?
당시 조정의 사람들은 세계의 정세를 보는 눈도 없었고, 그들 자신을 돌아볼 눈도 없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바보" 였다는 말이지요.
그런 점에서 볼때 세계를 보는 눈이 있고, 임진왜란이라는 비극 속에 정치가로서의 재능을 더욱 갈고 닦은 광해군이 쫓겨난 일은 정말로 아쉬울 따름입니다. 의도적인 투항이라는 방법으로 두 나라 사이의 외교적 균형을 잘 잡았던 그의 놀라운 자질을 생각할 때, -그러면서도 전쟁에 철저하게 대비했던- 그가 왕위에 남아 있었다면, 병자호란이라는 슬픈 사건은, 그리고 남한산성에서의 굴욕적인 강화라는 슬픈 사건은 없었을텐데 말입니다.
추신) 만일 당시 조선 조정에서 조금만 주변에 공격에 대비했다면, 그래서 무사히 한성을 빠져나가 강화도로 탈출할 수 있었다면 과연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후에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청나라는 해군은 쓸만하지 않았습니다. 강화도를 공격해서 승리하기에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들은 원나라와 일본처럼 장기전을 치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장기전을 각오하고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10만이 넘는 대군을 끌고온 것부터 속전속결을 노린 것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강화도에서 끝까지 저항하겠다는 각오를 굳혔다면 적당한 시점에서 타협하고 물러났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 자신이 위험해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조선군대가 집결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좋지 않습니다. 그들이 북쪽에서 쳐들어왔고 금방 보급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해로를 쓸 수 없는 상황에 겨울철에 육로로 10만 군대의 식량을 옮기는 것은 보통 힘든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계속 조선에 머무른다면 중국의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명나라는 내부 붕괴 중이었지만, 청나라와의 대립 관계가 없었다면 좀 더 오래 견뎠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적어도 농민군에게 붕괴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청-명 관계가 조금 더 길어질수록 우리나라의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그리고...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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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임금께서 자주하는 대사가 이거죠.
탁상을 탁치며 그만들 하거라.
전하 그러나 솰라솰라...
아닙니다 전하! 좌의정은 지금 사리를 분별하지 솰라 솰라....
영의정의 말은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솰라 솰라...
어허~그만하라 말했다.
...임금은 얼마나 갈팡질팡 이골이 아팟을까요?
병자호란 이후의 패전책임자 처리를 보면 더 기가 막혀 말이 안나옵니다.
김류, 김자점 등등 다들 인조반정 공신들이라 거의 처벌도 안 하고 흐지부지.
술먹고 놀다 도망친 강화도 함락의 최고 책임자 김경징조차도 김류 아들이라서 처벌 안하려다 겨우 겨우 사형.
땅에 머리를 세번 찍든 아홉 번 절을 하든, 바보는 죽기 전에 안 고쳐지는 듯합니다.
...아니, 나라가 욕을 보든 말든 자기 밥 그릇은 어떻게든 지키는 천재들인지도 모르겠군요.
교조주의 성리학의 특정 분파의 집권의 폐단이 고스란히 드러난것이 문제였겠죠..
당시 후금이 더 우세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은 이미 광해군때도 했었지만 말이죠..
거기에 임경업 같은 경우에는 임금이 싸우지 말라고 해도 어찌 아버지의 나라 명나라황제를 욕보인
후금을 그냥 놔둘수 있냐고 ... 조선에 대한 충의가 아닌 명에 대한 충의로 싸우기를 주장했었다고해서
요즘에는 임경업에 대한 평가가 다시 이뤄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당시에는 조선보다 명나라가 자신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던 양반들이 상당수 있었다는것을 생각해보면
현실 판단은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 가슴속의 진정한 조국은 조선이 아니라 명이었고
무너져 가는 명을 되살리는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존재하지 않았을테니까요..
그당시 선비들에게 조국이란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현대의 개념을 과거 사람에게 적용해 보았자 그당시 살던 사람들 생각은 그게 아니었으니 무의미하죠.
임진왜란이나 병자 호란 특징을 보면, 조선이 정착시킨 방어 체재에 생각치 않은 기동이나 방법을 사용하면 그대로 무너져 버립니다. 교조주의라기보다는 지독한 형식주의가 군사전략적 개념에까지 미쳤다고 보는게 더 타당합니다.
특히나 명이 무너질 경우 조선은 명과 조선의 태동시 확립했던 국제 질서체재가 무너집니다. 그걸 막을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대의명분으로 성리학이 주효한 역할을 했다고 보는게 차라리 맞습니다. )
병자호란 당시 조선 지도층의 정세판단을 마냥 나무랄 수 만은 없겠지요. 병자호란은 1536년, 청군이 산해관을 넘은 것은 1944년 입니다. 병자호란 발발시기에 청나라는 만리장성 바깥에서 만주(정도...)를 점유한 신흥국가일 뿐이었습니다. 여러모로 망조가 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중원을 지배하는 세력은 명나라였죠. 청나라를 일으킨 - 광해군 때 조선과 화친했던 - 누르하치가 명군과의 전투에서 부상하여 사망한 사실 같은 것도 '그래도 명나라가 강국'이라는 안이한 인식에 기여했을 것이고 ... 물론 정세에 민감하고 현실을 날카롭게 보는 경세가라면 곧 청이 명을 밀어내고 중원을 차지하리라 예상했을지 모르지만 ... 1536년 시점에서 그건 누구라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병자호란은 피할 수 없었다고 보네요..
한명기 교수의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라는 책을 보면
정묘호란은 조선을 무력으로 협박해서 경제적 원조를 얻어내려고 한 성격이 큰 전쟁지였고
병자호란 - 조선에 대한 입장이 귀영개에 비해 상당히 부정적이였던 홍타이지가 집권하면서 조선에게 누차 압박을 가함, 결국 몇만의 군사와 많은 양의 세폐를 제공할 것을 요구, 이에 관해 몇년동안 조선정부에서 토론을 계속하다가 청에게 강경하게 나가기로 결정함. 이 결과 병자호란 발발한것이고요..
협상을 거부할 수 밖에 없는게.. 군사 3만여명과 금은 몇십만냥, 그리고 추가로 다량의 예물을 보내라고 했는데 이걸보내면 나라가 거덜나지요;;
명이 망했던것은 후금이 강했다기보다는 명나라의 내부분열때문이라는 애기가많더군요..후금의 군대는 아골타의 금제국이후로 전혀 진보가 없었던 기마군대였던거에 비해 명군은 서양에서 건너온 첨단화약무기로 무장해서 상대가 전혀되지를 않았다더군요....결국은 병자호란이 일어난것이 조선의 문제였다기보다는...이것도 역시 명나라가 쥐고있었던 운명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전쟁을 피할 순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당시의 조선은 좋은 지정학적 위치, 적당한 크기의 나라라서 제대로 대비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임진왜란 때 망했어야 할 나라가 오래 지속되다보니 나온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역사엔 만약이 없단 말이 있지만 그래도 만약을 집어 넣어서 아무리 생각을 해도, 기껏해야 몇 십년의 유예기간을 얻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역사에 호기심이 많아서 여기저기 찾아보고 조언도 구하다 보면, "그 사람이 없었다고 해도", "그 사건이 없었다고 해도"라는 대답이 대부분이더군요.
사라예보 사건, 통킹만 사건, KAL기 폭파 사건 등의 여러 사건들을 보면, 시대가 어떤 사건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보이기도 합니다. 당시 국제적인 정세, 조선의 상태를 본다면 이 경우엔 병자호란이 되겠죠. 다만 아쉬운 점은 병자호란으로 인해서 조선이 망한 것이 아니고 이후로도 200년을 훨씬 넘게 쭈욱 이어진다는 것이죠. 막장인 상태 그대로.
전쟁을 피할 수 없고, 잘 대비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다라는 점은 동의 합니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조선이 망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창조적 개혁을 위해서는 내부모순에 의한 붕괴가 선행 되어야 하는데, 당시 조선시대는 내부 문제로 붕괴할만큼 모순이 크지 않았다고 봅니다. 즉 기존 정치는 잘못되었으니 바꿔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세력도 없고, 분위기도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새로운 국가가 들어선다고 해도 어떤세력,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정권을 잡느냐가 중요합니다.
선비들이 정권을 다시 잡는 다면 결국 비슷한 나라일테고, 무력이 정권을 잡는다면 아마도 국민의 삶은 더 피폐했겠죠. 다만 어찌어찌 기회를 잘잡아 만주를 회복하고 중국땅을 먹었다 하더라도 근세 열강에 강간당하던 청나라의 운명을 피할 수 없었겠죠. 상업세력? 그당시 동북아 정세에서 상업세력이 정권을 잡는 것도 불가능하고 잡는다고 해서 무었인가 바뀔 수 있을까요?
임진왜란이 없었다면 명의 혼란시기 중국을 방문하던 유럽의 무역선이 한국에서 도자기를 구입해가면서 상업세력이 성장하고 유럽과의 교류를 통해 세계의 동향을 파악해서 과학의 조류에 뒤늦지 않게 편승을 하는 것이 가장 최적의 수순입니다만, 임진왜란으로 도자기 기술을 빼았김으로 해서 만사휴의가 되었죠.
결국 시대의 환경을 극복할만한 여건이 당시 동북아에는 조성되어 있지 않았고, 근세 열강의 침입도 역사의 필연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유럽이 없었는데 영국 홀로 산업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리가 없듯이. 당시 조선이 어떻게 하든 동북아의 유교적 질서를 깰 수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만일 명나라가 망하고 중국 땅이 수십개의 나라로 쪼개져서 서로 각축하는 전국시대가 다시 재현 되었다면 모르겠으나 이도 당시 동북아의 정세나 정서상 불가능 하겠지요.






무르쉬드
요즘 문명에 미쳐있는데... 사실 이게 당사자(?)가 되면 판단이 제대로 안 서더군요. 인공지능 상대로 하는 게임도 그러할진데 당시는 뭐...;;;
뭐 어쩌면 당시 표도기님 같은 가신이 조정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만 했었어도 그 정도 비극은 안 일어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아쉬움이 듭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