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단편 게시판
"..."
기사의 굳어진 표정을 보며 소리친다
"닥치고 출발해. 나 시간이 없으니까."
"예.. 뭐 그러죠"
기사는 떫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택시는 그대로 다시금 방향을 돌린다. 물어보니 대략 또 30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나는 순식간에 1/24만큼의 인생을 소모해버렸다.
나의 행동 때문인지 택시는 너무나 조용했다. 하긴 나라도 그렇게 할것이다. 몰아주는것만 해도 사실은 감지덕지인 상황이었다. 무언가 말을 걸고 싶지만 말 걸기가 참 힘들다. 망설이는 사이 택시는 도착해 버렸다.
"다 왔습니다."
"네. 저 죄송합니다."
"전혀요. 괜찮습니다. 급한 일이 있으신가 본데 제가 잘못했죠 뭐 허허"
"감사합니다. 이렇게라도 사과안하면 평생 못할 것 같아서요."
괜시리 눈이 붉어진다.
택시를 떠나보내고 시계를 다시금 본다.
5: 25분 22초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도착했지만 동생은 볼 수 없었다. 이미 수술중이란다. 10시간은 넘게 걸리는 수술이란다. 참관조차 할수 없단다.
"기다릴꺼니 시현아?"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시던 어머니가 수술실 앞 의자에 앉기를 권유하신다. 자판기 커피의 온기를 느끼려 하시는 건지 동생 녀석의 온기를 느끼려 하시는 건지 두 손으로 꼭 잡고 계셨다.
"아뇨. 됐어요."
어머니의 말을 거절한 뒤 병원을 빠져 나오며 시계를 다시 본다.
오전 6: 15분 32초
나의 남은 목숨은 15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뭘 해야 할까.
병원 앞의 조그마한 벤치에 앉아 중얼거린다.
10여시간.
뭘 해야 할까? 애초에 생각을 해보지 않은 문제였기에 혼란 그 자체였다. 무료하게 보냈던 나날들이 조금씩 떠올랐다. 천천히 생각 없이 병원 아래로 내려간다. 서점이 보인다. 꽤 규모가 큰 듯 사람으로 북적거린다.
짤랑짤랑--
"어서오세요~"
깨끗하게 보이는 정장을 입은 청년이 깍듯이 인사를 한다.
나는 잠시 책을 둘러보다가 묻는다.
"책이 한권 필요 한데요."
"어떤 책 말씀이신지?"
"죽기 전에 해야 할 그런 것 있잖아요."
"그런책이라면 C열 인데 뭐 제가 안내해 드리죠. 시간도 남으니"
뒷말을 살짝 말하며, 머리를 긁적이며 사내가 천천히 나를 안내한다.
"그나저나 뭐 하러 그런 책을 찾으십니까?"
안내하던 도중 그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런 아침 이런책을 찾는 사람에게 궁금증이 생기나 보다.
"글쎄요. 조금 의미를 찾고 싶어서요. 늦었지만."
"의미라."
사내는 고개만 끄덕인다.
"그런 의미라면 굳이 책을 안 찾으셔도 될 것 같은데."
C열 앞에 도착한 청년은 그렇게 말했다.
"어째서죠?"
"뭐 그런 말 있잖습니까. 그 백번 보는 것 보다 한번 해 보는게 낫다."
"하아--?"
"아니 그.. 러니까. 책을 보기 전에 인생을 먼저 되짚어 보라. 그 말이죠 하하."
"그렇군요."
하지만 내손엔 이미 죽기 전에 해보아야 할 100가지 책이 들려있다.
"뭐 그냥 제 생각입니다. 게다가 책은 팔아야 하니 이런말 한거 걸리면 점장님이 또 쓸데없는 말한다고 할 게 뻔 하니까요."
청년은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뒷말은 잘 안 들린 셈 치기로 했다.
슬며시 책을 내려놓는다.
[삶에 대한 고찰]
어쩌면 후회가 되어버릴지도 모르겠지만. 천천히 다시금 왔던 길로 돌아 나간다. 뒤쪽에서 따스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책은 아쉽게도 내려 놓았지만 무언가를 얻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은 맑은 날이다.
해가 참 밝다.
병원 앞 해 잘 드는 자리에 크게 대자로 뻗어 버린다.
시간은 11시를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밥 먹어야 하는데. 생각해보니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먹긴 해야 하는데 별로 끌리지 않았다.
그냥 팔 베게를 하고는 누워 버렸다.
아주 어렸을 때였다.
난 너무 일찍 알아 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시현이는 천재야."
"못하는게 없다니까요."
"공부도 운동도 그림도 음악도."
모든 것이 시시했다.
모든 것을 알았다. 모르는 것? 그런 건 없었다. 모든 것은 유치하고 별 볼일 없었다.
굉장히 어린 나이에 난 대학까지 졸업해버렸다. 신문에도 몇 번씩이나 나왔다.
돈, 명예, 권력
사람들은 이것들을 추구하며 산다고
하지만 말이다. 난 욕심이 없었기도 그리고 있을 만큼 있기도 했다. 작은 기업이지만 사장인 아버지에 의해 확정된 미래, 그리고 나 자신의 능력
나에게 부족한건 없었다.
단 한 가지도
어린 내 이성은 너무나 쉽사리 그렇게 판단해 버린 지도 모르겠다. 시시하다고 무료하다고
그 판단 때문에
난 열심히 살기를 포기해버렸다. 하지만 말이다. 죽음을 선언 받았을 때 본 내 깨끗한 핸드폰 주소록은 그것이 아니라 말해 주었다.
[관계]
어쩌면 삶이란. [연결]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 라는건. 모든 것을 제하고 나 라는건 없다. 누군가의 아들 누구의 친구 누구의 애인 이런 뭐든 관계를 제하고 남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니까.
재혼한 어머니가 하루는 동생을 데려왔다
막 중학교에 입학한 그 녀석은 나에게 엉겨 붙었다. 가뜩이나 관계 때문에 껄끄러웠는데
"형!! 형 이 문제 어떻게 풀어?"
"형 아니라니까."
상당히 짜증을 유발하는 녀석이었다. 대충 이차 방정식. 냉큼 답을 찌익-- 갈겨 써버린다.
"우와~~~"
"전혀 놀랄 일 아니거든."
"하지만 굉장한 걸 문제도 안보고 풀어내다니."
"문제를 안보고 어떻게 푸냐?"
어의가 없어서 동생을 빤히 쳐다본다.
"그렇게 쳐다봐주면 안돼. 응 형?"
뭐랄까 웃음이 참 매력적인 녀석이었다.
"형 아니라고 했지. 나머지는 어머니한테나 물어봐."
난 재빨리 고개를 돌려 버린다.
"하지만..."
게다가 툭-- 하면 울먹. 귀찮은 녀석이었다.
"하아.. 정말이지 어쩔 수 없네."
"헤헤. 역시 형이야."
"시현아 시현아?"
무언가가 나를 흔든다.
"시현아 이런대서 뭐하고 있니?"
"글쎄요. 뭐하고 있을까요?"
천천히 일어나 정신을 차린다. 햇빛은 많이 가라앉아 있다. 잠깐 잠든 줄 알았는데 그게 또 아니었나 보다. 보기 싫긴 하지만 시계를 한번 본다.
착각이 아니라면 오후 6: 30분 24초
오류가 아니라면 착각이 아니라면 내 목숨은 3시간 30분 남아있었다. 무언가 배경도 달라져 있었다. 누운 건 병원 앞이었는데 일
어나보니 병원의 안 간병인실이었다.
"시현아 동생 수술 끝났는데."
"잠깐만요. 정리 좀 하구요. 금방 올께요."
천천히 택시를 잡는다. 동생은 보기 그랬다. 봐도 내가 할 말 없었으니까. 괜히 다른 감정이 생겨버릴까봐. 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어짜피 죽음은 확정이었다. 틀을 바꿀 수 없다면 끝은 마무리 지어야 했다. 깔끔하게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게. 물론 내가 죽는다면이라는 전제가 깔려있겠지만. 지금까지 온 이상 맞는 말일 것이다. 내가 어떻게 죽던지. 깨끗하게.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도록.
집에 도착한 나는 천천히 짐을 싸기 시작한다.
책상 위의 잡스러운 것들을 모두 치워 버리고 큰 박스를 구해와서는 차곡차곡 정리해 둔다. 다 정리된 박스는 봉인하고 매직으로 크게 내용물을 써둔다.
[책, 부모님 사진, 어릴적 일기장]
이런식으로
대략 1시간 모든 것은 정리가 되었다. 조금 서두르려고 해서 그런지 식은땀이 흐른다. 시계는 8 : 20분 32초를 지나고 있었다.
키득-- 살짝 웃음이 지어진다.
마지막으로 펜과 종이를 꺼내 갈겨쓴다.
[안녕히]
너무 짧은걸까?
하지만 할 말은 없었다. 내 잘못이었다. 너무 헛되이 살았기에 내 주위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면 어제 나에게 말했던 그 여자가 한 말이 어쩌면 내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저리를 마치고는 문을 닫는다.
쿵! 하는 소리가 너무나도 크게 들린다. 흔히 말하는 세계와 나의 단절. 그런 느낌이었다.
잠그지는 않는다.
필요 없으니까.
다시금 병원에 도착한다.
아쉽게도 이미 면회 시간은 지나있었다 겨우겨우 사정해서 먼 발치에서 동생을 보아야 했다. 하긴 의식 불명인 동생을 보았더라도 할 말은 없었겠지만. 차라리 잘 된 것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조금은 여유롭게.
비록 나에게 시간은 없지만
9 : 52분 15초
7분정도 남았다. 병원 앞에 놓여져 있던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잔 뺀다. 밀크와 블랙 조금 망설이다가 밀크를 누른다. 이거 뭐 속는 것 같긴 하지만. 멍-- 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내려 본다. 이런 생각이 든다. 나에게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나도 저렇게 움직이고 있을까? 무리였다.
어제까지의 나라면.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진다면.
가능 할지도.
9 : 57분 26초
앞으로 2분 정도 남았다.
착각이 아니라면 어제 보았던 연보라빛 차도르의 여자가 나에게 다가온다.
"이시현씨?"
"..."
어느세 다가온 여자는 내 옆에 허락도 없이 앉았다. 그리고는 어제 보았던 예의 시계를 꺼내 본다.
"1분 정도 남았군요."
"그렇게 됐나?"
"조금은 여유 있어 보이네요."
"너도 한번 이 상황 가봐."
"저 같으면... 그래 저 옥상에서 뛰어 내리겠어요 헤."
여자는 웃으며 병원의 옥상을 가리킨다.
"하... 웃기시네. 스스로 목숨을 잃고 싶지는 않거든."
"뭐 어때요? 마음의 준비는 된건가요?"
"뭐 대충. 후회뿐이긴 하지만."
여자는 말없이 시계만을 들여다 본다. 아무래도 시간 다 되었나 보다.
"하고 싶은 말 없나요?"
여자는 품속에서 자그마한 수첩을 하나 꺼냈다.
"돌아볼 기회를 줘서 고맙다."
9 : 59분 55초
나는 눈을 감아 버린다.
5
4
3
2
1
“아 잠깐!! 어떻게 죽는다는거지?”
0
차칵! 작은 소리와 함께
10시 정각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