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요!"

왕자비는 흐느끼며 울었다. 이제 결혼식을 올린지 불과 2달, 이제 막 신혼의 기쁨을 누리려던 찰나, 마족의 준동을 진압하러 나갔던 왕자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왕자비는 믿을 수 없었다. 그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일 것이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이를 보여주세요."

"돌아온 것은 왕자님의 머리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보실 수 없습니다. 제사약으로 살을 녹이고 뼈만 남긴 뒤에 꽃으로 치장하고 보실 수 있습니다."

"말도 안돼요! 시신을 훼손해서는 천국에 갈 수 없어요! 몸을 찾아주세요."

수호기사인 바랏드는 왕자비를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국의 종교를 가진 이국 출신의 왕자비는 이 나라의 풍습을 아직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자세히 설명해 주기도 쉬운 노릇이 아니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자에게 그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테니까.


"왕가의 전통입니다. 비전하. 진정하시고 처소에서 머물러 주시옵소서."

"이럴 수는 없어요. 이건 말도 안돼요."

왕자비는 참던 울음을 터뜨리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혼절하다시피 쓰러진 왕자비를 시녀들이 데려다가 침대에 눕혔다.



"여기는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왕자비는 소스라치게 놀라 깼다.

"왕자님?"

"오.. 내 목소리가 들리는가? 여긴 어디지?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왕자님, 왕자님. 살아계시는 건가요?"

"나를 구해줘. 제발. 그들이 날 죽이려 해!"

왕자의 목소리엔 공포와 분노가 섞여 있었다. 왕자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해드릴께요. 어떻게 해서든지요."



꿈이라기엔 너무나도 생생했다. 왕자비가 눈을 뜨자 침소 곁에 서 있는 시녀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이름은 아필라였다. 착하고 상냥한 키가 작은 시녀였다.

"비전하. 정신이 드시옵니까."

"아필라. 꿈을 꾸었어."

"무슨 꿈이옵니까."

"왕자전하를 뵈어야 겠어. 나를 좀 도와줘."

아필라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 불쌍한 왕자비를 위해선 뭐든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녀는 장례의 준비를 맡은 오래된 근위병들과 시녀들에게 접근해 왕자의 시신이 안치된 장소를 알아내었다.

그리고는 왕자비가 건네준 보석으로 그 앞을 지키는 근위병들을 매수하였다.


사실 그 근위병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몰랐던 것이다. 알았다면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그것을 허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수호기사만큼의 지식만 있었더라도 함부로 외인을 들이지는 않았으리라.


"아필라. 이리로 와."

"비전하. 이것은 너무 위험하옵니다."

"알고 있어. 하지만 마지막으로 왕자전하의 얼굴을 보고 싶어. 그들은 약으로 시신의 살을 다 녹여버릴 거래. 해골로 만들어 납골당에 안치하겠다는거야. 이건 너무해. 나는 아내야. 신의 이름으로 그이의 얼굴을 볼 권리가 있어."

아필라는 그 신의 통치가 이 나라에는 미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을 꼭 다물었다.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범위는 이미 넘어섰으니까.


마침내 그들은 비단보에 왕가의 문장이 그려진 휘장아래 새로 단장된 석관앞에 섰다.

미리 매수된 근위병들은 잠시 자리를 피해주었다.

왕자비와 시녀 아필라는 석관의 뚜껑을 비틀어 열었다. 끼긱거리는 소리와 함께 석관이 열리고 그 안에 하얀 천에 감긴 무엇인가가 보였다.


"아아 왕자님."

왕자비는 눈물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석관에 손을 집어넣어 그 천 아래 있는 것을 집어들었다.

그것은 끔찍한 얼굴이었다.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혀를 길게 빼어 핏자국이 그대로 어린 흉악한 얼굴이었다.

평소의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 흉칙했다. 왕자비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필라는 입 밖으로 나오는 비명을 간신히 틀어막을 수 있었다.


"돌아가자."

"아니되옵니다. 왕자비님, 장례를 치르려면 머리가 꼭 있어야 하옵니다."

머리를 꼭 안은 채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움켜쥔 왕자비를 보고 아필라가 만류했다. 이 뒷일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이가 말하고 있어. 몸을 찾아달래. 여기 바로 앞에 있다는 거야."

"아니옵니다. 몸통은 마족에게 잡아먹혀 남아있지...."

아필라는 황급히 입을 닫았지만 이미 새어나온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넌 몰라."

왕자비는 소중하게 머리를 안고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밖에는 근위병 둘이 잡담을 하며 떠들고 있었다. 그들은 왕자비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비전하. 그 손에 들고 계신 것이 무엇입니까?"

"설....마."

그들의 다음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왕자비의 손에 들린 머리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근위병들은 무엇엔가 사로잡힌 듯 꼼짝하지 못했다.

왕자비는 근위병의 옆구리에서 칼을 뽑아들더니 무엇엔가 흘린 듯 한 근위병의 심장에 찔러 넣었다.

그 근위병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다른 한명은 얼굴에 핏발을 세우며 그 칼을 피하려 했지만 피하지 못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근위병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왕자비는 칼을 들고 근위병의 목을 내리쳤다. 검술을 배우지 않은 여자의 힘으로 한번에 목을 벨 수 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깨끗하게 목이 잘려나갔다.

피가 샘솟듯 뿜어져 나왔다. 왕자비는 급히 왕자의 목을 들어 그 근위병의 몸통 위에 올려 놓았다.

피가 샘물처럼 뿜어져 나왔지만 점차 그 핏줄기는 약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왕자의 머리가 눈을 떴다. 핏발선 눈은 주위를 탐욕스럽게 둘러보더니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손에 칼을 쥐더니 멀리 숲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 왕자님?"

문득 정신을 차린 왕자비가 본 것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자신의 옷과 아직도 뜨거운 피를 흘리고 있는 근위병의 시신이었다.

아필라는 구석에 웅크리고 벌벌 떨고 있었다.

수호기사가 변고를 눈치채고 수하들과 달려온 것은 교대자들이 이 참극을 발견한 뒤의 일이었다.


"대체 무슨 일을 하신 건지 아십니까."

수호기사가 왕자비에게 물었다. 자신의 방에 수감되어 있던 왕자비의 안색이 초췌했다.

"난 단지 그이의 얼굴을 보러 갔을 뿐이에요. 그리곤 기억이 나지 않아요."

"이 나라에선 왕족이 죽으면 그 살을 발라내고 제사액으로 남은 살을 녹여 뼈만을 안치합니다. 그건 다 이유가 있지요. 비전하가 오신 아모드 왕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삼면이 마족과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마족과의 전쟁은 일상이죠. 그러기에 우리의 왕족은 자신의 육체에 특별한 금제를 가합니다. 그 댓가로 마족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힘을 얻죠. 바로 그 금제때문에 시신을 그냥 둘 수 없는 것입니다."

"듣고 싶지 않아요."

"아니 들으셔야 합니다. 이 나라의 왕족은 죽으면 모두 언데드가 됩니다. 마족의 피를 마시기 때문이죠. 살아 있을땐 왕족의 혈통에 흐르는 성스러운 피가 그것을 막아줍니다. 하지만 피가 식으면 바로 그 피가 발동해 마족이 되어 버립니다. 이 나라의 왕족은 항상 수호기사를 둡니다. 그들의 임무는 왕족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만약 왕족이 죽을 경우 그 마지막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저 역시 왕자님의 수호기사로서 그 임무를 다했습니다. 언데드로 변하기 전 그의 목을 쳤죠. 사체는 성스러운 불로 태워버렸습니다. 하지만 그의 목이 되살아날 줄은 몰랐군요. 왕자비께서 그를 언데드로 되살려낸 겁니다. 저는 저의 임무를 마무리 해야 할 것 같군요. 왕자님을 찾아 그의 목까지 성스러운 불로 태워버릴 겁니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요? 내가 영광스런 왕족이 아닌 마족의 피가 섞인 더러운 자의 아내란 말인가요?"

"믿든 믿지 않든 이제 상관 없습니다. 비전하는 이제 평생 이 방 밖으로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습니다."

"뭐라고요! 우리 나라가 가만히 있을 것 같은가요!"

"왕자전하와 왕자비 전하는 마족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두분은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실종되신 거죠. 이 나라에선 흔한 일입니다."

"안돼! 그럴 순 없어!"

왕자비는 뒤돌아 나가는 수호기사를 붙잡으려는 듯 손을 움켜쥐었지만 그녀의 발에 걸린 쇠사슬이 그녀를 붙잡았다.

쇠사슬과 깔개가 없는 돌바닥의 차가운 촉감이 왕자비를 옭아매었다.

그녀는 서글프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방을 멀리 창문 너머에서 왕족들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면서.


profile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