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이의 글터
"이제는 걱정 없습니다. 캡틴."
은빛 얼굴을 지닌 부드러운 목소리가 말했다. 쓰러져 있던 남자는 연기가 매캐하게 흐르는 뒤로 터져나오는 섬광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함내에 분명 폭발이 있었다. 그걸 막으려고 하다가 다른 폭발에 휩쓸렸고, 살아남은 건 정말 천운이었다. 아니 그보다 시스템을 빨리 정상화시키지 않으면 생명유지장치가 멈추어 버릴 것이다.
"화재는.. 화재는 다 잡았나?"
"걱정 마십시오 캡틴. 이제는 다 안심입니다."
로봇의 말에 선장은 자신이 선실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은 이리로 옮겨졌던 것이다. 공기중에 매캐한 연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본부에 연락해야 한다. 빨리 연락을 취해야 해."
"무엇 때문입니까 캡틴?"
"그야 화재가 발생했으니 상황 보고를 해야 하지 않나."
"이미 상황은 다 전달되었습니다. 캡틴이 쓰러진 뒤 시간이 오래 지났고, 지금은 본부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상황은 종결된 뒤입니다. 캡틴이 깨어난 상황도 본부에 전송이 되었습니다. 조만간 연락이 될 겁니다."
은빛 얼굴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엔 신비한 힘이 있었다. 선장은 가슴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안심이 되었다. 배는 안전했다. 그리고 모든 문제는 잘 해결되었다. 다른 승무원들, 그들도 무사한지에 생각이 미쳤다.
"다른 승무원들은?"
"어떤 승무원 말입니까?"
"폭발에 휩쓸린 엔지니어들과 다른 선원들 말이야."
은빛 얼굴은 아주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선장은 그 특이하게 온화한 표정이 말하려 하는 불길함을 눈치챘다. 로봇의 표정은 말해야 하는 것이 불손하고 암울한 것일수록 더욱 온화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모두 죽었습니다. 캡틴."
"오 이런."
선장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들을 지키지 못하다니. 선장으로서 실격이다. 선장은 그런 생각에 눈을 꼭 감았다.
"부함장을 불러주게."
"캡틴. 부함장은 없습니다."
"없다니?"
"모두 죽었습니다. 생존자는 없습니다. 그 사건으로 산소가 모두 빠져나갔습니다. 화재현장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던 선장님이 유일한 생존자였습니다."
선장은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작은 실수에서 발생한 화재였다. 진압과정에서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승무원이 전부 죽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말도 안돼. 에어록은 밀폐되어 있었을텐데."
"폭발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브릿지는 폭발의 충격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수리에 걸릴 예상시간은 13시간이었는데 수리 도중 함이 조우한 소규모 고속 유성군에게서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파워가 내려간 상태에서 브릿지가 고속 충돌물에 직격당했고 승무원들은 즉시 사망했습니다. 저는 수리를 마치는 즉시 보조 엔진으로 전환하고 산소를 공급할 공간을 복구했습니다. 캡틴을 위한 산소는 연료실에서 일부 회수했습니다. 캡틴이 혼수상태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권한은 제가 회수하여 진행했습니다."
"함은 어떻게 되었나. 너 혼자서 운용하기엔 무리였을텐데."
"바로 그렇습니다. 본부에서 적절한 지시를 내려주었고 저는 D 플랜을 적용했습니다. 지금은 모든 상황은 긍정적입니다."
D플랜이 무엇일까. 선장은 머릿속을 더듬었다.
아.
생각이 떠올랐다. 언젠가 영상에서 본 기억이 났다. 언제인가 식민선에서 발생한 사고에 어른 승무원들이 모두 사망한 뒤 그것을 운용하기 위해 함내 로봇 생산시설을 전가동하여 함을 가득 메운 로봇들의 움직임. 인간의 것이라 보기 어려운 일사분란함과 통일성. 인간 승무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그것을 메우기 위한 방법으로 로봇을 채워넣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배는 그때의 예처럼 고급 함선이 아니다. 원한다고 해서 로봇들을 양산할 수 있는 그런 고급 제작기계따위는 없었다. 기껏 함내 설비로는 기본 소자 생산도 버거웠을 것이다. 물론 이 함선이 운반중인 것이 원우주 개척단에 보내기 위한 자원과 기계들임을 생각하면 가능할 것도 같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걸론 턱없이 부족했다. 드라이버와 나사 몇 개로 로켓트를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선장이 조심스레 브릿지를 향해 걸어나가려 할때 모든 의문은 풀렸다.
문이 열리고 저 멀리 지나가는 로봇 승무원이 보였다.
그것은 그가 상상한 가장 끔찍한 것 이상의 형상이었다.
20세기 말에 유행했던 살인 로봇 영화에서나 볼법한 추악한 모습이 거기 있었다.
투박한 강철봉으로 덧대어진 그 로봇의 육체를 움직이는 것은 죽어버린 인간에게서 뜯어내어 암화시키고 전기와 몇가지 유기물에 의해 제어되는 생체 세포로 이루어진 근육들이었다. 푸들거리며 출렁이는 살덩어리들 사이로 나왔다 들어가는 쇳덩이엔 피고름이 묻어나왔다 그런 것들이 함을 가득 메우며 움직이고 있었다. 선장은 이런 일이 본부에서 지시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로봇들의 모습은 금속 막대를 박아 넣은 저주받은 좀비들처럼 끔찍하고 괴이했다.
"캡틴, 이제 이 배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적법한 명령권자 인간인 캡틴 아바노브트 로이엔에게 모든 권한을 이양합니다. 이 함은 다시 캡틴의 통제하에 들어갑니다."
선장은 브릿지에 앉아 충렁이는 살덩이들이 금속 막대를 품고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 살덩이들에게 무엇을 시켜야 할까. 엔진을 점화하라고? 얼마전까지는 같이 웃던 동료의 시체를 뜯어 만든 저 살덩이들에게
통신을 연결하라고 말해야 할까? 선장은 자신이 언젠가 보았던 플랜 D의 무대가 되었던 그 배의 죽어버린 선장이 몹시
부럽게 느껴졌다. 아마도 자신은 그 선장과는 달리 우주 함대 역사상 영원토록 좀비선의 선장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었다.
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본부 연결."
뭔가 푸들거리는 살덩어리가 그 말에 답하듯 꿈틀거렸다.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SF 소설에서는, 감성의 인간과 이성의 로봇이 대비되는 소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만큼 인간적인 로봇도 많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