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말하였다.

“앞의 과정을 마쳤으면, 다음의 재료를 준비해야 한다. 달빛 머금은 개구리 창자, 벼락 맞은 고양이 심장, 겨울에 핀 장미의 가시…….”

제자는 열심히 놀리던 펜을 멈추고 스승을 빤히 쳐다보았다. 스승은 어서 받아 적지 않고 뭐하냐는 말을 눈빛에 담아서 쏘아 보냈지만, 제자는 지지 않았다. 오히려 입을 열어 반문하기까지 했다.

“스승님, 지금 장난하십니까?”

그 맹랑한 말투에 스승은 하늘을 우러르며-물론 눈에 보이는 것은 악어의 배를 열어놓은 채로 박제한 것과 같이 기괴한 물건들이 잔뜩 매달린 천장이었다-탄식했다. 

“허, 이 녀석이 머리알 좀 굵었다고 이제 아주 맞먹으려 드는구나.”
“제자, 어찌 감히 스승님께 맞먹으려 들겠사옵니까. 허나, 이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말이냐.”
“방금 말씀하신 재료들 말입니다. π ντα ρει에 반드시 필요한 재료가 아니지 않습니까?”
“네가 나보다 π ντα ρει를 잘 안단 말이더냐?”

노기가 섞인 스승의 물음에 제자는 약간 고개를 움츠렸다. 스승 문하밥만 십 수년 째였다. 왕국 최고의 현자이자 학자, 그리고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이지만 마법사이자 연금술사이기도 한, 스승은 그 명성의 높이에 걸맞게 괴팍했다. 그리고 그 괴팍함은 떨어져 내리는 산벼락과 같이 제자의 머리에 내리꽂히기 일쑤였고, 덕분에 제자는 머리에 조그마한 산봉우리를 달고 다녀야 했다. 지금도 아슬아슬한 상황이었지만, 제자는 이미 이런 상황에 관한 대처방법만으로도 책을 쓸 수 있었다.

“미천한 제자가 어찌 심오한 π ντα ρει에 대하여 안다하겠습니까. 다만 스승님께서 π ντα ρει를 하시는 것을 옆에서 보조한지가 8년째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단 한번도 ‘달빛 머금은 개구리 창자’라거나 ‘벼락 맞은 고양이 심장’ 같은 건 넣은 적이 없습니다!”

결연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제자를 보면서 스승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래서?”
“그렇다면 결론은 두 가지 입니다. 여태까지 스승님이 하신 것이 틀렸거나, 지금 불러주시는 것이 거짓말이거나. 설마 그동안 제자가 안보는 사이에 이런 재료들을 넣으신 겁니까.”

스스로의 말에 묶이기 시작하는 제자를 보며 스승은 혀를 찼다. 

“네가 아직도 그 모양이니 내 밑을 못 벗어나는 게다. 아직도 내 의도를 모르겠느냐?”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이전의 π ντα ρει를 할 때는 그런 재료가 들어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필요 없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째서 저런 황망한 재료들을 받아 적으라 하시는 겁니까?”
“그래야 π ντα ρει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기에 제자는 얼빠진 얼굴로 스승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벼락과 같은 지팡이 세례였다. 뒤통수를 부여잡고 고개를 책상에 처박고 있던 제자는 힘겹게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

“왜 π ντα ρει를 사장시키려 하십니까?”
“너는 π ντα ρει가 무엇하는 주문인지 아느냐.”
“예. 특정 원소의 속성을 다른 원소의 속성을 치환하는 주문입니다. 주문의 이름이 π ντα ρει(Panta rei), 즉 만물유전萬物流轉인 이유도 이러한 주문의 특징을 잘 짚어내기 때문입니다. 특히 π ντα ρει는 인위적으로 생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뇌전의 원소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유용한 주문입니다.”

제자의 유수와 같은 대답에 스승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질문했다.

“그렇다면 π ντα ρει는 쉬운 주문이더냐?”
“…….”

제자는 입을 열지 못했다. π ντα ρει는 마법의 역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주문이었지만, 그만큼 사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어떠한 속성을 특정속성으로 치환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그것을 희귀한 뇌전의 속성으로 바꾸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마법과 연금술의 수준을 논한다면 대륙에서 반드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본인은 첫째라고 주장하지만- 스승조차 백번을 시도하면 두 번은 실패하는 주문이었다. 사실상 이 주문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희귀한 마법사들 중에서도 소수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지. π ντα ρει는 매우 어려운 주문이다. 실패할 확률도 높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주문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듭니다.”
“아니, 사라져야 한다.”

스승은 단호하게 결론 내리고는 한 켠에 만들어져 있는 책 무덤으로 걸어가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그저 무질서하게 쌓여있을 뿐이었지만, 스승과 제자는 엄연히 질서를 가지고 책을 분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제자는 스승이 ‘기술’분야를 뒤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잠시 뒤 스승은 책 한권을 제자 앞에 던졌다. 최고급 가죽으로 장정을 만드는-개중에는 사람가죽으로 만든 것도 있다-마법서들과 달리 매우 후줄근해 보이는 책이었다. 제자는 조심스레 책을 집어 들고 제목을 읽었다.

“『명망 깊고 자비로운 위스콘신 백작의 후원을 받아 랑케스코 드뷔치가 1238년에 쓴 전기에 대한 성찰과 전기 생성 가능성에 대한 탐구.』 이게 뭡니까, 스승님.”
“방금 네 눈으로 보고 입으로 소리 내어 말했음에도 모르겠느냐. 전기에 관한 연구와 그 전기를 만들어내는 기술에 대한 책이다.”

제자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책을 넘겨보았다. 빠른 속도로 스쳐지나가듯이 넘겨보았지만 전기에 대한 성찰은 모든 원소에 대해 박학다식하다고 자부하는 자신들 마법사들에 지지 않을 정도였고, 전기를 만들어 내는 기술에 대한 것은 신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제자는 머릿속에서 걸리는 것이 있었다. 책이 나온 연도.

“1238년이라면 200년도 넘은 책이지 않습니까!”
“이놈! 좁은 실험실에서 돼지처럼 꽥꽥 거리지 말아라. 크흠, 그래. 전에 우연히 고서점에 들렸을 때 주인이 왕창 넘겨준 책무리에 껴있었다. 나도 최근에야 정리하다가 발견했지.”
“그런데 이것이 π ντα ρει를 사장시키는 것과 무슨 관계란 말입니까.”
“네 머리가 어깨 위가 허전해서 달아놓은 것이 아니라면 짐작했을 것이다. 거기에 있는 내용은 200년 전의 내용임에도 지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 왜 그것이 실용화 되지 못하였겠느냐?”

제자는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굉장히 미심쩍다는 어투로 입을 열었다.

“설마 그것이 π ντα ρει 때문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렇다. 지금에야 나 같은 불민한 후손이 대륙 최고의 마법사-끼놈! 어디서 이를 보이느냐!―라는 소리를 듣는 마법의 황혼기지만 200년 전이라면 나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전성기였느니라. 당연히 π ντα ρει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도 많았겠지. 그러니 어찌 드뷔치의 연구가 빛을 볼 수 있었겠느냐. 게다가 기초가 부족한 초기 수준의 연구였으니 그 차이는 더더욱 커보였을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은 마법사들의 비웃음을 샀을 것이다. π ντα ρει가 있는데 왜 그런 것이 필요하느냐고. 그리고 결국 그 책은 헌책방에서 주는 덤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π ντα ρει가 사장되어야 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헛, 혹시 스승님이 드뷔치의 후손이라도 되신단 말입니까!” 

제자의 딴지는 매우 훌륭한 것이었고, 스승은 여지없이 그 딴지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다. 잠시 뒤 제자는 기절에서 깨어났고 반드시 두피를 강철로 연성하겠다는 다짐을 굳혔다. 

“깨어났느냐.”
“예, 돌아가신 선친을 뵙고 왔습니다.”
“강녕하시더냐.”
“스승님께서 오실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내 어찌 인의 없이 혼자 가겠느냐. 꼭 너와 함께 같이 갈 터이니 걱정말거라.”

자신의 입담의 대부분이 스승에게서 기인했음을 새삼 확인한 제자는 어설픈 도발은 포기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제자, 아직도 이해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드뷔치의 이론이 훌륭하지만 π ντα ρει의 이론 역시 훌륭합니다. 게다가 드뷔치의 것은 당장 실제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π ντα ρει는 어찌됐건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π ντα ρει가 사라져야 한다고 하십니까.”
“좋은 질문이다. 그렇다면 묻겠다. 너는 마법과 기술의 차이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마법은 세계의 원리를 규명하고 해석해서 진정한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고 기술은 이런 원리를 세계에 적용시키는 것입니다. 마법이 산꼭대기에 있는 샘물이면, 기술은 그런 샘물이 흘러내려서 만들어진 강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정적이지만 학술적이진 못한 설명이구나. 허나 좋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지적했구나. 그렇다면 다시 묻겠다. 산꼭대기에 있는 샘물은 정녕 차갑고 이슬과도 같이 맑다. 반면에 강물은 산을 타고 내려오면서 온갖 더러운 것들도 뒤섞여 있을 수 있지. 하지만 사람들은 어느 물을 마시느냐.”

질문의 의도를 알아차린 제자는 떠듬떠듬 대답했다.

“아마도, 강물을 마실 겁니다. 하지만 스승님. 많은 이들이 마시지 않는다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진리는 언제나 찾는 이가 드문 법이다. 허나 생각해보거라. 강물이 탁하다고, 모두 샘물만 마셔야 된다고 한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힘겹게 험한 산을 올라 몇 모금 안 되는 샘물을 마셔야 한다면 그것은 잘하는 짓이더냐.”
“멍청한 짓입니다.”
“그렇다. 지금 π ντα ρει의 위치가 바로 그것이다. π ντα ρει가 있기에, 드뷔치의 강물은 200년 동안이나 헌책방에서 먼지만 머금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난 과감하게 π ντα ρει를 없애려 하는 것이다.”

스승의 말이 끝나자 잠시 동안 정적이 연구실을 감싸 안았다. 스승은 유현한 눈으로 제자를 쳐다보고 있었고 제자는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제자는 눈을 뜨고 스승을 바라보았다.

“결국 스승님은 기술의 존재의의는 얼마나 대중에게 이익이 되는가라고 하시는 것이군요.”
“그렇다.”
“그렇다면 정녕 진리에 대한 탐구는 헛짓거리란 말입니까?”

제자의 절절한 물음에 스승은 피식 웃었다.

“몰랐느냐? 너와 나는 있는지도 모르는 진리를 연구한답시고 왕궁에 틀어박혀서 일도 안하고 사는 기생충이다.”
“기생충, 입니까.”
“그렇다. 기생충 중에서도 악질적인 기생충이지. 하지만 제자야. 우리가 하는 행동은 헛짓거리일지언정 그 결과는 헛짓거리가 아닐 수도 있다. 시적으로 말하면 진리를 향한 여행을 하다 생겨난 부스러기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그 부스러기가 우리가 빨아먹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느냐.”

제자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직 제자에게는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이놈아. 이건 평생 안고 가야할 문제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이제 다시 받아 적을 준비가 되었느냐? 빨리 끝내야 밤에 있을 국왕폐하 생일축하연에 참석할게 아니냐?”
“…이번에는 저번처럼 어비스에 있는 몬스터를 불러내거나 하지 좀 마십시오. 거, 일각수니 환익조 같은 예쁜 환수들 놔두고 꼭 그런걸 불러내야 합니까?”

제자의 투덜거림에 스승은 껄껄 웃으며 다시 한번 지팡이를 휘둘렀고, 제자는 이를 갈면서 기절했다. 


終.


---------------------------------

처음썼을때는 후반부의 토론 부분이 지금의 다섯배가 넘어갈정도로 길었습니다만, 확 쳐냈더니 이번에는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