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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는 여러가지로 꽤나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보면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바로 제목의 저말이더군요.
"어쩔수 없는 일이란것은 정말로 있는걸까?" 란 생각이 말입니다.
이 만화에서 주 테마는 전쟁과 역사에 관한겁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지요. 하지만 전쟁의 비극은 이걸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 모두에게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그 모든 바램을 짓밟고 말지요. 그리고 바꾸고 말지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증오를 낳게 됩니다.
복수를 원하게 되고 사람들은 또다시 전쟁을 부르짖습니다. 물론 전쟁이 이런 이유만으로 일어나지는 않습니다만 역사적으로 큰 전쟁을 을일으킨 인물들이 모두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걸 생각해보면 국민들도 전쟁을 원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어쩔수 없이 전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남자들은 전쟁터로 싸우러 가게 되고 여자와 아이들은 전쟁에 희생물이 되기 일수죠.
그래서 저는 이런 것이 바로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아는 사람이 이런말을 하더군요.
"군인들은 대부분 어쩔수 없이 명령에 따라서 사람을 죽였다고 말하죠."
"하지만 그건 변명일뿐입니다. 그들은 명령을 따르는 선택을 한거죠."
저 말을 듣고 보니 그런 생각도 들기도 하더군요. 모든 것은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죠.
어쩔수 없는 일이 있는건가 아니면 모든것은 선택에 따른 것인가 아직도 고민하고 있습니다만 잘 결론이 나지 않는군요.
하지만 아레스에서는 스스로 선택한 길에 대해서 긍지를 가지라는 메세지를 주기도 합니다. 설사 그것이 죽음으로 끝날지라도요.
회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쩔수 없는 일이란 정말로 있는걸까요? 아니면 모든것은 개인의 선택인걸까요?
조이 SF의 명성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앞으로 잘부탁드려요.
2010.03.06 15:23:30
어차피 죽고 죽이는 분쟁은 자신의 목숨과 타인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에 무게를 더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욕먹을 일도 아니죠. 그리고 모순이지만 정당화하기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진짜 정의로운 자라면 타인의 목숨을 자신의 목숨과 같은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이겠죠.
'난 자살하면 되니까 남을 내가 죽여도 되겠지!'하는 정신이상자가 있으면 매우매우 곤란하겠지만요. 이런 사람은 목숨이 쾌락이나 물질보다 싼 가치다보니;;;
'난 자살하면 되니까 남을 내가 죽여도 되겠지!'하는 정신이상자가 있으면 매우매우 곤란하겠지만요. 이런 사람은 목숨이 쾌락이나 물질보다 싼 가치다보니;;;
2010.03.07 04:19:02
음...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신념도 크게 나누면 일자와 타자를 나눠 이기적인 신념이 있겠고...이타적인 신념이 있겠지요. 히틀러같은 경우는 일자(독일인)의 목숨은 비교적 귀하게, 타자(기타 등등)의 목숨은 파리목숨으로 생각했으니...엄연히 이기적인 신념이겠지요. 제가 한 이야기는 엄밀히 말하면 '타자의 일자화'가 되겠습니다. 테레사 수녀나 슈바이쳐같은 사람이 아닌 바에야 사실 불가능에 가까우니 완전하게 정의로운 사람은 없다고 봐야겠지요. 누구도 타자의 일자화를 강요할 위치에 서있지는 않다고 봅니다. 그럼 개체라는 개념이 희박해지니까요. 힘쓸 수 있는 바 최선을 다 해야겠지요. 이렇게 말해버리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쓴 독립투사 분들도...옳지 못한 행위을 하신 것이 되겠지만...전 아직 타자의 일자화를 제 스스로 추구할 만큼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있네요;;;인간이 지식을 위해 힘쓴 만큼만 인류애를 가졌다면...이런 고민을 할 이유도 없었겠지요.
목숨은 엄연히 신념같은 것보다는 상위...그 어떤 가치보다 상위에 위치해야겠죠. 세상은 여전히 자신도 모르게 일자와 타자를 나누려 합니다. 예수의 가르침이나 부처의 자비나 단군의 홍익인간 등등...많은 성현들이 세상에 목숨의 소중함을 알리려 해도...그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도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지요.
이런 말을 하는 저도 카프카스님의 의견을 보니...고개만 숙여질 뿐이네요...ㅠ.ㅜ
2010.03.06 18:49:24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삶과 죽음]이라는 극명한 전제 앞에서는 그나마 정당화하기가 쉽지만, 기실은 우리 모두 매일같이 고민을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그러니 나는 어쩔 수 없이 ~할 수 밖에 없다"라는 명제의 수위를 살짝 낮추어 우리의 실생활에 적용시킬 수 있겠죠. 예컨데, "순응하지 않으면 내가 해고된다. 그러니 나는 저항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 이 것은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극복함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가 되는 인간 심리 중 하나이지요.
우리는 종종 대적하기에는 너무나도 압도적인 '대세' 앞에서 저항을 포기하는 스스로를 정당화 하고는 합니다. 뭐, 실제로도 어떠한 도덕적 명제를 끝까지 관철시키는 것을 평범한 사람에게 기대하기에는 힘든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문제는 두 가지 지점에서 발생하는데, 하나는;
(1) [...나는 저항을 포기했지만, 그래도 나와는 달리 저항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는 것 또한 분명한 현실인 이상, '솔까말' 신념과 대의를 관철함에 있어 포기하지 않는 그들이 존재하는 이상은 그 무슨 말로도 나의 무저항은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포기한 스스로에 대해 관대하지거나 둔감해질 수는 있을망정, 그것에 대한 변명의 여지는 없다는 것이 솔직한 제 생각이에요.
예컨데, 현지에서 엄청나게 인력을 착취하여 만들어진 별다방 커피 한 잔을 최종적으로 소비하는 나 자신은 분명, 그 착취 구조의 일부로서 그 현실을 묵인하는 방조자입니다. 당장 내 생활에 지장이 없다보니 별로 신경을 안쓰게 되고,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을 갖고 내가 죄책감을 가져야 할까?"라는 식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이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거짓말이 될 수는 있어도 보다 상위의 도덕적 정의 아래에서는 솔직히 변명이 되지는 못하거든요.
아니면, 한국이라면 역시 '삼성'의 예를 들기가 가장 쉽지요. 한국과 같은 환경에서 대기업에 취직해서 먹고 사는 것이야말로 선망받는 삶의 방식 중 하나이고, 나름대로 열심히 한 결과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 취직하여 그 안에서 열심히 일하고 살아가는 모든 '삼성맨'과 '삼성우먼'들은 사실,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반을 대놓고 뒤틀어대는 삼성이라는 독점적 깡패재벌을 이루고 있는 하부구조입니다. 물론, 그 개개인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지요.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그러한 거대한 흐름에 따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공적인 영역, 혹은 도덕적 차원에서 개인에게 면죄부를 쥐어줄 수는 없거든요. 특히, 보다 힘들고, 비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 끝까지 삼성을 상대로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현실인 이상 개개인의 선량함과는 무관한 차원에서 어디엔가는 도덕적 책임이 떨어져야 하거든요.
(2) 문제는 결국 위와 같은 상황에 있어 관계된 모든 개개인이 그 '양심의 가책'을 어떻게 떠안고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것으로 귀결이 되는데, 그냥 양심 자체에 등을 돌려버리는 경우도 있겠고, 드문 경우에는 그 가책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을 십분 자각하여 있는 모든 것을 내걸어서라도 굴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보다 일반적으로는 "나도 잘못된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찜찜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현실에 대해 스스로가 어느 지점에서 타협을 하는가... 라는 최종적인 도덕적 선택을 누구나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요.
오늘날 같은 현실에서 불굴의 투지와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분명 가혹한 일입니다. 특히, 그것이 누군가의 죽음을 의미하는 경우에는 '내가 감히 그러한 것을 타인에게 요구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드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겠지요.
하지만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1980년 5월 18일, "명령을 받았으니 어쩔 수 없다"라는 것과는 다른 생각을 한 부대가 단 한 부대라도 있었더라면 어떠했을까요. "명령에 저항한 나는 분명히 죽는다. 그러나, 국민을 지킨다는 군인으로서 나는 무고한 국민을 죽일 수는 없다"라고 선언한 단 하나의 소대... 아니, 단 한 명의 군인이라도 있었더라면 어떠했을까요.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을 것이고, 반란행위로 규정당한 후 시민들과 함께 죽음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 20대의 어린 나이에 있었을 군인 청년들에게 그러한 요구를 한다는 것은 정말로 가혹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명령에 거역하지 않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여 무고한 국민을 기계적으로 사살한 참혹한 역사 대신에, 단 하나의 소대라도, 단 한 명의 군인이라도 자신의 양심에 등을 돌리지 않고 목숨을 내던진 이야기가 전해내려왔더라면, 작고 비참한 저항이었을지언정 그런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는 것만으로도 후세의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구원이 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없는 듯 합니다.
있는 것은 오직, "어찌하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큰 희생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마음의 저울질 뿐이겠지요.
우리는 종종 대적하기에는 너무나도 압도적인 '대세' 앞에서 저항을 포기하는 스스로를 정당화 하고는 합니다. 뭐, 실제로도 어떠한 도덕적 명제를 끝까지 관철시키는 것을 평범한 사람에게 기대하기에는 힘든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문제는 두 가지 지점에서 발생하는데, 하나는;
(1) [...나는 저항을 포기했지만, 그래도 나와는 달리 저항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는 것 또한 분명한 현실인 이상, '솔까말' 신념과 대의를 관철함에 있어 포기하지 않는 그들이 존재하는 이상은 그 무슨 말로도 나의 무저항은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포기한 스스로에 대해 관대하지거나 둔감해질 수는 있을망정, 그것에 대한 변명의 여지는 없다는 것이 솔직한 제 생각이에요.
예컨데, 현지에서 엄청나게 인력을 착취하여 만들어진 별다방 커피 한 잔을 최종적으로 소비하는 나 자신은 분명, 그 착취 구조의 일부로서 그 현실을 묵인하는 방조자입니다. 당장 내 생활에 지장이 없다보니 별로 신경을 안쓰게 되고,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을 갖고 내가 죄책감을 가져야 할까?"라는 식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이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거짓말이 될 수는 있어도 보다 상위의 도덕적 정의 아래에서는 솔직히 변명이 되지는 못하거든요.
아니면, 한국이라면 역시 '삼성'의 예를 들기가 가장 쉽지요. 한국과 같은 환경에서 대기업에 취직해서 먹고 사는 것이야말로 선망받는 삶의 방식 중 하나이고, 나름대로 열심히 한 결과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 취직하여 그 안에서 열심히 일하고 살아가는 모든 '삼성맨'과 '삼성우먼'들은 사실,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반을 대놓고 뒤틀어대는 삼성이라는 독점적 깡패재벌을 이루고 있는 하부구조입니다. 물론, 그 개개인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지요.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그러한 거대한 흐름에 따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공적인 영역, 혹은 도덕적 차원에서 개인에게 면죄부를 쥐어줄 수는 없거든요. 특히, 보다 힘들고, 비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 끝까지 삼성을 상대로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현실인 이상 개개인의 선량함과는 무관한 차원에서 어디엔가는 도덕적 책임이 떨어져야 하거든요.
(2) 문제는 결국 위와 같은 상황에 있어 관계된 모든 개개인이 그 '양심의 가책'을 어떻게 떠안고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것으로 귀결이 되는데, 그냥 양심 자체에 등을 돌려버리는 경우도 있겠고, 드문 경우에는 그 가책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을 십분 자각하여 있는 모든 것을 내걸어서라도 굴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보다 일반적으로는 "나도 잘못된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찜찜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현실에 대해 스스로가 어느 지점에서 타협을 하는가... 라는 최종적인 도덕적 선택을 누구나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요.
오늘날 같은 현실에서 불굴의 투지와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분명 가혹한 일입니다. 특히, 그것이 누군가의 죽음을 의미하는 경우에는 '내가 감히 그러한 것을 타인에게 요구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드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겠지요.
하지만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1980년 5월 18일, "명령을 받았으니 어쩔 수 없다"라는 것과는 다른 생각을 한 부대가 단 한 부대라도 있었더라면 어떠했을까요. "명령에 저항한 나는 분명히 죽는다. 그러나, 국민을 지킨다는 군인으로서 나는 무고한 국민을 죽일 수는 없다"라고 선언한 단 하나의 소대... 아니, 단 한 명의 군인이라도 있었더라면 어떠했을까요.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을 것이고, 반란행위로 규정당한 후 시민들과 함께 죽음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 20대의 어린 나이에 있었을 군인 청년들에게 그러한 요구를 한다는 것은 정말로 가혹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명령에 거역하지 않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여 무고한 국민을 기계적으로 사살한 참혹한 역사 대신에, 단 하나의 소대라도, 단 한 명의 군인이라도 자신의 양심에 등을 돌리지 않고 목숨을 내던진 이야기가 전해내려왔더라면, 작고 비참한 저항이었을지언정 그런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는 것만으로도 후세의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구원이 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없는 듯 합니다.
있는 것은 오직, "어찌하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큰 희생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마음의 저울질 뿐이겠지요.
2010.03.07 01:37:44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없는 거 같습니다. 단지 목적의 방향과 지식과 지혜의 한계 그리고 리턴과 리스크만 있다고 생각.
물리적인 측면에서 실질적으로 어쩔 수 없는 거의 불가능의 영역은 분명 존재합니다만 그것이 불가능함을 믿을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가치판단의 영역에는 한계란 게 없겠죠. 누구에겐 싸구려 죽음 같아도 당사자에겐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여길지도 모르고요. 그러니 자신이 파멸에 이르도록 뭔가를 추구하다가 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겠죠.
생존이란 거창한 문제를 떠나 어떤 상품에 더 가치를 두고 돈을 투자하는지가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그것과 비슷한 거 같습니다.
2010.03.07 12:58:39
세상엔 어쩔 수 없는 일 보다는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그저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할 수 없기에 끌려간다는 정도는 있죠.
쏘우라는 영화는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죠.
시간이 지나면 폭발하는 장치가 머리에 장치되어 있고,
그 열쇠는 눈 앞에 있는 다른 사람의 뱃 속에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을 죽이고 배를 갈라야 합니다.
과연 어쩔 수 없을까요?
내일이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다리엔 쇠사슬이 묶여 있고, 그것을 잘라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칼이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살을 바르고 뼈 사이를 떼어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내 다리를 자르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우니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어쩔 수 없음이란...
내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를테면. 치사량 이상의 방사능을 피폭당하고 죽지 않는 것은 내 선택으로 될 일은 아니죠.
많은 경우 우리는 우리의 신념을 구속당하고 강제로 꺾이도록 요구받습니다.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할 희생이 너무나 많죠.
개인적으론 대체 복무에 대해 환영하는 입장인데.
그것은 바로 그것이 이런 신념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났을때, 나는 사람을 죽이기 싫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도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 던져져 죽이지 않으면 죽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정말 이걸 감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어떤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개인의 신념과 그 선택이 언제나 극단적인 포기와 희생을 담보로 하지 않아도
좋은 상황에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죠.
그저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할 수 없기에 끌려간다는 정도는 있죠.
쏘우라는 영화는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죠.
시간이 지나면 폭발하는 장치가 머리에 장치되어 있고,
그 열쇠는 눈 앞에 있는 다른 사람의 뱃 속에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을 죽이고 배를 갈라야 합니다.
과연 어쩔 수 없을까요?
내일이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다리엔 쇠사슬이 묶여 있고, 그것을 잘라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칼이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살을 바르고 뼈 사이를 떼어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내 다리를 자르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우니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어쩔 수 없음이란...
내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를테면. 치사량 이상의 방사능을 피폭당하고 죽지 않는 것은 내 선택으로 될 일은 아니죠.
많은 경우 우리는 우리의 신념을 구속당하고 강제로 꺾이도록 요구받습니다.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할 희생이 너무나 많죠.
개인적으론 대체 복무에 대해 환영하는 입장인데.
그것은 바로 그것이 이런 신념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났을때, 나는 사람을 죽이기 싫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도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 던져져 죽이지 않으면 죽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정말 이걸 감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어떤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개인의 신념과 그 선택이 언제나 극단적인 포기와 희생을 담보로 하지 않아도
좋은 상황에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죠.
2010.03.07 15:36:13
'내가 하지 않으면 결국 그 살인을 다른 누군가가 해야 한다'와 '나는 살인을 할 수 없다'는 두 가지 명제를 놓고 볼 때는 어떨까요?
전자가 과하게 나가면 퍼니셔같은 작품이 됩니다. 후자가 과하게 나가면 건담시드같은 작품이 됩니다. (근데 건담시드는 본 건 아니고 이야기만 들었을 때 그런 식인 듯 하더군요. 오류가 있다면 죄송합니다.) 그리고 어느 쪽이건 외부관점에서 보면 기가 막히기는 마찬가집니다.
이걸 응당 그리 해야 할 도덕률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심리 상태라는 게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가라는 심리철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죠. 사건의 당사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심리적 방어벽을 칩니다. ('명령이라 따랐다'라는 변명 자체가 이미 그런 방어책입니다.) 제 3자들은 지금 자신이 처한 사회, 역사적 상황에 의거해 그 당사자들을 옹호하거나 비난합니다. (가령 광주 학살시 투입되었던 군인들이 지금도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습을 동정한다던가, 혹은 반대인 경우)
저 자신만 국한한다면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리는 걸 싫어합니다만, 그건 이상일 뿐이고 구조적인 문제건 뭐건 결국에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떠 안고 가야 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즉, '그 당시'의 결정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무엇을 선택하건 (아마도)절대적으로' 당사자의 능력을 벗어나는 요구를 하는 것이라는 이야깁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거나, 인지부조화의 극복을 위해 가스통에 불을 붙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옆에서 그걸 보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다는 것이 현실의 부조리고 그래서 또한 비극인 것입니다.
앞으로도 그런 일은 계속 생길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요.
전자가 과하게 나가면 퍼니셔같은 작품이 됩니다. 후자가 과하게 나가면 건담시드같은 작품이 됩니다. (근데 건담시드는 본 건 아니고 이야기만 들었을 때 그런 식인 듯 하더군요. 오류가 있다면 죄송합니다.) 그리고 어느 쪽이건 외부관점에서 보면 기가 막히기는 마찬가집니다.
이걸 응당 그리 해야 할 도덕률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심리 상태라는 게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가라는 심리철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죠. 사건의 당사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심리적 방어벽을 칩니다. ('명령이라 따랐다'라는 변명 자체가 이미 그런 방어책입니다.) 제 3자들은 지금 자신이 처한 사회, 역사적 상황에 의거해 그 당사자들을 옹호하거나 비난합니다. (가령 광주 학살시 투입되었던 군인들이 지금도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습을 동정한다던가, 혹은 반대인 경우)
저 자신만 국한한다면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리는 걸 싫어합니다만, 그건 이상일 뿐이고 구조적인 문제건 뭐건 결국에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떠 안고 가야 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즉, '그 당시'의 결정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무엇을 선택하건 (아마도)절대적으로' 당사자의 능력을 벗어나는 요구를 하는 것이라는 이야깁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거나, 인지부조화의 극복을 위해 가스통에 불을 붙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옆에서 그걸 보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다는 것이 현실의 부조리고 그래서 또한 비극인 것입니다.
앞으로도 그런 일은 계속 생길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요.
2010.03.07 23:00:06
"군인들은 대부분 어쩔수 없이 명령에 따라서 사람을 죽였다고 말하죠."
"하지만 그건 변명일뿐입니다. 그들은 명령을 따르는 선택을 한거죠."
"하지만 그건 변명일뿐입니다. 그들은 명령을 따르는 선택을 한거죠."
그 병사들에게 가혹한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후대에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병사들을 비난할때 사용합니다. 아니 왜 도구를 비난하는 걸까요? 솔직히 말해서 그건 말입니다. 병사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 명령을 내린 인간이 문제입니다. 사회적 약자에서 강자에게 당당하게 덤빌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 당신부터 당신앞에 놓인 작은 일부터 솔선수범하시길 국가나 지역사회 , 교육 행정같은 일은 거대한 일은 그후부터 "
흔한 말로 진보가 욕먹고 제가 한국의 운동권 세대를 지극히 싫어하는 이유는 이들은 항상 사람들이 변해야 한다고 부추기면서 정작 자신의 안위가 걸리면 뒤로 물러나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는 본인조차도 감희 그런 상황에서 당당히 나설 수 없는 그저 입안에 이건 아닌데 하면서 사는 그런 사람으로써 참 쓰기는 쉽다는 느낌입니다.
그 저항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단지 아닙니다.안됍니다. 단 1초도 안돼는 시간을 소모하지만 그건 그 사람이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 모든 것을 일순간 날려버릴 수있는 희생입니다, 그 무게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혁명가들은 이상의 가치에 너무 큰 의미를 두어 그런 희생을 너무나 당연히 그리고 쉽게 생각합니다. 마치 아랫것들의 희생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과 과연 무엇이 다를까요?
이상도 결국 잘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 일어난 희생을 그저 아쉽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대체 그런 저항을 왜리리 쉽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저항이 가져다주는 무게감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겪으신 분들이 더 그걸 쉽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더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짦은 소견입니다.
" 당신부터 당신앞에 놓인 작은 일부터 솔선수범하시길 국가나 지역사회 , 교육 행정같은 일은 거대한 일은 그후부터 "
흔한 말로 진보가 욕먹고 제가 한국의 운동권 세대를 지극히 싫어하는 이유는 이들은 항상 사람들이 변해야 한다고 부추기면서 정작 자신의 안위가 걸리면 뒤로 물러나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는 본인조차도 감희 그런 상황에서 당당히 나설 수 없는 그저 입안에 이건 아닌데 하면서 사는 그런 사람으로써 참 쓰기는 쉽다는 느낌입니다.
그 저항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단지 아닙니다.안됍니다. 단 1초도 안돼는 시간을 소모하지만 그건 그 사람이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 모든 것을 일순간 날려버릴 수있는 희생입니다, 그 무게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혁명가들은 이상의 가치에 너무 큰 의미를 두어 그런 희생을 너무나 당연히 그리고 쉽게 생각합니다. 마치 아랫것들의 희생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과 과연 무엇이 다를까요?
이상도 결국 잘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 일어난 희생을 그저 아쉽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대체 그런 저항을 왜리리 쉽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저항이 가져다주는 무게감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겪으신 분들이 더 그걸 쉽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더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짦은 소견입니다.
2010.03.08 11:28:36
약간 핀트가 벗어난 거 같은데 저항과 희생히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것은 그걸 하라고 종용하거나 강요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애초에 특정한 상황에서의 저항과 희생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만큼 확실히 자기 방어와 합리화가 될 수 있는 건 없겠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있습니다. 제가 목적의 방향과 지식과 지혜의 한계 그리고 리턴과 리스크만 있다고 했었는데 여기서 목적의 방향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잡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겠죠. 근데 당사자 본인은 그렇게 생각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지혜와 지식이 타인과 다를 가능성을 고려해봐야겠죠. 물론 정신 이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야 원래 정신 이상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혹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뭔가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런지도 모릅니다. 뭐 여기까지 간다면 목적의 방향부터 다시 고려해 봐야 할테고.
석아찬님은 결정론자의 입장에서 모든 사람의 심리 상태 역시 그 나름대로의 형태로 한계가 정해져 있으니 그것까지 포함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 것 같고 저는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영역' 의 외부로 빼 놓은 뒤 '어쩔 수 없는 일' 이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리적인 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게 사실일지라도 당사자 본인은 그게 정신이상이던 뭔던지간에 그렇게 믿지 않거나 다른 의미를 부여할 가능성이 있는 한 기존 페러다임에서 벗어날 행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 있는 건 사실이라는 거죠.
하지만 그게 그 시대를 지배하는 페러다임의 기준으로 볼 때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니만큼 그것을 강요한다던가 그 무게를 가볍게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것과는 다른 얘깁니다.
전자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그런 가능성을 따르지 않는 것을 비난하는 것과 동의어가 아닙니다. 여기에서의 주장은 가치판단이 들어가기 이전의 사실에 대한 기술에 가깝습니다.
2010.03.13 23:21:11
결론적으로 말해서 어쩔수 없는일은 언제나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이라는게 몸를 이용해서 움직이는 시간동안 해내는 범위 안의 일로 제한되거든요.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논외로 하고 군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군인들은 대부분 어쩔수 없이 명령에 따라서 사람을 죽였다고 말하죠."
"하지만 그건 변명일뿐입니다. 그들은 명령을 따르는 선택을 한거죠."
이 말에서 빠진 내용이 있습니다. 군인들이 "왜" 명령에 따르는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빠졌죠. 전후사정을 이해하지 못한채로 이런 말한마디로는 그저 헛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거나 "전쟁은 나쁘다" 같은 말들이 언제나 옳고 정의로운 가치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군대를 다녀오신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아실겁니다. 사람을 잘죽일수록 훌륭한 군대입니다. 그 안에서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고 말하는 도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매일 이런 말들이 사방에 널려서 돌아다니는 것을 볼수 있을겁니다. "명령을 수행하는것이 훌륭한 군인의 본분" "몸을 다바쳐 반드시 임무를 수행" "전력을 다해 적을 분쇄" "강한군대" "필승" 같은것 말이죠.
그러므로 병사입장에서 "어쩔수 없이 명령에 따라서 사람을 죽였다" 는 말은 사실 본심이 아닙니다. 사람을 죽인후에 이후의 책임추궁이나 불리한상황에서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변명 맞습니다. 진정한 이유는 "(그 당시에 군인으로서)사람을 죽이는것이 옳다고 여겨서 사람을 죽였다" 는 말이 맞죠. 이것은 군대뿐이 아니라, 전쟁중인 국가전체안에서 모든국민이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므로 전쟁당시에 이런 "사람을 죽이는것을 적극 장려한다" 라는 지배적인 가치관을 따르지 않는 개인이 있다면, 개인의 가치관과 성향이 외부환경의 압박을 극복할 정도로 굳건해야 합니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당연히 인구에서 매우 적은 비율을 차지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당시 주위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에 따라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죽이는것이 옳다고 여겨서 사람을 죽인다" 라는 태도를 가진 대다수의 사람들이 만나 당연히 서로를 죽이게 됩니다. 이걸 전쟁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전쟁상황처럼(또는 독재사회처럼) 주위환경의 압박이 심한상태에서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을 따라가지 않거나,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며 저항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상주의자" "몽상가" "현실감각 없는 사람" "사서 고생" 또는 "애국심 없는 사람" "미친놈" 등으로 불립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에 이런사람들을 "빨갱이" 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당연히 "사람을 죽이는것이 옳다고 여겨서 사람을 죽인다" 같은 가치관을 따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런 사실을 들추어내는것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문제를 들추어내서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을 기피하거나, 또는 맹렬히 미워합니다.
그래서 이상주의자와 몽상가들은 대부분 심한 탄압을 받거나, 일찍죽거나, 감옥에 같히거나, 힘든 삶을 삽니다. 그러다가 이들이 가끔씩 성공하면 세상을 조금씩 바꾸는 것이죠.
그럼이만.






무르쉬드
자신이 죽는건 솔직히 싫지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