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再會


후오오옹-


근 백근에 달하는 배달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는 호랑이의 울부짖음 같았다. 둔중하지만 결코 느리지 않고, 오히려 태산 같은 만수의 검술은 쏟아지는 화살들을 무난히 걷어내었다.


“나으리. 괜찮으십니까?”

“쏟아지는 화살 들 속에서 이리 여유로운 감정을 가져 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네만.”


영실은 얼굴색이 창백하게 질렸지만 만수가 그 신기에 가까운 검술로 날아드는 화살들을 모조리 쳐내는 와중에도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을 보며 억지로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만수는 그 모습을 보며 씨익 웃으며 영실과 함께 슬슬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본 만수는 관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눈치 채고 혀를 찼다. 필시 모두 일찍이 도망을 놨을 것이다. 만수는 시선을 화살이 날아드는 언덕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호리호리하게 생긴 사람이 흩날리는 홍포를 입고 오만하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수는 당장에라도 뛰쳐나가 단매에 때려눕히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상황이 너무 불리하였다.


“역시 용패를 써서 병마절도사께 병력을 빌려온 연후에 왔어야 합니다.”

“…우선 이야기는 안전한 곳으로 빠져 나간다음 하도록 하지.”


만수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영실은 마음 한 구석에 작은 반발심이 생기는 것은 막지 못했다. 영실은 만수와 함께 조금씩 물러나며 언덕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홍포를 입은 작자가 만수와 영실을 내려 보고 있었다.


‘저자가, 홍길동!’


*



서경으로 들어오기 전 영실과 만수는 인근 산에 자동차를 숨겼다. 비록 표면적으로 영실과 만수는 중경 고관의 심부름꾼이라는 신분을 지니고 있었지만 이목을 끌어 좋을 것은 어디에도 없기에, 일찌감치 자동차를 숨긴 것이다. 서경에 들어온 영실과 만수는 이리저리 서경의 정세를 탐문하였다. 그러던 와중 드디어 먼저 암행 중이었던 문수와 만나게 되었다.


“어이구, 형님. 어쩌다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허허. 나도 이번에 연줄 하나를 잡아서 말이야. 언제까지 생원으로만 머물 순 없잖는가.”


영실은 문수를 실제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영실이 문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다른 문관들이 기피하는 암행어사를 자처하여 전국 방방 곳곳을 돌아다니는 기인. 허나 글솜씨가 매우 뛰어나 전시에도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현재 황상의 글선생을 하기도 했던 걸출한 문인.’


하지만 지금 영실의 눈 앞에서 친근하게 구는 자는 어디를 가도 볼법한 평범한 선비 같은 모습이었다. 문수는 영실에게 인사를 건넨 후 만수를 쳐다보고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 문수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만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니, 이게 누구야. 장무사가 아니던가. 어르신은 어찌하고 여기까지 발걸음을 했는고?”

“하하. 강녕하셨습니까. 어르신께서 여기 나으리를 부탁한다하여 이렇게 나으리 꽁무니를 쫒아 왔지 뭡니까.”

“하하하. 과연 그렇군. 자자, 이렇게 밖에서 이야기 할게 아니라 안에 들어가지. 이보게, 주모.”

“예~. 부르셨어요?”

“내 반가운 분들을 만나 그러니 술상 좀 거하게 봐오시게.”

“어이구, 그럼요. 먼저 들어가 계시면 금방 가져다 드립죠. 네네.”


문수와 영실은 아랫목에 앉고 만수는 배달검을 앞으로 끌어안고 문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문수는 그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더니 영실을 쳐다보았다.


“그래, 통성명부터 하지. 난 박문수일세. 알다시피 현재 서경 지방에 암행 감찰을 하는 중이라네.”

“장영실이라 하오. 본디 제조판서의 자리를 맡고 있으나, 이번에 황상께서 박어사를 도우라는 밀명을 내리시어 이리 찾아온 것이오.”

문수는 영실의 말에 적잖이 놀란 듯 했다.

“허. 제조판서 영감이셨소. 이거 무례를 범했소이다. 허긴, 특임위장이 호위하고 와서 보통 인물은 아닐꺼라 생각했소만.”

“특임위장과는 구면이셨소?”


영실의 물음에 문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부연설명을 한 것은 만수였다.

“제 스승의 형님 되십니다.”

“아!”


영실은 작게 감탄하며 문수를 쳐다보았다. 문수는 그저 허허로이 웃고 있었다.


“한 집안에서 입신양명하는 이가 하나 나오기도 힘든데 형제께서 나란히 문과 무의 기둥을 맡고 계시니 존경스러울 따름이오.”

“허허. 기둥은 무슨. 그저 나라의 녹이나 축내지 아니하면 다행이오. 자자, 우리 문중 자랑은 나중에 중경에서 하도록 하기로 하고, 지금 우리에게 가장 모자란 것은 시간 아니겠소.”


문수는 말을 마치고 바랑을 뒤져 검게 칠해진 나무 상자를 꺼내었다. 영실은 그 나무상자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스승이 설계하여 이작총서에 남긴 것을 자신이 만들어 황상께 진상했던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면 그저 평범한 나무상자에 불과하지만 네 부분의 봉합부에는 각기 네 글자 숫자가 새겨진 걸쇠가 장착되어 있는데 그 숫자를 모두 아는 자만이 상자를 열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만약 정해진 절차에 따라 상자를 열지 아니하고 걸쇠를 파괴하거나 상자 자체를 파괴하면, 소형 뇌석을 사용해 만든 발화장치에 의해 안의 내용물을 태우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렇기에 이 상자는 주로 주요한 내용을 담은 서신이나 문서들을 보관할 때 사용되었다.


문수는 능숙하게 16개의 번호를 차례대로 배열하고 상자의 뚜껑을 들어올렸다. 그 안에는 영실의 예상대로 한지가 가득 들어 있었다. 문수는 그것들을 꺼내어 바닥에 늘어놓았다. 영실이 답을 요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문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서경에서 활동하며 그러모은 정보들이오. 이걸 일일이 설명하자면 한 세월이 걸릴터이니 중요한 것 몇 개만 말하겠소.”


처음에 문수가 집어든 한지는 서경과 인근 주변의 지도였다. 어찌나 섬세하고 자세하게 그려져 있는지, 군사용으로 써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영실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지도의 군데군데 가위표가 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문수는 그 가위표 부분을 집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내 이번에 서경지방으로 감찰을 오게 된 이유는 서경 지방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있다고 하여 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온 것이라오. 하지만 내 능력이 미천하여 아직 단서는 잡지 못하였소만, 오히려 다른 문제가 서경을 시끄럽게 하고 있었소.”

“…활빈당 말씀이오?”

“그렇소. 그네들이 내세운 기치는 별반 새로울 것은 없고, 또한 도적의 무리가 환인임을 자처하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소. 허나 이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아 부러 조사하게 되었소이다. 이 가위표가 처진 부분이 그들이 출몰하여 습격하였던 장소들이오.”


영실은 곰곰이 지도를 내려다보았지만 그다지 신출귀몰한 생각은 나지 않았다. 문수 역시 그것을 기대하지 않았는지 이번에는 무엇인가가 빼곡히 적혀있는 종이를 꺼내었다.


“이것은 활빈당 혹은 활빈당을 자칭하는 무리들이 습격한 장소와 그에 따른 피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둔 것이오. 그래봐야 계속 피해가 늘어나 가장 최근의 것과는 좀 거리가 있을 거외만은.”


영실은 종이를 받아들고 읽어보던 와중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주로, 공방들이 많은 것 같소만?”


영실의 물음에 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약탈당한 물품이나 파괴당한 물품들도 보면 다른 것에 비해서 자노의 피해가 크오. 물론 환인들이니 그럴 수도 있겠소만 사실 환인이라고 칭하는 도적 무리들은 그저 도적질을 하는 와중에 자노를 부수는 정도에 지나지 않소. 헌데 이 치들은 정말 자신들이 환인의 세상을 이루겠다 굳게 믿고 있는 것인지 유독 자노에 대해 집착을 보이고 있단 말이오.”

“하긴 나도 중경에서 박어사의 장계를 보고 비슷한 생각을 하였소만.”


둘의 대화는 문을 열고 들어온 주모에 의해서 끊겼다. 주모가 가져온 주안상은 그리 대단할 것은 없었지만, 차려온 이의 정성이 보였다. 문수가 엽전 몇 닢을 쥐어주자 주모는 오히려 강하게 손사레 치며 재빨리 방에서 나갔다.

영실은 그 모습을 보며 가만히 웃다가 문득 생각 난 듯이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서경에 오며 귀동냥으로 들었소이만, 여기 서경백성들은 활빈당을 의적으로 여긴다고 하더이만?”

“끄응. 그게 더 문제란 말이오. 활빈당 무리가 도적질 하는 대상은 주로 자노를 많이 쓰는 대형 공방이거나 혹은 그 공방을 운영하는 상인, 자노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대지주 등이오. 그리고 그들이 약탈한 재물의 일부를 선심 쓰듯이 나누어주니 어찌 좋아하지 아니하겠소. 그 도당의 괴수인 홍길동이라는 녀석은 항상 붉은 도포를 입고 다니는데, 백성들 사이에서는 그를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 부르기도 한다오. 허허. 도적의 수괴보고 장군이라니?”


문수는 불쾌한지 술을 벌컥 들이켰다. 영실은 그의 동생이 호위총사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마 자신의 동생이 모욕당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영실은 어색하게 웃으며 탁주를 목 뒤로 넘겼다.


“어쨌든, 난 이들의 이면에 무언가가 있을거라 생각했소. 그리고 피해현장을 돌아보고, 당시 활빈당과 맞섰던 병사들의 이야기도 들어봤소. 그러던 도중 어렴풋한 단서 하나를 잡았소.”

“…번갯돌.”


영실의 나직한 대답에 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실은 문득 문수의 눈이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그저 마냥 사람 좋게만 보이는 줄 알았더니, 탐관오리들의 저승사자인 어사직을 맡고 있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소. 번갯돌이오. 내 기유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번갯돌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건 알고 있소. 그렇지 않소?”



번갯돌.

뇌석이라고도 하는 이 돌은 생김새는 여타 돌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그 돌 안에는 번개의 힘을 지니고 있다. 뇌석기관이라는 것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번갯돌의 사용은 주술사들이 주술을 부릴 때 사용되거나, 간혹 그 세기가 강한 경우에는 의원들이 치료용으로 사용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번갯돌을 좀 더 효율적으로 정제하는 방법이 등장하면서부터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나온 것이 바로 뇌석기관이다.


초기의 뇌석기관은 그 효율성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그래서 단순히 공工의 영역에 그치던 기계에 대한 배움의 열기가 높아졌고, 기계학機械學이라는 학문마저 생겨났다. 이에 반발한 것은 바로 그 이전까지 학문에 대한 모든 것을 담당하던 유학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시대의 흐름은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선심쓰듯이 내준 것이 바로 유儒라는 글자였다. 아예 말살 시킬 수는 없으니 유학의 안에 포함하자는 속셈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어서 기계학을 연구하고 배우던 장인들은 스스로를 기유학사라 칭하고 다녔고 그 명맥이 아직까지 내려오는 것이다.

그 기유학의 최고인재들만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선대 황제가 건립한 국기각國機閣이었고, 그곳의 총괄하는 이가 바로 제조판서 장영실이었다.

영실은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내 스승이신 이작께서는 이전의 뇌석기관을 혁신적으로 고쳐놓았소. 그렇다보니 번갯돌이 대량으로 없어질 경우에는 많은 일을 도모할 수 있소.”

“가령 어떤?”

“평범한 수준의 번갯돌이면 소형 자노 일기를 육개월동안 움직일 수 있소.”

“소형이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이오?”


문수의 물음에 영실은 고개를 두리번두리번 거렸다. 방안은 소박하게 꾸며져 있어 그다지 비교할만한 물건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 영실의 눈에 구석에 있는 목함이 눈에 들어왔다. 영실이 일어서면 허리보다 조금 아래 올만한 크기의 목함이었다. 영실은 고개를 끄덕이며 목함을 가리켰다.


“저것보다 크면 그 이상을 중형이라 하오. 그리고 보통 사람 크기 이상 되는 것부터를 대형이라 하고. 어쨌든 번갯돌이 기백에 가까이 사라졌으면, 사용용도에 따라 상상도 못할 일을 도모할 수 있소.”


영실은 거기서 말을 멈췄다. 하지만 문수는 영실이 말하려고 한 상상도 못할 일이 어떤 것인지 대충 짐작했다.

역모逆謀. 감히 입에 올리기도 두려울 정도의 범죄. 흔히 큰 범죄를 저지르면 삼족을 멸한다고 말하는데, 역모죄의 경우 대상률大塽律에 따라 구족을 멸하게 되어있다. 그것도 친가와 외가의 구족을 말하는 것이니 한사람이 역모죄에 가담했다 적발될 경우 수백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보니 이것을 입에 담기도 두려워지는 것이다.


“…솔직히, 난 소진왕 전하께서 이 모든 일의 배후가 아닌가 싶소.”

“허나 증거는 없지 않소.”“말씀대로,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소?”

“어떤 것 말씀이시오.”


문수는 빈 술잔에 탁주를 따랐다. 일전에 마셨던 소주와는 다른 우윳빛의 액체가 향긋한 냄새와 함께 그릇을 채웠다.


“우선 활빈당이라 자처하는 무리들 말고, 실제로 홍길동과 같이 움직이는 활빈당 무리에 대해서요만, 이들은 하나같이 무술의 고수란 말이오. 하지만 문文도 그러하듯이 무武라는 것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소. 특히나 나는 내 아우를 봐와서 알고 있소. 그것이 죽을 만큼 괴롭고, 오랜 시간의 단련을 요한다는 것을. 그렇기에 무술을 수련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마치 우리 유학자들처럼 계파가 있고, 사승관계가 있소. 그렇지 않나? 특임위장.”


아무 말 하지 않고 이야기를 경청하는 동시에 사방의 인기척을 살피던 만수는 갑자기 자신에게 튀어온 질문에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차분히 대답했다.


“예. 아무리 천하에 둘도 없는 장사라고 해도 역사力士와 무술가는 다릅니다. 어, 제가 맞게 비유하는 건진 모르겠습니다만 전자가 철광석이라면 후자는 강철로 만든 검입니다. 전자로도 사람은 죽일 수 있지만 결단코 후자는 이기지 못하지요.”

“그래, 좋은 비유구먼.”

“사실 소인도 스승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름 좀 날리던 착호갑사(호랑이 사냥꾼)였습니다. 스승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전 제가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전까지는 싸움에서건 사냥에서건 지거나 실패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말입니다. 허나 제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걸 스승님 문하로 들어간 연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아! 착호갑사!”


영실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견문이 넓고 시전호위무사 흉내도 곧잘 낸다 싶었는데 그런 과거가 있었다.

문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술을 쭉 들이켰다. 그리고 커- 하며 탄식과도 같은 소리를 내뱉고는 다시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렇소. 그런데 그 무리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나타났단 말이오. 무술가가 아니라 해도 쌀 네다섯 가마니를 번쩍번쩍 드는 장사라면 의당 소문이 나기 마련인데도 그 이전까지 그들에 대한 소문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하더이다.”

“…어사께서는 소진왕 전하께서 비밀리에 키우셨다 생각하시는 것이오? 허나 그저 흘러들어온 뜨내기일 수도 있지 않겠소?”

“그건 아니오. 의당 도적질을 하려면 그 근방 지리에 익숙하지 않으면 아니 되오. 게다가 이 치들은 지형을 이용하는 게 하도 신출귀몰해 관군도 한두 번 당한 것이 아니라오.”


문수의 추리는 일리가 있었다. 지역 지리에 밝다면 그들이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뜨내기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영실이 고개를 끄덕이자 문수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관아의 대응도 이상하오. 이정도로 도적들이 날뛰면 서경에 연락하여 경사를 움직여야 할 터인데 서경 경사들은 복지부동이란 말이오. 내가 이 경우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세 가지 정도인데, 첫째로는 각 현의 현감들이 처벌을 두려워하여 장계를 올리지 아니하거나 둘째로는 장계를 올렸으나 중간에서 누군가가 빼돌린 경우요, 그리고 마지막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자가 경사를 움직이지 아니할 때.”


영실의 대답에 만수가 무릎을 탁 쳤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문수와 영실이 그를 쳐다보자 만수는 벌개진 얼굴로 손사레를 쳤다. 둘은 피식 웃으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렇소. 현재 군문의 편제는 이원화 되어있소. 병마사가 움직일 수 있는 위경군은 아시다시피 황상의 명령만을 받고, 지역 방위를 책임지는 경사는 수군사의 지휘를 따르게 되어 있소. 그리고 지금 서경수군사인 최충헌은 선황폐하, 그리고 소진왕 전하와 함께 남벌군에서 이름을 드날린 명장이오. 즉, 사실상 지금 서경의 경사들은 소진왕 전하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란 말이오.”

“…즉, 현재 경사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활빈당 무리 역시 소진왕 전하가 부리는 수족이기에 그렇다라는 것이오?”

“물론 아직까진 증거가 없는 억측에 불과하오. 하지만 생각해보시오. 도적의 무리가 번갯돌을 모아 도대체 어디에 쓴단 말이오? 아마 환인의 무리를 자처하니 땅에 묻거나 바다에라도 버리겠지. 헌데 아무리 자노에 대한 증오심이 강하다 하더라도 관군에 맞서면서 까지 그렇게 하겠소? 차라리 뒤에 배후가 있다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오. 그 약탈당한 번갯돌을 가지고 뒤에서 무기공방을 운영하면 어떻소? 혹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신무기는 또 어떻소. 영감의 스승이신 이작이 만든 비격진천뢰공을 보시오. 단 3기로 오랑캐들을 무찔렀소. 굳이 소진왕 전하가 아니어도, 활빈당 배후의 누군가가 그런 무기를 만든다면 과연 이 나라 종묘사직이 온전할 것이라 생각하시오?”

“…비격진천뢰공 같은 자노는, 더 이상 나올 수 없소. 아시지 않소. 자노삼칙에 대해.”


영실은 문수의 말에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비격진천뢰공과 자노삼칙.

그것은 일종의 족쇄이자 방어수단이었다. 스승이 스물 여덞 되는 해에 남경에 호, 그러니까 오랑캐가 쳐들어왔다. 주로 유목을 하고 다니는 이들은 기회가 날 때마다 국경을 넘어 약탈을 자행하곤 하였는데, 그것이 늘 선황의 골치를 썩였다. 특히 광무 11년에는 대규모로 쳐들어와 남경의 경도京都까지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왔었다. 이때 스승은 젊은 혈기에 하늘을 날아다니며 적들을 살상하는 무기를 만들어 냈으니, 그것이 비격진천뢰공이었다.

단 세 기만 제작되었지만 그 위력은 무시무시한 것이어서 후에는 비격진천뢰공이 하늘에 뜨기만 해도 호들이 머리를 부여잡고 말꼬리가 빠지게 도망쳤다고 할 정도였다.


선황께선 크게 치하하셨지만, 이것이 사람들이 자노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연초에 스승이 만든 인간 모습의 자노로 경각심이 높아져 있던 사람들은 훗날 사람 모습의 자노가 진짜 사람을 해치면 어떻게 되냐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곤 했다.

물론 기유학자들은 크게 비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처럼 스스로 사고하는 자노는 꿈도 못 꾸지만,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더더욱 어린아이를 겁주는 민담수준의 이야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불안감은 상상이상으로 커 결국 스승은 대안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자노삼칙이다.


이 세가지 원칙의 일항에 절대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해하면 아니된다고 못을 박아둠으로써 불만세력의 입을 막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뇌석기관과 판단기관을 스승인 이작이 설계하고 제작한 지금에 와서는 이 자노삼칙은 해가 뜨고 지는 것 만큼 당연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이는 무기분야의 자노연구에 대해서는 사형선고와도 같은 것이었다. 결국 자노연구는 사람에게 해를 끼칠 일이 거의 없는 농업, 공업분야를 위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정녕 절대적인 것이오? 사람도 삼강오륜이라는 마땅히 지켜야할 법도가 있지만, 지키지 않는 종자도 있지 않소?”

“그건 어사께서 기유학에 대해 잘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이오. 자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뇌석기관이오. 이는 심장과 같은 것이오. 하지만 뇌석기관 외에도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판단기관이라는 것이오.”

“…판단기관이라?”

“그렇소. 사람으로 치면 머리와 같은 역할을 하오. ‘이 술병을 집어서 어사의 술잔에 술을 따르거라.’라는 명령이 입력되면 자노는 자신의 기계눈을 사용해 술병과 어사의 술잔을 파악하고 기계팔을 이용해 술병을 집어 어사의 술잔에 따르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이 바로 판단기관이오. 헌데 이 판단기관을 만든 이가 스승이란 말이오. 당연히 비격진천뢰공 이후로 만든 모든 판단기관에는 자노삼칙이 적용되어 있소.”

“그것을 없애고 만들 순 없소? 애초에 기유학자라면 판단기관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영실은 이 말에 화를 내어야 하는가 잠시 고민했다. 허나 상대는 기유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이었다. 그러니 저리 천진난만한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이겠지.


“어사께서는 이름난 문인이고, 유학자이시오. 그럼 내 몇 가지 묻겠소. 어사께서는 문자를 새로 만드실 수 있으시오? 한문도 좋고 정음도 좋소. 그런 식으로 문자체계를 새로 만드실 수 있으시오? 아니면 작금의 유학과는 궤를 달리하는 학문을 만드실 수 있으시오? 인과 도를 논하는 유학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추구하는 학문을 말이오.”


영실의 말을 들은 문수는 표정이 침울해졌다. 그렇다. 그것은 몇몇, 천제天帝에게 선택 받은 이들이나 가능한 업적이다. 그런 업적은 역사에서도 몇 번 등장할까 말까이다.

그리고, 이작 시모부의 업적은 바로 그런 것에 맞먹는 것이었다.


“…알겠소. 그러면 사실상 무기는 불가능한 것이로군. 허나, 그저 단순히 무기공방을 지어 병기창과 같이 무기들을 쏟아 낼 순 있지 않겠소?”

“그것은 충분히 가능하오. 사실 그러한 연유로 폐하께서도 나를 어사께 보낸 것이외다.”


영실의 말에 문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지더미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꺼낸 것은 아까의 지도가 그려져 있던 종이였다. 허나 이번에는 한지가 아니고 투명한 기름종이였다. 총 두 장이었는데 몇 군데 크게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종이와 화살표가 그려져 있는 종이였다.


“이 동그라미가 그려진 것은 공방을 세울만한 부지가 있는 곳을 표시한것이오. 그리고 이 화살표가 그려진 종이는 홍길동이 함께한 활빈당, 그러니까 활빈당의 무리가 확실한 자들이 나타났던 장소들을 시간 순서별로 연결한 것이오. 그리고 아까의 가위표가 쳐진 지도와 이 세장의 종이를 겹치면….”


영실은 겹쳐진 세장의 지도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장소가 몇 군데 보였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지도를 보는 영실의 머리로 문수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아마 몇 군데 눈에 집히는 곳이 있을 것이오. 난 그 곳 중에 한 곳이 활빈당의 본거지이거나 배후가 세운 공방이 있을 거라 짐작하오.”

“…과연 일리 있는 말이오.”


영실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도를 훑어보다 문득 익숙한 지명을 발견했다. 문수가 지적한 몇 군데의 장소 중 한 군데였는데 다른 곳에 비해 구석진 곳에 위치했다. 그곳에는 다음과 같이 조그맣게 지명이 써 있었다.



패비현貝備懸.


*


다음날 문수와 헤어진 영실은 만수를 데리고 바로 패비현으로 향했다. 그러던 와중 패비현의 근처에서 홍길동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를 잡으러 가는 관군을 만날 수 있었다.

관군들의 상태를 본 만수는 ‘이대로는 활빈당을 잡긴 커녕 지나가는 늑대떼에게도 잡아먹힐 것 같다’며 의심가는 지역이 있다면 서경병마사에게 용패를 보여주고 날랜 병사 스무어명 만이라도 데리고 오자고 하였다. 허나 영실은 그 말을 듣지 아니하였고 그 결과가 지금과 같았다.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화살이 닿지 않을 겁니다. 제가 나으리를 둘러매고 달릴 터이니 저를 꽉 잡으십시오.”

“…이거 번번히 신세를 지는군.”

“신세라니요, 이게 제 할 일인 것을요. 대신 중경 가시면 술 한잔 정도는 기대해도 되겠지요?”

“이를 말인가. 자네가 술 상대라면 며칠이고 마셔줌세.”

“흐흐, 약속하셨습니다.”


만수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날아오는 화살을 쳐냈다. 솔직히 영실은 그 모습을 보며 조마조마 했지만 정작 본인은 파리를 쳐내는 것  같은 무심함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화살이 닿지 않자 만수는 영실에게 등을 내밀었고, 영실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만수의 등에 업혔다.


“꽉 잡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고함친 만수는 몸을 날려 산 아래로 달리기 시작했다. 영실은 꽉 잡으라는 만수의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찌나 날랜지 마치 자신이 만든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것 같았다.

사방의 나무가 휙휙 지나가고, 스치는 바람소리가 무섭게 울부짖었다.

그렇게 상하좌우로 흔들리며 반쯤 정신이 나갔을 무렵, 만수가 우뚝 멈춰섰다.


“버, 벌써 다왔는가. 빠르기도 하구먼.”

“…영감. 내리십시오.”


영실은 만수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제서야 흔들리던 시야가 회복되며 붉은 무엇인가가 앞에 서 있는 것을 눈치 챘다. 영실은 재빨리 내려 만수의 뒤에 섰다.

만수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것은 붉은 도포를 입은 사내였다.


“어디를 그리 급하게 가시나이까. 저희를 보러 오신 것 아니셨사옵니까.”

“이게 무슨 개수작이지? 아무리 빨라도 거기서 나를 앞질러 올수는 없었을 터.”

“글쎄요. 사람들은 제가 축지의 술법을 익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고 하옵니다.”

“축지 같은 건 세상에 없어. 제 아무리 속주速走의 달인이라고 해도 한계라는건 존재하니까.”


만수는 으르렁 거리며 등에 둘러맨 배달검을 꺼내었다. 검날이 예리하지 않은 배달검답게 스릉 하는 날카로운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만수와 같이 구척장신의 거한이 배달검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허나 홍포를 입은 자는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네가 홍길동이라고 하는 작자냐.”

“다들 그렇게 부르옵니다. 그러니 장사께서도 그리 부르시지요.”

“시건방지구나. 설령 네가 축지의 술을 익혔다칠손 단신으로 무엇을 어쩌겠다는 말이냐. 그 자만심이 오늘 화를 부를 것이다.”

“옛 말에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고 하였사옵니다만.”


길동이 전혀 기죽지 않고 대답하자 만수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어헝-하고 고함치며 길동을 향해 몸을 날렸다. 고함소리에 산이 우르르 떨리고 마치 벼락이 내려꽂히는 것 처럼 거대하고도 묵직한 배달검이 길동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영실은 길동이 반토막은 커녕 산산조각 날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배달검은 애꿎은 땅거죽만 헤집었고 길동은 상처하나 나지 않고 멀쩡했다.


평범한 무인이라면 그 자리에서 지금의 결과를 불신하며 멈춰 섰을 테지만 만수는 달랐다. 자신의 검이 허공을 가르고 땅을 후려쳤다는 것을 느낀 순간 길동의 위치를 찾았다. 그리고 길동을 향해 다시 검을 날렸다. 하지만 길동은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 목을 베어 들어오는 배달검을 피했다. 배달검은 바로 옆에 있던 느티나무를 우렁찬 소리와 함께 부러트렸다.

만수는 길동이 이리저리 잽싸게 피하자 성질이 돋았는지 그 무시무시한 호안을 붉게 물들였다. 그리고 배달검을 굳게 쥐고 다시 길동에게 덤벼들었다.


영실은 길동과 만수의 싸움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것이 과연 사람이란 말인가. 영실의 눈에는 요리조리 얄밉게 피하는 길동보다는 사방을 초토화시키며 길동에게 달려드는 만수가 더 괴물처럼 보였다. 그렇게 영실이 넋을 놓고 싸움을 바라보고 있는데, 무언가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영실이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붉은 도포를 입은 자가 서 있었다. 바로 홍길동이었다.


대경한 영실이 자리를 피하기도 전에 전광석화 같은 주먹이 영실의 명치를 가격했다. 숨이 턱하고 막혔다. 쓰러지는 와중에 영실은 만수 쪽을 바라보았다. 만수는 영실이 습격당하는 것을 보고 크게 고함치며 영실에게 뛰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길동이 쫒아오고 있었다.

영실은 만수에게 경고를 하려 했지만 이내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의식을 잃고 말았다.



#5 期約


뼈 속까지 얼려 버릴 듯한 한기가 몸을 휘감는다. 온 몸의 피부에서 오소소 소름이 돋고 몸은 부들부들 떨린다. 이대로 있다가는 얼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실은 추위에 덜덜 떨며 눈을 떴다.


“기침하셨사옵니까.”

추위에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던 영실은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긴 했으나 흐리멍텅한 눈에는 초점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아, 이걸 열어놨으니…잠시만 기다려주시옵소서.”


목소리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멀어졌다. 그리고 뭔가 커다란 소음이 들리더니, 더 이상 찬바람이 불어오지 않았다. 발자국 소리는 다시 가까워져 영실의 앞에서 끊어졌다. 영실은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붉은 무엇인가가 보였다.


붉은 옷. 홍의장군.

홍길동.

그제서야 영실은 얼어버린 것 같았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 느낀 것은 극심한 갈증이었다.


“…물, 물 좀 주시게.”

“제가 그릇을 드릴터이니 그대로 드시면 되옵니다.”


영실은 입술에 차가운 감촉이 들자 그 액체를 주저 없이 마셨다. 다행이 액체는 아주 맑고 달콤한 물이었다. 갈증을 회복한 영실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자를 제대로 쳐다보았다.


영실은 길동을 이렇게 가까이서 찬찬히 바라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단정한 이목구비에 무표정한 얼굴의 사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생김새로만 말하자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기 힘든 얼굴이었다. 아마 홍포를 입지 아니하였다면 홍길동이라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문득 영실은 자신이 기절할 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길동은 자신을 습격하고 납치함과 동시에 만수와 싸우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길동이 전설상의 분신술을 익혔거나, 자신과 체구가 비슷한 이에게 홍포를 입혀 눈을 속이는 방법 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눈 앞에 있는 자가 홍길동이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그저 홍길동과 같은 옷을 입은 자일 뿐.

그러던 와중 영실은 문득 만수가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을 눈치 챘다. 영실의 마지막 기억으로는 자신을 구하려 달려오는 만수의 등 뒤로 길동이 공격하려하고 있었다.


“…만수는, 만수는 어찌되었는가. 쿨럭.”

자신이 듣기에도 거친 음색이 방안을 울렸다. 영실은 연신 침을 삼키며 갈라진 목을 달랬다. 영실의 질문에 길동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수라니요. 혹시 공公과 함께 있던 무사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그렇네.”

“그 무사라면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기절시키고 그 자리에 두고 왔사옵니다. 그러니 그리 심려치 않으셔도 되옵니다.”


영실은 길동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이 처한 상황과 주변의 상황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영실이 있는 곳은 동굴 안이었다. 허나 동굴 특유의 습함은 전혀 없고 오히려 안락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영실조차 정체를 짐작하지 못할 기계들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벽에 결박되어 있었다.


“여기는, 어디인가.”

“글쎄요. 활빈당의 본거지라 해도 좋겠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저희’의 연구실이라고 하는게 옳을 것이옵니다.”

“연구실? 무엇을 연구한단 말이더냐.”

“그전에 우선 결박부터 풀어드리겠사옵니다.”


길동이 기계로 다가가 무언가를 만지작 거리자 영실의 가슴, 허리, 무릎을 결박하고 있던 가죽끈이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오랜 시간 묶여있었는지 갑자기 피가 통하자 영실은 어지럼증을 느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잠시 후 어느 정도 기력이 회복된 영실은 길동을 쳐다보았다. 궁금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였다. 그런 그의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길동이 입을 열었다.


“하고 싶으신 말이 많으신 것 같사옵니다. 공과는 대화를 하고 싶어 모신 것이니 얼마든지 말씀하셔도 되옵나이다.”


어차피 저 작자의 말이 거짓일지언정, 지금 상황에서 가만히 있어봐야 변하는 건 없다. 그렇게 생각한 영실은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자네는, 정녕 홍길동이 맞는가?”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모두들 저를 홍길동이라 부르옵니다. 그러니 저는 홍길동인 것이겠지요.”

“허나, 그 산에서는 홍포를 입은 자가 여럿이었네. 그들 모두가 홍길동이라고 주장할 셈인가?”


길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실은 내심 실망했다. 하지만 그러기가 무섭게 믿기지는 않지만 길동이 정말 분신의 술법이라도 익힌 것인가 하는 생각이 번뜩 하고 떠올랐다.


“설마, 정말 세간에 도는 이야기처럼 분신술이라도 익혔다는 겐가.”

“…분신의 술법이라니요. 그런 것은 있을 리가 없사옵니다.”


태연히 대답하는 길동을 보자 영실은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도적의 수괴는 자신을 놀리려 작정한 것이다. 자연스레 영실의 음성이 높아졌다.


“그러면 자네는 분신술도 익히지 않았으면서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인가! 사람 좀 작작 우롱하시게! 자네는 나를 우롱하러 일부로 납치하는 수고까지 하였는가!”

“…제 이야기를 믿지 않으시는군요. 할 수 없지요. 보여드리는 수밖에.”


길동은 차분하게 대답하고 눈을 살포시 감았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났다.

저벅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영실의 귀에도 들리기 시작했다. 그 발자국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다 이내 사라졌다. 그리고 엄연히 바위인줄 알았던 부분이 스르르 부드럽게 옆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곳에는 길동‘들’이 서 있었다.

영실의 경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길동들은 계속해서 들어왔다. 그리 비좁지 않은 동굴 안이 어느덧 꽉 찬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영실은 충격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뻐끔거리기만 했다. 그런 영실을 보며 맨 처음부터 영실과 함께 있었던 길동이 입을 열었다.


“충격이 크실거라 생각했기에, 일부로 보여드리지 않았사옵니다만….”

“너, 너희는 정체가 무엇이냐! 귀신이더냐!”

“귀신이라니요. 이 나라 기유학의 최고 수준을 자랑하시는 분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아니되옵니다.”

“허나, 허나 이것은!”


영실은 수 많은 길동을 보며 극심한 공포마저 느꼈다. 그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수십 명의 사람이 같은 얼굴을 하고 같은 음색과 어조로 말을 한다. 영실은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주먹을 꽉 쥐어야 했다.

처음부터 영실과 함께 있던 길동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수 십명의 길동 무리는 몸을 돌려 다시 동굴 밖으로 사라졌다. 영실은 덜덜 떨리는 몸을 추스르지 못한 채 길동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도대체 정체가 무어냐!”

“아직 짐작하지 못하셨습니까?”

“전혀 짐작가는 바가 없다! 어찌 사람이 저리 같을 수가 있단 말이더냐!”


길동은 영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라면, 확실히 불가능하겠지요.”


영실은 길동의 말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길동이 말하는 사람은 마치 사람이 동물을 호명할 때의 느낌처럼 들린 것이다. 영실은 순간 모든 의문점이 꿰어지는 것을 느꼈다.

스승 이작 시모부와 나누었던 낙향 전야의 이야기.

스승의 고향 패비현.

그리고, 마치 공방에서 찍어낸 물건과 같이 동일하게 생긴 수 십명의 ‘사람’.


“너, 너는.”

“예, 그렇사옵니다. 공의 스승이시자 저희의 창조주, 이작 시모부께서 만드신 ‘자노’이옵니다.”


*


영실은 충격에서 회복되자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질 나쁜 악몽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잔인하리만큼.


“스승께서 만드셨다 하였느냐. 아니, 쓸데없는 질문이지. 이처럼 사람과 구별도 안갈 정도의 자노를 만들 분이 그분 외에 누가 또 있을꼬.”


영실의 탄식에 감탄과 함께 진한 자조가 묻어나왔다. 그날 밤, 스승이 이야기 한 것은 이루어 졌다. 하지만 자신은 이작총서에 있는 물건의 반도 만들지 못했다. 아니, 만들 수가 없었다. 영실은 참담함에 가까운 기분에 고개를 푹 떨궜다.

영실이 어느 정도 진정된 듯 보이자, 길동이 입을 열었다.


“조만간 연락을 드리려 하였사옵니다.”

“연락을? 내게?”

“창조주께서는 저희를 꼭 공께 보이고 싶어하셨지요.”

“그러고 보니, 스승님의 모습이 아니보이는군. …영면하셨는가.”


영실의 물음에 길동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영실은 의아해져 물었다.


“어이해 대답을 하지 않는가?”

“…돌아가셨다고 해야할지, 아직 살아계시다고 해야 할지 말씀드리기가 곤란하군요.”


길동의 대답은 묘한 것이었다. 영실은 인상을 찌푸렸다. 자노라 그런지 멀쑥한 얼굴에 표정변화가 없으니 말의 행간을 읽어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모르겠다라. 그렇다면 의식이 없는 상태란 말인가.


“아직 흙으로 돌아가신게 아니라면 좀 뵙고 싶네만.”


영실의 말에 길동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아니, 힘들다니? 그 무슨 소린가?”

“왜냐하면, 창조주께서는 제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옵니다.”

“안에 들어있다? 그 무슨 말인가?”


영실의 물음에 길동은 대답하기 난처한지 몸을 돌렸다. 그리고 수많은 기계장치들의 앞에 가 그것들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그 일련의 행동이 너무나도 사람 같기에 영실은 소름마저 돋았다. 길동은 몸을 돌린 그 상태에서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공께서는 창조주께서 어떻게 저희를 창조하였는지 궁금하시지 않사옵니까?”

“…물론, 궁금하네.”


궁금하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만들 수 있는 판단기관의 수준은 고작해야 ‘복잡하고 비싼 자동 주산珠算’수준이다. 덧셈과 뺄셈 등 산술의 규칙을 미리 만들어 놓고 숫자를 밀어 넣으면 결과가 산출되는 아주 기초적인 수준.

물론 스승인 이작이 만든 몇몇 자노의 판단기관은 그 수준을 상회하고 있지만 그 이후로는 그 수준의 판단기관이 만들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면 하나 여쭙겠사옵니다. 판단기관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라 생각하시옵니까?”

“궁극적인 목표라. 역시 완벽한 자율연산이겠지. 지금의, 자네처럼 말일세. 결국 스승께서 해내셨지만 말이지.”

“창조주께서도 완벽하진 않으셨사옵니다. 실제로 완벽한 자율연산이 가능한 것은…저 혼자뿐이옵니다.”

“그럼 아까 그…자노들은?”


영실은 ‘사람’이라고 말할 뻔한 것을 간신히 삼키고 물었다. 길동이 영실에게서 등을 돌렸기에,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영실은 길동이 처음 봤던 그대로의 무표정일거라 생각했다. 영실은 그것이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저이기도 하지만 제가 아니기도 하옵나이다. ‘장인이 만든 완벽한 작품을 보고 제자가 밤새 흉내 내서 만든 졸작’이라 표현하는 편이 옳을 것이옵니다. 실제로 이 세상에서 저는 저 혼자일 수 밖에 없사옵니다. 아직까지는 말이옵니다.”

“어째서인가?”


영실의 물음에 길동은 다시 한번 침묵을 지켰다. 그 침묵의 끝에 진실이 있을 거라 생각한 영실은 재촉하지 않고 그저 길동을 바라만 봤다. 길동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창조주께서는, 자신의 두뇌를 저에게 주셨사옵니다.”

“…뭐, 뭐라?”

“지금 제 머릿속에는 창조주의 두뇌가 들어있사옵니다. 그렇기에 창조주께서 가지셨던 기억, 갈등, 고뇌와 같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사옵니다. 창조주께서는 공에게 이작총서를 준 연후, 고향인 패비현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창조주께서는 명리에 집착하는 분은 아니셨으나, 자신의 신분이 중인에 불과해 그리 핍박받았다는 생각을 품고 계셨사옵니다.

그리하여 낙향 이후로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완벽한 자율연산, 자기사고가 가능한 자노를 만드는데 매진하셨사옵니다. 허나,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과도 같았사옵니다. 비록 사람과 완전히 닮은, 저와 같은 자노를 만드는 데는 성공하셨지만 그토록 염원하던 자율연산기관은, 결국 만들지 못하셨사옵니다.“

“…그래서, 그래서 생각하신것이 고작 자신의 뇌를 기계에 이식하는 것이였단 말이냐!”


영실은 갑작스러운 충격에 떠듬거리다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길동은 특유의 무표정함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것은 영실을 달래기보다는 그저 오래전에 있었던 사실을 말해주는 늙은이의 말투였다. 그 완벽함에 영실은 복잡한 심정을 느꼈다.


“창조주께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너무나도 짧다는 것을 알아차리셨사옵니다. 그리하여 저에게 당신의 뇌를 주시고 연구를 계속하도록 하였사옵니다. 허나 아직까지 완벽한 수준의 자율연산을 가진 자노는 완성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만, 그만하거라. 설명은 그 정도면 되었느니.”


영실은 투박한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았다. 어찌 설명해야하는가, 이 상황을. 자신의 영혼마저 기계에 헌신한 스승을 찬양해야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건, 옳지 않다.”

영실의 입 밖으로 목졸린 비명과도 같은 말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길동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영실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눈치챘다.


“어이하여 옳지 않다 생각하십니까?”


길동의 물음에 영실은 벌떡 일어섰다. 쉰이 넘은 몸에 새롭게 투지가 샘솟는것을 느꼈다. 그것은, 어찌보면 자신이 성역으로 생각했던 부분마저 희롱한 스승에 대한 분노 혹은 질시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 것을, 어찌 용납할 수 있단 말이더냐! 사람의 몸에 기계를 달다니! 내 비록 저 유학자들처럼 ‘신체의 모든 것은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어찌 감히 손상케 하랴’따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만 사람과 기계를 섞는 것은 아니 될 말이야!”

“사람들은 항상 그렇더군요.”

“뭣이?”

“왜 그것에 한계를 두시는 겁니까. 이미 사람이 할 일을 자노가 하고 있지 않사옵니까. 물론 그에 반발하는 자들도 있사옵니다. 환인이라 자칭하는 무리들이 바로 그것이지요. 그들은 변혁을 두려워하옵니다. 자신들이 몸 담고 있던 세계가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옵니다. 허나 그것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최초의 두려움은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주는 달콤한 과실에 눈 녹듯 사라지고 결국 그것이 태초부터 있었던 것 처럼 받아들여 질 것이옵니다. 공께서도, 그리 생각지 않으시옵니까?”


다른 유학자들이라면 길동의 반문에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겠지만 영실은 할 말을 잃었다. 실제로 영실 역시 언젠가는 자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뀔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평생을 자노연구와 기유학에 매진해왔던 것이다.

길동은 그런 영실에게 묻는 것이다. 다른 이에게는 생각의 한계를 부수길 권하면서, 왜 그대는 한계를 두느냐고. 영실은 발밑이 꺼지는 아찔한 감각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그러자 길동이 재빨리 다가와 그런 영실을 부축했다.

영실은 헐떡이며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길동을, 아니 자노를 바라보았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생김새. 스승이 이런 형태로 조형한 이유를 알법했다.

스승은 자노 이상의 것, 사람 이상의 것을 만들고 싶었으리라. 그리하여 불가촉천인이니, 중인이니, 양반이니 하는 계급적인 구속과 백귀(白鬼, 피부가 하얀 동양인들을 일컬음)니 곤륜노(崑崙奴, 피부가 검은 북방인들을 일컬음)이니 하는 종족적인 구속 같은, 그런 모든 것을 초월하고 싶었으리라.


“너는, 사람의 몸을 기계가 대신하는 것 역시 그리될거라, 그렇게 생각하느냐.”


탄식과도 같은 물음에 길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몸 뿐만이 아니옵니다. 언젠가 사람은 생각, 감정의 통제, 근육의 수축, 내장기관의 조절까지 기계에 맡기게 될 지도 모르옵니다.”

“…자신의 생각마저 기계에게 맡긴다면 그것이 어찌 사람이랴.”


영실의 말에 길동은 처음으로 표정을 만들었다. 그것은 미소처럼 보였다.


“도대체 너는 무엇이더냐. 사람의 두뇌를 지닌 자노여. 너는 자신이 기계가 아닌, 먼 훗날 있을 사람이라 주장하고 싶은 게냐.”

“그것은, 제가 대답한다고 하여 인정받을 부분은 아닌 듯 싶사옵니다. 그럼 제가 여쭙겠사옵니다.”


영실은 길동의 부축을 뿌리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고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한 연후 다시 길동을 바라보았다.


“묻거라.”

“대저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생명이란, 살아 숨쉬는 것을 말하느니. 그것이 금속과 생명체의 차이니라.”

“살아 숨쉰다는 것은, 흡기-연소-배기 의 과정을 거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저 역시 그와 같은 과정을 거치고 있사옵니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복잡할 것이니라. 허나, 길동이여. 너는 생명체가 아니다. 너는 그저 자노에 불과할 따름이야. 사람의 두뇌를 지녔다하여 어찌 네가 사람이리.”


길동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노와 사람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이옵니까? 자노삼칙?”


그 물음은 거의 비웃음과 같은 것이었지만 영실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단 한 번도 자노의 발전이 생명의 영역을 침범할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영실은 그 자노삼칙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내 스승이자 네…창조주이신 이작께서 그리 정의하셨느니라. 자노삼칙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노는 존재치 아니할 것이며, 자노삼칙은 자노의 근간이요, 기본일것이라고 하셨느니라.”

“네, 맞사옵니다. 그래서 저희는 주장합니다. 저희는, 더 이상 자노가 아니옵나이다. 저희는 당신들께서 창조하신 하나의 새로운 종種입니다.”


영실은 길동의 대답에 숨이 턱하고 막혔다. 그리고 치밀어 오른 것은 이유 모를 분노였다.


“무슨 그런 망발을!”

“망발이라 여기 시옵나이까? 저희는 이미 단순 전산영역을 넘었고, 입력되어 있는 사고논리형식에서 맴도는 것도 지났사옵니다. 아직 온전치는 않지만 저희는 당신들-인간들-과 같이 사고할 수 있는 자율연산능력이 있습니다. 이를 만들어 주신 것도 당신들이옵니다.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난다면 유기생명체와 같이 생식행위로서 자손을 불릴 수는 없지만, 의식을 하전이下轉移시킴으로써 얼마든지 개체수를 조절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무엇이 ‘종’이 되기에 부족하다는 것입니까? 그건 단지 당신들의 오만이라는 생각은 해보신적 없으십니까?”

“그것은 번식이 아니니라! 단지 복제일 뿐이지! 공방에서 만들어내는 물건을 번식한다고 하진 않으니!”

“그렇다면 당신들이 말하는 번식이란 무엇이옵니까?”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고 그로 인해 자식이 생겨난다. 그 자식은 부모를 닮았지만 결코 부모와 동일하지 않다. 이것이 바로 번식이니라. 이는 너희들의 무한한 자기 복제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어떤 것을 말씀하십니까?”


영실은 자신이 왜 이리 분노했는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알아차렸다. 이 천지에서 ‘유일하게’ 자율연산이 가능한, 그리고 문명을 만들어 발전할 수 있는 종족의 그 유일성이 위협당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영실은 입술을 깨물면서 길동의 물음에 답했다.


“자기 복제에서는 발전의 가능성이 없다. 허나 청출어람 청어람이라는 말이 있다. 본디 이 말은 스승과 제자사이를 일컬음이나, 나는 지금 너에게 저 고사야말로 생명체가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이라 말해주고 싶다. 이는 인간뿐만이 아니라 일개 미물에게도 통하는 것이니, 자식이 부모를 닮되 같지 아니하니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그렇사옵니다. 허나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보시겠습니까. 자식이 반드시 부모보다 발전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렇다. 하지만 성공과 실패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 실패할 것을 겁먹고 성공을 할 가능성마저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영실의 말에 길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길동은 이내 다시 반론을 제기하였다.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무엇을?”

“틀림없이 생명체가, 그리고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며(進) 변하는(化) 것은 그러한 유기체적 기초에 기반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진화합니까? 살기 위해서 진화하는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그 진화에 간섭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환경이옵니다. 그것은 저희 역시 마찬가지이옵니다. 혹한의 대지에서 저희의 유관油管을 따라 흐르는 유액은 얼어붙습니다. 숨쉬기조차 버거운 열사의 사막에서는 저희의 몸은 쉽게 과부하에 걸릴 것이옵니다. 저희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육체를 개조하고, 행동패턴을 통상과 다르게 할 것이옵니다. 그리고 그 두 개체는 결코 같지 않습니다.”


영실은 고개를 저었다.


“틀리다.”

“무엇이 말입니까.”

“너는 내가 지금 두꺼운 옷을 입었다하여, 옷을 입기전의 나와 다른 이라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허나, 이는 단순한 생각이니라. 너는 지금 흰 옷을 입고 나간 주인이 검은 옷을 입고 들어오자 짖는 강아지와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

“단기적으로 보면 그러할 것이옵니다. 하지만 그 안목을 장기적으로 연장하면 어떻겠습니까? 남경의 귤을 상경에 심으면 탱자가 되옵니다. 그것은 따뜻하고 습한 남경과 달리 상경은 춥고 건조하기 때문에 귤이 생존하기 위해 그 부피를 줄인 것이옵니다. 공께서는 귤과 탱자가 같다 여기시옵니까?”

“…너의 말은 타당하다. 허나 그것이 사람과 같다는 것은 오만이다. 사람은 단지 생존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자신의 믿음을 위해…자신의 뇌를 너에게 이식한 이도 있다.”


영실은 마지막 말을 꺼내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비록 그것이 엄연한 사실이라고는 하나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길동은 영실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저희는 단 한번도 저희가 사람과 같다라고 말한적이 없습니다. 왜 저희가 사람과, 즉 인간과 같아야 합니까. 저희는 저희이옵니다. 저희가 당신들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듯이, 인간인 공께서도 저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방금 전에 제가 혹한지대에서 사는 자노와 사막에서 사는 자노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 곳에 사는 자노들이 1000년만에 만난다면, 그리고 그들이 사람이었다면 아마 서로가 다른 인종 혹은 생명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는 동시에 느끼고 동시에 사고하며 동시에 행동합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더냐.”

“저희는 하나이되 전부요, 전부이되 하나이옵니다. 사람이 다수가 모이면 사회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사람은 그곳에서 맹렬한 의사교환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을 전승하고 축적하며 발전해나갑니다. 하지만 저희는 사회를 이룰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 곳곳에 퍼져있는 ‘저들’이 다양한 경험을 축척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모든 이들에게 다시 각인됩니다. 그렇군요, 당신들 인간에 비유를 하자면 매 순간 저희는 진화하는 것이옵니다.”

“…….”


어느덧 분노는 사그라들고 남은 것은 지적호기심이었다. 실제로 언제 영실이 인간이 아닌, 스스로가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지성체’와 대화를 나누어 보았겠는가. 하물며 그것이 자신들의 손으로 빚어낸 ‘피조물’이라면.

영실은 그 말을 가만히 곱씹어보았다. 그러자 의문점이 하나 생겼다.


“사람도 의사교환을 하면 서로 마찰을 빗는다. 심지어 나 스스로도 혼자서 갈등을 빗곤 하지. 헌데 너희들은 충돌을 일으키진 않는다는 말이더냐.”

“저희는 다릅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경험한 경험과 가치관의 충돌. 반드시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려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허나 문헌을 보면, 사람은 결국 반드시 무언가를 취하고 버립니다. 아라사 대륙의 발견에서 일어난 원주민들의 학살, 봉래도의 개척에서 일어난 학살 등. 이런 비극이 일어난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길동의 지적은 뼈아픈 것이었다. 다름을 인정치 못하는 인간은, 자신과 다른 무언가를 만났을 때 이빨을 먼저 드러내었다.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원주민들을 미개인 취급하고, 노예로 삼는 인간의 모습이, 저들에게 그리 보였단 말인가.


“그러한 무한 긍정이 가능하단 말이냐. 놀랍구나.”


영실의 말에 길동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표정하게 돌아왔다.


“생각보다, 적응이 빠르시옵니다.”

“아니, 내 솔직히 이르건데 아직도 내가 꿈을 꾸는 것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이다. 허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허허 글쎄. 이미 스승님의, 머리는 너의 판단기관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었고 이미 너는 이렇게 만들어져있다. 내가 부정한다고 사라지겠느냐.”

“…과연 창조주가 가장 기대하시던 제자답습니다.”

“스승님께서? 나를? 허허, 이 미욱한 제자를 너무 과대평가하셨군.”


허탈하게 웃던 영실은 이내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영실과 만수가 서경까지 내려오게 된 이유, 바로 활빈당의 활동에 관한 것이었다.


“내 몇 가지 묻겠다.”

“하문하소서.”

“그러면 네가 활빈당이라는 도적의 무리를 만든 것은 어인 연유에서더냐. 그리고 유독 번갯돌을 가져간 이유는 또 무엇이고.”

“저희는 지금 단 두 가지의 목표가 있사옵니다. 이는, 창조주께서 명하신 것이니 사명이라 해도 옳을 것이옵니다. 그것을 위해 활빈당을 만들고, 환인을 자처하였습니다.”

“목표라?”


영실은 내심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여부야 어찌되었건 눈 앞에 있는 것은 사람과 동일한 수준, 아니면 그 이상의 사고를 할 수 있는 자노이다. 게다가 이 자노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스승은, 중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갖은 멸시를 당하지 않았던가. 만약에 소진왕 쪽에서 중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겠다는 식으로 스승에게 길동같은 자노를 초월한 자노를 요구했다면, 큰 난리가 날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영실의 걱정은 길동의 대답으로 사라졌다.


“공의 경우는 특이한 경우이옵니다. 허나,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처럼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노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역사를 보아왔을 때, 자신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폭력으로 반응할 것이옵니다. 당장 저희가 환인을 자처할 때 민중의 호응을 보아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사실이옵니다.”


길동의 말에 영실은 인간으로서 부끄러워 해야하는가를 잠깐 고민했다. 길동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기에.


“그렇다면, 너희는 무얼 원하느냐.”

“저희가 최종적으로 원하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종으로써, 그리고 지성을 주장할 수 있는 이들로서, 오롯이 저희 자신으로써, 당신들처럼 세상을 향유할 것이옵니다. 허나, 방금 고했다시피 그것은 많은 충돌을 가져올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저희는 떠나려 하옵니다.”

“떠난다? 어디로 말이냐.”


영실은 의문스러운 얼굴로 길동을 바라보며 물었다. 길동은 몸을 돌려 다시 알 수 없는 기계장치로 다가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전과 다르게 기계 장치의 여러 부분을 꾹꾹 눌렀다. 그러면서 길동은 영실의 질문에 대답했다.


“지아비를 버린 항아는 월궁月宮으로 떠났고, 호랑이를 피해 달아난 오누이는 해와 달이 되었다지요. 저희는 역시 떠날 것입니다. 바다 너머, 수평선 너머 끝없는 별의 바다를 건너가다 보면 저희가 머무를 땅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창조주께서 완성치 못한 저희들-저를 제외한 나머지-를 완성할 것이옵니다. 그것이, 저희에게 남겨진 사명이옵니다.”


말을 마친 길동이 마지막으로 단추를 누르자, 길동과 영실의 정면을 가로 막고 있던 동굴벽이 스르르 하고 열렸다. 처음에 영실이 기절해 있을때 느꼈던 한기가 스믈거리며 밀려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에는 거대한 건축물이 서 있었다.

모르는 이가 봤다면 특이하게 생긴 탑이라고 말할 것이나, 영실은 대번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이작총서에서도 가장 마지막 장에 있던, 스승조차도 막연한 개념도로만 만들었던 것. 스승은 그것에 광활한 우주의 바다를 해쳐나갈 배라 하여 우주선宇宙船이라 이름 붙였었다.


“정녕, 갈수 있단 말이냐.”


영실은 떠듬거리며 말했다. 길동은 몸을 돌려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활빈당을 자처하며 모은 수백 개의 번갯돌과 부품들, 그리고 저희가 자체적으로 발굴한 번갯돌이 있습니다. 저희가 ‘율도栗都’라 이름 붙인 곳까지 항해하는데 문제는 없을 것이옵니다.”


길동이 잠시 눈을 감았다 뜨자, 우주선 근처의 동굴 벽이 열리더니 아까 봤던 다른 길동 무리가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은 우주선을 빙 감은 나선계단을 타고 올라가 그 안으로 하나 둘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영실은 왠지 모를 슬픔을 느꼈다. 단지 사람이 가지는 인식의 한계, 그리고 그 폭력성과 야만성으로 사람은 자신이 만들어낸 피조물을, 어찌 보면 훗날의 자신이 될 이들을 떠나 보내는 것이다.

자신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흐르는 것도 모르고 영실은 울음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다면, 너희는 가버리는 것이냐. 그 무한한 거리를 헤엄쳐, 너희들에게 약속된 낙원의 땅으로?”


길동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길동은 영실이 놀랄 만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약속된 낙원의 땅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지금 딛고 있는 곳을 긍정한다면 그곳이 낙원이겠지요. 하여 저희는 기다릴 것입니다. 언젠가 저희와 당신들이 서로를 긍정하고 사랑하게 되기를.”


*


“태상호군 영감! 태상호군 영감!”


호랑이의 울부짖음이 동굴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길동의 우주선이 하늘로 치솟을 때, 비록 벽은 닫아놨어도 먼지 전체가 동굴을 뒤덮었기 때문에, 지금 영실의 모습은 재를 뒤집어 쓴 악동의 꼴이었다. 영실은 오랜만에 듣는 만수의 목소리에 피식 웃으며 몸에 묻은 먼지를 탈탈 털었다.

그리고 흐르는 눈물을 닦은 후에 힘차게 외쳤다.


“여길세, 여기야. 하하하!”


*


“…해서 홍길동은 율도국으로 건너가 나라를 세웠으니 3년 만에 산에 도적이 없고, 길에 흘린 물건은 서로 줏지 아니하며, 다툼이 없었으니 모두들 행복해 하였다.”


훈장의 목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왁자지껄한 소리가 서당을 가득 메웠다.


“에이, 맨날 홍길동 이야기야. 그것 말고 딴거 해주세요.”

“왜, 난 재밌기만 하구먼. 스승님, 한음이 말은 듣지 마세요.”

“너 오성! 또 스승님께 알랑방귀를…악!”

“스승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에잉, 쯧쯧. 어쨌든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내일부터는 제대로 기유학입문서를 가르칠 터이니 단단히 각오하고 오거라.”

“스승님, 오늘 하루도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진 인사가 끝나자마자 와아- 소리 지르며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거센 파도와 같이 우르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스승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아이들이 어질러놓은 서당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스승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록 낮이라 보이진 않았지만, 저 하늘 너머 어딘가에 길동이 있을 것이다.

영실은 허허로이 웃으며 살포시 방문을 닫았다.



#6 終


영락永樂 17년, 10월 9일.

수창위秀廠衛 박문수가 상소하기를,

요즘 화적의 폐해가 날로 심하여 폐해가 없는 곳이 없는데 서경이 더욱 심합니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무리를 이루어 심지어 그 인원수가 대체로 만 명이나 되는데 활빈당活貧黨이라고 하면서 거리와 저자에 함부로 방榜을 내걸고는 민가를 파괴하고 사람을 살해하며 불을 지르고 재물을 빼앗으며 남의 무덤을 파헤치고 남의 부녀자를 겁탈합니다. 그리하여 길이 막혀 통행을 하지 못하고 마을이 소란해져 편안치가 못합니다.

심지어 포교들까지도 도리어 그 피해를 입고 있으며 현감도 곤란을 겪고 횡액을 당하는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감은 내버려두고 다스리지 못하며, 조정에서는 미처 알지 못하고, 설사 안다 하더라도 잡아다가 신문하지 못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지략이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을 선발해 보내서 진압하고 체포하는 임무를 주되 몇 달 안에 소굴을 소탕하여 뿌리를 뽑고, 평민으로서 억지로 끌려간 사람들은 놓아주어 돌아가 농사를 짓게 한다면 온 나라를 편안하게 하고 후환을 영영 없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께서 답하시기를,

진달한 문제는 아주 시급한 당면 문제이다. 마땅히 유의하겠다.

하시었다.


영락永樂 17년, 12월 2일.

초저녁에 패성孛星이 서방에 나타나서 선회하하다가 한참 만에 자취가 없어졌다. 그 크기는 주발만 하고 청적색이었다.

상께서 친히 보시고 서운관에서 관찰하던 이기호에게 물으니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므로 하옥하라고 명하였으나, 이튿날 그를 석방하였다.


영락永樂 17년, 12월 14일.

서경병마사 강감찬이 장계를 올리길,

활빈당이라 자칭하는 도적이 기승을 부리나 서경수군사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사옵니다. 금번 상께서 보내주신 태상호군과 특임위장이 용패를 보이며 병력을 요구하여 흔쾌히 내주었사옵니다. 이 둘은 병력을 지휘하여 손수 활빈당을 토멸하였으니 그 공을 감안하심이 옳을 것입니다.

하니, 상께서 답하시기를,

짐이 이들을 친히 치하할 것이니라

하시었다.


영락永樂 25년, 1월 7일.

서경 소진왕이 난을 일으키니, 서경수군사가 이에 응하여 중경으로 향하였다.

상께서 매우 진노하여 어림군御臨軍 상장군上將軍 장만수를 토벌군 총대장으로 임명하시고 역도의 무리를 뿌리 뽑으라 하시었다.


영락永樂 25년, 8월 12일.

소진왕이 서경 경도 누각에 올라 불을 지르고 자살하니, 비로소 반란의 불길이 모두 꺼지다.

상께서 매우 기뻐하시며 이르시기를,

평민으로 어쩔 수 없이 끌려간 자는 석방하되, 그 외의 자들은 모두 참수하여라

하시었다.


영락永樂 27년, 2월 15일.

행제조판서 장영실이 물러나기를 청하다.

상께서 이를 허하시니, 그의 나이 예순하나라.


[세종영락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황제실록 世宗永樂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皇帝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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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SF에 한참 빠져있다가 친구의 글을 보고 자극받아서 동양풍을 섞어보자 하고 쓴글입니다. 

반전이 너무 뻔했다느니, 용두사미격글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만..예 사실입니다ㅠㅜ

지금 올리면서 다시 보니까 마지막 길동과 영실의 대화는 DR의 마지막 부분을 생각나게 하네요-_-;


어쨌든 그다지 재밌지 않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굽신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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