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단편 게시판
아주 쓸데없는 평온한 어느 날이었다.
오늘도 역시나 나는 늦잠을 잤다. 아니 사실 할게 없었지만 그냥 자버렸다. 뭘 해야 할지도 무언가를 해야 할 지도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는 그런 날이었다. 나는 오늘도 모자 하나를 대충 눌러쓴 채 밤길을 나선다.
"아.. 무료하다."
이런 식으로 중얼거리며 또 다시 걷는다. 언제나 말하는 말이다. 해볼것은 전혀 찾지도 않으면서 그냥 하는 한풀이 같은 말. 흔히 말하는 영양가 없는 무기력한 말. 그나저나 아침 반나절 내도록 잤으니 이제 밥을 먹어야 할 때이다. 시킬 수도 있지만 무언가 전화번호를 적어 둔 것이 없었다. 귀찮아서. 이렇게 간단하게 정의 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난 무기력하다.
아직 그리 늦지 않은 저녁 길가로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웃으면서 혹은 무표정으로 무언가를 하면서 전화를 받으면서. 물건을 팔면서 전단지를 건내면서 무언가 자신의 일상을 행하고 있었다. 단지 나만 아무생각도 느낌도 없이 걷고 있을 뿐,
사람들은 정말로 많은데.. 나 혼자 떨어진 느낌이다.
허무하게
재미없게
대충 집근처의 마트로 가서 둘러보다가 인스턴트 카레랑 밥을 하나 집는다. 왠지 식어버린 카레와 내가 같은 것처럼 느껴진다. 계산을 마치고 다시 왔던 길을 터벅터벅 걸어 되돌아간다.
“실례합니다. 지금 혹시 몇 시인지 알 수 있을까요?"
누군가가 나에게 시간을 물어본다.
9시 50분 정도
얼굴도 보지 않고 상대방에게 그렇게 말한다. 상대방은 공손하게 인사를 한 뒤 저쪽 반대편으로 내달음 친다. 그나저나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되었나. 나는 스스로 깜짝 놀라버린다. 스스로 시간관념이 없긴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전혀 몰랐다.
밥 먹고. 대충 티비보다가 자면 또 다음날 이런 무료하고 무의미한 일상만 반복했으니 시간은 사실 관계가 없었다.
흔히 티비에서 말하는 니트족. 그게 나였다.
집에서 마트까지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매일 먹을 걸 사러 나갈 때 마다. 나는 이 거리가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뭐랄까.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보며 비웃는 그런 느낌.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언제나 나는 발걸음을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정도에서 빨리하곤 했다.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기요-- 당신.”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내 갈 길로 발길을 옮겼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대로에서 나를 부를 사람 있을 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이요 당신.”
“나?”
“제 시선 닿는 곳에 당신 말고 또 누가 있나요?”
확실히 주변을 둘러보니 내 주위 쪽으로만 사람이 뜸했다.
“그나저나 헤에-- 오래 잤는걸요 당신."
"?"
얼굴을 모르는 낯선 사람이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저런 얼굴 기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저런 옷차림부터 내가 알 수 있는 범위 밖이었다.
"당신은 뭐야?"
"예언가. 라고 해두죠."
상대방은 말을 끊으려다 친절하게 덧붙여준다.
"예언?"
"이 시대의 언어로는 그런식으로 표현하더군요.“
"하아.. 그래서 그런 옷차림인거야?"
"옷차림은 무관하답니다."
상대방은 신원불명의 여자였다. 목소리로만 들었을 때는 나보다 어린것이 분명한데. 그녀의 옷차림은 천일야화 같은 데서나 나올 것 같은 그런 옷. 보라색의 나풀나풀 그 뭐라드라 차도르라고 했던 것 같다. 연보라 빛이 잘 어울리는 것 같지만 그것보다도 바닥 쓸기에 좋아보인다.
그녀는 웃으며 커다란 수정구를 나한테 내밀었다.
"이곳에 보이는건 당신의 운명."
"운명?"
난 그녀가 내민 주먹만한 수정구를 들여다보려 애쓴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렸을 적에 보던 만화책 같지는 않나 보다.
"그리고 죽음."
연보라색 차도르를 두른 정체불명의 그녀는 어조를 바꾸어 딱딱하게 말하였다.
"농담이 지나치면 혼나 아가씨."
"농담이 아니라면."
"???"
"운명은 말하고 있어 당신은 정확하게 이 시각."
그녀는 자신의 가슴에 매달려 있던 시계를 들어올린다.
딸깍! 경쾌한 소리와 함께 시계뚜껑이 열린다. 금색에 고급스러운 장식이 들어가 있는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시계다.
"조금 모자라긴 하지만 정각 10시."
"?"
"내일 이 시각 당신은 죽어."
"내가 말했지 농담이 지나치면 혼난다구."
"농담 아니야. 난 뭐든지 볼 수 있어 난 당신의 뭐든지가 보여."
잘 보니 눈 색깔이 굉장히 독특하다. 한쪽은 푸른 한쪽은 노란 흔히 말하는 오드 아이인것 같다.
난 말없이 그녀를 밀어내고는 지나가 버린다.
"정말이라구!!!!난 다 보인단 말이야!!"
그녀는 악을 쓰듯 소리를 질렀다. 괜히 신경 쓰인다.
"좋아. 나는 누구야? 미리 말해두지만 뜬구름 잡는 소리 하면 그대로 가 버릴 테니까."
“그런 것 따위 틀릴 리가 없죠.”
기다렸다는 듯 여자가 말하기 시작한다.
"할 일없는 백수. 시간은 날로 허비하는 사람. 돈은 좀 있어 보이는데. 자기가 번 돈은 아니구. 머리는 좀 좋아 보이는데 전혀 사용하지를 않고 기타 운동도 예술도. 뭐든지."
"하하하..."
정말이지 우습다.
"뭐죠?"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너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 그렇다. 너는 목소리는 좋은데 노래 연습을 안 해서 그렇다. 다 대동소이한 말 아냐? 그나저나 뜬구름 잡는 소리지? 약속대로"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22살의 이시현씨."
"..."
"안 그런가요?"
여자의 볼 수 없는 얼굴이 웃고 있다. 그리고는 눈을 감은 채 이어서 말하기 시작한다.
"내 이름은.. 어떻게"
"이름 이시현 나이 22 가족관계 아버지, 어머니, 동생 어머니는 재혼 하셨고. 아버지가 재산 좀 많이 물려 주셨네요. 한"
입을 틀어막아 버리고 싶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듣는 사람은 한명도 없지만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60억. 와우 평생 놀고먹어도 되겠네요. 뭐 정식으로 물려준 것은 아니구. 매달 붙여주는 방식인 것 같지만. 고마워하세요. 그런 분 흔치 않아요."
"..."
"직업은 무직. 하긴 돈이 있으니 상관없겠죠. 주소지는. 이 빌라 5층 정도? 불 꺼진 곳이 한군데니 저기인가보네요."
"..."
"나이로 보아하니 군대는 안 갔다 온 것 같고. 뭐 하긴 상관없겠죠. 내일이면 죽을테니까."
"야! 너."
"어떤 것? 혹시 제가 말한 것 중에 하나라도 틀린 것이 있나요?"
여자는 웃는다.
"아 마지막 지금 사온 건 인스턴트 카레, 3분짜리인가 보네요. 하긴 냉장고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
"앞으로 당신에게 일어날 일은 보자."
"..."
도저히 반문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마지막 인스턴트 카레까지 그녀는 모조리 맞추고 있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맞추어 내고 있었다. 가벼운 티셔츠의 등이 축축해진다.
"내일 정도엔 전화가 올 거에요. 아마 동생분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겠군요. 교통사고인걸까요? 그리고는 한번 잘못 탈 것이고, 그 다음은 서점. 의자. 그리고는 끝. 마지막에 마시는 커피는 밀크인가? 헤에 이건 좀 어렵네요."
"..."
머리가 어지럽다. 아프다. 짜증이 인다. 농담 같은 일이다. 아니 꿈이다. 일단 그 여자를 붙들어다가 붙들어서 어떻게 해야 하지? 뭘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눈을 뜬다.
하지만
아무도 아무것도 없다.
띠릭--
문이 열리자마자 털썩하고 소리나게 주저앉는다. 사온 것들은 아무렇게나 좁은 내방에 던져버린다. 투욱-- 하는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린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밥도 먹지 않은 채 나는 그대로 쓰러지듯 잠들어 버렸다. 믿을 수 없었다. 그 여자는 단지 스토커일 뿐 그리고 단지 우연일 뿐.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단지 나쁜 기억으로만 치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잘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띠리리릭--- 띠리리릭---
띠리리릭--- 띠리리릭---
이른 새벽, 전화벨 소리가 멈추지가 않는다.
시끄럽게도. 올 전화도 없는데 도대체 왜. 불안한 느낌에 전화선을 뽑아 버린다.
띠리리릭-
곧바로 울리는 전화소리, 이번엔 핸드폰이다.
덜 깬 얼굴을 흔들며 고개를 내젓고는 핸드폰을 들어 올린다. 이것 역시 집어 던지고 싶었지만 왠지 받아야만 할 것 같았다.
"여보세요."
"시현이니?"
"아- 엄마?"
물론 내가 말하는 사람은 그래. 그 예언가인지 뭔지가 말했던 그 어머니다. 내가 연락하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
"혹시 무슨 일 있어요?"
불안한 느낌을 못 이기고 결국 선수를 치고 만다.
"아니. 그게."
어머니가 말을 더듬는다. 살짝 불안함이 스친다. 아니길 믿으며 물어본다.
"혹시 동생 녀석이."
"그래 네 동생."
"..."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것 같다. 머리가 멍--해진다. 그나마 나를 잘 따르던 몇 안되는 녀석. 고등학교 입학한지도 얼마 안 되었을텐데. 애초에 사고날 건덕지가
설마
"오토바이?"
"사고가 났어. 이번엔 꽤나 심각한 것 같아. 지금 중환자실로 들어갔다더라. 엄마도 지금 와서 잘 모르겠네."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소리가 넘어온다. 덩달아 나도 다급해 진다.
"갈께요. 잠깐만 기다려줘요. 아--- 거기가 어디라 구요?"
"XX종합병원."
대충 아무거나 하나 걸치고는 그대로 뛰어 나간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경. 아직 버스는 없었다. 새벽에 뭐 하는걸 굉장히 싫어하지만. 지금 당장은 방법이 없으니까.
"여기 택시요!!!!"
다행히 집 바로 앞이 상당한 번화가라 택시는 쉽게 잡혔다.
"어디가시죠?"
"XX병원이요."
"아 네 XX병원 가겠습니다."
눈이 감긴다. 잠을 덜 잤나 보다. 뭐 잠을 푹- 자기에는 너무 나쁜 일이 있었으니까.
"가는데 얼마쯤 걸리죠?"
"한 30분 걸릴 겁니다만."
"30분이라."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눈을 붙인다. 생각해보면 30분. 그 여자의 말대로 내 목숨이 24시간이라고 하면. 꽤나 크다. 게다가 왕복이니까.
"다 왔습니다."
택시기사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흔들어 깨웠다.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는 병원 안쪽으로 뛰어 들어간다. 문이 잠겨 있었다. 셔터창이 이상하게 무겁게 더 차갑게 느껴졌다.
"하지만 분명히 XX병원이 맞는데."
중얼거리며 핸드폰을 든다.
"XX종합병원이라구요?"
"잘못 갔니?"
"아뇨 아무것도."
전화를 끊고는 멈춰 버린다. 사실 잘못 말한 것이었다. 종합병원과 그냥 일반 병원. 그 차이 별로 문제가 되진 않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니 괜히 시계를 본다.
새벽 4: 43분 50초
"손님, 잘못 오셨나?"
잠시 차 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피고 있던 택시기사 아저씨가 나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그런 것 같네요."
"뭐 어때요. 또 타면 되지. 어짜피 시간은 많으니까. 나도 당신도. 서비스로 조금 깍아주죠. 하하 둘 다 잘못한거니 괜찮죠?"
착각일까? 택시기사의 입 꼬리가 묘하게 올라간 것 같다.
"빨리 출발하죠."
나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깐만 기다리죠. 피던 담배는 다 피워야 하니까."
어째서일까. 왜 이렇게 화가 날까?"
"그냥 빨리 가죠."
"어짜피 몇 분 차이도 안나지 않습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한 1분이면 되는데. 에헤-- 깍아 준다니깐요."
무언가 머릿속에서 번개가 스쳤다. 난 그대로 기사의 담배를 빼앗아 그대로 바닥에 집어 던져 버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