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단편 게시판
5.
예나의 반에는 반 아이들에게 늘 무시당하는 여자애가 한명 있었다. 소위 왕따라고 불리는 애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그래왔는 듯, 주도적으로 괴롭히는 애가 셋 있었다. 그 세명이 주도해서 괴롭히기 시작하자 곧 반 전체가 그 애를 무시했다. 아니 무시라는 말 이상이었다. 새학기가 시작한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 완전히 그 여자애는 왕따로 자리잡았다.
「야, 왕따! 가서 수학책 빌려와.」
주동자 중 우두머리격인 A의 말에 왕따는 아무런 저항없이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A의 그룹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어차피 빌리지 못할건데 괜찮아?」
「못 빌리면 지 책이라도 내놔야지.」
그런 식이었다. 왕따는 다른 반에도 소문이 퍼져 아무도 책을 빌려주지 않았고, 결국 자신의 책을 내놓아야 했다. 그리고 왕따는 그 책을 가지고오지 않은 탓에 그 시간 내내 벌을 섰다. 하루는 그런 날도 있었다.
「야 왕따. 옷 벗어봐.」
A의 요구에 왕따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춘추복 조끼를 벗었다. 하지만 A가 바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더 벗어.」반 아이들은 또 무슨 재미난 거리인지 시선이 집중되었다. 왕따는 블라우스에 매여져있는 타이를 벗었다.
「장난해? 다 벗으라고.」
왕따는 잠시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블라우스의 단추마저 풀기 시작했다. A의 웃음에 반 아이들도 웃기 시작했다. 「저것봐. 진짜 벗어.」「꺄아! 더러워!」「평소에도 자주 벗는거 아냐?」이런 저런 말이 오갔다. 아무리 여학교이고 체육시간마저 옷을 갈아입긴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왕따는 결국 블라우스마저 모조리 벗었다. 손으로 몸을 가리긴 했지만 그것은 벗은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아니었다. 잔뜩 멍이 든 살이 부끄러운 것이었다. A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왕따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살이 벗겨진 개라도 본 듯.
「더러워.」
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사소한 사건에 불과했다. 저항이라도 하면 괴롭힘이 잦아들겠지만, 왕따의 문제점은 전혀 저항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물론 무서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과는 좀 다른, 마치 저항이라는 것 자체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왕따는 저항을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괴롭힘은 점점 도를 지나칠 정도로 심해졌다. 하지만 더 이상한 점은 괴롭힘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왕따의 표정이 점점 밝아져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 마치 그것이 기쁨인 양.
그리고 그 모습이 맘에 들지 않은 듯 A의 괴롭힘은 비례적으로 심해졌다. 그러다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날도 A는 왕따의 머리를 때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반쯤은 무료함에. 왕따는 그때도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게 마음에 안 든 A는 더욱 머리를 세게 때렸다. 왕따는 더 웃었다. 웃음소리가 들릴 정도로.
「히히」
소름이 돋을 만큼 기묘한 웃음이었다. A마저 때리던 손을 멈췄다.아마 순간적으로 왕따가 미쳤나.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다 더 화가 났는지 손바닥으로 짝! 소리가 나게 뺨을 후려쳤다.
「히히히」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웃지마, xx아!」
「히히히히」
짝! A가 더 세게 때렸다. 그러자 왕따의 입술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제야 반 아이들도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기 시작했다.
「히히히히」
「웃지 말라고!」
A는 이제 마구잡이로 때리기 시작했다. 짝! 짝! 계속된 소리에 아이들은 두려움 반 의아함 반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때리던 A도 힘에 부쳤는지 잠시 때리는 것을 멈췄다. 하지만 왕따만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x발, 왜 웃어!」
「무서우니까.」
왕따가 대답했다. A는 어이가 없었는지 「뭐?」라고 되물었다.
「웃으니까 내가 무서워?」
왕따가 말했다. A는 손을 높이 들었다. 그냥 이대로 죽여버리자 라는 심정으로. 하지만 왕따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난 네가 안무서워. 그러니까 나를 도와줘.」
어쩐지 A에게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왕따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친구가 될게. 너도 날 도와줘.」
「미쳤어? 뭐라 지껄여!」
A가 후려쳤다. 덕분에 왕따가 바닥을 뒹굴었다. 약간의 정적. 고개를 숙이고 있던 왕따가 고개를 들었을 때, 왕따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응? 넌 내 비밀친구니까.」
그런 모습에 완전히 질려버린 A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 때마침 「디리리- 디리리-」낡은 스피커를 통해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수업종이 울렸다. A는 두고보자는 듯 왕따를 노려봤지만 왕따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 툭툭 털고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에 반 아이들은 잠시 웅성거렸지만 곧 조용해졌다. A가 노려보았기에. 그날 하루, 아무도 왕따를 괴롭히지 않았다. A 역시 왕따를 괴롭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다음날.
‘A가 사라졌다.’
등교를 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반 아이들은 A가 사라졌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했다. 아니 A라는 존재가 있었는지 조차 몰랐다. 출석부에도,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아이도, A와 같이 왕따를 괴롭히던 B와 C까지도. 모두 A를 기억하지 못했다.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마치 존재 그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처럼. 그리고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그 다음날, B도 사라졌다.
누구도 B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C도 사라졌다.
누구도 C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게 왕따를 괴롭히던 세명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랬더니 왕따는 점차 밝아졌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왕따가 왕따였다는 사실마저 사라져버렸으니까. 그 세명이 괴롭힘을 주도했기에 그녀가 왕따가 되었다. 이제 그 세명이 사라져버렸기에 더 이상, 왕따는 왕따가 아니었다.
왕따는 반장이 되어있었다.
예나는 그날도 학생회 일때문에 하교가 늦어지게 되었다. 집으로 바로 돌아갈까 했다가 교실에 읽고 있던 책을 놓고 온 것을 깨달았다. 어두컴컴하고 한적한 밤의 교실은 아늑한 기분이 들 정도로 좋았다. 예나는 그 아늑함을 즐기며 반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어디선가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친구......」
「응? 아직 집에 안간 애가 있나?」
예나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맞아. 친구야. 넌 비밀친구야......」
귀를 기울이며 걸어갈 수록 사람의 목소리가 확실해졌다. 그리고 예나는 어쩐지 낯익은 목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히히히.」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예나의 반에서 들리고 있었다. 살금살금 걸어간 예나는 복도창으로 빼꼼히 안을 들여다 보았다. 한 사람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째서 너를 무서워 하는 걸까? 이렇게 조용하고 착한 애를 말야.」
‘누구지?’예나는 좀 더 귀를 기울였다. 그때, 다시 웃음소리가 들렸다.
「히히.」
묘하게 신경을 긁는 웃음소리였다. ‘아.’ 예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반장의 웃음소리였다. 목소리를 더 유심히 들어본 예나는 반장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혼자서 뭐하는 거지? 전화통화를 하고 있나? 별거 아닐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선뜩 교실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반장이 무언가 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두 손안에 들어올만큼 작지만 검고, 어둡고, 약간 둥근형태의. 그래, 마치 눈동자같은 모양인.
그 순간 반장의 얼굴이 스르륵 돌아갔다. 눈동자가 마주쳤다.
「내가 무서워?」
6
「어때?」
가시가 말했다. 그림자는 무서운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단지 이야기꾼만이 약간은 만족한 미소를 띄고 가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시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역시, 내 이야기가 제일 무섭지?」
「아. 그래. 확실히 소름이 돋았어.」
이야기꾼이 말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로 끝이 아니었다.
「약간의 얼룩이 있지만 말이야.」
그 말에 가시가 의아하게 되물었다.
「이상한 점은 몇가지, 아니 수십가지나 있지만 먼저 한가지만 들어볼게. 왕따에 의해 사라져버린 아이들 말이야. 모두가 알지 못하게 사라져버렸다고 했는데.」
이야기꾼은 작게 미소지었다.
「어째서 너는 기억하고 있는거지?」
가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야기꾼은 계속 이야기했다.
「그래. 만약 너만은 기억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너희 반 아이들이 왕따를 괴롭히고 있을 때 넌 무엇을 하고 있었지?」
가시는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이야기에서 관찰자니, 주인공이니 하는 말이 있지. 시점이니 어쩌니 하는 진부하고 어처구니 없는 문학용어 말이야. 하지만 관찰자와 주인공은 나눠지지 않지, 그게 네가 겪은 이야기였다면. 넌 주인공이자 관찰자였던 거야. 그래. 그렇다면 넌 정확히 이야기 한셈이야. 처음에는 관찰자였다가 나중에는 이야기 속에 확실히 들어가게 되니까. 하지만 만약에 처음부터 네가 이야기속에 있었다면?」
「그만해.」
그림자가 말했다. 가시를 대변하듯이. 하지만 이야기꾼은 이야기를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야기는 멈출 수 없는 것이니까.
「확실하겠지. 넌 처음부터 이야기 속에 있었던 거야. 그 왕따이야기 속에 말이야. 한가지 질문을 할게.」
이야기꾼은 달빛 속에서 더욱 빛나는 눈동자로.
「그녀가 들고 있던 건 무엇이었어?」
가시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상자였어. 자그마한 보석함같은 모양의-」
「-거짓말쟁이.」
「......어째서?」
이야기꾼은 고개를 기울였다.
「상자라는 건. 사람들을 사라지게 하는 상자 라는 이야기의 변용인거야? 동화 말이야. 결국엔 모두 사라져버리는 그런 이야기였었지. 순간적으로 그걸 떠올리다니 똑똑해. 하지만 이야기에 이미 힌트를 그렇게나 뿌려놓고 이제와서 상자라니. 마지막에 교실에서 본 것은 상자가 아냐. 사람이었지.」
「무슨 소리야.」
「짧은 이야기속에 몇겹이나 되는 거짓이 덧씌워져서 이야기가 완전히 바뀌어버렸어. 내가 소름이 돋았다는 것은 그것을 말하는 거야. 너의 켜켜히 쌓인 거짓말들 말이야. 그 거짓말을 파헤치기 위해선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겠어. 한가지 질문을 할게.」
심장을 꿰뚫을 듯 날카로운 목소리로.
「너 3년 내내 반장이지 않았어?」
가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야기꾼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손바닥을 짝! 하고 쳤다. 그 소리에 가시가 몸을 움찔했다.
「완벽하고 재미난 이야기는 이런 거지. 넌 그 여자애들을 사라지게 만들어 버린거야. A도 B도 C도, 모두. 사라지게 만들어 버렸어. 뭐 어떻게 했는지는 나도 몰라. 어쩌면 이 이야기 자체가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이 이야기상에서 넌 그 여자애를 사라지게 한 왕따야.」
「왕따가 아냐!」
가시가 소리쳤다.
「아냐. 맞아.」
「아니라구!」
「.......뭐 인정하든 말든 상관없어. 그건 중요한게 아니니까. 내가 궁금한 건 이거야. 도대체 마지막에 교실에서 봤던 그 여자애는 누구지? 그 여자애는 왕따가 아니었어. 그리고 그 여자애는 혼자서 이야기하고 있었던 게 아니야. 너와 이야기하고 있었지. 도무지 이건 풀수 없는 수수께끼야.」
「그만해.」
그림자가 말했다. 가시는 그 말에 움찔했다. 하지만 이야기꾼은 재촉했다.
「말해줘.」
이야기꾼의 말에 예나는 금방이라도 화를 낼듯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그 주먹은 목적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떨궈졌다. 그녀의 고개도 같이 떨궈졌다.
「말해줘.」
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말했다.
「마,말할 수 없어. 내 비밀 친구인걸.」
「저항하지 않는 소녀의 유일한 저항인거야?」
이야기꾼의 말에 결국 가시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흐흑, 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야기꾼은 그 울음소리에 안쓰러운 듯 말했다.
「널 탓하진 않아. 하지만 난 알아야겠어. 이 이야기의 진실을.」
「흐흐흑」
「왜 말하지 않는 거야? 설마.」
이야기꾼은 입을 동그랗게 말았다. 놀랍다는 듯.
「그녀가 무서운 거야?」
그러자 그 순간.
「히히」
하는 짧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7.
「단 둘 뿐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긴 하지만, 어쨌든 돌릴게. 이걸 돌려서 나오는 사람이 이야기꾼이야」
아라는 커터칼을 돌렸다. 빙글빙글. 칼끝이 달빛에 반짝였다. 꽤 오랫동안 돌아간 커터칼은 속력이 줄어들더니 곧 멈췄다. 그 칼끝에는 그림자가 있었다.
「......어쩌지. 난 무서운 이야기 잘 모르는데.」
「규칙은 규칙이야.」
「그럼 대신 내 이야기 말고 내 친구 이야기해도 돼?」
「음. 뭐, 네 친구 얘기도 네 이야기나 마찬가지겠지. 괜찮아. 해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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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이 단편은 약간의 호러 지향이긴 한데...
무섭지 않다는게 호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