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역사 포럼
역사 속의, 또는 현대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들과 관련한 뉴스 이외에 국내 정치 논쟁에 대한 이야기는 삼가해 주십시오.
보통 로마인 이야기 같은 기존의 대중용 역사서적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로마 공화정 체제가 제정체제로 바귄 것은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라는 식의 주장이 나와 있습니다, 저도 얼마 전까지 이 주장은 수긍했습니다.
하지만 세달전쯤에 로마 황제'라는 책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역대 로마 황제들에 대한 정사 야사 온갖 자세한 이야기들을 서술한 책이었는데
많은 황제들이 비정상적(ㅡㅡ;)이더군요...
물론 황제도 인간이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하긴 하지만
정말 말도 안되는 미친짓거리하고 사람 목숨을 파리목숨처럼 여기고 막 죽이는 내용 볼때마다 정나미가 뚝뚝 떨어졌습니다.
네로나 칼리굴라같은 쌩또x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오현제중의 한 사람인 하드리아누스도 자기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을 죽이는 만행을 자주 저질렀습니다.(일례로 하드리안은 자기 자신이 그린 설계도를 유명한 건축가에게 평가 좀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건축가가 약간의 비판을 하자 바로 사형장에 보내버렸답니다ㄷㄷ;;;)
이런 리더의 자질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도 제대로 되지 못한 인간들에게 통치를 맡기고서도 500년 가까이 제국이 존속했다는 게 신기할 뿐입니다....
그리고 황제임명을 둘러싸고 군대가 지나치게 개입을 하곤 했습니다. 공화정시대 말기에는 여러 정치가들이 군대의 힘을 업고 정권을 획득하긴 했지만 유독 제정시대 와서 군대가 '나대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는 황제가 실정을 하거나 인격적 결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군대의 비위를 거슬렀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하는 일도 종종 생겨납니다.(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그 대표적인 예죠.... 불쌍한 알렉산데르 ㅠ)
이러한 황제정의 문제점들을 볼때 '단지 행정상의 편의'라는 미명이 과연 옳은 것이었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옥타비아누스가 공화정체제를 무너뜨리고 전제정치 체제로 바꾼 것은 과연 잘한 일이었을까요?
모르죠. 황제정으로 바꾸지 않아도 천년 공화정이 지탱했을지 어떨지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권력의 속성상 제대로 견제해주지 않으면 한 곳으로 집중된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봅니다.
방대한 영토를 통치하는 데 적합하기 때문에 제정으로 이행되었다기 보다는
카이사르라는 불세출의 장군에게 집중되는 권력을 분산시키는 데 실패한 결과라고 보아야 옳을 것 같습니다.
네로의 경우는 일반 로마 시민들과 약간의 괴리감이 있는 사람이었죠. 그리스 오타쿠(?) 정도랄까요..
다만 황제가 된 후에도 오타쿠정신을 발휘하다보니 인기가 떨어졌고, 게다가 기독교의 역사관과 더해져 폭군이미지가 그려졌답니다.(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출처...)
확실히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뀐 직후에는 로마의 황금기였습니다. 다만 그것은 제정이라서가 아니라 카이사르와 그 뒤를 이은 아우구스투스라는 걸출한 정치력을 가진 황제 덕분이었죠. 제정이나 왕정 같은 것은 우두머리에 따라 대박 아니면 쪽박이니까요.
그 이후 그만한 황제는 다시 나타나지 않고, 그 이후의 황제들은 초대황제들이 쌓아놓은 기반 위에서 버티다가 몰락하게 됩니다.
제정은 한사람의 '천재'에 기대는 대신 공화정은 다수의 '영재'들이 상호보완하는 시스템입니다. 어차피 그 당시 로마는 다수의 영재 대신 카이사르나 폼페이우스 같은 소수의 천재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시기였기에 공화정에는 맞지 않는 시기였을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후기에 황제들의 '품질(?)'이 낮아졌을때 다시 공화정으로 되돌아갔다면 어땠을지요.전쟁시 로마 공화정의 즉응성부족은 그들 자신이 가장 잘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공화정 당시에도 큰 위기가 닥쳐올경우 독재관이라하여 1인에게 권력을 집중하여 위기를 넘기고는 했습니다.
다만 1차포에니 전쟁까지는 로마 공화국의 영토가 이탈리아반도 내였고 전쟁또한 총력전의 양상을 띄는 경우는 얼마 없었습니다.
때문에 한시적인 권력집중이라는것이 가능했었지만 1차 포에니전쟁이후 로마의 세력권은 급속도로 확대대기 시작합니다.
기존의 로마공화정의 병력교대식 군제로는 이 넓은 영토를 커버할수 없었기 때문에 그 유명한 마리우스의 군제개혁으로 인해 로마군은 직업화되고 상설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부작용으로 군대는 사유화되기 시작하는데 실제로 공화정말기의 3두정치가는 개인의 사비로 군단을 편성하여 크라수스와 파르티아의 전쟁처럼 개인의 의사로 전쟁을 벌이기에 이릅니다.(이는 로마특유의 극단적인 빈부격차도 한몫했습니다)
그리고 군대라는 특성상 단일화된 지휘권으로 인한 개인의 권한증대는 곧 군대가 개인의 권력기반이 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제국 중기의 혼돈의 군인황제 교체기에 잘 드러납니다.)
이걸 기존의 공화정으로는 도저히 견제할 방법이 없었죠.
견제한답시고 또다른 무력을 만들어내면 그것은 또다른 개인의 권력기반이 되고 그것은 곧 내전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로인한 내전이 발생합니다.(폼페이우스vs카이사르,안토니우스vs아우구스투스)
이것은 공화정기 로마 속주가 강력한 중앙권력의 부재라는점으로 인해 지극히 독립적으로 기능한데서도 이유를 찾을수 있지만요.
그리하여 내전을 막기위한 강력한 권력의 집중화는 반드시 필요했고 그것이 곧 제정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다만 여기서 로마인이야기를 쓰신 시오노나나미가 신나게 까대는 아우구스투스의 혈통세습주의가 나타나는데 여기서 시오노나나미는 왜 모든 군주국이 권력의 혈통세습을 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모습을 보입니다.
(아우구스투스는 혈통세습을 실패했기에)제정 초기처럼 실력으로 후대황제를 인선하는 시스템은 거대한 단점이 있습니다.
잘될때는 능력으로 뽑은만치 나라꼴 잘돌아가지만 좀만 수틀리면 황제가 로마변경을 책임지는 군단지휘관들의 지지를 받기는 커녕"내가 저새끼보다 못한게 뭐야?!!에잉 니미럴 나도 더러워서 황제하고만다!예들아!말돌려라!"라는 시츄가 벌어지게 됩니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 벌어져서 로마 제정중기의 극심한 혼돈상태가 빚어지게 되구요.
이것을 막기위한 방법이 바로 혈통세습,즉 "황가"의 존재입니다.
개인의 능력이 아닌 피에 흐르는 막대한권위로 사람을 복속시키고 권력을 휘두르는것은 언뜻보기엔 황족 개개인의 영달만을 위한 비합리적이고 나빠보이기만 한 시스템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황제가 되기위한 자격조건을 극단적으로 제한함으로서 개나소나 황제하겠답시고 깝치는 상황을 막을수 있는 당시의 사회적,기술적 한계상 취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로마인이야기나 다른 문헌에서도 나오지않지만 실제로 아우구스투스는 이런생각으로 혈통세습을 고집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새삼스러울것 없는 사실을 대체 왜 모든 군주국이 채용했는가에 대한 이해없이 그 머리좋던 아우구스투스라는 인간이 그렇게도 혈통세습에 집착했던 이유를 단순한 타 군주국의 답습으로 생각한다는것은 제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역시 카이사르의 성을 잇긴 했지만 혈통이라고 보기에는 무리였고 거의 사실상 초대황제였으니만큼 앞으로 수백년을 이어질수도 있는 후대황제 인선시스템에 대해 많은 고려를 했을것입니다.
그저 단순히 내새끼의 새끼까지 잘되자거나 다른나라도 다 하니까란 이유만으로 혈통세습에 집착했다면 아우구스투스역시 꽤나 실망스러운 인간중 하나뿐이겠죠.
그리고 시오노나나미가 군주정을 좋아하느니하는 개인적인 견해는 건너뛰고서라도 실제로 로마제국은 제국으로서 긴시간을 존속합니다.
그 사실에 대한 대답을 찾아야지 단순히 시오노나나미가 군주정(혹은 군주 개인)을 좋아한다고 군주정(혹은 군주 개인)의 긍정적인면만 부각시키는 빠순질을....하긴 했지만-_-;;그것이 군주정으로 이행하고 그것이 지탱한 제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논점으로 삼기에는 전후관계부터가 잘못되었죠.
한족이란게 혈통으로 따지면 단일은 아닙니다. 한나라 시대는 황하 중심으로만 이뤄진 문화권도 아니고 남방과 서역도 아우르는 시기가 되었기 때문에 완전한 단일문화권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편차가 있지요. 로마처럼 브리타니아부터 북 아프리카까지 아우르는 상황까지는 아니지만요.한나라도 한 무제 시절에 선대 시절에 착실히 쌓아둬서 넘쳐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원정을 여러차례 행하였습니다.
로마는 한나라와 비교하기가 수월한데 일단 동 시대에 각 지역에서 제국을 유지하기도 했고 제국이 유지되던 기간에 내분이 있었던 것도 동일하거든요. 전한 후한 사이에 왕망이 신나라를 만들고 15년 정도 유지했던 것과 비슷하게 제정 로마도 중간에 14년 정도 갈리아 제국으로 나눠지기도 했죠.
중국 역사상 제일 오래 유지했던 왕조는 주나라 입니다. 형식상으로는 800년 정도 유지했죠. 물론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했던 시기는 대략 300년 정도 밖에 안됩니다만..
우리가 믿는 인간의 존엄성은 사실 인간의 발명품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불과 수 백년전에 발명된 최신 발명품이죠. 인간의 존엄성을 믿지 않았다면 현대 국가는 존재하지 못했을 겁니다.
모든 것은 결국 '지식'의 총합이고...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많은 것들이 과거에도 당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과학적 사실외에도 수 많은 인문학적 믿음과 가치도 그냥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죠.
성경에도 나오죠... 이스라엘민족이 약한 것은 '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왕을 만들죠. 그리고 부족국가 사회에서 비로소 봉건국가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전성기가 실로 이 시기죠.
여기서 현대인이 가서 '왕'보다 '민주주의'가 최강이야 하고 주장을 해도 씨알이 먹힐리가 없죠. 인프라 자체가 없으니까요.
가상시민님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라는 것은 실제의 역사와 거리감도 있고, 또한
그것이 왕정이나 황제정이 공화정보다 우월하다는 증거는 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민주주의를 실시하던 그리스나 공화정 상태의 로마도 왕정을 실시하던
이스라엘보다 훨씬 강했으니까요. (그리스는 도시국가라 예가 좀 다를 수는 있겠습니다만)
부족국가보다 왕정체제가 국가 권력을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건 확실한 사실입니다만
로마의 공화정은 꽤 다른 케이스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고 봅니다.
물론 인간의 존엄성이나 그에 기반한 현대 국가 체제의 우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공화정 체제란 단어는 듣기에는 참 좋게 느껴지죠?
하지만 이 단어로 바꿔 보시죠. 과두정 체제..
소수의 사람이나 집단이 사회의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독점하고 행사하는 정치 체제란 뜻입니다.
로마 공화정은 실질적으로 과두정 체제하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원로원 내부 조차도 서열이 존재하고 발언권의 무게가 달라지는데다가 민회나 호민관이 있어도 실절적으로 귀족계층들에게 좌지우지 되죠.
호민관이 실세 귀족들하고 연계되는 것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최강의 동인녀 시오노 나나미가 만든 환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의 공화제(과두정치)가 군주제보다 못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로마의 공화정이 제정으로 바뀐 것은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듯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권력의 사유화에 의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동시에 당시의 로마가 워낙 방대한 영토를 가진 만큼 전체 민심을 쉽게 반영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던 것이 문제입니다.
공화정의 문제를 '멀리 돌아가는 것'이라 하지만, 사실 귀족정이건 과두정이건 한 사람이 모두 결정하는 방식보다는 여럿이 나누어 결정하는 방식이 장기적으로는 더욱 효율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설사 위에 앉은 사람이 아무리 정치적인 천재라고 해도, 그래서 기발한 발상을 무수하게 쏟아낸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한 사람만의 결정을 기다리는 사태가 계속 발생하고, 스스로 판단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회는 정체되고 점차 도태하게 마련입니다.
로마 공화정 체제가 로마 제국보다 허접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바꾸어 볼까요? 대영제국 의회... 대영 제국의 의회는 귀족정 제도입니다. 국민 대다수는 정치에 참여하지 못했고 높으신 분들만 참여했습니다. 로마 공화정 제도와 비슷한 형식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하지만, 그 의회는 오랜 기간 효율적으로 작동하며 거대한 대영 제국을 다스렸습니다. 공화정 제도가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는게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입니다. (비슷한 사례로 베네치아의 공화정 제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작은 나라가 지중해를 지배한 것은 그만큼 그들의 정치 체제가 효율적이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시오노 나나미씨는 베네치아 공화정을 찬양하면서도 한편으로 로마 제국을 찬양하는군요.^^)
로마가 제국으로 바뀐 것은 사유화된 군대를 가진 이들이 좀 더 강한 권력을 꿈꾼 결과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번 사례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고 결국 로마 제국은 후기로 갈수록 군사 권력자들의 각충장이 되어 버립니다. 한번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반대파를 싸그리 몰아내는 일이 반복되고 로마는 점점 정체되고 도태되어 버립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에서는 카이사르가 집권하기 직전의 로마 공화정이 무능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로마인 이야기>만 보아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확실히 혼란은 있었습니다. 그것은 독재권력을 행사한 마리우스와 술라 등의 선례로 인한 혼란일 뿐 공화정 자체의 문제는 아닙니다. <로마인 이야기>에서 종종 나오는 '공화정 제도 자체의 수명이 다했다'라는 말은 단지 카이사르 광팬인 시오노 나나미가 카이사르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말 이외에 어디를 보아도 공화정 제도 자체의 수명이 다했다는 표현은 나오지 않습니다. (카이사르가 등장하게 된 것 자체가 로마 공화정 제도 덕분이기도 합니다.)
가령, 혼란이 있었다는 상황에서도 로마는 과감한 해적 소탕 작전 등을 통해 지중해의 무역을 안정시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공화정에서는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이런 과감한 작전으로 안정된 지중해 무역은 그 후 수백년간 로마를 안정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최근 드라마로 선보여 눈길을 끄는 스파르타쿠스 반란 사건은 사실 지방의 작은 폭동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로마 자체를 뒤흔드는 사건은 도저히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사건이 길게 지속된 것은 마리우스, 술라의 독재와 내전 체제 아래 정치적인 숙청이 반복되며 쓸만한 인재를 몰아냈기 때문이며, 로마 일대에 우수한 군대를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공화정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중간에 끼어든 독재주의자들의 만횡 때문입니다. (한편, 스파르타쿠스 군에 합류한 노예 중에는 내전 과정에서 노예가 되거나 쫓겨난 인재들도 꽤 있었기에 나름대로 선전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혼란은 포에니 전쟁과 그로 인한 내전, 여기에 정치적 숙청 등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로마 공화정은 조금씩 회복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지중해는 안정되었고 로마의 정치 체제는 점차 견실하게 바뀌어 가고 있었습니다. 굳이 제정으로 바꿀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도리어 제정으로 바뀌는 과정에서의 혼란이 로마를 더욱 상처입혔습니다. 안정되었던 지중해 무역은 다시 흐트러졌고, 인재들은 대량으로 살육되었으며,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럼에도 로마가 무너지지 않은 것은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가 정치를 잘했기 때문이기보다는 오랜 기간 로마 공화정 체제 아래 탄탄한 역량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전쟁이 벌어지는 지역 이외의 거의 모든 것에서 공화정 시대의 통치 제제가 그대로 충실하게 유지되었기 때문입니다.
공화정 제도에는 물론 단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공화정 제도의 단점은 여러가지 보완책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반응이 느리다는 단점은 위원회 제도 같은 것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반면 독재정의 단점을 보완할 길은 없습니다. 아무리 다양한 제도를 구현해도 사람들이 독재자만을 바라보는 현실에서 변화를 낳을 수 없습니다. 그점 하나 만으로도 독재정보다는 공화정이 좋은 결과를 낳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부패한 공화정을 떠올리기 쉽기 때문에, 로마 제국 같은 상황에 매력을 느끼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부패한 공화정이라도 부패한 독재정보다 못하지는 않다는 것을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나 더... 과연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은 좋은 일이었는가? 카이사르의 광팬인 시오노 나나미씨는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기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우선 갈리아는 로마 제국에 경제적인 이익을 주지 못했습니다. 로마의 경제적인 이익은 대부분 동방에서 넘어왔지요. (훗날 로마가 콘스탄티노플로 이전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갈리아 원정은 단지 카이사르 개인의 명성과 수익, 여기에 그의 권력욕을 높여주었을 뿐입니다. 여기서 무수한 갈리아 노예를 양산하여 로마에 혼란을 안겨주는게 이바지했을 뿐입니다.
갈리아 원정으로 갈리아가 로마화되면서, 갈리아 지역의 모든 문명이 싸그리 사라지기도 했지만, 그로 인해 로마는 먼 갈리아땅까지 나가서 게르만족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갈리아 땅은 오랜 기간 게르만과의 완충지대였는데, 갈리아가 로마 땅이 되면서 로마 자신이 게르만에 맞서야 하는 처지에 빠진 것이지요. 이는 로마의 재정을 엄청나게 압박하였으며, 갈리아 지역에 장기 주둔하는 군대들이 점차 사유화는 경향을 막지 못했습니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 이후 로마는 전쟁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계속 늘어났는데,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다시 전쟁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즉, 악순환을 가져온 것입니다.
로마의 활동 무대는 어디까지나 지중해이고 지중해를 중심으로 활동을 계속 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갈리아 원정은 로마의 힘을 분산하여 갈리아 지역에 집중하게 만들었고, 지중해 전역에서의 지배력을 약화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이전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그런 점에서 정확한 판단을 한 것입니다. 로마를 버리는 것은 아까웠을지 모르지만, 갈리아 지역을 포기함으로서 로마 제국은 이탈리아의 로마가 사라진 이후에도 1,000년을 이어가며 번영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만일 이슬람교가 부흥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강력한 공세가 계속되지 않았다면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비잔틴 제국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전에 미식이 제작하기로 했던(그러나 아쉽게도 중단한) 게임, 임페라토르처럼 우주 시대에서 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에서는 사실 자신들을 로마 제국이라 불렀습니다.)이 활동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은 비잔틴 제국이 아니라 비잔틴 연방이나 기타 다른 이름으로 부르리라 생각합니다만...
또 하나 추가하자면, 만일 로마가 공화정을 그대로 유지했다면,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는 사태도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것은 단지 황제라는 존재에 종교를 뒤집어 씌워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리스도교는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할 때(그리고 로마 주류 사회에서 배척되는 존재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 공화정 로마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여 좋을리가 없습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공화정 로마라면 국교 따위를 내세울리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교의 도입은 로마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고, 성지에서 가까운 콘스탄티노플로의 천도에 당위성을 높여주었을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로마가 갖고 있던 친화력을 잃어버리고 사회를 경직시켰습니다.
한번 쯤 생각해 봅니다. 카이사르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시오노 나나미 같은 이들에게는 아쉬운 일이겠고 제 개인적으로도 카이사르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 편이 로마에 더 좋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로마라는 세계를, 그리고 세계의 많은 문명에 더 좋은 일이 되었으리라고...
적어도 지금처럼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세계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으리라고...





네로의 경우는 좀 잘못된 편견이라고 하던데요? 로마 거의 멸망 얼마 남지 않았을때의 황제들을 제외하면 비교적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나름 열심히 수행하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기준에서 사람을 마음에 안든다고 죽이는건 아주아주 비상식적인 일이엇지만 로마시대때 노예를 죽이는건 그사람의 자유였죠 노예는 사람이 아닌 그냥 개인의 재산이니까요 (마치 제가 화가 난다고 핸드폰을 박살 내는거와 다를바 없었습니다) 중요한건 그사람이 얼마나 국정을 햇고 그덕에 인기를 얻었나 입니다. (적어도 그때당시에는 그랫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군대이야긴 일단 패스하더라도 일단 황제로 바꾼건 일단 카이사르니.(명칭을 쓰지 않았더라도 카이사르가 황제정을 세운장본인이죠) 그사람기준에서 쓴다면 안그랫더라면 내가 망할판. 이었다고 해야 할겁니다. 그리고 이때는 이미 공화정의 패해가 나오기 시작했던때기 때문에 제생각으로는 바꾸엇기 때문에 그나마 그거라도 간것이라고 봅니다
ps: 그리고 황제정이야말로 로망입니다 늙은이들이 쪼르륵 앉아서 탁상공론을 하는 공화정따위는 시스의 반란이 일어나서(생략).....
(농담입니다 하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