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단편 게시판
[단편] 회색성은 어떻게 불타올랐나
고래로 부터 내려오는 성이 있었다. 벽은 껍질과도 같아 적을 참았고, 병사는 백혈구와 같아 성벽을 넘어 들어 온 적을 막았다. 난공불락의 요새, 사람들은 그를 회색성이라 불렀다.
둥그런 회색성은 주위와 단절되어 있었다. 아니, 사람들의 교류가 단절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평화적인 목적으로 성으로 향하는 사람이든, 적대적인 목적으로 성으로 향하는 사람이든 배로 성으로 가야했다.
회색성의 항구는 항상 활발했다. 크고 작은 무역선들과 순례자들이 항구의 문턱을 닳도록 드나들었다. 왜냐하면 회색성이 지리적인 요충지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갑국과 을국 사이의 요충지, 그래서 갑국과 을국은 서로 회색성을 노렸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난공불락의 요새가 허명은 아니었다.
회색성은 중계무역만으로도 먹고 살만했다. 곡창은 식량으로 풍족하였고, 황금은 회색성의 존재이유였다. 회색성 출신 상인들은 근방에서 가장 큰 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노련한 성주는 그 상인들의 우두머리였다. 그의 황금빛 손아귀는 을국의 성지에서 갑국 변방의 구석구석까지 미쳤다. 그의 황금은 누군가의 빚이 되어 몸집을 불려나갔다.
여기 한명의 사내가 있다. 농삿일을 하던 그의 부친은 공장에서 죽었고, 모친도 수은 중독으로 세상을 떴으며, 그의 형은 그와 동생을 버렸다. 동생은 굶어 죽었다.
사내는 먹고 살기 위해 뱃일을 시작했다. 허드렛일, 상품선적, 온갖 잡일은 그의 일이었다. 선배들에게 구박을 맞는 것은 그였다. 신입들을 보살펴주는 것도 그였다. 선내로 난입한 해적들을 때려눕힌 것도 그였고, 죽은 포수장을 대신해 해적선을 침몰시킨 것도 그였다. 선원들은 그를 방패에 올리고 이물에서 고물까지 행진했다. 그는 배 하나를 얻었다. 뱃일을 시작한지 십여년 만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을 실행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돈, 일단 돈이 목적이었다. 10년간 저축한 봉급은 고스란히 종잣돈으로 쓰여졌다. 빚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고, 수입은 빚에 세제곱비례하여 돌아왔다. 그는 조금 돈을 모으자 배를 더 사들였다. 그는 제독이 되었다. 그가 거느린 선단은 인류가 아는 모든 해안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는 회색성과 맞먹는 부자가 되었다. 회색성주는 그와 만나고 싶어했다. 성주는 딸을 주겠다며 그를 유혹했다. 그는 흔쾌히 동의하고 회색성으로 출발했다. 그는 그 와중에 다른 성을 들렸다. 부탁한 물건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회색성에서 그는 꿈을 이룰 것이다. 그는 회색성에 도착했다. 웅장한 성벽은 견고한 껍질이 되어 속살을 보호했다. 그 속살은 얼마나 달콤할 것인가. 사내는 회색성의 속살을 맛볼 생각에 크게 웃었다. 그는 그의 배에서 홀로 나왔다. 선원들은 배에서 나오지 말라고 엄명을 내려둔 상태였다.
물은 신비한 액체다. 사내의 몸 안에도 있고 성주의 몸 안에도 있고, 모든 사람의 몸안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물을 마신다. 물을 마시지 못하면 죽는 것이다.
회색성주와 그는 처음에는 소소하고 단순한 일로 운을 떼었다. 을국의 왕이 어쨌다는 둥, 갑국의 상황이 어쨌다는 둥. 그들은 본론을 시작하기에 앞서 간단한 이야기를 하였다.
물은 두개의 수소와 한개의 산소로 구성되어있다. 간단한 학습만을 통하면 이를 쉽게 알 수있다. 사내도 알고 있었다.
가장 먼저 본론을 꺼낸건 사내였다. 자신의 황금이 얼마나 있는지 자랑한 후 그의 사업체가 갑국 어디어디의 유명한 회사를 사들였다느니, 성의 대리통치를 맡고 있다느니등의 이야기를 하였다.
체내에서 수소와 산소를 분리하면 어떨까. 사내는 생각했다. 이런 의문을 품은 사내는 어느 성에 살고 있다는 현자에게 찾아갔다.
너무나 노골적인 답변에 성주는 좋아했다. 그의 사위될 자는 뼛속까지 상인이었다. 사내는 후대의 성주자리와 미래의 신부를 위해 그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현자는 말했다. 먼저 핏물이 사라지겠지요. 그러면 산소공급이 끊겨 세포가 괴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불기에 노출되면 수소에 불이 붙어 터질지도 모르지요.
그렇다면 성주 자신도 상인에 걸맞게 상품을 내어주어볼까. 그는 딸을 불렀다.
어떻게 하면 분리할 수 있습니까? 전기분해가 가장 쉽습니다. 화학적인 방법은 없습니까? 촉매반응을 통해 수소와 산소를 떼어내면 됩니다. 그걸로 그의 용건은 끝이었다. 지식에 대해 사내는 값을 치르고 배로 향했다.
성주의 딸은 아리따운 처녀였다. 사내는 딸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는 수소와 산소를 분리할 수 있는 촉매 연구에 자금을 대었다.
성주는 딸을 보고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는 그를 보고 웃었다. 상인이 피도 눈물도 없어야지. 좋다좋아 내 딸은 그대의 것이다.
결과물이 나왔다. 물을 진한 핏빛으로 물들이는 화합물이었다. 핏빛 용액은 얼마 후 수소와 산소로 완전히 분해되었다.
연회가 열렸다. 사내가 가져온 엄청난 양의 포도주는 연회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의 기쁨이었다. 성안의 모든 사람들이 먹고도 남을 만한
그는 화학자들이 보여준 결과 앞에 만족했다. 그리고 핏빛 용액을 쥐에게 먹였다.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며 건배를 외쳤다. 그의 옆에는 다소곳이 앉은 처녀와 모든사람들이 포도주를 들이켰다.
쥐는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처녀는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그는 쥐에게 불을 던졌다. 쥐가 폭발했다.
기침을 하다가 포도주를 마시지 않은 성주가 놀랬다. 여봐라 아무도 없느냐. 저놈을 잡아라.
잡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직접 가지요. 사내가 말했다.
네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성은 결혼해서도 가질 수 있지 않느냐?
돈 때문이오.
뭐라고? 나는 회색성의 재력이 네놈의 재력보다 뒤쳐진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내 딸을 주겠다고 한거란 말이다! 그런데 내 딸을 죽여?
당신은 내 부모형제를 죽였소.
무슨 말이냐. 나는 네놈을 본적이 없어.
그대가 투자한 황금은 내 고향의 논밭을 말려죽였소. 농사꾼에게 공장이 들어선다는게 어떤 의미인 줄 아시오?
모른다.
공장은 계속해서 오염을 내뿜고 주변 땅을 못쓰게 만들지. 그리고 그 주변 땅을 사들이오. 그 땅에 공장을 짓고 다시 그 짓을 반복하오.
땅을 판 사람들로 공원을 얻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방법이 아니냐?
많은 사람들이 처음보는 독물과 고된 일에 죽었소. 내 부모도.
그런가?
그러니 나는 여기서 인사를 드리겠소. 멍청하다고 할지 모르겠소. 회색성을 얻을 기회를 버리고 회색성을 죽이다니. 맞소 나는 멍청이요.
그는 불꽃을 피어올려 연회장에 던졌다. 수소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꿈을 이뤘다. 그는 함교에서 포도주를 음미했다. 달콤한 맛이었다. 그의 고향을 위해 건배, 부모를 위해 건배, 형제를 위해 건배.
피안에 독을 품은 회색성은 침묵할 뿐이었다. 불길이 성을 완전히 태워버릴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배는 꽁무니에 불길을 담은채 서서히 나아갔다. 별의 바다는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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