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세상엔 숨겨져 있는 방이 하나 있다는 거죠. 시간과 공간 저 너머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아야 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과거의 어느 한 순간에 시간이 멈춰 있는 어떤 모텔 방. 방 열쇠가 있는 사람은 그 방에 들어갈 수 있고요, 그 방에는 '물체'들이 있어요. 사용하는 사람에게 특수한 능력을 주는, 매우 평범해 보이는 일상용품이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세상에 나와 수많은 사람들을 거쳐가는 물체들 말예요. 이 물체들을 추적해 얻으려 하는 지하 단체들이 서로 다투고, 불쌍한 주인공은 딸을 찾기 위해 이 일에 말려들며, 모텔 방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가에 대한 추적이 이어집니다. 이쯤 되는 이야기면 꽤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

 싸이파이 채널에서 요상한 3류 미니시리즈 같은 거 많이 만든다고 전에 말씀드렸었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평가가 바닥을 쳤지만 이 녀석만은 예외였고 광고까지 합쳐도 6시간 정도라는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팬사이트가 만들어질 만큼 상당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저는 늘 그렇듯 뭐든 까지만, 보면 왜 인기 있었는지는 확연히 납득이 되더군요.

 물체들과 그것이 주는 능력이란 건, 물론 히어로즈 같은 슈퍼히어로물이나 일본만화...뭐지, 음, 마땅한 예시가 기억나는 게 없군요. 이를테면 페이트 같은 것에서처럼 다양한 능력자들이 서로 신나게 쌈박질하는 데도 써먹을 수는 있겠지만 사실...이런 식의 이야기에서는 마치 잘 짜여진 퍼즐 게임에서처럼 쓰일 때 제일 폼나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정해진 규칙을 위배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남용해 가면서 창의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내는 데서 가장 큰 쾌감을 주지 않나 생각하는데요. 그런 맥락에서 작가진은 꽤 똑똑한 편입니다. 빗 가지고 하는 부분에서 조금 실수를 하긴 했지만 어떤 물체가 또 나올지 기대될 만큼은 잘 해냈고 후반부에 좀 서두를 때조차도 뭔가 멋진 걸 등장시키는 데 성공했으니까요. 그냥 손에서 불 나가고 얼음 나가고 하는 능력을 주지 않는다는 것(뭐, 사실 그 비슷하긴 하지만)만 해도 그리 단순한 이야긴 아닌 거고 그건 맘에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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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 왼쪽 위에 이혼한 홀애비 형사라는 주인공 아저씨, 호감형으로 잘생겼습니다. 제가 여자였다면 아마 좋아했을지도요. 한편 중앙 위의 딸은 다코다 패닝 동생이랍니다, 어쩐지 닮았더라. 주인공은 자기 딸을 찾기 위해 애쓰지만, 늘 그렇듯 이혼했다는 설정은 딸 딸린 아버지가 여주인공과 자유 로맨스를 펼치는 데 대한 면죄부를 주며 형사는 늘 그렇듯 누명 쓰고 쫓기면서도 동료에게 도움 받는 좋은 핑계가 됩니다. 이런 설정이 나쁘다는 건 아녜요. 여주인공은 조금 심심하긴 해도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짧은 분량 내에서 꽤 잘 잡혀 있습니다. 다만 제일 오른쪽 아래 수지 강이라니, 보랏빛 향기는 어디로 가고(물론 배역 이름이 시사하듯 재미교포 2세이긴 합니다)...

 물론 다른 것도...연출도 잘 나왔고 특수효과도 적당히 돈 아끼면서 잘 뽑아냈고 음악도 연기도 죄다 좋습니다. 영화에 준하는 완성도라고 할 수 있을 테고요, 제일 처음에 제가 링크 걸어둔 인트로 보셨잖아요. 아니 안 보셨으면 할 수 없고요. 이야기는 군더더기 없이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면서 몇 군데 괜찮은 반전까지 후려갈깁니다. 상당히 재밌어요. 마지막 화 보기 전까진 말예요.

 네. 문제는 결국 결말입니다. 후속 시리즈를 예고한다고 보기엔 너무 매듭지은 일이 많습니다. 근데 이대로 끝났다고 보기엔 너무 매듭지은 일이 부족하죠. 한편으로, 매듭지었다고 하긴 하는데 그나마도 별로 잘 지은 것 같지는 않아요. 이건 SF가 아니라 판타지고, 그 '비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뭔 블랙홀의 시차운동으로 인해 우주의 4차원 시공간에 뒤틀림이 생겨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를 할 거라 기대하진 않았고 그러지도 않습니다. 그냥 말 그대로 이야기의 결말이 무지막지하게 열려있다는 거죠. 안 좋은 쪽으로요. 예제를 들어보자면...

  예제를 찾아보자면 이런 현상은 좀 익숙하긴 합니다. 그래도 보면서 로스트처럼 6개 시즌을 질질 끌고 미안한데 난 결국 섬의 비밀이 뭔지 못 지어내겠더라 하는 형편없는 결말을 내는 것에 비해, 애초에 분량이 짧으므로 시작과 결말을 확연히 정해놓어야 할 미니시리즈라면 좀 더 타이트한 결말을 내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못하다는 건 좀 의외였긴 하지만요. 한편 이제와서 역으로 생각해보면 6년을 질질 끌면서도 결말을 못 내니 5시간 분량 미니시리즈에서 결말을 못 내는 건 더 당연한 일인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니지, 아니다, 이게 틀렸나?

 아무튼 꽤 잘 나왔던 초중반부를 생각해보면 아마도 윗선에서 압력이 들어와서 급히 매듭지었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아무래도 진짜 그랬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런 식으로 끝나는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결말이 어땠어야 할까 곰곰히 생각해보는 게 또 재밌더라고요. 스토리는 꽤 꽉 짜여진 식이었으니 좀 더 편집해서 극장 영화 분량으로 만들었더라면 어떨까 하는 건 확실히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고요. 그런 맥락에서 분량을 좀 더 늘려서 미니시리즈가 아니라 정규 시리즈(아니면 최소한 후속작을 내주던가)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도 요즘 미국 드라마에 흔히 유행하는 플롯 패턴 보자면 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죠. 이를테면 방 열쇠 찾는데 1시즌 절반 써먹고, 나머지 절반 동안 열쇠 용도가 뭔지 궁리하다가 시즌 피날레에서 간신히 방에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딸 잃어버리고 위기 상황에서 끝. 2시즌 절반은 각종 주연 조연들의 과거 회상씬으로 때우고, 나머지 절반 동안 딸 찾는 방법에 바로 코앞까지 접근했다가, 막 딸 손 만져볼까 말까 하는 시점에서 2시즌 피날레, 3시즌은 시청율 저조로 취소.

 ...음음. 생각해보니 끔찍하군요. 아무튼 한 번 볼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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