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역사 포럼
역사 속의, 또는 현대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들과 관련한 뉴스 이외에 국내 정치 논쟁에 대한 이야기는 삼가해 주십시오.
현재 고등학교 사회 문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문화 파트가 제일 흥미롭더군요.
교과 내용에 따르면 각 문화의 개성있는 풍습같은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합니다.
예를 들자면 '한국인들이 개고기를 먹는 이유는 개 이외에는 딱히 단백질을 섭취할만한 식용동물이 없기 때문이다' 뭐 이런 식이죠
그런데 공부를 하면서 예전부터 궁금했던 것이 갑자기 떠오르더군요. 그럼 마야, 아즈텍 문명의 잔인한 인신공양 풍습은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
고대 문명들은 보편적으로 인신공양 풍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개화되었다고 생각하는 로마인들도 이따끔식 인신공양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아즈텍이나 마야인들처럼 그렇게 많이 그것도 잔인한 방법으로 인신공양을 한 예는 극히 찾아보기 힘들죠.....
도대체 이 특이한 풍습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요?
메소아메리카의 인신공회가 단백질 공급을 위한 식인을 전제로 한다는 가설이 분명 존재하기는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소수의견입니다. 하너와 해리스 등이 제기한 '단백질 부족' 이론은 현재로서는 반박이 되어 있는 상태지요. 소나 돼지 같은 대형가축은 부족했으나 칠면조와 특히 개가 일상적인 식육이었고 옥수수를 중심으로 하는 작물들을 통해 식물성 단백질로 충분히 충당이 가능했다는 것이 현재 정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신공회는 원문에서 지적한대로 어느 문화에서나 다 존재한 것이었습니다만, 대개는 문명화가 진전됨에 따라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해 자연히 사라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아즈텍이나 마야는 아주 오래 동안 주기적으로, 조직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인신공회를 해왔다는 점에 있어서 분명 잔혹하고도 도가 지나쳤다고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메소아메리카 지역의 인신공회를 잔인하다고 하는 것이 단순히 서구적/기독교적 편견에 기초한 감상은 분명 아니라는 것이죠.
보통, 인간 사회는 어느 정도는 상호비교를 가능하게 해주는 보편적인 구석을 지니고 있습니다만, 메소아메리카 지역의 인신공회와 같은 것은 사실 비교를 할만한 사례를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당대 메소아메리카인들의 정치적-종교적 사회구조, 그 제의적 행태 등 특수한 것들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견해가 일단은 주류의견입니다.
외부문화와의 교류가 없이 중남미라는 지역 내에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어떤 이유에서인가 메소아메리카인들은 세상의 이치가 우주적 힘의 주기적인 순환으로 이루어져있다는 종교적 관념을 발전시켰고, 기실 대규모 인신공회 뿐만이 아니라 아주 소박한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스스로 몸에 상처를 내어 피를 흘려 그것을 신들에게 바치는 제의적 풍습이 일반화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제의적 관념이 이제 상류계급 및 제부족간의 정치적 문제로 발전하면서부터는, 그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의식이 보다 과장되고 대규모화되었고, 귀족들 사이에서 경쟁적으로 보다 화려한 희생쇼를 보여줌으로써 대중적 인기를 관리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갔으며, 지역을 제패한 부족의 힘을 각인시키는 차원에서 희생양을 잡아들일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켜 포로를 잡아들이는 '공포를 통한 지배'의 수단이 되기도 했고요.
보통은 그런 식으로 해석을 합니다.
1757년, 근세 넘어가서 근대 바로 앞 계몽시대의 프랑스에서 국왕살해미수범에 대한 한 사형 판결을 적어보겠습니다.
"손에 2파운드 무게의 뜨거운 밀랍으로 만든 횃불을 들고, 속옷 차림으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정문앞에 실려와 공개적으로 사죄를 할 것. 상기한 호송차로 그레브 광장에 옮겨간 다음, 그 곳에 설치될 처형대 위에서 가슴, 팔, 넓적다리, 장딴지를 뜨겁게 달군 쇠집게로 고문을 가하고, 그 오른손은 국왕을 살해하려 했을 때의 단도를 잡게 한 채 유황불로 태워야 한다. 계속해서 쇠집게로 지진 곳에 불로 녹인 납, 펄펄 끓는 기름, 지글지글 끓는 송진, 밀랍과 유황의 용해물을 붓고, 몸은 네 마리의 말이 잡아끌어 사지를 절단하게 한 뒤, 손발과 몸은 불태워 없애고 그 재는 바람에 날려버린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바로크 오페라와 백과전서와 사회계약론이 나오던 계몽시대의 프랑스에서 말이죠.
사실 그러한 시대였기에 그나마 덜 잔인해진 경향이 있습니다.
1584년, 네덜란드의 오라녜 공작 빌럼 1세를 암살한 살해자는 광장에서 18일 동안 신체를 잘라내고 불로 지지면서 죽였거든요.
그런 즉 딱히 특정 문화에서만 잔인한 문화의식이 존재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타 부족에서 잡아온 전쟁포로냐, 내부의 중대한 범죄자냐의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공개적으로 사람의 신체를 잘라내고 죽여서 대중들을 열광&흥분하게 하고, 사회의 단결심을 고취하는 피비린내 나는 의식은
근대 이전의 대부분의 문화에 존재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인이 개고기를 먹는 이유가 개 이외에는 딱히 단백질을 섭취할 구멍이 없었기 때문이라는건 좀 에러같군요. 애초에 개는 육축으로서의 가치가 후달리거든요. 닭이나 돼지가 훨씬 가치있죠. 개고기는 그런거죠, 별미라고…….
처음에 지도자가 신의 이름을 빌어서 말안듣는 애들을 재앙의 근원으로 타게팅해서 살해하는 것을 포장한게 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삥뜯으면서 권력강화 하는거죠. 그게 나중에 병적으로 승화해서 습관이 된거 같습니다.
[re:하이버니안]
의미가 많이 다릅니다.
근대 이전까지 형벌의 집행 및 처형이 하나의 중요한 구경거리로써 대중적에게 흥분과 도취감을 불러일으킨 경우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1차적으로 죄질과 그에 따른 형벌의 경중의 관계를 저울질하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문제에서 기인합니다. 어떠한 죄를 지었느냐에 따라 그에 합당한 형벌을 내리는 정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형벌을 그대로 온존시키긴 경우가 많았고, 이것은 종종 죄질에 따라 (그에 대한 엄중한 경고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각 처벌/처형의 방식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였던 과거의 관습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이단재판의 결과 종종 이루어졌던 화형은 "불길에 의한 정화"라는 고대의 관념이 이어져 내려온 결과였고, 반역자에 대한 전형적인 처벌 중 하나였던 "드로우-앤드-쿼터", 즉 참수를 한 후에 사지를 절단하여 나라의 각 방위로 보내는 처형방식은 온전히 시신을 유지해야 최후의 심판의 날 부활할 수 있다는 기독교적 믿음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즉, 반역은 최후의 심판을 받기 위해 부활할 수도 없을 만큼 큰 죄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었고, 동양으로 치면 부관참시에 해당하는 의미를 지녔습니다만, 이러한 의미의 중요성이 희미해진 시대가 된 후에도 오래도록 살아남았지요. 하지만, 이러한 잔혹한 처형방식은 대개 19세기를 경계로 거의 일괄적으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처형 방식이 잔혹하고 스펙타클할 수록 대중의 눈길을 끌 가능성이 높고, 그에 따라 권력자들은 일종의 구경거리를 제공할 겸 그만큼 화려하게 그 과정을 연출하려고 한 것도 물론 사실입니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이라는 것이지요.
문제는, 메소아메리카 지역의 인신공회는 그 과정 자체가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써 사회 전체를 통합하는 하나의 기재였다는 것입니다. 바꿔말하면 그 사회구조 자체가 인신공회라는 집단적 살육행위에 기반해있다는거죠. 그것은, 비유를 하자면, 세계의 어느 나라든 매춘행위가 존재하기는 해도, 한 나라가 전체가 매춘행위에 기반하여 매춘행위를 통해 정부와 관료제와 사회가 유지되는 그런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잔혹성의 정도에 차이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동양이든 서양이든 처형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죄를 지은 이에 대한 처벌의 행위로써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이루어진 측면이 강하고, 오늘날 시대에 근접해올 수록 그 잔혹성과 처참함에 있어 어떠한 종류의 것들은 "도가 지나친 처벌이다"라는 사회적 컨센서스가 생겨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예컨데, 중국의 형벌은 그야말로 셀 수 없을 정도로 종류가 많고, 그 종류가 다양한 만큼이나 고대에는 그러한 방식이 실제로 모두 사용되었습니다만, 보통 송대(12세기) 정도를 경계로 해서는 비록 제도적으로는 그러한 처형의 방식이 여전히 존재했고, 가끔은 실제로 집행되기도 했어도, 보통의 경우에 있어서는 죄질이 아주 나쁜 사람은 간단하게 참수를 통해 처형하고 나머지는 지방관의 재량에 따라 적절한 형기를 두어 옥살이를 시키거나, 벌금을 매기거나, 부역을 내리는 형태로 '정리'가 되어갑니다.
마찬가지로, (처형은 아니지만) 순장의 풍습도 비록 형식적으로는 오래도록 유지되어 왔어도 이미 기원전인 공자의 시대에부터도 제의적인 의미에서도 사람의 목숨을 그렇게 끊어내는 것은 도의에 어긋난다는 인식이 존재했었고, 역사상 순장을 강요한 군주가 가끔씩 등장은 해도 실질적으로는 한대를 이후 부터는 순장은 엔간해서는 하는 일이 없었지요.
그런데, 메소아메리카의 경우에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처벌의 의미를 지니거나, 순장처럼 특수한 풍습의 일환이 아니라 정치적, 종교적, 제도적인 측면에서 "그것이 없으면 그 사회가 존재할 수 없는" 수준으로 구조화 되었다는거죠. 단연코, 이러한 형태의 사회는 적어도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메소아메리카 지역 외에는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도에서 영국 식민지 시절 전후에 인신공양이 확인된것으로 아는데 규모는 잘 모르겠군요.
인디애나존스에서 나온 시바신에 대한 인신공양 같은것을 근절하려고 영국 총독부에서 미개하고 야만적이라고 금지했었다고하죠.
사실 고대에는 인신공양을 어느 문화권이든 흔적이야 있을것이고 우리 역사에서도 부여왕의 경우
흉년이 들면 왕이 인신공양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죠. 나름 구조화된 측면은 부여에서의 왕의 인신공양도 있을수 있고요.
다만 제정분리가 되면서 왕에서 제사장이 대신 죽는 형태로 바뀌어갔다고 하는데 이런 변화에 대한 자세한 자료는 없군요.
수업시간에 지나가면서 들은 이야기인지라..
부여나 인도 그리고 메소쪽은 시스템이나 시대 흐름으로 보자면 제정분리의 문제인것 같습니다.
제정분리가 완성이 안된 문화권에서는 종교적인 희생제가 벌어지고 여기서 인신공양이(신이 노하면 제물을 바치는데
궁극적으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역시 사람 목숨일테니까요..) 발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도에서도 아주깊숙한 지역에서나
인신공양이 발생했지, 보통은 짐승으로 원래 희생제를 다루는 것으로 마하바라타같은 고전에서도 설명을 하기는 하죠.
당시 아메리카의 문명 수준은 '신석기' 수준이었습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석기시대 역사가 제대로 남아 있는 곳은 없지요.
하지만 순장등의 풍속을 볼 때 인간 존중의 사회는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죠.
즉 문자를 가진 문명인이 아메리카의 인신공양을 보고 역사에 남겼을 뿐 동양이든 서양이든 비슷한 시기가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반대입니다. 단백질 부족이 인신공양을 만든 것이 아니라 우연히 발생한 인신공양을 단백질 보충의 기회로 잡은 것입니다.
당시 메소아메리카의 정치적 상황과 연관이 깊습니다. 아즈텍인은 외부에서 이민온 부족이었습니다. 대규모 부대를 한 번에 몰아쳐서 승리하는 전략으로 순식간에 메소아메리카를 점령하긴 했으나 메소아메리카 전체에 비하면 부족한 인구였죠. 그 때문에 아즈텍인은 공포정치를 펼칩니다. 주변부족과 전쟁을 하여 잡게 된 포로를 제물로 사용하는 것이었죠. 이와 관련해서 꽃의 전쟁을 찾아보시면 잘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공포정치의 결과 아즈텍의 세력이 메소아메리카에서 공고화 되었지만 그 때문에 코르테스가 침입했을 때 아즈텍에 지배받던 주변 부족은 순식간에 코르테스의 편에 서게 됩니다.
이러한 공포정치의 일환으로 사용된 인신제물을 부족한 단백질원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죠.( 물론 이후에는 인육에 대한 거부감이 줄고 지배가 공고화 되면서 점차 광폭화 됩니다.)
인류가 단백질에 병적으로 집착한다는 가설이 있고 비슷한 사례가 몇 군데 있긴 하지만, 체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민족 역시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소나 돼지가 부족하여도 인육을 하지 않고도 단백질을 보충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사실상 인육을 선택하는 것은 대부분 상시적인 전쟁 상태에 놓은 수렵부족, 식량 고갈등의 상황에 놓인 사람들 정도입니다.
인육을 하게 될 경우 광인병(광우병 인간판)이 생길 가능성이 소나 돼지를 먹을 때에 비해 압도적으로 늘어납니다. 때문에 동족섭취는 상당한 거부감을 갖게 됩니다. 늑대소녀등의 사례를 보더라도 같은 인간을 사냥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인신제물의 풍속은 사례가 많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특별한 동물은 인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에게 뭔가를 요구할 때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야 한다는 점에서 미뤄볼 때, 주술적인 의식이 있는 곳에서 인신제물의 풍속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도식으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어느 문화에서든 주술적인 의미를 담은 인신공양이있을 수 있음
2. 아즈텍의 경우 부족한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공포정치를 하였음
3. 그 결과 많은 인육이 발생
4. 평소 단백질이 부족하였고, 점차 인육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아즈텍인들은 점점 대규모화, 시스템화 된 인육 소비체계를 만듬
보충한다면 2와 3혹은, 3과 4사이에 제국의 과도한 팽창으로인한 난개발은
도시의 자급 시스템을 자연과 격리시켜 심각한 물자 부족을 야기 시켯다 가 들어가야 합니다.
애초에 안데스 동쪽과 서쪽간에는 문화적 갭이 있어 서쪽은 안그렇지만 동쪽은 동일혈계집단간의 알력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혈족의 청년이 성년에이르면 그 집단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집단을 이루고 과거의 부족의 생활반경에서
벗어나야만 하지요. 그 결과 우리가 서인도제도라 부르는 일군의 섬문화는 이러한 알력으로부터 삐져나온 무리의
문화라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인신공희에 대한것은 그것이 15세기에 들어 과도해 졌다는 것으로 자원의 부족을 설명할수 있습니다.
톨텍문화나 마야문화가 성립된지 어언 2,000년을 헤아리던 시점입니다. 잉카의 아즈텍문화도 이미 식립되어 퍼진지
오래 되엇죠. 하지만 유독 14~15세기에 이르러 전쟁은 자심해지고 포로의 획득과 인신공희는 절박해집니다.
왕과 왕비부부는 제사를 위해 몸에서 피를 흘리고 포로들이 길게 줄지어선채 그 심장이 끄집어 내어지고 그 몸은 불에
구워졌지요. 이것은 이미 원시 농업경제나 약탈경제로 영위할수 없을 정도의 도시 팽창이 가져온 비극이 아닌가 합니다.






단백질 공급이라는 실체를 그들의 우주관으로 잘 포장한 형식인 듯 하네요. 수명이 다해가는 그들의 마직막 태양을 살리기 위해 끊임없는 심장과 피의 공급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인신공양의 정당성을 잘 확보해주었고 제의의 주체와 희생의 대상 간의 질서를 유지시켜 주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은 인류가 가축화한 십여종의 포유류 중 마야의 라마정도만을 원산지로 하고 있으며, 많은 인구에 비례한 만성적인 극심한 단백질 부족은 단백질 공급원으로서의 인신공양 제의라는 문화양식을 낳았다고 봐야겠네요.
그리고 그들의 제의가 잔인하다는 건 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서구사회와 기독교의 인식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