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단편 게시판
제자가 말하였다.
“스승님, 운명은 극복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스승은 창가에서 시선을 돌려 제자를 보았다. 제자의 눈은 순수한 학문적 욕구로 빛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승의 논리를 격파해보겠다는 심산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승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난 극복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런데 왜 그런 걸 물어보느냐?”
제자는 드디어 걸려들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였다.
“별 것 아닙니다. 그런데, 스승님. 정녕 운명은 극복할 수 없다고 보십니까?”
“입 아프게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거라. 난 틀림없이 극복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럼 말입니다. 한 남자가 있습니다. 이 남자의 운명은 장차 한나라의 국왕이 될 운명이었습니다. 남자는 이 운명을 알고 있었기에 전혀 노력을 하지 않았고 결국 평범한 촌부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 경우에는 어떻게 된 겁니까?”
스승은 제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원래 눈매가 날카로운 편이었던 스승이 빤히 쳐다보자 제자는 결국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그 자세에서 제자는 더듬거리며 질문하였다.
“왜,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네 아비 이야기냐?”
“예?”
갑작스럽게 튀어버린 이야기에 제자는 당황해버렸다. 그러나 그런 제자를 무시하고 스승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됐다. 그것보다 네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네가 나에게 설명해야할 것이 있다. 자, 그 남자는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느냐?”
“음, 그거야 뭐, 점쟁이나 예언자 같은 사람에게 들어서 알게 됐겠죠.”
스승은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하였다.
“내 그럴 줄 알았다. 그 남자는 ‘점쟁이 혹은 예언가에게 자신이 국왕이 될 운명이라는 예언을 듣고 노력을 하지 않다가 그대로 평범하게 늙어죽는 운명’ 인거였다.”
“……스승님. 굉장히 억지스럽다는 생각 안하십니까?”
“어디가 억지스럽다는 게냐. 너는 인간이 운명을 미리 볼 수 있다고 보는 게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게 점쟁이나 예언가 아니겠습니까. 저야 그쪽 계통 사람이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그들이 그렇다고 말하니 그렇다고 믿어야지요. 그들은 그쪽 계통의 전문가 아니겠습니까. 하하하…악!”
제자는 큰소리로 웃다가 자신의 이마에 강렬한 통증을 느끼고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스승은 지팡이를 회수하며 입을 열었다.
“너는 그놈의 방정맞은 웃음이 가장 큰 문제다. 어찌됐든 운명을 예측하는 건 가능하다. 그러나 운명을 미리 본다는 건 불가능하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아니오. 모르겠습니다.”
제자는 이마에 난 혹을 쓰다듬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다시 날아오는 지팡이를 경악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다시 한 번 이마에 통증을 느껴야 했다.
“너, 너무 하십니다! 스승님! 때리신 곳을 또 때리시다니요!”
“그럼 안 때린 곳만 골라서 때려줄까?”
“……”
“표정 풀고 잘 들어라. ‘오늘 저녁에 하늘을 보니 날씨가 우중충한 게 왠지 내일 비가 올 것 같다.’ 라는 건 예측인거다. 그러나 항상 세상은 그러한 예측대로만 돌아가지 않지. 실제로 점쟁이나 예언가라는 사람들도 의문사나 돌연사 하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 만약에 정녕 운명을 보는 사람이었다면 의문사나 돌연사는 할 수 없지. 최소한 ‘내가 모월 모일 모시에 어떠한 방법으로 죽는다.’ 라고 써놓기는 할 테니까. 즉 그들도 운명을 예측할 수 있지만 완전히 볼 수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말 만에 하나, 아니 만에 만에 만에 만에 만에 하나의 확률로 운명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제자의 억지에 스승은 다시 한 번 한숨을 쉬고는 대답했다.
“후우. 자 내 사랑하는 제자야. 네가 한편의 연극을 본다고 생각해보자. 그 연극은 본래 수많은 복선과 반전으로 보는 사람을 연극이 끝나는 내내 흡입하는 매우 흥미진진한 연극이다. 그런데 너는 그 연극을 이미 수십 차례나 보았다고 해보자. 그런 상태에서 너보고 그 연극을 다시보라면 너는 재밌게 볼 수 있겠느냐?”
“…아니오. 제자는 그렇게 못할 것입니다. 복선과 반전도 다 파악해버린 상태라면 다시 볼 이유도 없지요.”
“방금 전 네가 나에게 했던 질문도 마찬가지다. 운명을 본다는 것, 그것은 앞으로 이 세상이 돌아갈 일을 모두 안다는 것이다. 내일 길을 가다 노상강도를 만난달지, 2년 뒤에 옆 나라에서 내전이 발발한다던지 하는 것을 다 알아버린다는 거다.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기에 짜릿하고 살아볼만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알아버린다는 것은 단 한번의 굴곡도 뒤틀림도 없는 일직선상의 도로를 같은 속도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과 같다. 그야말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지.”
“그, 그런. 운명을 다 볼 수 있다면 자신에게 닥쳐올 해를 예방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너는 지금 근본적인 부분부터 틀렸구나. 예방해서 바뀔 수 있는 운명이라면 그 사람은 운명을 본 것이 아니잖으냐. 운명이란 건 미궁을 빠져나올 때 그린 지도와 같다. 그 지도는 틀림없이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인 길들이 복잡하게 그려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입구와 출구, 그리고 출구를 향해 온 탈출로가 그려져 있을 것이다. 즉, 어디서 시작해서 어떤 경로를 거쳐서 어떻게 끝나는지가 그려져 있는 것이 운명이란 것이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던 그 선택은 이미 운명에 결정돼있는 것이라는 거지. 주사위를 예로 들어보자. 네가 1부터 6까지 숫자가 쓰여 있는 육면체 주사위를 던진다고 해보자. 그 주사위의 각 면이 나올 확률이 동일하다 하면 각 숫자가 나올 확률은 1/6이다. 그러나 네가 던진 숫자가 무슨 숫자가 나올지는 이미 운명에 결정돼 있는 것이란 말이다.”
“너무 예정설 적이지 않습니까?”
“예정설의 어디가 나쁘다고 생각하느냐?”
“인간이 어떤 짓을 하던 그것은 신이 애초에 정해놓은 것이라면 인간은 신의 장난감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장난감이라? 신에게 인간적인 인격을 부여하는건 신을 인간으로 끌어내린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느냐.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라고들 이야기한다. 전지전능이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단 하나의 존재로 동시에 존재해야한단 말이다. 그런 존재가 인간의 불행을 보며 낄낄거릴 수가 있겠느냐. 결국 신이란 불가해한 것에 붙이는 칭호에 지나지 않는게다.”
“……”
스승은 말문이 막혀버린 제자를 눈앞에 두고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는 제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 이제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꾸나.”
제자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문을 열고 나가는 스승의 뒤를 쫒아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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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지 몇년 된 습작글이네요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