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어제 6월 6일은 영국의 탐험가 로버트 스코트가 태어난 날입니다.

 

  군 출신자로 영국의 탐험대에 참여하여 남극 탐험에 나섰고, 결국은 40대의 나이에 남극에 도전해서 아문젠에게 선두를 빼앗기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운명을 맞이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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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극점에 도달한 스코트 일행. 하지만, 그 표정에는 실망이 가득하다. ]

 

  하지만, 역사에서는 그를 승자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오직 남극점 도달에만 전념했던 아문젠과는 달리 수많은 학술 조사를 병행하면서 채취 작업을 계속하여 16kg에 이르는 표본을 버리지 않고 돌아왔다는 점에서...

 

  이에 대해 스코트는 대영제국의 국민이고, 아문젠은 약소국 노르웨이의 국민이기 때문에 여론 조작에 말려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스코트의 죽음에 대해 아문젠이 책임질 필요가 없음에도(심지어 아문젠은 나중에 찾아올 스코트를 위해 약간의 식량을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영국 신사(?)인 스코트는 이를 조롱의 뜻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를 악당으로 몰아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학술 조사로서 스코트의 업적은 분명히 주목할만 합니다. 동료가 죽어가는 상황에서조차 자료 채취를 계속 했다는 점은... 어쩌면 그것은 오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남극점 최초 도달에 실패한 만큼, 다른 것으로라도 보상받고 싶다는 마음이었을지도...

 

  어찌되었든, 스코트는 비록 남극점 선두 탈환에 실패하고, 귀환조차 이루지 못한 패자가 되었지만 또 다른 승자로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술 조사의 귀감'으로서...

 

 

  그런데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과연 스코트를 그렇게 기억해도 좋은 것일까요?

 

  스코트의 탐험에서 학술 조사를 잘 한 것은 좋습니다. 남극점 도달만이 아니라, 남극의 여러 지질 자료를 채취하고 기록한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죽음을 맞이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선택한 길이 우연히도 아문젠의 길보다 좋지 않았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스코트의 탐사로는 영국 탐험대가 탐험했던 길의 연장이었기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문젠은 전혀 새로운 길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운 좋게도 아문젠의 경로는 평탄했고 스코트는 험난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할 때 그들이 남극점에 먼저 도달하지 못하고(자그마치 1달이나 늦게 도달하고) 결국은 귀환하지 못한 것은 대장인 스코트를 비롯하여 그들 탐험대의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아문젠은 개썰매와 스키를 이용했지만, 스코트는 말과 설상차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말은 추위에 강한 품종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말과 개 중에서 어느 쪽이 추위에 강한가를 생각해 보면 간단히 답이 나옵니다. 게다가 크기가 큰 말은 눈에 빠질 가능성도 높고, 무엇보다 초식 동물인 말의 먹이는 구하기도 힘듭니다. 설상차는 물론 이런 문제가 없지만 연료가 없다면 소용 없습니다. 결국 거의 마지막까지 개썰매를 이용해 비교적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던 아문젠 일행과는 달리 스코트 일행은 말과 설상차를 금방 포기하고 인력으로 설매를 끌고 나아가게 됩니다. 남극의 혹독한 환경을 생각할 때 이것이 얼마나 바보 짓인지는 금방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문젠은 현지 동물을 사냥하는 등 휴대 식량에 의존하는 것을 최소화했습니다. 펭귄 같은 동물들의 고기는 사람만이 아니라 개도 먹을 수 있었고 개들은 팔팔하게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개도 식량으로 이용했습니다. 열심히 썰매를 끌어준 개를 잡아먹다니 비인도적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반면, 말은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스코트는 식량을 모두 실어날라야 했습니다. 초기에는 설상차용의 연료와 말 용의 건초까지 날라야 했으니 그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방한복의 문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문젠의 방한복은 -모 프랑스 여배우가 들으면 기겁할- 모피, 반면 스코트의 방한복은 소가죽을 여러 겹 겹친 형태... 땀을 흡수할 수 있는 모피와 달리 소가죽은 땀을 흡수하지 못합니다. 인력으로 썰매를 끌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 방한복은 최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스코트 일행이 학술 조사를 위해 길을 조금 돌아가기도 했다는 것은 봐줍시다. 이거야 말로 자살 행위라 생각하지만, 스코트를 인정해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학술 조사이니까요. (앞서 본 것처럼 미지의 세계를 헤치고 나가는 탐험가로서는 영 아닙니다.)

 

  하지만, 설사 스코트가 돌아가지 않았더라도 그들이 생존했을 가능성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문젠보다 일찍 도착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고, 그들이 귀환했을 가능성도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말과 설상차를 금방 잃어버리고 맨 몸으로 남극점에 도달해야 했던 스코트 일행은 아문젠보다 1달이나 늦게 도착할 수 있었고(그보다 전에 아문젠의 썰매 자국을 보고 패배를 직감했다고 합니다.) 맹렬한 추위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미귀환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설사 스코트가 아문젠처럼 준비를 잘 했다고 해도 아문젠을 이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문젠과 스코트의 경로를 비교할 때 아문젠 쪽이 월등히 편했고 거리도 짧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코트가 조금이라도 탐험에 소질을 보였다면, 준비를 철저히했다면 그들은 아문젠보다 늦게 도착했을지 언정 최소한 죽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비록 그 탓에 평범한 패배자로 끝났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학술 조사는 높은 평가를 받고 이후에도 남극 탐사를 다시 떠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희생되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들이 그런 것을 바라고 있었을까요? (한가지 덧붙이자면, 당시 스코트는 결혼한지 5년도 안 되었고, 아들이 태어난지 4년도 안 되었습니다.)

 

  이따금 우리는 '장렬한 최후'를 기리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것이 생존에 실패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정말로 '장렬한 최후'를 바랬을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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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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