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라 비를 보니까 생각이 나는데, 게임에서도 비가 내리는 경우가 많죠. 예전만 하더라도 세세한 환경 구현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아 기후 같은 건 그냥 넘어갈 때가 많았습니다만. 요즘엔 아마 기후 설정이 없는 게임을 찾는 게 더 빠를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비가 내린다고 해서 플레이에 다 영향을 주는 건 아닙니다. 일부는 그저 운치를 위해, 일부는 재앙을 몰고 오기 위해 비를 내리죠. 하여 추적추적 비도 오는데, 비가 내리는 게임들을 기억나는 대로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발더스 게이트 2 : 도시나 야외에 무작위 확률로 비가 내립니다. 이 와중에 번개가 칠 수도 있습니다. 특별한 기능은 없고, 그냥 분위기상 내리는 겁니다. 비가 내리면 당연히 사양이 올라가므로 기후 조절을 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에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별 것 아닌 듯 하지만, 숲을 가로지르는데 비가 내리면 그것도 괜찮습니다. 썬드 같은 드루이드 캐릭터가 대자연의 아름다움 어쩌고 대사 한 번 읊어주면 금상첨화. 비가 오는 와중에 전투를 하면 어쩐지 더 격렬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느낌만.

 

• 네버윈터 나이츠 : 역시 별다른 기능 없습니다. 2D에서 3D로 바뀌었고, 좀 더 실감나게 비가 온다는 것일 뿐. 당연하지만 비 온다고 횃불 꺼지거나 하진 않습니다. 비 오는 숲 속에서 야밤에 캠핑하는 것도 나름대로 그럴 듯합니다. (뭐, 실제로 이렇게 하면 굉장히 처량맞겠지만. 모험가란 먹고 살기 힘듭니다.) 이럴 때 콜 라이트닝이나 콘 오브 콜드 같은 주문이 더 강해진다면 좋은 설정이 될 텐데, 구현하기가 힘들었나 봅니다. 확장팩인 <호드 오브 언더다크>는 게임의 90% 이상이 지하실 탐험이므로 비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2 : 시에라가 유통한 FPS 게임 2편. 싱글 미션에선 비가 내리지 않으나 멀티 플레이 맵에는 일부 내리기도 합니다. 솔직히 마린이나 에일리언에겐 별 상관없지만, 프레데터는 날씨가 안 좋을 경우 곤욕을 치르죠. 몸이 젖으면 클로킹 기능이 사라지기 때문에 특유의 기습작전이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린이야 말할 것도 없고. 에일리언 역시 뿌옇기만 하던 녹색 호르몬이 확실한 프레데터 형체로 바뀌기 때문에 클래스나 무장을 구별할 수 있어서 좋죠. 프레데터가 원체 화력이 좋기에 전면전으로 싸워도 되긴 한데, 가장 큰 특기인 은신이 사라진다는 건 여하튼 뼈아픈 일.

 

• 로그 스피어 :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 두 번째. 일부 미션에서 비가 내리며, 미션4 로스트 썬더 같은 경우는 실외 전투기 때문에 계속해서 비를 맞아야 합니다. 플레이에 별 영향은 안 줍니다. 총이 젖거나 하는 일이 없으니까요. 다만, 기온이 내려가기 때문에 입김이 나오고, 몸을 숨긴다고 해도 입김 때문에 발각되는 수가 있습니다. 특히 서로 온갖 위장을 해대는 멀티 플레이에서 입김이 보인다는 건 곧 헤드샷을 맞을 확률이 높다는 뜻. 미끼를 써서 기껏 위장해놓고는 입김 때문에 들켜 죽는 수도 있습니다. 고산지대 사냥꾼들은 날씨가 추울 때 입김을 들키지 않으려고 눈을 먹기도 했다는데, 그런 비법도 없으니 골치 아프죠. 비가 좀 내릴 경우는 가뜩이나 잘 안 보이는 위장무늬가 더 헛갈리기도 합니다. 밥 먹듯이 게임을 붙잡았던 고수들의 경우는 이런 사소한 차이가 승부를 갈랐죠.

 

• 몬스터 헌터 프론티어 : 비가 내리는 맵이 정해져 있습니다. 사막이나 설산에 당연히 내리지 않으며, 섬이나 수해, 늪지 등에 많이 오죠. 비가 오면 여러 가지가 바뀌는데, 대표적인 사례는 독이 없어진다는 것 정도. 늪지엔 독을 품은 연못이 있는데, 비가 오면 물이 넘쳐 독이 사라집니다. 그 외에도 아이템 준비라든가 하여튼 게임 플레이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주는데, 기억나는 게 별로 없네요. (뭐, 폭우가 내려도 고기는 잘 구워집니다.) 참고로 가뜩이나 나무가 우거진 섬이나 수해에 비가 내리면 시야가 가리기 때문에 몬스터가 안 보여 짜증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안개가 이는 등 배경이 바뀌기도 하고요. 비가 내리면 멍~하니 산꼭대기에 이는 안개를 바라볼 때도 많습니다. 정말 신비롭죠.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비가 내리는 지역이 정해져 있으며, 가시덤불 골짜기 같은 열대우림은 스콜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그래픽 설정에서 기후 조절을 하면 비가 오는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데, 대개는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끄지 않는 듯합니다. 드넓은 멀고어 평원에 비가 내리면 <와우> 최고의 운치가 살아난다고 생각합니다. 가시덤불 골짜기에 스콜이 퍼부으면, 눈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아 레이드 공략에 차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줄구룹 등 야외 던전을 진행하는 경우, 스콜이 심해지면 (어차피 금방 그치므로) 공대장이 잠시 기다리라고 지시하기도 합니다.

 

• 대항해시대 시리즈 : 가뜩이나 험난한 바다에 비가 내리면 파도가 거칠어집니다. 때로는 폭우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게임에서 비를 보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희망봉을 지날 때 몰아치는 폭우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재난 중 하나. 특히, 이제 막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배가 약할 때 폭풍 만나 선원이고 물자고 다 날아가면 키보드 집어 던지고 싶죠. 비 올 때의 낭만이나 센티멘탈이나 그런 거 없습니다. 그저 폭우로 돌변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교회나 신전에 기부를 하기도 하며, 행운을 부르는 선수상을 구입하기도 합니다. 후반부에 배가 튼튼해지고 행운의 선수상으로 비를 피할 수 있게 되면 좀 낫긴 하지만, 여전히 무섭습니다. 해적이나 바다괴물이 비할 바 아니에요.

 

• 쥬라기 공원 오퍼레이션 제네시스 : 대개의 건설/경영 시뮬레이션에서 기후는 재앙을 불러오는 요인입니다. 이 게임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원작소설에서 환경청의 간섭을 피하느라 코스타리카 쪽에 공원을 건설했는데, 폭풍이 직통으로 지나가는 길목이라 쫄딱 망하죠. 폭풍이 한 번 지나가면 건물이 박살 나기도 하고, 담장이 깨지기도 하고, 그래서 공룡이 튀어나오고, 관람객이 바람에 휩쓸려 죽기도 합니다. 몸집이 작은 공룡도 역시 바람에 날려가 죽습니다. 사람들이 미처 피하지 못했는데, T-렉스 같은 공룡이 우리 밖으로 나오면 난리 나죠. 번개 맞으면 열기구가 떨어지는데, 하필 육식공룡 우리로 들어간다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아물러 비 올 때의 분위기가 스릴만점인 게임. 화창한 날씨에 포효하는 T-렉스와 비 오는 날 번개를 배경으로 울부짖는 T-렉스. 뭐가 더 멋질까요. 개인적으로 비만 오면 생각나는 게임입니다.

 

이 밖에도 비 내리는 게임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요즘엔 제작자들이 환경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그냥 비가 오는 경우는 없고, 꼭 시스템에 영향을 주더군요. 하지만 가끔은 게임에 아무런 영향이 없어도, 키보드와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좋습니다. 비 오면 마음이 잔잔해지는 건 게임 속에서도 마찬가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