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

SiN-Ful-LoH-Ful

 

화설 조선국 수서군(水鼠君)이 무자반정(戊子反正)을 일으키시어 제위에 오른 뒤 남문에 덕이 쇠하고 종묘에 화기가 어리니 저자에 민심이 흉흉하더라. 상께서 충신들을 내치고 고언을 멀리하시니 조정 만조백관이 입은 다나 그 속은 묵처럼 검더라.

때에 제위 4년에 이르러 초인들과 외인들이 준동하고 기기묘묘한 괴수들이 발호하여 시전은 무너지고 여염이 진괴하니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전전반측하고 전전긍긍하야 그 근심이 하늘에 달할 지경에 이르더라.

 

 

                                             0                                             0                                             0

 

 

 

차설 다니던 서원이 초인들이 서로 다투던 중에서 부서진 전차로 한성의 친가로 상경한 소년 A가 사립문 앞에서 망연해 있더니, 이는 춘부장과 자당께서 날틀을 타고 구라파로 보름간 유람을 떠나신 연고라. 사립에 표가 꽂혀 이르기를,

‘자는 보거라. 우리가 혼인하고 십 수 년에 이르도록 변변한 여흥을 누리지 못하였더니, 근래 가장께서 사당(社黨)에서 만난 은인에게 날틀 표를 얻었으니, 이 어찌 천운이 아니리오. 이에 발걸음을 빨리하여 평시 숙원이었던 구라파 유람을 떠나노니, 자는 부디 기갈하지 말고 마음 편히 친우 집에서 기거하며 부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이에 소년이 손발이 떨리고 입이 말라 차마 발을 옮기지 못하고 스스로 말하되,

“내가 평시 부모님께 내 갈 곳을 이르는 데 미흡함이 없었거늘, 어찌하여 두 분 양친께서는 내게 이리 하신단 말인가? 내가 방학을 맞은 지 얼마 되지 않고 지자들의 사정을 미리 아는 바 아닌데, 어찌 쉬이 몸을 의탁할 수 있으랴? 정녕 이 몸이 가도에서 곤비해 죽으리라.”

이리 말하며 근심으로 가득할 제 뒤에서 심원한 노인의 목소리가 있어 가로되,

“소년은 어이하여 근심하는가?”

하더라. 소년 A가 뒤를 돌아보니 그의 우장(友掌)만한 키에 흰 미염을 늘어뜨린 기묘한 노인이 공중에 서 있으니, 소년이 속으로 의아해하여 속으로 말하되,

“이 노인의 형상은 마치 전화(電畵)통에 출몰하는 배추도사 같지 않은가? 어찌 이리 작은 사람이 있을 수 있으며, 어찌 말하는 물건이 공중에 떠 있을 수 있으리오. 이는 내 기가 쇠하여 헛것을 봄이 틀림없으리라.”

노인이 별안간 벽력처럼 고함을 치며 노호하니 소년이 몹시 놀라 기함하더라.

“무도하도다. 어찌 사람의 모습을 눈앞에 두고 의심하느냐? 내가 그대의 곤란을 익히 알아 도움을 주려 왔노라. 묻노니, 힘을 원하나?”

소년이 정신이 혼미하고 어리둥절하여 대답을 잇지 못하더니, 노인이 외쳐 묻되,

“힘을 원하나?”

하더라. 소년이 기시감과 혼란에 엉겁결에 긍정하니 노인이 매우 기꺼워하더라.

“그러면 네게 힘을 주마.”

이에 노인이 품에서 환단을 꺼내어 소년에게 건네주어 삼키게 하니 먹은 즉시로 눈이 맑아지고 손발에 기운이 가득하더라. 소년이 여쭈오되,

“이 환약에 무슨 효험이 있나이까.”

“이제 보름간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네게 귀물을 내주었으니 응당 보답을 하여야 하리라. 내 평소 뜻한 바가 있어 전인을 찾더니, 오늘 사람을 만났도다.”

소년이 몸을 가지런히 하고 여쭈오되,

“소생이 무엇을 하오리까.”

노인이 이르되,

“당대에 조선에 온갖 무리들이 발호하여 백성들의 원이 하늘에 가 닿으니 하늘이 나를 보내시어 도당들을 멸하게 하셨도다. 너는 나의 지시에 따라 악도들을 물리치고 천하를 평안히 하라.”

소년이 그 말을 듣고 사지에 맥이 풀리며 간장이 녹는 듯하거늘 두 눈에서 더운 눈물이 펑펑 솟더라. 말하기를,

“소생은 도술을 전혀 알지 못한 생원에 불과한데 어찌 주먹 하나와 진언 한 마디로 산을 깨고 바다를 가르는 초인과 괴수의 무리들을 이길 수 있으리오. 고인께서는 소생을 조롱치 말고 자비를 베푸소서.”

노인이 문득 대소하며 가로되,

“전인은 걱정치 말라. 본인의 지시에 따르면 털끝 하나 상하지 않으리라.”

“고인의 존함을 일러 주시오리까.”

“노인의 성은 예가요, 명은 이운이라.”

 

 

 

                                             0                                             0                                             0

 

 

 

소년 A가 이운의 인도에 따라 힘을 아끼지 않고 부지런히 걸어 어느 동리에 이르니, 아직 방학에 이르지 않은 초등학교가 있더라. A가 의문스러워 묻되,

“이곳으로 이끄심은 어떤 연유이니까.”

“이 학당 6학년 3반에 근일 도성을 소란하게 하는 마법소녀가 형을 감추고 숨어 있음이라. 이를 물리치면 도성의 가옥들이 무너짐이 덜할 것이니, 이 어찌 정의로운 일이 아니리요.”

A가 근심스러워 사뢰되,

“마법소녀라 하심은 의복을 바꾸고 봉을 들어 주술을 펼치는 강력한 처자를 이름이라. 비록 연배 낮다 하나 그 무력이 천지에 준동하는데 소생이 당할 수 있으리이까. 또한 소생이 마법소녀의 주술을 봉할 방법을 알지 못하니, 봉신방(榜封神)이 없고서야 막지 못하리이다.”

노인이 흔쾌히 말하되,

“전인은 심려치 말라. 만사에 우선하여 적의 힘을 꺾는 것이 우선하니, 먼저 마법봉(魔法棒)을 빼앗도록 하자.”

A가 그의 지시에 따라 학당의 담에 난 구멍을 통해 후원으로 숨어드니 학원의 청복위사들이 눈치 채지 못하더라. 소년이 근심하여 속으로,

‘학당에는 숨어들었으나 학생들이 가득하고 수시로 훈장들이 순라를 도는데 어찌 목적한 곳까지 갈 수 있을꼬?’

이 때 노인이 때를 맞춰 명을 내리는 말이,

 

오른쪽으로 삼보

모퉁이를 돌아 몸을 숨겨

숨을 한번 쉬고 모퉁이 너머로 숨어라

어화 양껏 달려 둘째 화장실로 들어가

발소리가 멀어지거든 나오너라

건듯 부는 춘풍인 양

너울너울 수양류인 양

늙은 범 어린 멧돼지 다루듯

날래고 노련히 움직여 2층으로 올라

계단 마지막을 오르지 말고

바닥에 엎드려 시선에서 피할 제

한 무리의 늦은 학생들이 지나가느니라

제비처럼 날아올라 문고리를 질끈 쥐고

음악실 문을 열어젖히니 아직 수업 전이라

당(堂) 앞으로 나설 제 북한강 물처럼 유정히 움직여

목당의 삐꺽대는 소음에 주의하라

악성의 초상을 제끼고 못자국을 누르니

오호라, 작은 다락이 열리느니

오냐 썩 지팡이를 쥐고

창문을 열어라

시간이 없으니 나무를 향해 뛰어라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날릴 제

일순 한 줄기 훈풍이 불어

안익(雁翼)인 듯, 호접(胡蝶)인 듯

둥실 몸을 띄우니 나무 둥치를 잡아라

썩 달려 몸을 피하지 않으면 늦으리

 

A가 학당 밖으로 나오니 숨이 턱에 차고 등이 땀에 젖는지라. 한동안 말을 가누지 못하는 가운데 노인이 손에 든 지팡이를 보고 기꺼워하여,

“장히 좋다. 인제 처자의 주술봉을 빼앗았으니 허투루 주술을 부리지 못하리라.”

소년이 힘든 와중에도 속에 뜻이 있어 가만히 이르되,

“고인의 가르침이 실로 절묘하오이다. 말씀을 따라 발을 놀리니 도깨비 감투를 쓴 듯, 전우치 도술을 쓴 듯 인목이 피해 가니 이 어찌 신묘한 일이 아니리오.”

이운이 기꺼운 와중에 소년을 재촉하여,

“아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으니, 어서 주술봉의 보석을 빼내어 파기하고 몸을 일으키라. 아직 할 일이 남았느니라.”

소년이 지팡이 대가리의 홍주석을 빼내고 질끈 꺾으니 우지끈 동강이 나니라. 또한 이운이 A를 재촉하여 또 한 곳에 이르니, 학당 지하 은밀한 장소에 지팡이가 숨겨져 있더라. A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기묘하다 이 학교여, 이토록 좁은 곳에 마법소녀와 지팡이가 있는 것으로 모자라 전설의 무구마저 잠들어 있음은 하늘의 뜻이런가.”

이운이 웃으며 말하기를,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니, 어찌 무엇 하나 공연한 일이 있으리오? 전인은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고 속히 맡은 일을 행하라.”

이에 A가 서둘러 지팡이의 녹주석과 홍옥을 빼내어 깨고 대를 분지르니라.

 

 

 

                                             0                                             0                                             0

 

 

 

차설 마법소녀는 문득 들려오는 마녀의 도발에 분기하여 몸을 일으켜,

“소녀가 급히 체하여 오장이 뒤틀리는 듯, 몸을 가누기 어려우니 약당에 보내 주시오.”

훈장이 크게 놀라 소녀를 보내며,

“귀녀는 부디 몸을 귀중히 하라.”

소녀가 몸을 숨겨 악당에 들어서니 사방이 쥐죽은 듯 고요하여, 악성의 영정의 뒤를 보았으나 아무것도 없는지라. 이에 소녀가 자진하여 서럽게 울 제,

“애고애고, 서러워라. 이 일이 꿈이냐, 생시냐? 내 나이 열둘에 토끼를 만나 마법소녀가 되어 불철주야 토끼가 시키는 대로 마법왕국과 싸워왔는데, 돌아오는 것이 이것뿐이오? 허허 동네 사람 다 들어보오. 기구하다 내 일이야, 어느 모진 놈이 내 지팡이를 훔쳤을꼬? 모지도다, 모지도다, 어린 소녀 밥줄을 앗아가니 도망가다 다리나 똑 부러지시오.”

울음이 장차 긴 와중에 소녀가 고개를 번듯 드니, 눈앞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훤칠한 소년이 서 있것다. 풍채가 훤칠하고 썩 잘생겼으니 모르는 사이에 울음을 그치더라. 소년이 소리를 낮추어,

“네 이년, 네가 축생의 괴뢰가 되어 백성의 재산을 업수히 여기고 한성의 포졸들을 능멸하기를 밥 먹기보다 쉬이 보니 그 죄가 하늘에 달하고 땅을 진동시킴을 알렷다. 종묘사직이 능멸당하니 어찌 천벌이 없으리요. 이에 내가 하늘의 명을 받아 너를 정죄하리라.”

소녀가 심중에 어리둥절하고 정신이 혼란하여,

“오라버니는 대관절 누구신데 소녀의 정체를 아시며, 내게 그리 말하시오?”

“나는 조선국의 소년 A로 천사의 명을 대리하여 너의 무도함을 근절하러 왔느니라.”

소녀가 두 손을 꽝꽝 치면서 분기가 탱천하여 발끈, 낯빛이 변하여 코가 벌렁벌렁하고 이를 바독바독 갈며 눈빛이 표독하게 변하니 A가 내심 그 숭악함에 놀라더라.

“허허 이게 웬 말이오? 오라버니가 무슨 재조 있어 소녀에게 그런 말을 하오? 가소롭다 범인(凡人)이여, 괘씸하다 범인이여. 아서오, 공연히 팔다리 분지르지 말고 얌전히 돌아가면 몸만은 성하리라. 내 지팡이 없어도 마법은 여반장이니 쉬이 여기면 아픈 꼴을 보리라.”

소년 A가 그 표독함에 놀라나 진인(眞人)의 말을 기억하고 배에 힘을 주니라. 간담을 단단히 하고 얼굴을 여유롭게 하여 대응하니, 소녀의 그 기세를 꺾더라. 그가 말을 은근히 하여,

“흥, 어리석다. 네 너의 패악함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이리도 모자랄 줄은 몰랐도다. 듣거라, 내 4반의 한 도령을 손 안에 넣어 생사여탈이 내 손짓에 달렸으니 포도청 군관 조가의 3대독자 조유빈이라. 내 털끝 하나라도 상하면 은밀이 연모하는 정인의 몸이 성치 못할 것인데 어찌 이리 어리석게 구느냐?”

마법소녀가 그 말을 듣고 대경하고 실색하여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싸울 뜻을 버리매, A가 그 소매와 주머니를 수색하여 마법 도구들과 온갖 무기들을 압수하여 파기하니라.

 

 

 

                                             0                                             0                                             0

 

 

 

A가 이보다 앞서 4반을 엿볼 때 한 소녀 있으니, 얼굴이 박속같이 희고 입술이 해당같이 붉으며 마늘쪽 같은 코에 삼단 같은 머리를 묶어 내린지라, 낌새를 볼작시니 좌중의 시선을 능히 독점하더라. A가 나이를 생각지 못하고 미혼한 와중에 이운 말하되,

“저 아이가 곧 짐승에게 주술이 담긴 패물을 얻어 마법을 쓸 계집이라. 미리 싹을 잘라야 하니 너는 주의를 게을리 말라.”

A가 대경하여 속으로 이르되,

‘어찌 저런 소녀가 마법소녀가 될꼬?’

별생각을 다 하는 와중에 소녀가 하교하야, 몰래 뒤를 밟는 와중 대로변에서 마차에 치일 뻔 한 퇴깽이 하나가 떼구르르르 굴러 그 앞으로 냉큼 떨어지니, A가 감신하여 속으로,

‘참으로 용하다. 정녕 하늘의 사자로다.’

하는 와중에 소녀가 호기심이 동하여 기진해 누운 토끼를 주워 올리려 하니, A가 황급하여 소녀에게 부딪치니라. 소녀가 놀라,

“놀랐소, 오라버니는 어이하여 가만히 있는 사람을 위해하려 하시오?”

“귀녀는 용서하여 괘념치 말라. 이 퇴깽이에게 볼 일이 있어 급히 온 것이니.”

A가 허허 웃고 급히 토끼의 목덜미를 잡고 자리를 뜨니라. 계략이 실패하자 토끼가 죽은 체를 폐하고 버르작거리며 술수를 쓰려 할작시, 이리 선뜩 저리 번뜩 뒷다리 잡힌 여치처럼 팔딱대니 소년이 정히 수고하더라. 이에 토끼가 주술을 쓰려 짝 만난 개똥벌레처럼 허옇게 빛을 내며 달아오르니 소년이 놀라 목덜미를 쳐 숨통을 끊더라. 소년이 탄식하되,

“비록 미물이나 산 것의 목숨을 앗았으니 어찌 내게 죄가 미치지 않으리오.”

“소년은 그리 생각지 말라. 놈은 반란의 도당이며 어린 것들을 선동하였으니 마땅히 살아나갈 수 없으리. 죽는 것이 당연하니라.”

이운의 설득에 A가 마음을 돌려 천하 평정의 뜻을 위해 단심을 굳게 하더라.

 

 

 

                                             0                                             0                                             0

 

 

 

각설 A가 걸음을 빨리하여 한 포구에 이르되, 정처 없이 행하는 중 어느 뫼에 달하더라. 이운 말하기를,

“지세를 보니 산세가 비상하고 임수하며, 그 경치가 썩 뛰어나니 필시 명당이라. 그 기운이 심히 강맹하니 가만히 찾아보면 꼭 비적의 무리가 암약하고 있으리라.”

하고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키니 과연 임중에 숨겨진 굴혈이 있는지라. 소년이 감신하고 몸을 솟구쳐 그리로 다가가매 안에서 수작하는 소리가 들리기를,

“우리 응조단(鷹爪團)이 이 땅에 있은 지 어느덧 이태라. 일심으로 수령의 영도를 좇으며 견마지로를 아끼지 않고 힘써 정복에 매진하나 뜻을 이루지 못함은 오직 정의오남매(正意五男妹)의 훼방 탓이라. 아군(我軍)의 펼치려는 바를 사사건건 가로막아 오니 오장이 끊어지는 듯하도다.”

문득 다른 사내의 소리가 말하기를,

“공은 낙심치 말라. 지성이면 감천하리니, 진인사하면 어찌 천명이 응답치 않으리요. 공은 무익한 상심을 버리고 금일야 예정된 중차대한 소임을 대비하라.”

A 가만히 생각하되,

‘이 무리들이 천의를 어기면서도 그 마음에 거리낌이 없으니 그 죄가 심히 크다. 마침 정의오남매라 하는 초인의 무리와 맞서고 있으니 이이제이함은 병가의 근본이라, 놈들끼리 상진케 함이 상책이리라.’

이운이 소년의 계를 익히 알고 크게 칭찬하여,

“계책이 장히 좋다.”

하더라. 이에 A가 기꺼운 와중에도 한 가닥 걸리는 것이 있어 가르침을 청함에 이운이 반만 웃고 진언을 염하니, 홀연 일진광풍이 불고 한바탕 음산한 기운이 일어나며 문득 일진 흑운에 일색이 쇠하고 하늘에서 한 줄기 벼락이 일어 산에 떨어지니라. 그 소리가 천지에 가득하니 소년이 기급하고 크게 놀라 몸을 낮추는 중에 큰 소리와 함께 산이 준괴하더라. 소년이 그를 살피고 굴혈이 막혔음을 본 후 감신하여,

“고인의 법력이 고명하여 일순으로 적의 서혈(棲穴)을 틀어막았으니 잠시간은 막으리라. 참으로 대단하오.”

이운이 그 말에도 자리를 지켜 자만하지 아니하여 소년에 이르기를,

“전인은 시간을 버리지 말라. 어찌 노인에게 공사를 넘기려 하느뇨? 산채는 지하 심처에 있어 무상함이 분명하니 속히 혼란을 틈타 범 아가리 안으로 들면 좋은 일이 있으리라.”

“고인의 명을 어찌 따르지 않으리요.”

소년이 다른 입구를 찾아 산채로 들매 도적들이 급작한 지동(地動)에 여전 정신을 차리지 못하더라. 졸개들이 넋이 나가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사이를 풍우처럼 빠져나가 문득 어느 방에 이르되, 그 지키는 위병의 기세가 자뭇 삼엄하고 백의를 입은 학사들이 바삐 움직이니 아해의 눈에도 그 범상치 않음을 알겠더라. A가 가만히 여쭈기를,

“이 방에 정예 군졸과 학사들이 결집해 있으니 필시 중요한 시설이 있음에 틀림없는지라. 고인의 눈에 어찌 비치시오이까.”

“네 말이 정히 옳다. 저 벽에 있는 단추가 이 방의 물건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틀림없으니 전인은 속히 몸을 날려 저 물건에 손을 베풀라.”

소년이 황공한 와중에 마음에 근심하는 바 있어 말하기를,

“저 단추는 여보란 듯이 벽에 내놓아져 있으며, 그 주위의 표식이 매우 난잡하니 혹 유인책이 아닐런지요. 또한 저것은 가동기에 불과하니 부수어도 쉬이 고치리이다.”

이운이 노하여,

“그대가 하나는 아나 둘은 모르도다. 모름지기 악의 단체라 함은 시간을 엄수하여 전대들이 도달할 시 일각의 시간이 모자라 계획을 행치 못하며, 그 무기를 운용함에 있어 크고 아름다운 것에 집착하니 고금에 있어 조종간을 폐하는 것만으로 능히 부서지니라. 이리 인도에 따르지 않음은 어쩜이뇨.”

이리 분쟁할 제 졸개 하나가 A를 발견하고 크게 놀라 외치기를,

“여기 외인이 있도다.”

하더라. 이에 즉시 건장한 비장(裨將) 수 명과 졸개 수십이 달려들어 A를 붙잡으려 하되, 소년이 크게 근심하여 달리며,

“내가 고인의 말을 따르지 않아 오늘날 객처에서 죽게 되었도다. 고인은 사은하여 이 내 목숨을 구하소서.”

이에 이운이 얼굴을 굳히고 손을 들어 펼치니 A가 문득 팔다리가 털처럼 가볍고 마음이 가뿐하여 발구름 한 번에 제자(諸子)들의 머리 위를 훌훌 뛰어 능히 삼 장을 격하는지라. 이에 비장들이 소리 높여 외치니,

“방포하라.”

하여 군졸들의 철포에서 제각기 한 줄기 광선이 어지럽게 날리니, 너울너울함은 요순대의 오색 서기같고 백두 묘향의 폭포 무지개 같더라. A가 심중에 선득선득하나 날래게 몸을 놀려 그 광선들을 피하매 동정호에 학이 뛰노는 듯, 우중에 백룡이 승천하는 듯하여 자못 그 기세가 능하더라. 이에 적들이 놀라 속으로 말하되,

‘아해가 있어 능력 없어 보이더니, 이 날램은 어쩜이뇨? 초인 못지 않음은 물론, 그 능력을 월하도다.’

수작의 와중에 이운이 은밀히 법에 따라 손짓하니 단추 속 정밀한 기계가 한낱 나뭇잎이 되나 무리들은 깨닫지 못하더라. 이에 이운이 소년에게 가만히 일러,

“노인이 이미 수작해 놓은 바가 있으니 이제 의도한 바는 이루어진 뒤라, 속히 이곳을 떠남이 어떠하뇨?”

이에 A가 크게 기꺼워 홀연히 몸을 솟구쳐 지하 산채를 빠져나오니 표연히 사라지더라. 장교와 여러 군사들이 어이없이 보며 다만 넋을 잃을 따름이니 능히 따르지 못하더라.

 

 

 

                                             0                                             0                                             0

 

 

 

소년이 몸을 솟구쳐 상경하다가 한 곳에 다다르니, 이운이 소년에게,

“매양 전대의 기지는 산을 끼고 있으며, 그 형상이 사뭇 장대하여 바깥에 능히 드러나니 발견하기가 수월한지라. 이 산에 분명 연구당이 있으리니 구름을 타고 풍우처럼 한 바퀴 돌면 쉬이 눈에 뜨이리라.”

이에 A가 그 말에 따라 능선을 따라 구름을 몰 제, 발 아래에 한 간 으리으리한 연구당이 있어 보니 그 지붕은 둥글고, 옆에는 너른 날틀터가 있으며, 그 반짝임이 심히 눈부시더라. 그의 생각한 바에,

‘건물이 무연히 크고 산에서 이르는 길이 없으매, 이는 필시 하늘로 출입하는 전대 무리의 기계수레가 든 연구당이 틀림없으리라.’

하더라. 이에 소년이 분연히 몸을 내려 연구당 가까운 어느 나무에 서니 그 기세가 사뭇 당당하더라. 소년이 가만히 동정을 살피니 바깥에서 싸우고 돌아오는 기계수레가 큰 소리를 내며 연구당 안으로 들어가려 하더라. 이에 소년이 응조단에서 주워온 진천뢰를 들어 이운에게 말하되,

“이 폭약을 기계수레에 붙여 적의 복중에서 터뜨리면 이 어찌 통쾌하지 않으오리까? 고인께서는 부디 도움을 주소서.”

“장하다 소년이여, 명민하다 소년이여! 내 이미 진천뢰에 술을 내려 두었으니, 수레에 던지면 떡처럼 달라붙으리라. 오직 노릴 것은 무리의 수뇌이니, 연구당 안에 필시 탄력전복당(彈力戰服黨)을 지휘하는 자가 있으리라.”

이운이 놀라 묻되,

“그런 자가 있나이까.”

“무릇 그러한 자들은 두상만 남거나 심신이 유약해 제 사지로는 싸움에 재조가 없느니라. 이에 족자 속, 혹은 연못 속, 혹은 연구당 안에서 면면만을 내놓고 지시만을 내리니 비록 그 지휘가 졸렬하고 병법을 모른다 하여도 무리들의 사기를 크게 고양하느니라. 귀공이 그 수뇌를 멸한다면 천하가 크게 안심할 것이다.”

이에 이운이 크게 팔을 휘둘러 던지니 진천뢰가 기계수뢰에 철썩 붙더라.

 

 

 

                                             0                                             0                                             0

 

 

 

차설 응조단에 한 여장(女將)이 있어 성명이 구모(某)라. 그 용맹이 자못 뛰어나더니 그 머리는 삼단같고 단순호치에 허리가 버들가지 같아 가히 절색이라. 평소 남정을 싫어하여 한 자루 철편(鐵鞭)을 다루더니, 그 실력이 매우 뛰어나더라. 한 날에 여장이 저자에 나와 주점에 들어가 술을 마시되, 술 나르는 아해가 은근한 목소리로 전하여,

“저 자리의 공자가 준미주를 전하며 말을 전하기를 청하시니 어디 사는 누구시며 연 어떠하시냐 물으시더이다.”

구가 반만 웃고,

“네가 미친 자식이다. 내 이 동리에 아는 사내 없으니 누가 있어 나를 부른단 말이냐? 엄한 수작 부리지 말고 썩 물러가거라.”

아해가 머리를 숙여,

“그런 것이 아니오라, 저 도련님으로 말하자면 이 주가에 즐겨 오시되 값어치 있는 미주만 찾으시기로 이름이 높은지라. 많은 집 처자들이 용모에 혹해 매파를 보내나 칼로 자른 듯 거절하시니 상사병에 앓아누운 고로 시름에 찬 가가(家家)가 저자에 가득하오. 받아 손 될 것 없으리니 잔말 말고 받으시오.”

구녀(女)가 홀연히 생각하니 마음이 나되 문득 돌아앉고 보니 이마가 높고 광대가 조화를 이루니 호걸이고 기남자라. 눈에 기상이 서리고 곰의 어깨와 호랑이의 허리를 가졌으니 그 용력이 높아 보이더라. 이에 구녀가 마음이 떨리고 속이 부끄러워,

“도령은 대관절 누구기에 소녀를 부르시오.”

도령을 일컫자면 정의오남매의 수(首)로 평시 각종 악단(惡團)과 싸우기를 즐겨하다 해가 지고 심이 동하면 주점에 나오기를 거리끼지 않는 자라. 이름을 숨기고 신분을 가려 흠모하는 자가 많아도 선뜻 응하지 않다가 구녀를 보니 급히 정신이 아득하고 눈앞이 흐뜩흐뜩하여 심장이 뛰더니, 문득 속으로 생각하기를,

‘내가 여인을 부른 적이 없는데 이 무슨 말인고? 필시 나를 혹하게 하려 함이리라.’

속내를 숨겨 말하기를,

“하늘이 정하신 인연으로 우리 둘이 만났는데, 어찌 축하하지 않으리오? 권하건데 그대는 잔을 사양치 말라.”

금미주와 자하수, 과하주와 천일주를 들여 병 기울여 잔에 가득 채워 권하니 못 이기는 듯, 아양 치며 받아드는데 그 모습이 과히 월궁 항아라. 그 모양에 더욱 기꺼워 다가드니 구가도 싫지 않은지라 정이 깊어 가더라. 차설 주점 모에 한 인영 있어 홀로 앉았으니 A라. 술을 청했으나 연배 모자라 마시지 못하고 이운이 연신 잔을 비우더라. 실로 이 계략은 A의 행함이니 둘을 이어 놓기 위함이라. 묵묵히 낌새를 살피는 중에 주점 안으로 한 여인이 썩 들어오니 이 여인 또한 절세의 미색이라, A와 이운이 심중에 짚이는 것이 있어 자리를 파하고 일어나는데 들어온 여인이 남녀를 보고 안색이 변하더라. 이운이 가로되,

“계책이 유수처럼 통하니 썩 좋다. 저 처자는 정의오남매의 4매(妹)로 본디 도령을 마음에 둔 바 있어 도령도 거절치 않다가 이런 모습을 보니 분기가 탱천하리라. 또한 저 둘은 대적지간으로, 얼키고 설켜 놓으면 후에 쓰일 일 있으리라.”

A가 이운의 계에 감복하며 주가를 나오니 안에서는 쟁음이 높아만 가더라.

 

 

 

                                             0                                             0                                             0

 

 

 

A가 천하를 돌며 바삐 행하다가 날이 지니 어느 곳에 치리하더라. 방에 누웠으나 자리 설고 물 설어 전전반측, 쉬이 잠 이루지 못하더니 문밖에 괴이한 소리가 나며 심회를 돋우매, A 훌쩍 일어나 앉아,

“이 기이한 소리는 어쩜이뇨? 동물의 소리 같으나 들은 바 없으니 실로 이상하도다.”

하여 장지문을 여니 문 앞에 거북이인 듯, 자라인 듯, 도마뱀인 듯한 괴이한 축생이 있는지라. 소년이 크게 기이히 여겨,

“노사께서는 아시는 바 있으신지요.”

“이는 악단들이 키우는 괴수 중 하나라. 아직 어린 미물인데 여기에 있으니 하늘의 뜻으로 여기고 방 안에 들여라. 내 힘써 이를 길들이리라.”

이에 귀(龜)를 방 안에 안아다 놓고 물과 쌀을 내어 먹이며 정성으로 쓰다듬으니, 말 못하는 미물이나 감복하여 고개를 숙이더라. 동창에 새가 우짖을 때 이운이 문득 말하되,

“이만 됐다. 귀를 방생하면 제 갈 길을 찾아가리라. 후에 크게 쓰일 것이다.”

이에 이운이 창밖으로 귀를 내어주니 동물이 고개를 숙이고 가던 길을 가더라.

 

 

 

                                             0                                             0                                             0

 

 

 

 

소년이 나날이 지날수록 도력이 더하고 기기묘묘한 재조가 늘어 잠을 자지 않아도 안광이 흐리지 않으니 이는 호걸의 기상이라. 대의를 잊지 않으려 척살한 퇴깽이의 살을 구워 씹고 쓸개를 핥으며 길을 걷더라. 문득 다다른 곳을 보니 고등학교라. A가 이운에게 묻되,

“학당에서 무엇을 하오리까.”

“전인은 잠시 몸을 숨기라. 기다리면 한 괴수(魁首) 있어 출몰하리라.”

이에 몸을 숨기고 때를 엿보니, 과연 학당이 파하고 연연히 종이 울리는 중에 한 소년 있어 나오는데, 주위를 볼작시니 면면이 미녀에 절색이라. A가 생각하기를,

‘한 남정네에 저리 많은 여인이 따르니 풍속에 좋지 않다. 영웅호색이라 하나 초인이 그리함은 안될 말이리라.’

하여 뒤를 밟더니, 한양 대로의 큰 건물로 들어가더라. 이운이 말하기를,

“옳다, 이 건물 지하에 숨겨진 적당들의 채가 있으니 정녕 초인의 양성소라. 초야에 묻힌 자들을 찾아내어 훈련시키고 창검을 쥐어 주니 이 어찌 도당의 무리가 아니리오? 이들을 토벌하면 천하에 큰 홍복이 있으리라.”

A가 그 말을 따라 기색을 엿보니 소년이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니라. 이운의 말을 따라 환기로를 타고 서까래 위에 은신해 내려가니 가도가도 끝이 없는지라. A가 속으로 평하기를,

‘적당들이 어디에서 그리 많은 재물을 구했기에 이리도 큰 집을 지었는고? 백성들의 고성과 탄식이 들리는 듯하도다.’

하고 홀연히 한 차례 몸을 떨치니 소년이 앞에서 어느 문을 열고 들어가더라. 가만히 그 위에 올라 아래의 수작에 귀를 기울일 제 서로 맞받아 다투는데, 어느 사람 앉아 있어 손을 맞잡아 턱을 고이고 나지막이 권하되,

“귀공의 신기한 재조는 고금에 희한하도다. 능히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공명을 이루리니 우리와 함께함이 어떠하뇨?”

소년이 어이없어,

“어르신의 말쌈을 정녕 알지 못하여이다. 소생 이리 은밀한 곳에 내방함도 처음이어니와, 신기한 재조라 함은 무엇을 일컬음이오? 필시 사람을 잘못 본 것이오이다.”

사내 색경(色鏡) 쓴 채 조소하여 이르되,

“공이 인간의 더러운 물을 먹어 천상의 일을 잊었도다. 본디 귀공은 천계의 선랑이라, 반도회에서 무례 범한 전차로 상제의 노를 사 하계에 유배되었더니, 팔을 떨쳐 능히 일만 군세를 칠 힘이 있느니라.”

이에 소년이 문득 심중에 굳게 하여 대갈 일성하니 권중에 청광(淸光)이 명멸하며 일진 광풍이 몰아치더라. 이를 보고 소년과 사내 공히 기꺼워하되 소년이 물으니,

“귀공 덕에 소생 개안하도다. 선생의 고성 대명을 알고자 하노라.”

“나는 이 단의 사령이라, 위로는 인세를 구하고 아래로는 악을 멸하니 우리 단에 가세하면 반드시 크게 쓰일 일 있으리라.”

이에 둘이 염소의 목을 베어 피를 나누어 마시며 굳게 맹약하더라. A가 그 전후 요약을 보고,

“뜻하지 않던 중에 무리의 큰 괴수를 보았으니, 이는 하늘의 인도함이러라. 그러나 스스로 일컫기를 인세를 구하고 악을 멸한다 하며, 주위를 둘러보면 가히 선인들이지 않은가?”

이리 생각하는 와중에 이운이 차게 웃으며 이르기를,

“그대의 생각이 반만 옳다. 무릇 무리가 커지면 분쟁이 생기고 사람이 높아지면 명리를 탐하는 법. 이토록 심히 크고 조직적인 도당에 있어서 후일 필시 사령이 배반하리라.”

A가 놀라,

“내가 보관대, 저 사령이 뜻도 있고 지모도 있어 여기까지 이 자들을 이끌어 왔거늘, 어찌 앞장서 반역한다 하시오이까?”

“무릇 저런 사령이라 자칭하는 자들은 고래로 숨겨진 비밀이 있느니라. 보아라, 저 옆에 있는 부관이 있지 않느냐?”

그가 정히 보니 과연 묘령의 여인이 있는지라. 이운이 말하되,

“저 계집이 예전부터 있어 부사령의 위(位)에 좌정하되, 한시도 사령의 측근을 벗어남이 없느니라. 꼭 사령의 옛 정체와 관련된 바 있으리라.”

A가 가만히 생각하니 이운이 전후 자초지종을 기지(旣知)한 바 있으리라 여겨지는지라. 상념을 물리고 승복하여,

“짚이는 바 없으나 고인의 통찰 항시 어김이 없으니 어찌 따르지 않으리요. 청컨대 행할 일을 일러주오.”

“소년의 일을 잠시 두고 가만히 암약하여 사령의 기색을 살피면 곧 거리낄 곳 있으리니 전인은 편히하여 기다리라.”

이르고 품에서 승도(僧桃)와 포도, 고기를 내어 주니 이는 일전에 퇴깽이들의 수괴가 서식하는 마법왕국을 토벌하던 중 얻은 것이라. 과연 지표가 해상에 부유하며 기화요초가 만발한 토지이여니 심히 그 향기가 코를 찌르며 낱낱이 세월에도 무르지 않더라. A가 승도를 깨물고 퇴깽이의 고기를 씹으며 체력을 보하되, 발아래 사령실에 면면들이 다 제 각기 흩어지고 사령과 부사령 두 계집사내만 남더라. 사령이 홀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계획을 보러 가야 하리라.”

하며 썩 방을 나서매 여자가 그 뒤를 좇더라. A가 심중에 득의하여 그 뒤를 쫓으니, 지하로 수 리를 내려가고서야 멈추느니라. 심처에 큰 공동이 있어 온갖 기계와 도구들이 가득한 중에 가운데에 큰 유리의 독이 있어 속이 훤히 보이더라. 소년이 주위를 살피며,

“이리도 복잡한 와중에 사람의 기색 없으니 심히 여기던 바더라. 수괴의 행동을 보면 무언가 알 바 있으리라.”

하고 독을 보되, 독의 입까지 물이 차 있고 주둥이 또한 유리로 막혀 있더라. 가만히 볼작시니 그 안에 희끗희끗한 형상 있어 언 듯 언 듯 움직이니, 정히 보니 필시 여아의 형상이라. A가 대경하여 고개를 돌려 가로되,

“사람이 의복을 탈하여 있음은 심히 풍속에 반하는 음탕한 수작이라, 참람된 일에 분이 골수에 사무친다. 어찌 이런 경천동지할 꼴인고? 이런 사람을 숨겨 두니 필시 좋은 듯이 아니리라.”

분기를 눌러 볼작시니 사령과 부사령이 유리 앞으로 다가가 온갖 물건을 두드리고 째깍대며 움직이더라. 이에 물속에 숨이 부글거리며 떠오르나 여아는 눈을 감고 죽은 듯 있더라. 이에 A가 대로하여 손을 들어 치려 하나 이운이 가만히 막고 이르되,

“저 여아는 아직 무탈하니 이르게 손을 쓰지 말라. 이곳이 천하의 가장 큰 위험 중 하나이니 주의하여 보면 이후 사건이 발하리라.”

하니 이에 채 안에서 지뢰 여럿을 찾아 깊숙한 곳에 숨기는데 이운이,

“전인은 급히 여기를 나서라. 무악재에 불가사리가 양민을 습격하여 부락을 불태우고 있도다.”

하니 손을 빨리 하여 일을 마치고 진언을 염하여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사라지더라.

 

 

                                             0                                             0                                             0

 

 

 

각설 A와 이운이 구름 위에 앉아 지상을 보니 불가사리 한 마리가 입에서 유황 연기를 뿜으며 동리를 짓밟고 다니니 민초들의 원성이 하늘에 닿더라. 그 머리가 산에 걸치고 비늘이 심히 견고하니 관아의 나졸들이 조총을 쏘고 총칼로 찔러도 능히 뚫지 못하고 흉포함만 더하더라. 요괴가 제 멋대로 지저귀며 어깃어깃 한성을 향하여 걷거늘 A가 틈을 주위를 휘이 둘러보니 과연 동편 하늘에 푸른 서기가 어리며 날틀 하나가 이리로 오는지라. 날틀에서 신기전 일 순이 우수수 날아들어 짐승을 쏘아 맞히니 각기 살들이 하나같이 관중이라. 크게 우짖으며 기지개를 켤 제 날틀이 제꺽제꺽, 덩실덩실 접히어 인형을 이루더라. 소년이 득의하여,

“소생의 생각이 적중하였소.”

하며 기뻐하더라. 날틀의 살이 길동의 활 같아 놋쇠 같고 무쇠 같던 비늘을 깨뜨리니 짐승이 크게 당황하며 몸을 사리더라. 인형의 크기 또한 짐승만 하여 구름을 머리에 일 듯 커다랗게 우뚝 서니 이 또한 민가에 고충이라, A가 탄식하더라.

“예서 통탄하도다. 얼갈이 배추밭이며 파릇파릇한 논배미가 쑥대밭 되었으니 누가 있어 환곡을 꾸어 주리오? 때늦은 보릿고개에 애먼 백성들만 다 죽게 되었다.”

이에 슬그머니 품에서 솔잎 한 줌을 꺼내어 입김을 부니 초엽이 사람만한 놈이 되어 팔다리를 움직이고 눈을 꿈적이며 입을 오무락조무락하는데 산 사람과 다를 것이 없더라. 그가 일러 가로되,

“너는 저 거북이도 같고, 장지뱀도 같은 흉악한 놈 앞에서 어른어른, 희끗희끗하여 한양 시가를 등 뒤에 놓도록 하라.”

“예이!”

초인(草人)이 썩 배례하고 구름에서 나려 날아가는데, 이리 덩실 저리 덩실, 황개가 적벽에서 연환선 위 날 듯, 조자룡이 장판파에서 아두 안고 뛰놀 듯 하는데 그 신속이 몹시 날래고 재빠르더라. 불가사리가 초인을 볼작시니 잡으려고 이리 후여 저리 후여 헛손질을 하는데 그 와중에 제도 모르게 한성을 등지고 섰겄다. 이운이 허허 웃고 호리병에서 정수를 꺼내 손에 떨구고 탁 치니 일시에 초인이 솔잎으로 돌아가더라. 인형 안의 오남매가 근심하여,

“우리가 매양 풀 한 포기 없는 나산에서 불을 놓고 물을 끌어들여 적을 퇴치했더니, 오늘은 어찌하여 한양에 가 있단 말인고? 일전에 우리 수장이 천살을 맞아 폭사하여 죽은 뒤로 심란함이 더한 중에 마음대로 총통이며 활을 놀릴 수 없으니 암담하도다.”

이리 물리는 와중에 불가사리 힘을 내어 쇠로 된 인형을 마구 치니 안에 있던 오남매가 이리 저리 뒹굴며 다 죽게 되었더라. A가 기색을 보아하니 쌍방이 상잔하려 하는터라 기꺼워하여 홀연 몸을 날려 땅위에 내려서더라. 손 높이 쳐들고 달려들어 한 번 칼을 번득이니 불가사리 목이 땅에 내려지는지라. 풍우같이 몰아쳐 인형의 맥을 끊고 부수니 한낱 쇳덩이가 되어 움직이지 못하더라. 이에 소년 호령하여 오남매를 끌어내어 만 백성 앞에서 친국하되, 제 각기 죄를 물어 태형 삽십 장에 처하고 박달나무 곤장으로 볼기를 쳐 내쫓으니 양민과 상인들이 더불어 즐거워하며 그 덕을 칭송하더라. A가 괴수의 고기를 베어 위로는 관장부터 아래로는 천민과 아해들까지 배불리 먹이고, 인형의 놋과 쇠를 뜯어 녹여 팔게 하니 능히 수 해 동안의 농해를 갚더라. 이운이 기꺼워하며 전인을 재촉하매, 두 사람이 백성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홀연히 자취를 감추더라.

 

 

 

                                             0                                             0                                             0

 

 

 

A의 지모와 협의가 날로 발전하여 삼고초려로 나랏님의 숙수와 회전각의 고수를 등용하니 좌청룡 우백호와 같아 제각 그 무용들이 자못 뛰어나더라. 때에 외성(外星)에서 사발을 타고 온 짐승이 있어 가로되,

‘내 천하를 수중에 넣으리라.’

하였으나, 숙수가 일합에 그 수급을 꺾어 참살하고 다른 일인이 발을 놀리니 시공이 요동하며 천성처럼 떠 있던 수많은 사발들이 일시에 한 줌 갈탄이 되어 스러지더라. 소년이 상경하고 천하 구세 제민코자 함의하여 어언 오일이 지나니 팔도의 초인들과 괴수들이 소탕되고 야행에 귀괴와 복면자가 나타나지 않으니 밤에 선비들과 행상들이 마음을 놓고 다니더라. 이운의 도력 고절하여 차원문 나타나는 즉시로 월하여 소탕하니 명계 마계 천계 신계 무고하고 평정하여 감히 조선을 침략하는 자 없더라. A 이운에게 사은하고 말하되,

“소생 재조 없는 자로서 천선의 도움 얻어 나라의 해악을 퇴치하니 은공 갚을 길이 없으며 황감함을 금치 못하리오. 내 명을 받들어 분골쇄신하리니 청컨대 고인께서는 고언을 주저치 말라.”

이운이 가만히 이르되,

“내 천하를 두루 주유하며 전인을 찾더니 뜻에 맞는 자 찾지 못하였다가 이곳에서 옳게 보았도다. 이제 천지를 결할 일대 싸움이 있을 것이니, 그 후에는 국태 만안하리라.”

이 때 A가 눈을 들어 두루 보니 고등학당의 소년이 썩 재조 있어 그 용력이 날로 발전하고 오처칠첩을 능히 거느리더라. 단에서 신망 얻고 단 안의 여단원과 시비들의 정인이 되니 가히 그 연이 금석같더라. 그 단 지하에 물단지 있어 보더니 사령이라 하는 자가 회합을 여는 지라, 면면을 숨기고 소리만으로 대화하니 어이 괴이하지 않으리요. 이에 이운이 입에 물을 머금고 진언을 염하니 그 수작이 진측에서 들리는데,

“실로 계획이 내일로 다가왔도다. 팔도 인류의 홍복이라.”

“사령은 힘써 일을 숨기고 부리는 자들을 단속하라.”

할 제, 사령이 무언하더라. 이운 미염을 부르르 떨고 떨쳐 일어나 벽력처럼 명하니,

“기어이 때가 왔도다. 악도들이 광란하여 인민들을 어육으로 만들려 하니, 사람을 개조한다 하며 일시에 죽일 셈이라.”

소년 의아하여 묻되,

“만인이 다 진하면 어디에 개조할 사람 있어 찾을 수 있으리이까.”

이운이 답하여 가로되,

“저 자들이 얻은 비록(秘錄) 있어 혼을 조종하고 백을 부릴 수 있다 사람을 선동하도다. 허무 맹랑한 도청도설에 지나지 않음을 삼척동자도 알 터인데 수괴들이 저러함은 긁어모은 재물과 권력을 탐함이라. 역성 모반하여 재생(再生)한 사람들의 위에서 군림하려 하도다. 저 사령과 부사령은 천계 괴수로 상제 반하여 모반하다 하계로 유배된 자라, 늙고 쇠하지 않으니 도당의 장수에까지 올랐도다. 저 중에서도 반하여 사사로이 목적을 탐하니 인명을 문충(蚊蟲)만도 못하게 여기는 자로다.”

A 대경하여,

“그 진실이라면 실로 역도로다. 어찌 멸하지 않으리요.”

하고 단추를 눌러 전일 두었던 진천뢰를 터뜨리니 사령과 부사령이 외마디 고함하고 죽더라. 죽은 자에서 피가 흘러나오지 않다가 목 없는 몸뚱아리가 가루 되어 춘풍에 날아가니 그 형상이 몹시 고이하더라. 그가 과연 고개를 끄덕여,

“정녕 사람 아니도다.”

하며 계속 정세를 탐하더라. 적당들 크게 놀라,

“이 어인 일인가? 계책이 발각되었던가.”

하며 서둘러 계획을 실행하니, 일시에 조선 팔도에 큰 지동이 일어나며 곳곳에서 인형의 거인이 일어서는데 그 한 발로 아흔아홉 간 고래등 기와집을 우지끈 밟아 감출 만큼 크더라. 얼굴에 이목 달리지 않은 것이 주둥이만 달려 있어사람을 잡는 대로 족족 삼키니 이가 지속되면 사직의 위기라. 상감 수서군이 치리하는 중에 정사를 돌보지 않고 외척과 인척이 발호하며, 사관과 언관을 탄압하고 매양 내치니 장계가 어전에 이르지 못하더라. 조정을 원망하는 백성의 소리 진하여 만인이 꼭히 죽었다 여길 제 한 홍안 소년 있어 인형의 앞을 막아서니 과연 A더라. 대로하여,

“금수 된 것이 영장을 해하고 종묘를 위태롭게 하니 마땅히 목을 베리라.”

하고, 청하의(靑下衣)와 나성모(羅星帽) 차림에 청강검 높이 들어 외침이 뇌성같으니 그 기세가 절애를 끊고 운무를 흩더라. 산 같은 인형에 벼락같이 달려들어 매우 치니 썩 장엄하여, 일검이 번쩍이니 팔을 끊고 일검에 다리를 베더라. 괴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지면에 누우니 천지가 요동하는 듯하더라. 이에 A가 검을 휘둘러 괴수의 목을 베니 숨이 끊어지매 이운이 말하기를,

“전국 팔도에 이러한 짐승이 산적하니, 옛 안배를 풀 때러라.”

하며 입 속으로 진언을 염하니 전일 은혜 베푼 귀갑이 언뜻 몸을 일으켜 괴수들을 몰아치는데 그 크기 뒤지지 않고 그 거죽이 몹시 견고하여 괴수가 능히 뚫지 못하더라. 귀갑을 먹으려 하나 뜻을 이루지 못하거늘, 귀갑이 괴수들을 개 몰 듯 몰아 A의 앞까지 대령하매 너른 벌판이 흉악한 것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지라. 이에 이운이 반만 웃고,

“정히 잘하였다.”

하며 손짓하니 귀갑이 손바닥만한 크기가 되어 이운에게 날아오더라. 이운이 귀갑을 타고 A에게 소리치되,

“전인은 이것들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교란하라. 잠시 혼란하게 하면 일시에 멸하는 수 있으리라.”

“명을 받으오.”

하여 소년이 검광을 번득이며 풍우같이 들이치며 백룡 여의주 희롱하듯 몰아치니 거인들 발이 엉기고 손이 빗겨 섣불리 도발하지 못하더라. 이운 하늘을 우러러 크게 진언 염하되,

“천신이시여, 금일 소신 힘써 일하여 인세를 어지럽히는 자들을 묶었으니, 이들 여기를 빠져나가면 생사의 법령이 파하고 인간 교만이 하늘에 다하리이다. 여기서 멸하려 하니 신명께서는 굽어살피소서.”

하며 절하는데 어느 여아 있어 아장아장 걸어오는데 그 온 곳을 알 수 없고 몸에 옷 대신 천 한 필을 칭칭 감고 있더라. 이운이,

“아이야, 이 자들이 너를 죽이려 하였더냐.”

하매 A가 보니 사령의 연구실 유리 장독 안에 있던 인형이라. 혼백이 없던 것이 걷는 것에 놀라던 중 여아가 붉은 입술 열어 말하되,

“소녀 아는 것 거의 없어 사리 판단에 어두우나 그러하여이다.”

하더라. 이운이 크게 가르쳐,

“내 네게 혼과 백을 돌려주려 하나 뭇 무리 이미 강탈하여 인형에 넣었느니라. 원컨대 네 바라면 저것들을 파하고 돌려주려 하니, 어떠하냐?”

하매 A가 그 깊은 심계와 진실에 놀라,

‘내 비록 세간에 큰 공명 얻으나 정녕 진인께 따를 수 없도다. 어찌 알꼬?’

하는 중에 여아 작은 소리로,

“소녀 아는 바 없으나 원하신다면 그리 하겠나이다.”

하매 이운이 크게 웃고,

“사람의 것을 짐승이 가지는 것은 천륜에 어긋남이라, 마땅히 돌려주어야 하리라.”

하고 손 한번 떨치니, 미친 바람이 불고 하늘이 검게 되더라. A가 생각하여,

‘이는 정녕 천벌이 내림이니 물러나 마음가짐을 정히 할 바러라.’

하고 십리 밖으로 물러나 정좌하니, 지면이 요동하다가 일순 땅거죽이 터지니, 붉은 불과 검은 유황이 백 리 하늘로 솟구치고 천지 사방이 준동하며 무너지되 괴수들이 선 곳에 한하더라. 천 길 화염이 솟아올라 흉악한 거인들을 먹어치우니 유황 냄새 자욱하고 뼈 한 조각 남지 않고 불타 없어지더라. 소년이 마음이 떨리고 황감하여,

“정녕 하늘의 뜻이라.”

하는 중에 문득 곁에 선 여아가 눈을 끔벅끔벅이고 손발을 조물조물하니, 혼이 돌아왔더라. 이운이 노를 흩고 온히 웃어,

“배울 것이 많으니, 나를 따라오라.”

하매 여아가 이운에게 삼배하고 그 말대로 하더라. 천하 무리가 모두 소진하매 소년이 검을 거두고 이운에게 묻되,

“이제 소생이 어찌 하리이까.”

하매 이운이 이르기를,

“내 천제의 명 받아 개세 평탄케 하려 왔거늘, 그 뜻이 이루어졌으니 근시 내로 다시 나를 볼 일이 없으리라. 전인은 재조 숨기고 몸을 낮춰 초야에 은둔하여 가내 효도하고 관등(官登)하라.”

말을 마치고 이운이 귀와 여아 데리고 승천하여 홀연히 운중으로 기색을 감추니 그 간 곳을 찾을 수 없더라. 이후 초인들이 다 몰락하고 세를 잃어 민심이 떠나고 만민이 동조하여 그를 토벌하니 하릴없이 무너지니라. 세상 도적이 다 평정되매 무릇 의인들이 크게 일어나 폭군을 몰아내니 반정이라. 새로 제위에 오르신 상감께서 널리 방을 붙여 A를 찾고자 하시나 찾지 못하시더라. 소년이 이운 떠난 곳에 사흘간 머물며 그 자리를 지키다가 배례하고 귀가하여 효심으로 부모 공양하고 학업 정진하니 주위 칭송이 자자하며 대대 태평을 누리더라. 세상이 A의 용맹을 혹 한두 가지 들어 전하는 바 있으나 다만 행한 바만 알고 그 뜻이 알려지지 않으니 진인과 그 전인 있어 구세 승천하고 은거한 일만 세상에 전하여 만세 이어지더라.

 

-------------------------------------

임진년, 즉 수서군 4년은 2012년입니다.

2년 남았죠.

그리고 곧 지구의 종말이 오는 년도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