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한 소녀가 있었다. 아니 이건 이야기의 초반이니까 아직 소녀라고 불리기 어려울 나이였다. 이름은 음, 그래. 그냥 가막이라고 부르는게 좋겠다. 가막을 키운 것은 늙은 할머니였다. 하지만 그 할머니는 늘 말했다.

 

「난 니 할미가 아니여.」

 

가막은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할머니 말고도 가끔 가막을 찾아오는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가막에게 인형도 선물하고 머리도 감겨주고 머리를 땋아주기도 했다. 궁금해진 가막이 물었다. 하지만 그 여자 역시 이렇게 대답했다.

 

「난 네 엄마가 아냐.」

 

가막은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막은 자신이 할머니도 엄마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밥도 꼬박꼬박 잘 먹을 수 있었고, 애정도 받았다.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단지 가막이 호기심이 너무 많은 아이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자라갈수록 가막은 궁금해했다. 모든것이 늘 궁금했다. 그럴 때 할머니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늘에 별이 된 남매의 이야기나, 호랑이에게 물려갈뻔한 효자이야기. 등등.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지만 호기심은 충족되지 않았다. 더 궁금해졌다. 특히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이것이었다.

 

「세상은 어떻게 생겼어?」

 

그랬다. 가막은 한번도 세상을 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가 아닌 할머니와 엄마가 아닌 엄마는 가막에게 눈에 병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가막은 눈에 붕대같은 것을 감싸고 있었다.

 

「만약 붕대를 풀게 되면 모든 기억이 사라져버릴거야.」

 

태어날때부터 눈을 가리고 있었기에, 가막은 아무것도 본적이 없었다. 그런 가막에게 세상은 냄새와 소리, 그리고 아픔과 두려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불에선 따스한 우유같은 냄새가 났고, 아침의 공기엔 약한 오렌지향이 났다. 집안에는 오래된 물냄새가 났고, 자신의 손에선 짙은 풀냄새가 났다. 가막은 그 냄새들을 기억했다. 그래서 냄새로도 어느정도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밥때가 되었을 때 밥과 반찬을 골라 먹을 수 있는 것도 다 이 덕분이었다. 소리는 그것을 도와주었다. 수많은 소리로 세상은 가득차있었다. 밤이면 앵앵- 울리는 풀벌레소리와 별이 하늘에서 빛나는 소리가 들렸고, 낮이면 사람들의 재잘거리는 말소리와 우웅- 하는 차소리가 들려왔다. 재미있었다.

 

「세상은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들이 가막이 여기저기에 부딪히는 것을 막지 못했다. 평소와 물건의 위치가 조금만 달라져도 부딪히기 일쑤였다. 하루에 다섯번이상 부딪히는 날도 있었고, 아예 부딪히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런날은 행운이 좋은 날이었다. 하지만 부딪힘이 잦아질수록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움직이기전의 두려움.

 

어쩌면 딱 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앞에 날카로운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약간이라도 움직이면 살이 찢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가막은 가끔 상상했다. 수많은 칼날들이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고, 자신이 움직일때마다 그 칼날이 움직이는 상상을.

 

그래도 나름 행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가막이 정말 소녀라고 불릴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그녀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할머니가 아닌 할머니의 소리가 사라졌다. 가막은 조금 당황했지만 늘 그렇듯 다시 소리가 들려오리라 믿었다. 소리는 들려오지 않아도 냄새는 맡아졌기에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낮이 밤이되고, 밤이 낮이 되도록,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할머니.」

 

가막은 조심스럽게 불렀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냄새만이 진하게 풍겨올 뿐이었다. 가막은 고민했다. 참아야 할까? 한번 더 불러볼까? 가막은 한번 더 불러보기로 했다.

 

「할머니.」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가막은 용기를 내어 계속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그때, 호기심이 일었다. 만약에 이 붕대를 풀어서 본다면? 가막은 본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있었다. 그랬기에 붕대를 풀어보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있었다. 궁금했다. 너무나 궁금했다. 한참을 고민한 가막은 결국 붕대를 풀기로 했다. 하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가막은 특정한 장소에서 풀기로 했다. 가막은 할머니의 냄새가 가장 진하게 나는 곳으로 갔다. 짙은 냄새가 풍겨왔다.

 

「볼게.」

 

누군가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짧은 말을 뱉었다. 다짐처럼. 그리고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9.

 

「잠깐. 그 이야기 재미없어.」

 

아라가 말했다. 그림자는 그 말에 어쩔 줄 몰라하며 말했다.

 

「그,그럼 어쩌지?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해?」

「그게 좋겠어. 다른 이야기가 있어?」

「응. 물론 내 이야기는 아니야.」

 

10.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굉장히 이야기를 좋아했다. 이미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읽었지만 더 재미난 이야기를 듣기를 원했다. 그렇지만 그 소녀에게는 한가지 병이 있었는데, 눈이 조금 이상했다. 그래서 그 소녀는 머리카락을 길게 길어서 눈의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만약에 사람들과 마주쳐도 이상하다는 점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 소녀는 초등학교를 조기졸업으로 마치고 중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소녀와 친구들은 근본적으로 뭔가 달랐기에 친해질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그냥 이상한 애 정도로 불렸지만 중학교가 되자 그것도 심해져서 왕따 비슷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소녀는 학교에 가지 않기로 했다.

 

별 문제는 없었다. 소녀는 똑똑했기에 순식간에 교육과정을 배워나갔다. 소녀를 가르치고 길러주신 스님은 소녀가 특별하다고 말했다. 스님은 소녀에게 수많은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이미 수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지만 스님은 더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특히 강림차사의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강림차사가 인간의 수명을 적은 것을 까마귀에게 인간세상에 전하라고 심부름을 보냈는데, 까마귀가 그것을 잃어버려 수명을 자기멋대로 알려줬다는 이야기.

 

또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까마귀가 효를 지키는 동물이라, 부모가 늙으면 먹이를 물어다준다고. 설령 부모가 죽어도 까마귀는 계속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했다. 그리고 까마귀의 한자인 오가 더러울 오 나쁠 오와 비슷한 음이라 까마귀가 흉조로 알려졌다는 이야기. 스님의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그래서 소녀는 아무도 모르게 자기를 까마귀라고 불렀다.

 

어느날 소녀는 그것을 스님에게만 말했다. 스님은 난감하다는 듯 대답했다.

 

「까마귀라니, 넌 까맣지 않은데?」

「헤에. 이렇게하면 까맣죠.」

 

소녀는 며칠전부터 짜고 있던 숄을 어깨에 둘렀다. 까만색의 숄은 끝에 매듭이 묶여있어 까마귀의 깃털처럼 보였다. 하지만 스님은 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겠니? 까마귀라도?」

「네? 무슨 말이에요?」

「아무것도 아니다.」

 

스님은 대화를 그만하고 싶다는 듯 들고 있던 목탁을 쳤다. 하지만 소녀는 대화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함을 빽 지르고 말았다.

 

「내가 무서워요?」

 

스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11.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잖아.」

 

아라가 말했다.

 

「걱정마. 이제부터 무서워 질거야.」

 

그림자가 대답했다.

 

12.

 

소녀에게는 친구가 있었다. 아주 우연히 만나게 된 친구였다. 친구는 늘 소녀에게 말했다.

 

「넌 꽤 재미있는 애야.」

 

소녀도 친구에게 말했다.

 

「넌 나에게 특별한 애야.」

 

둘은 공통점이 많았다. 물론 차이점도 많았지만 둘은 친구였기에 공통점을 찾는게 더 쉬웠다. 당연하겠지만 둘은 똑같은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둘 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지독한 근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은 손을 잡을 수 있는 거리가 되어야 겨우 상대방을 볼 수 있었다.

둘은 키도 거의 비슷했고 흰 피부색도 비슷했다. 그리고 얼굴 생김새도 닮았다. 눈 두개. 코 하나. 입 하나. 귀 두개. 얼굴의 구조가 똑같았다. 둘은 절친한 친구였다. 하지만 친구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소녀는 다니지 않았다. 그리고 친구의 부모님은 소녀를 싫어했다. 그래서 친구는 소녀와 몰래 만나게 되었다. 친구는 비밀친구가 되었다.

 

만약 누군가가 서로에 대해 묻게 되면

「기억이 안나요.」

라고 대답하기로 했다.

 

둘은 교실에서 몰래 만나 이야기회를 열었다. 한명이 이야기꾼이 되면 나머지는 까마귀가 되는 것이다.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하면 까마귀는 그 이야기를 재미있게 바꾸었다. 그러면 다시 이야기꾼이 그 이야기를 다르게 변용시키고, 까마귀는 지우고 삭제해서 깔끔하게 만들어냈다. 그 과정을 수십번 반복하다보면 누가 까마귀이고 누가 이야기꾼이었는지 헷갈렸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도 헷갈릴 지경이 되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어째서 까마귀인지는 몰랐지만 이야기회는 늘 재미났다.

 

하지만 둘은 결정적으로 다른게 있었다.

 

「넌 어째서 이야기를 어둡게만 만들어 가는 걸까?」

 

누군가가 말했다.

 

「넌 어째서 이야기를 밝게만 만들어 가는 걸까?」

 

누군가가 말했다.

 

그랬다. 한명은 이야기를 어둡게만 어둡게만 만들어갔고, 한명은 이야기를 밝게만 밝게만 만들었다. 그래서 이야기는 뒤죽박죽이 되어갔고, 결론을 맺기가 늘 애매했다. 둘 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했기 때문에 둘은 그 결론들이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완의 결론처럼. 그래서 상대방에게는 말하지 않고 서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지웠다. 마치 없었던 것처럼. 그래서 만들어진 결론에 대해서는 둘 다 만족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갈구가 있었다.

 

「좀 더 어두운 이야기를 해줘.」「좀 더 밝은 이야기를 해줘」

 

서로에게 요구만 하고 자신은 변하지 않았기에, 그것은 곧 갈등이 되었다. 처음에는 이야기만 삭제해버리면 그만이었지만, 갈수록 차라리 혼자였다면 더 재미나게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차라리 상대방이 없었다면 하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가지를 치고 꽃을 피우고 잎사귀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소녀는 친구를 지웠다.」

 

비오는 밤. 소녀는 친구를 지우고 혼자만의 이야기회를 열기 위해 교실로 찾아갔다. 까만 숄을 걸치고 비를 잔뜩 맞은 채로. 이야기꾼이면서 까마귀인 소녀는 홀로 교실에 앉아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입밖으로 내뱉었다.

 

「무서워.」

 

소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한번도 입밖으로 내 본적 없었지만 소녀의 인생은 두려움으로 항상 가득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소녀에게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것은.

 

「혼자인건 무서워.」

 

소녀는 생각을 입밖으로 말했다. 한번 말하니 오히려 말하기 쉬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로운 건 무서워.」

 

소녀는 생각했다. 어쩐지 먹먹한 기분이었다. 눈앞이 온통 뿌옇게 흐려졌다. 마치 붕대로 눈을 감싼것만 같았다. 뿌옇게 흐려진 시야 사이로 비가 내렸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네가 없으니 보이지 않아.」

 

소녀가 말했다.

 

「제발.」

 

13.

 

이야기꾼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림자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마치고는 살짝 미소지었다. 평소에는 잘 짓지 않던 표정이었다.

 

「어때?」

 

그림자의 질문에 이야기꾼은 더욱 잘근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분홍빛 입술이 빨갛게 물들었다. 이때가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정말 무서운 이야기지?」

「별로, 전혀 무섭지 않았어.」

 

이야기꾼이 말했다. 그 말에 그림자는 「히히」하고 웃었다. 한참 웃던 그림자가 말했다.

 

「거짓말쟁이.」

「거짓말이 아냐.」

「아니 거짓말이잖아. 정말 무서워하고 있으면서.」

「시끄러. 네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어.」

 

이야기꾼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 모습이 자뭇 사랑스러운 듯 그림자는 한참 동안이나 이야기꾼을 바라보았다. 아주 오래전 헤어진 친구를 본 것 같은 눈빛으로. 이야기꾼을 바라보던 그림자는 살짝 뽀루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이야기가 맘에 들지 않은거야? 이야기꾼.」

 

그림자의 물음에 이야기꾼 역시 심퉁맞게 대꾸했다.

 

「네 이야기는 너무 어두워. 까마귀.」

 

까마귀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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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다음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