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ndam_1year_war_pyodogi.jpg

[ 전쟁사의 관점에서 살펴본 건담 이야기. <건담 일년전쟁사>. 단순한 설정집을 벗어난 '작품 해석집'으로 볼만하다. ( 길찾기 ) ]

  <기동전사 건담 일년전쟁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만화영화-최근에는 만화로도 나오는- <기동전사 건담>이라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일 년 전쟁을 전쟁사라는 관점에서 살펴본 책으로, 단순한 작품의 설정 자료가 아니라, 그러한 설정에 해석을 더하여 상상하는 놀이(상상 (과학) 놀이라고 부릅시다.)입니다.

  ‘공상과학대전’이나 ‘스타트렉의 물리학’, 또는 ‘딴지 일보’의 영향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지만, 상상 놀이는 상상 과학(SF) 이 발달한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일찍부터 많이 진행되었습니다.
  미국에도 <스타트렉>이나 <스타워즈> 등의 작품에 관련한 책이 꽤 많으며, 일본에서도 <기동전사 건담 일년전쟁사> 같은 책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놀이의 전통은 <기동전사 건담>이나 <스타트렉> 같은 사실적인 작품에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찍이 슈퍼 로봇 대전의 탄생에 이바지한 만화가 하세가와 유이치는 <슈퍼 전대> 같은 특촬 전대물을 바탕으로 ‘굉장한 과학으로 지키겠습니다.’라는 지적 놀이를 탄생시켰는데, 이는 SF 팬들의 모임인 ‘일본 SF 대회’에서 공식적인 행사 중 하나로 소개됩니다.

sugoi_kagaku_pyodogi.jpg
[ 만화가 하세가와 유이치의 SF 해석 강좌 <굉장한 과학으로 지키겠습니다.(すごい科学で守ります)>. 특촬물조차 딴죽이 아닌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때 즐거운 재미를 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 제 44회 일본 SF 대회 ) ]

  이는 설정 놀이와는 다릅니다. ‘이런 세상이 있다.’라고 말하는 설정 놀음은 3살 어린애도 할 수 있지만, 만화나 영화 같은 비현실적인 창작 작품을 ‘현실적으로 해석하는 지적 게임’은 작품 이외의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지식인들만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식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닙니다. ‘공상 과학 대전’식의 딴죽 놀이는 재단하는 기준이 되는 ‘지식’만 있으면 됩니다. 자신이 아는 지식과 견주어 벗어나는 것은 모두 ‘허구이며 비현실, 비과학’이라고 몰아붙이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세계를 현실로 해석하는 상상 놀이’는 단순히 지식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지식은 기본, 여기에 사회를 보는 통찰력과 작품의 세계를 해석하는 분석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낳을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그야말로 남이 만든 이야기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놀이. 어른들만이 즐길 수 있는 지적 놀이입니다. (여기서 어른이란 나이를 기준으로 말한 게 아닙니다. 중세 한국어의 ‘어린(어리석은)’에 반대되는, 현명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상상 놀이는 세계를 보는 눈을 넓히고 상상력을 더한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작품의 세계를 훨씬 다양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는 매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있어 이보다 재미있고 유익한 지적 게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자신이 상상하는 세계를 충실하게 만들어나가는데도 도움을 줍니다.
  허무하기 이를 데 없는 딴죽 놀이나, 나 홀로 납득하는 세계를 만드는 것으로 그치고 마는 설정 놀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재미와 만족감을 줍니다.


  상상 놀이에는 두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1. 작품 속의 이야기는 모두 실제로 존재했던 것으로 가정한다.
2. 제작진이라는 존재를 무시한다.

  첫 번째 조건은 상상 놀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건입니다. 그것을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 가정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는 시작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불어 작품 속에 등장한 모든 기술이나 설정 역시 ‘실제의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우리 세계의 물리 법칙을 위배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무시합니다. 그 설정은 “그 작품에서의 현실”. 상상 과학을 우리 세계의 과학으로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모든 것을 “실제”로 받아들이는 만큼, 과학적 설정에 대한 고증 따위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스타트랙>의 예를 들자면 양자 전송이라는 기술이 과학적으로 가능한지 아닌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양자 전송이라는 기술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 특성을 바탕으로 어떤 가능성이 펼쳐질 수 있을지를 생각합니다.
  건담에 있어 미노프스키 입자라는 요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제아무리 바보같이 생각되어도, 미노프스키 입자와 그 물리학 법칙은 건담의 세계에 있어 현실입니다.

startrek01_pyodogi.jpg
[ 전송을 기다리는 대원들. 이처럼 양자 전송은 스타트렉 세계의 자연스러운 현실이다. ( 스타트렉 넥스트제네레이션 / 파라마운트 ) ]

  두 번째 조건도 첫 번째 조건과 관련된 것으로, 제작진이 만든 작품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데서 시작합니다. 앞서 “이야기 속의 내용은 실제로 존재했던 것으로 가정”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각각의 작품은 누군가가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본래 있는 이야기를 누군가가 옮긴 것’이라 생각합니다.


  <스타트랙>의 양자 전송은 본래 제작비를 절감하고자 만들어진 기술입니다. 매번 우주선이 지상에 착륙시키는 연출이 어려웠기에 사람만 옮기는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아이디어입니다. 하지만, 상상 놀이에서는 이와 같은 상황은 무시합니다. <기동전사 건담>에서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모빌 슈트도 완구 회사가 후원자라는 배경이 존재했기 때문이지만 이 역시 무시합니다.

gundam_plamodel_pyodogi.jpg
[ 상품으로 나온 건담. 이처럼 창작 작품은 상업적 문제가 결부되기 쉽지만, 상상 놀이에선 모두 무시한다. (출처 : www.ideaxidea.com ) ]

  양자 전송은 <스타트랙> 내의 현실이고, 1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무수히 쏟아져나온 모빌 슈트도 <기동전사 건담> 속의 현실입니다. 그 현실은 원인과 결과를 낳습니다. 양자 전송이 등장한 배경이 있을 것이고, 모빌 슈트가 무수하게 쏟아져 나온 배경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여기에 ‘제작진의 의도’를 개입하지 않는 것이 이 게임을 즐기는 요령입니다.
 

  상징이나 비유 같은 것을 개입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령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AT 필드는 남을 거부하는 마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AT 필드라는 기술로서 존재합니다. 사도라는 존재도, 에바의 폭주도, 모두 에반게리온 안에서의 현실이며 실제 일어난 사건입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는 또 다른 평행 세계를 결말로 보여주었지만, 그 평행 세계의 존재와는 별개로 에반 게리온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작품이 아니라 그 세계 사람의 눈으로 이야기를 살펴본다.”라는 것입니다.


  <철완 아톰> 속의 사람들은 인간을 위해 일하는 로봇을 보고 ‘노예 제도의 풍자’라고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로봇은 삶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스타워즈>의 세계에서 스톰 트루퍼는 강력한 군대입니다. 영화 속에서 제아무리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그래서 적이 많을수록 약해진다는 ‘스톰트루퍼 효과’라는 말이 나온다고 해서) <스타워즈> 세계의 스톰 트루퍼가 약한 것은 아닙니다. 스톰트루퍼는 -오비완 케노비가 “오직 제국군의 스톰 트루퍼 만이 이렇게 정확한 사격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듯이- 매우 잘 훈련된 최고의 군대입니다.

  스타워즈의 제국군과 관련하여 상상을 펼쳐나갈 때는, 그들이 전투 효율이 매우 높은 군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stormtroopers_1_pyodogi.jpg
[ 갑판을 가득 메운 스톰트루퍼. 싸구려 병사로 보일지 모르지만, 스타워즈 세계에선 최강의 군대 중 하나이다. ( 스타워즈 / 루카스필름 ) ]

  상상 놀이는 다음의 가정을 통해 진행합니다.

  “이것은 현실이다. 현실의 사건에는 무언가 원인과 결말이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바보 같이 여겨지는 일이라도 틀림없이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기동전사 건담>에서 모빌 슈트는 만능병기입니다. 과학적으로 높이 18m에 50톤 정도의 인간형 병기는 비효율적이지만, 건담의 세계에서는 만능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만능인 이유가 무언가 있을 것입니다. 오랜 평화 속에 군사 기술이 퇴보했기 때문이건, 아니면 인간형 병기에만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이 있건, 여하튼 무언가가 존재합니다. (건담에서는 미노프스키 입자라는 답을 내놓고 있지만, 그것 이외에도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무언가’를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이 지적 게임의 첫 단계입니다. 그 세계 사람들의 시점으로 그 세계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지적 놀이는 시작합니다.


  여기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금기가 있습니다. 바로 어떤 일이건 “이야기니까 어쩔 수 없지.”라거나, “이야기를 만들려면 별수 없다.”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징가 제트>의 기계수가 매주 한두 대씩 공격해 오는 것을 1주일이라는 방송 기준에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여기에도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가령, 헬 박사가 발굴한 기계수는 정비가 충실하지 않으며 개장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어쩌면 이들 기계수에 필요한 동력을 모으는데 1주일 정도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마징가 제트를 만든 카부토 주조 박사에 대한 헬 박사의 경쟁심도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책략을 쓰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여러 대의 기계수로 그것도 쉼 없이 공격하는 건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헬 박사가 이따금 보이는 과도할 만큼의 자존심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후반부에 들어 그가 초초한 모습을 자주 보이는 것은 초반과 달리 기계수를 대량으로 투입하는 이유-초조한 나머지 자존심을 꺾고 승리에 집착하는-를 보여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mazinga_z_pyodogi.jpg
[ 슈퍼 로봇의 대명사 마징가 제트. 여기에서 현실의 가능성을 찾는게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곧 상상 놀이의 시작이다. ]

  <마징가 제트>건 <기동전사 건담>이건, 모든 작품은 그 세계의 현실을 부분적으로 보여줄 뿐입니다. 작품 속의 인물들이 하는 말이 그들의 본심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무언가 다른 마음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징가 제트>에서는 헬 박사와 광자력 연구소의 정면 대결만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세계 각지에서 외교전이나 교류가 진행될지도 모릅니다.

  설사 “작품 자체만으로는 허황하고 바보같이 보일지라도 작품 바깥에는 우리가 보지 못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여기서 상상 놀이는 시작합니다.

  딴죽 놀이는 작품 그 자체만을 보고, 이를 지식이라는 기준으로 재단합니다.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을 잘라내고 나면 남는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상 놀이는 작품의 내용은 빙산의 일각이라 생각하고 그 이상의 것을 무한히 상상합니다. 그리하여 세계는 점점 더 넓어집니다.

  현실의 상황이나 사건에는 배경이 있지만, 그로 말미암은 영향이 발생합니다. <스타트렉>에서 양자 전송 기술이 탄생했기에 양자 전송을 이용한 해병대 투입이라는 공격 기술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기술이 있다면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잘못 작동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상이 세계를 더 넓게 만들고, 제작진들조차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현실에는 결과도 존재합니다. 현실은 동화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라고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라는 것은 그 이상의 상상을 포기하는 무책임한 발상일 뿐입니다.)


  어떤 작품이건 끝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스타워즈>의 외전 소설처럼 공식적인 책자로 선보이기도 하지만, 동인 형태로 이야기할 수도 있고, 혼자만의 즐거움으로 펼쳐나갈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은 우리 자신이 만드는 또 다른 이야기의 시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cinderella-dancing-with-prince-charming_pyodogi.jpg
[ 왕자와 결혼한 신데렐라는 과연 행복하게 살았을까? 동화는 항상 행복한 결말을 가져오지만, 현실이라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신데렐라 / 월드 디즈니 ) ]

  상상 놀음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지적 게임입니다. 필요한 것은 단지 대상이 되는 작품과 우리 자신의 상상력뿐. 그리고 -몽상으로 끝내지 않기 위한- 필기도구 정도입니다.

  작품이 가공의 세계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생각하고, 그 너머의 현실을 바라봅니다. 대상은 굳이 ‘사실적인 상상 과학 작품’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조차 상상 놀음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이전에 쓴
'알고 보면 정말로 무서운 동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는 글도, 동화를 바탕으로 한 상상 놀음의 하나입니다.

  동화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상상 놀음에도 ‘동화의 이야기도 모두 현실이다.’라는 조건은 지켜야 합니다.

  일본의 <알고 보면 무서운 그림 동화> 같은 책처럼 동화의 내용이 상징이나 비유라는 내용을 넣으면 안 됩니다. (이런 작품은 사실 동화를 내세운 포르노그라피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선정적인 내용으로 가득한 싸구려 동인지와 차이가 없으며, 신데렐라 대신 진데렐라(^^)를 주인공으로 한 포르노 작품 이상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동화의 이야기는 그대로, 동화에는 나오지 않은 더 넓은 세계를 상상합니다.

  제가 쓴 글에서는 ‘물레에 찔려 죽을 것’이라는 말에 따라, 온 나라의 물레를 모두 불사른 상황에서의 ‘백성의 힘겨운 생활’을 상상했습니다.

  왕실이 통째로 잠들어 버렸기에 무정부 상태가 된 나라가 타국에게 점령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제시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왕자가 호위도 없이 그 나라를 마음대로 다니는 상황을 근거로….
(망 상(妄想, delusion)이나 공상(空想, fancy)에는 근거가 필요 없지만, 상상(想像, imagination)에는 타당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즉, 상상 놀이에는 근거가 있어야 하며, 이것이 공상만으로 충분한 설정 놀이와 다른 점입니다.)

sleeping_beauty_pyodogi_pyodogi.jpg
[ 행복한 두사람? 하지만, 현실에는 이 두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행복 이면에는 누군가의 불행이 있을지도 모른다. ( 잠자는 숲 속의 공주 / 월드 디즈니 ) ]

  제가 쓴 글에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라는 이야기가 실은 선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등의 내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공주는 마녀의 저주에 걸려 물레에 찔려 잠이 든 것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만, 이야기를 바꾸지 않아도, 상징이니 비유니 설명을 붙일 필요없이 무한한 상상을 펼쳐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상상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올 수 있습니다. 상상 놀이에서 중요한 것은, 남의 상상에 딴죽을 걸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생각이 있다면 그의 의견에 딴죽을 걸고 '말도 안돼!'라고 외치는게 아니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보는게 좋지 않을까?"라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역사학 같은 학문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로마의 카이사르에 대해 어떤 이들은 독재자라고 평하지만, 어떤 이들은 뛰어난 선각자라 평합니다. 이는 학자들의 의견의 차이이며 다양한 견해가 나올 수 있는 사실입니다.

  상상 놀이는 그 세계의 역사학자나 정치 학자가 되는 놀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작자(또는 소설가 등 작가)는 또 다른 역사가입니다. 그들이 소개한 내용은 모두 현실이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시점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상상 놀이는 이처럼 제작자를 비롯한 다른 이의 ‘역사적 견해’를 존중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견해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때로는 많은 이의 토의를 거쳐 하나의 상상을 돌출할 수도 있고, 때로는 혼자서 새로운 가설을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건 상상 놀이는 주제(작품)를 가지고 무한한 상상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작품에서는 이야기하지 않은(못한?) 세계의 모습을 새롭게 생각해내고 빈자리를 채워나갈 뿐만 아니라, 이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상상 놀이는 딴죽 놀이나 설정 놀이처럼 그때만 즐기고 끝내는 허무한 유희가 아닙니다. 상상 놀이는 새로운 것을 탄생시킬 수 있는 창작 놀이이며, 세계를 보는 가능성을 넓혀주는 지적 놀이입니다.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세계 사람의 눈으로 이야기를 바라볼 때 여기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진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도 상상 놀이 어떠신가요? 시야만큼, 상상만큼 작품의 세상은 더욱 넓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재미도 더해질 것입니다.

  언젠가 이를 바탕으로 여러분 만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야기 속의 인물의 눈으로 작품을 바라보고, 여기에서 가능성을 찾아내는 훈련은 이때도 도움을 줄 것입니다.

 

 

추신) 언젠가 여러분이 만든 이야기를 가지고 누군가가 상상 놀이를 할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내 작품에 손을 대다니 용서 못해."라고 화 내지 말고 "음... 이런 생각도 있을 수 있구나."라고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창작 작품은 모두 '놀이'이자 '장난감'입니다. 대중에 공개된 순간 그것은 나만의 작품이 아닌 대중을 장난감이 됩니다. 대중의 장난감을 대중이 어떻게 갖고 놀건 그것은 대중의 마음입니다.

 

(건담 시리즈를 만든 토미노 감독은 건담을 무대로 펼쳐지는 상상 놀이에 분노한 나머지 이성을 잃고 스스로를 망치고 말았지만, <기동무투전 G 건담>이라는 -남이 만든- 장난감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편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일찌기 <스타워즈>가 루카스 감독의 손을 떠나 평행 세계를 무한히 쏟아냈듯, 건담 역시 토미노 감독의 손을 떠나 무한한 변형이 탄생했습니다.)

profile
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SF&판타지 도서관 : http://www.sflib.com/
블로그 : http://www.pyodogi.com/
트위터 : http://www.twitter.com/pyodogi  (한글)    http://www.twitter.com/pyodogi_jp (일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