뛴다. 포탄이 날아다닌다. 모든 것을 불태우기 위해 작열하는 포탄이, 인간 모양을 한 물체에게 얻어맞는다. 놀랍게도, 그 포탄은 터지며 액체를 발산했다. 물체는 너무도 쉽사리 녹아 사라졌다. 다음 목표, 중기관총을 발사하는 장갑차. 장갑차를 조준한다. 막 방아쇠를 당기기 전, 장갑차가 돌아본다. 장갑차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나왔다.


 삶과 죽음이 엉키고 있었다. 얽기섥기 가늘게 엮어진 생은, 탄환 한 방에 비산해서 산산히 부서진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증오와 사랑이, 소란과 침묵이, 정적이, 죽음이, 회생이 동화된다. 이토록 어처구니 없는 예술성에, 모든 이들이 노호한다. 그러나 동시에 침묵한다. 모순 덩어리의 가운데를, 탄환들이 꿰뚫는다.


 소리 없는 전쟁터. 일반인들에게 이 광경은 너무도 익숙했다. 파편이 비상하고 죽음이 넘실거리는 이 거대한 오케스트라는, 이제 신문의 헤드라인에도 나지 않았다. 당사자들에겐 불행하게도, 이 전쟁은 다른 이들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인간은 전쟁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청중 없는 음악회 속을 한 소년이 걷고 있다. 그 소년의 표정은 초조와 걱정이 섞여있었지만, 그 초조와 걱정 사이에 전쟁이라는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소년은 너무도 천진난만하게 전쟁터를 가로질렀다.


 다른 이들도 소년에게는 친절했다. 소년이 말을 걸면, 모든 이들이 대답했다. 하반신이 날아가 손으로 기고 있는 이도, 총을 잡아 난사하고 있는 이도 소년에게는 마치 전쟁터가 없다는 듯 굴었다. 소년은 이 장중한 오케스트라를 꿰뚫고 있었다.



 [사, 살려줘…]



 말소리에, 소년은 고개를 돌린다. 머리만 남은 금속 인간은 힘들게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퓨즈와 전선, 그리고 각종 전자기기로 연결되어 그의 수족이 되었어야 할 몸은 소리 없는 전쟁 속에 영원히 묻혀버렸다. 그는 애처로이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앞에 주저앉았다.



 "전 수리를 할 줄 몰라요."

 [난 대체 왜… 이곳에…]

 "징병되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징병이 뭔가요?"

 [난 단순한 청소로봇일 뿐이야… 난 총 같은거 쏠 줄 모른다구…]

 "이곳에는 청소로봇 뿐만이 아니라 요리로봇, 배달로봇, 교육로봇까지 모조리 있다고 들었어요."

 [죽고 싶지 않아… 제발, 제발 날 누군가 구해줘…]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전 수리를 할 줄 몰라요."

 [죽고 싶지 않…]



 금속 인간의 눈에 빛이 사라졌다. 한때 붉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바닥을 쓸었을 그의 눈은, 이제 단순한 강화 유리가 되어버렸다. 금속 인간을 무표정하게 쳐다보던 소년은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전장을 휘젓기 시작했다.


 소년은 어느 한 인간에게 다다랐다. 그 인간은 천천히 시체를 수거하고 있었다. 맨손으로 시체의 두개골을 열고, 전선과 반도체, 처리 장치를 거쳐 능숙하게 칩을 빼낸다. 그리고 가방 속에 넣었다. 소년의 시선을 느끼자, 인간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로봇 특유의 붉은 눈이 깜빡인다.



 [이곳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소년?]

 "제 친구를 찾고 있어요."

 [로봇은 친구가 아닙니다.]

 "그래도, 제 친구에요…"

 [기종이 어떻게 되지요? 이 가방 안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소년은 그 가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K, 음, K…, KP? KQ?"

 [KP-141 애완 부유로봇?]

 "아, 그거예요! 그걸 거에요!"



 로봇은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칩은 가득했다. 몇 개가 흘러넘치자, 로봇은 하던 일을 중단하고 칩을 주웠다. 그리고 다시 찾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개가 넘을 것 같은 칩을 찾는 일은 아주 빨랐다. 그는 가방을 닫고는 말했다.



 [미안해요. 없는 것 같습니다. 새로 구입하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그렇지만…"

 [KP-141 애완 부유로봇 기종은 흔하지 않습니다. 로봇 징병법에 속하지 않는 기종이니까요. 혹시 자원 입대한 건가요?]

 "…모르겠어요. 갑자기 사라졌어요…"

 [자원 입대가 확실하군요. 그렇다면 이곳에서 찾아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아직까지 한국의 전선은 이곳 밖에 없습니다. KP-141 애완 부유로봇의 총기 조작 성능은 뛰어나니, 이곳에 투입되었을 것이 확실합니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로봇은 뒤돌아서 다른 로봇의 칩을 빼내기 시작했다. 메모리칩 수거 작업은 더디다. 그는 이 전투가 끝나고 몇 주 동안은 한참 이 전장에서 썩어야할 것이 분명했다.


 전쟁터의 중간은 조용하다. 로봇의 시체만 잔뜩 쌓여있다. 소년은 중앙에 만들어진 빈 길을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그가 찾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검은색 일색인 전장에서 주황색인 로봇을 찾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소년은 빠르게 로봇에게 다가갔다. 로봇은 소년을 발견하고는 붉은 눈을 깜빡이며 소년을 바라보았다. 로봇의 맨 위에 달린 붉은 원반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헵!"

 [삐…익]



 전자기음과도 같은 음성이 답했다. 소년은 환하게 웃으며 로봇을 끌어안았다. 아직은 큰 로봇은 밑에 달린 팔로 소년의 등을 쓰다듬었다. 소년은 웃으며 말했다.



 "돌아가자, 헵."

 […]

 "헵?"



 로봇이 천천히 공중에 뜨기 시작했다. 본래 손이 달려있어야 할 팔에는 기관총 하나가 달려있었다. 로봇은 등에 달린 날개를 활짝 폈다. 부웅- 하는 벌레소리같은 소리를 내며, 날개는 빠르게 공기를 휘저었다. 로봇은 총을 빙글 돌리며 조금 더 고도를 높였다. 그리고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멍하게 로봇을 바라보았다. 로봇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한 듯 하다. 로봇은 원반을 빙글빙글 돌리며 몸체를 까딱 숙였다. 그리고는 전장으로 다시 날아가기 시작했다. 로봇을 노리고 총알과 미사일이 날아들었지만, 로봇은 빠르게 속도를 높이며 회피했다.


 소년은 놀라운, 그러나 아무런 감흥이 없는 미묘한 표정으로 로봇을 바라보았다. 로봇은 어느새 다른 로봇들 사이에 섞여 사라져 버렸다. 소년은 한숨을 쉬고는 무심하게 말했다.



 "다시 사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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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로봇기본법 1조 8항

-모든 로봇은 징병의 의무를 지닌다.


 국제 전쟁법 1조 1항

-모든 전쟁은 오로지 로봇으로만 행한다.


 국제 산업법 3조 9항

-로봇은 인간을 공격할 수 없도록 프로그래밍한다.


 국제 산업법 8조 12항

-로봇은 최대한 인간과 닮게 하며, 감성과 지성 모두를 갖춰야 한다.


 국제 산업법 8조 13항

-로봇에게 기억과 신념 등,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모든 지성 능력을 부과해야 한다.


 국제 로봇기본법 1조 1항

-인간과 같은 정신적 유산을 향유하는 한, 로봇은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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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미래에, 인간 같은 로봇만으로 전쟁을 치룬다면

인간은 점점 무감각해져 로봇처럼, 로봇은 점점 감성적이 되어 인간처럼 변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로봇을 동정해야 할까요, 인간을 동정해야 할까요.

흠흠. 논란 발생이나 질문 글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