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단편 게시판
앨리스는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늘은 맑습니다. 하이얀 뭉게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푸른 하늘은 마치 바다에 온 듯 합니다. 그렇지만 앨리스는 하늘이 맑은 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앨리스는 하늘이 아니라 어둠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득, 앨리스는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앨리스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작은 방입니다. 앨리스는 흰 침대에 있었습니다. 앨리스는 살짝 놀랐습니다. 언제 내가 이런 곳에 왔더라? 기억나지 않습니다. 앨리스는 분명 집에 있었는데, 이곳은 아무리 봐도 집처럼 보이지 않으니까요. 앨리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침대에서 내려왔습니다. 빨리 집으로 가야지. 엄마가 모르는 곳에는 가지 말라고 했단 말이야.
그렇지만, 발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앨리스는 뚱한 표정으로 발을 바라보았습니다. 평소에 앨리스가 좋아하던 붉은 신발은 어디로 가고, 흰 슬리퍼만 있습니다. 앨리스의 옷도 바뀌어있습니다. 세로 줄무늬가 잔뜩 가있는 흰 옷입니다. 헐렁해서 편하지만, 앨리스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아아, 그래. 이 신발 때문이구나. 앨리스는 신발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렇지만 발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가고 싶지 않아. 앨리스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내가 왜 집에 가고 싶지 않을까?
"어라?"
들려오는 목소리에, 앨리스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서있습니다. 웃고 있었지만, 웃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눈은 장난기로 반짝이지만, 너무도 검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신기하게도 고양이는 양복을 입고, 신사모자를 썼으며, 두 발로 걷고 있었습니다. 손에 지팡이까지 들고 있네요. 마치 신사 같습니다. 비죽비죽 보이는 털은 호랑이처럼 무늬가 가있는 것 같습니다. 검은 색과 흰 색이 호랑이 무늬를 만들고 있네요.
고양이는 더욱 크게 웃었습니다. 입이 쭉 찢어져서, 고양이의 귀에 닿습니다. 앨리스는 까르르 웃었습니다. 입이 귀에 닿다니, 너무 웃겨!
"안녕? 이름이 뭐니?"
"앨리스."
"앨리스? 예쁜 이름이구나. 난 체셔라고 해."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쉬운 이름이었습니다.
고양이 신사는 앨리스가 자신의 이름을 계속 중얼거리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앨리스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앨리스는 그 손을 붙잡았습니다. 손을 잡으니까, 집에 가고 싶지 않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립니다. 고양이 신사는 앨리스를 끌고 방을 나갔습니다. 방을 나가자, 앨리스는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추어 섰습니다.
낭떠러지였습니다. 그렇지만 징검다리가 있습니다. 징검다리는 붉은 색의 이상한 것으로 만들어졌는데, 앨리스는 그것이 뭔지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고양이 신사는 앨리스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습니다.
"왜 그래? 안 갈거야?"
"아니!"
앨리스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길에서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앨리스는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여기는 집과 연결된 곳이 아니었으니까요. 앨리스가 다니던 길 중에, 이런 길은 없었습니다. 앨리스는 앞을 바라보았습니다.
고양이 신사가 어느새 징검다리를 하나 건넜습니다. 앨리스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언제 뛰었지? 앨리스는 힘차게 뛰어가서, 징검다리 위에 올라섰습니다. 징검다리는 부드러웠고, 따뜻했습니다. 물컹거려서 어쩐지 기분이 나빴지만, 걸을 때마다 들리는 '뿌직뿌직' 소리는 앨리스를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재밌는 징검다리는 처음이었으니까요.
앨리스가 다시 뛰려고 할 때, 고양이 신사는 갑자기 바로 앞의 징검다리에 있었습니다. 앨리스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왜 점프하지 않는거야? 체셔?"
"난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어. 공간, 시간, 모든 걸 초월했거든?"
"앨리스는 어려운 말 몰라."
신사 고양이는 더욱 크게 웃었습니다. 이번엔 입이 눈꼬리까지 올라갔습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앨리스는 더욱 크게 꺄르르 웃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뛰었습니다. 징검다리 사이의 거리는 길지 않아서, 앨리스는 즐겁게 건널 수 있었습니다. 고양이 신사는 지팡이를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습니다.
"조심해. 거기서 떨어지면 안 돼."
"왜?"
"어둠이 삼키거든. 어둠은 언제나 배고파. 뭐든지 삼키려고 하지."
"앨리스는 언제나 어둠을 가지고 있는데? 내 밑을 봐봐."
앨리스는 아래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림자가 없었습니다. 앨리스는 볼을 부풀리고는 몇 발자국 걸었지만, 그림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고양이 신사는 웃는 얼굴로 갸르릉거리고는 말했습니다.
"그림자는 여기가 무서워서 가버렸어. 맞아. 그림자가 앨리스를 따라다니는 이유는 너무 배고프기 때문이야. 앨리스를 먹으려고. 그러니까 앨리스도 조심해. 언제 먹힐 지 모르잖아?"
"으……응. 조심할게."
"자, 가자."
열 몇개 일까요? 앨리스는 열 두개부터 세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아무튼 징검다리를 모두 건넜습니다. 반대편에 닿아서, 앨리스는 자신의 발에 무엇인가가 묻어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걸을 때마다 묻어나오는 붉은 물. 아아, 페인트구나! 앨리스는 다시 웃었습니다. 고양이 신사가 앨리스를 골려주려고 바닥에 페인트를 발라놓았던 모양입니다. 앨리스는 고양이 신사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페인트를 모두 떼버렸습니다.
고양이 신사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앨리스는 가는 길에 역시 놀랐습니다. 나무들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바람소리에 맞춰 싸아아, 싸아아, 하고 춤을 췄습니다. 나무들은 하하호호 웃으며 가지를 즐겁게 흔들었습니다. 앨리스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정말 즐거운 곳이야! 노래를 부르는 바람과 춤을 추는 나무들 사이에서, 앨리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었습니다.
잠시 후, 갑자기 무엇인가가 떨어졌습니다. 커다란 달걀이었습니다. 앨리스가 깜짝 놀라 그것에 다가가려 하자, 고양이 신사가 가로막았습니다.
"그만 둬! 다가가지 마!"
"왜…… 왜?"
"깨져버려."
"사람은 깨질 수 없어."
"깨질 수 있어. 그러니까 다가가지 마."
앨리스는 불만스러운 얼굴이었지만, 고양이 신사의 말을 따랐습니다. 달걀에서 검은 물이 주르르 흘러나오는 게 기분이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검은 물은 계속 깨지고 있었습니다. 앨리스는 그걸 어떻게 말할 수 있을 지 고민했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앨리스는 달걀을 노려보며 말했습니다.
"저게 뭐야?"
"험프티 덤프티, 떨어진거겠지."
"저 사람, 죽었어?"
"죽었지만 괜찮아. 조금 있으면 살아날거야."
"깨진 알은 고칠 수 없어."
"저건 죽었잖아? 더 이상 험프티 덤프티가 아니야. 지금은 여기에 없으니까, 조금 있으면 존재할 수 있겠지."
"체셔는 이상한 말만 해."
고양이 신사는 갸르릉거리고는 다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숲을 지나자, 큰 들판이 나왔습니다. 앨리스의 동네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벌판이었습니다. 풀은 초록색이 아니었습니다. 흰 색이나 검은 색 둘 중 하나였는데, 서로 모여서 네모 모양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마치 체스판 같습니다. 앨리스는 이번에도 크게 꺄르르 웃었습니다. 풀이 초록색이 아니라니! 앨리스는 이 곳이 너무나도 좋아졌습니다.
들판을 어느 정도 지나자, 풀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앨리스가 호기심에 그쪽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번에도 고양이 신사가 막았습니다. 고양이 신사는 지팡이로 앨리스의 몸을 막으며 말했습니다.
"저기 있는 건 붉은 여왕과 트럼프 병정들이야. 다가가면 안 돼."
"왜? 저기서 뭐하고 있는데? 다들 즐거워보여."
"트럼프 병정들이 붉은 여왕을 데리고 놀고 있어. 귀여운 여자 아이인 앨리스가 다가가면 같이 놀려고 할 거야. 앨리스는 갈 데가 있잖아?"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그랬지. 체셔가 날 데려다주고 있는 거였지. 그런데 그랬었나?
앨리스는 몸을 빠르게 흔들고 있는 트럼프 병정의 모습 밖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아쉬운 일입니다.
고양이 신사가 갑자기 멈춰섰습니다. 앨리스는 큰 성의 모습에 놀랐습니다. 성은 온통 붉은 색이었고, 굉장히 멋있었습니다. 뾰족한 탑과 둥근 궁전, 꼿꼿이 서있는 성벽은 마치 왕이 살고 있는 성 같습니다. 고양이 신사는 문을 열었습니다. 엄청나게 큰 사람도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큰 문은 아주 쉽게 열렸습니다. 고양이 신사의 힘은 아주 센 모양입니다.
안은 붉은 물로 가득 차있는 풀장이었습니다. 풀장은 아주 얕아서, 앨리스의 무릎까지 밖에 오지 않았습니다. 고양이 신사는 물 위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앨리스 또한 물 위를 걸으려고 했지만, 걸을 수 없었습니다. 앨리스는 풀장을 첨벙거리며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젤리 속을 지나는 것처럼, 물은 끈적거렸습니다.
앨리스가 반쯤 건넜을 때, 트럼프 병정 둘이 나타났습니다. 트럼프 병정 둘은 아무런 말도 없이 양동이 속에 있는 것을 풀장 안에 쏟아놓았습니다. 붉은 물이 주르르륵 쏟아집니다. 앨리스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걸음을 걸었습니다.
갑자기 무엇인가가 둥둥 떠올랐습니다. 방금 전 트럼프 병정들이 쏟아버린 것인 것 같습니다. 앨리스는 그것을 집어들었습니다. 사람 얼굴 모양의 공이었습니다. 머리카락도 붙어 있는, 정말 진짜 같은 공입니다. 입과 눈, 코에도 구멍을 뚫어놨습니다. 공을 빙글 돌리자, 입에서 붉은 물이 주르륵 쏟아집니다. 앨리스는 즐거이 웃었습니다. 이 공은 우리 아빠 얼굴을 본따 만들어졌어! 아빠 얼굴에서 붉은 물이 나오는 것을 보는 건 처음인 걸!
"자, 도착이야, 앨리스."
"응? 여기가 어딘데?"
"재탄생의 방."
또 이상한 말을 하네. 앨리스는 뚱해졌습니다.
풀장을 건너고 문을 하나 지나서 보이는 것은, 커다란 공이었습니다. 반쯤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그 안에 앨리스가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신사 고양이는 씨익 웃고는 갸르릉거렸습니다. 그리고 앨리스에게 말했습니다.
"앨리스. 소원을 들어줄까?"
"소원?"
"그래, 소원. 소원을 빌고 저 안에 들어가. 소원을 들어줄거야."
으응~ 엘리스는 잠시 고민했습니다. 소원, 소원? 앨리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소원을 떠올렸습니다. 아주 멋진 소원이었습니다!
"아빠를 없애줘."
"아빠를?"
"응. 아주 나쁜 사람이야."
"으음~ 그래? 그래. 알았어. 아빠를 없애줄게. 자, 저 안에 들어가. 앨리스에겐 더 이상 아빠가 없을 거야."
앨리스는 안에 들어갔습니다. 공이 서서히 닫히자, 앨리스는 점점 잠이 들었습니다. 아아, 너무 졸려. 앨리스는 그냥 잠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깨어났어요!"
앨리스는 눈을 떴습니다. 예쁜 언니 한 명이 앨리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앨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일어났습니다. 예쁜 언니가 다시 눕히려고 했지만, 앨리스는 뿌리쳤습니다. 쉴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바로 앞에는 아빠가 있었습니다. 아빠는 앨리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표정은 모르겠습니다. 아쉬워하면서도 기뻐하고, 짜증나면서도 슬펐으니까요. 앨리스는 아빠에게 달려갔습니다. 앨리스의 오른 손에는 자신도 모르게 칼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아빠가 비명을 지릅니다. 시끄럽습니다. 아빠의 입 안을 찌릅니다. 아빠가 엉금엉금 도망가려고 하자, 다리를 찌릅니다. 예쁜 언니가 달려와 막습니다. 앨리스는 그런 것에 굴하지 않습니다. 아빠의 목을 깊게 찌릅니다. 앨리스는 기뻤습니다. 아빠를 죽이는 건 나쁜 일인데, 왜 기쁠까? 앨리스는 아빠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찌르고 또 찔렀습니다. 앨리스의 몸이 붉어졌습니다. 마치 붉은 여왕 같습니다.
앨리스는 아빠에 대한 추억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어두운 밤, 달빛이 비치고, 아빠는 앨리스의 다리 사이를 만졌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뒤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억나는 것은, 엄마가 달려와서 아빠를 마구 때렸고, 아빠는 엄마를 칼로 찌른 뒤 어디론가 데려가고, 그 뒤로 엄마는 안 왔다는 것입니다.
"안녕."
앨리스의 아빠는 얼빠진 얼굴로 체셔를 바라보았습니다. 체셔는 빙긋빙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이번의 험프티 덤프티야? 반가워."
"그게 무슨!"
"어린아이를 울리면 안 돼, 앞으로는. 알았지?"
트럼프 병정이 다가와 앨리스의 아빠를 끌고갔습니다. 그리고는 공에 넣고, 그대로 문을 닫았습니다. 체셔는 휘파람을 불며 신사모를 벗었습니다. 그리고 신사처럼 인사했습니다. 아주 친절한 인사였습니다.





으음, 이런데 올리기에는 조금 민감한 내용이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