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난데없이 하늘에서 군인이 하나 떨어집니다. 그리고 또 한 명, 또 한 명씩 갑작스럽게 사람들이 떨어지고, 예기치 못한 만남에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점차 불안감이 맴돕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낯선 밀림인데, 희한한 건 이 사람들이 여기 어떻게 왔는지 도통 기억을 못한다는 겁니다. 척 봐도 출신이 제각각 다른지라 서로 자기 주장만 하느라 바쁜 와중에 그나마 통솔자가 생겨 현재 위치를 알아보러 떠납니다. 기이하게도 주변에 자라는 식물은 상당히 낯설고, 태양이 움직이지 않는 등 일반적인 물리 법칙이 적용되는 장소가 아닙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감이 안 잡히는 사람들은 일단 밀림이라도 빠져나가려고 하고, 숲을 벗어나자 그들은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아연실색하고 맙니다. 하지만 충격을 수습할 시간도 없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가 덮쳐 옵니다.

 

프레데터 시리즈로 따지자면 3번째 영화요, 에일리언 대결 시리즈까지 합치면 다섯 번째 영화입니다. 이번 작품은 그 중에서도 프레데터의 정통성 혹은 핵심을 잇는 적통임을 주장하는 듯합니다. 사실 그 동안 프레데터 영화들은 1편 이후에 더 나은 속편임을 증명하지 못했죠. 2편은 힘 있는 연출이 부족했고, <AvP>는 킬링 타임용에 지나지 않았으며, <AvP 레퀴엠>은 하나부터 열까지 욕을 엄청나게 들어먹었습니다. 이와 달리 이번 영화는 1편의 장점을 그대로 받아들여 다시 한 번 시리즈의 계보를 잇겠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제껏 만든 영상물들을 그냥 내버리지도 않습니다. 1편을 중심에 놓기는 하되 그간 촬영한 작품들을 한데 버무려 주변 설정을 깔아두죠. 그리고 그 와중에서 자신들만의 새로운 설정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조합은 꽤 성공적입니다. (한조의 칼부림만 뺀다면) 그저 팬필름을 보는 것처럼 피식 웃음이 나오는 부분은 없고, 전체적으로 시리즈의 역사를 잘 배치했습니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1편의 테두리를 못 벗어난다는 겁니다.

 

이 영화가 1편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는 구석이 많습니다. 일단 배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밀림이며, 자동화기로 무장한 소수가 외계의 적과 싸워서 생존해야 합니다. 음악 역시 알란 실버스트리가 1편에서 만들었던 걸 통째로 가져왔습니다. 잠깐씩 오리지널 음악도 깔아주긴 합니다만,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주로 쓰는 건 실버스트리의 곡입니다. 외계 사냥꾼과 싸우는 액션 역시 흡사한 구도를 이루며, 무기, 전략, 인원 구성까지 그대로 따온 것도 있습니다. 우주선 디자인 등도 잘 살펴보면, 그간의 외전이나 에일리언 대결 시리즈가 아니라 1편 것을 더 닮았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전쟁 영화로 시작해 바바리안 영화로 끝나는 듯한 구도를 잘 재현했다는 겁니다. 흔히들 프레데터 영화를 외계인 침략 영화로만 생각하는데, 이 작품의 진짜 힘은 인적이 없는 밀림에서 생존을 위해 원초적으로 치고 받는 데 있습니다. 웃통을 드러내고 밀림이 떠나가라 포효하는 더치 소령을 생각해 보세요. 새로 개봉한 이번 영화도 그 원초적인 야성을 되살리려고 노력합니다.

 

이 작품은 그 동안의 신작 프레데터 시리즈가 시도했던 전략을 빗겨 나갑니다. 프레데터가 사냥꾼이라는 점에 착안해 신작이 나오면 더 많은 무기, 더 많은 장비를 공개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입니다만, 중요한 건 무기나 장비 따위가 아닙니다. 최고 무기라던 디스크도 없고, 폭탄이나 플라즈마 피스톨도 없습니다. 그물이나 칼날이 잠깐 나오긴 하나 대부분 외계 사냥꾼은 어깨 포대와 칼 두 가지만 씁니다. 대신 이 영화는 새로운 인물이 새로운 사냥꾼들과 겨루는 긴장감에 초점을 맞춥니다. 프레데터가 크리쳐 영화임에도 그 동안 무기와 장비에만 치중한 것과 큰 차이를 두죠. 때문에 뭔가 그럴듯한 무기의 향연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확률이 높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노선이 더 마음에 들었지만요. 창을 비롯한 온갖 날붙이와 플라즈마 장비들을 쏟아 부어봤자 그저 물량 공세에만 그칠 뿐이죠. 진짜 사냥꾼의 힘은 그런 무기 따위에서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새로운 설정인 프레데터 하운드는 좀 애매합니다. 중요한 액션 연출을 이루면서도 어쩐지 작품과는 겉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작중 프레데터와 하운드의 관계가 제대로 나오지도 않고, 하운드가 나오는 장면은 그저 그런 괴물 영화와 다를 바 없습니다. 번쩍거리는 장비를 동원하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사냥꾼답기는 합니다만. 결과적으로 괴물이 달려들면 사람이 총 쏴서 죽이는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런 구도가 없었기에 프레데터란 괴물이 그토록 독특해질 수 있었던 것이니 제작진의 실수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고 하운드 자체가 대단한 크리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디자인이 위협적이긴 하나 그저 삐죽하게 생기기만 했을 뿐 끌리는 요소가 없습니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먼치킨마냥 수 십 명을 잡아죽이는 위압감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괴물을 좋아하는 관객도 있겠지만, 프레데터 영화에 넣기는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차라리 프레데터와 상관이 없는 괴물로 집어넣었으면 모르겠지만요.

 

그 동안 영화로 나왔던 프레데터 세계관 중 가장 큰 무대를 자랑합니다. 프레데터 세계에 더 많은 우주와 생명체가 있다는 걸 보여주죠. 프레데터가 우주를 떠도는 외계 사냥꾼이라고 해도 그 동안 영화에서 상대한 건 인간과 에일리언이 전부였죠. 우주선에 걸린 두개골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었으나 잠깐 지나가서 알아채기도 힘들었고요. 이번 영화는 그 동안의 설정을 모두 반영하는 김에 확실히 무대를 늘리기로 작정했습니다. 외계인에게 공격을 받는 게 인간만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물론 다채로운 크리쳐의 향연이 펼쳐지면 좋겠으나 그 정도까지 가진 않아요. 다만, 곳곳에서 부각하는 장면들이 세계관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주며, 일부는 관객의 상상에 맡겨 열린 결말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에일리언? 글쎄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내용 전개를 음미하느라 에일리언 찾아볼 새가 없었네요. 하지만 없어도 될 것 같습니다. 사냥꾼이 상대할 괴물은 그것 말고도 많으니까요.

 

인물 활용은 좀 아쉽습니다. 이들도 부대라고 한다면, 부대 구성은 참 좋습니다. 소총수, 저격수, 정찰병, 의무병, 중무장 골고루 잘 깔아놨네요. 출신이 다양한 만큼 성격, 사고, 인종도 다양하고.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병사들이 섞여있는데도 자기 색깔을 충분히 뽐내지 못했습니다. 몇몇 인물은 너무 일찍 사라지는 조연 같기도 했고요. 시나리오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 납득은 갑니다만. 특히 무장이 각기 다른데도 전술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던 게 참 안타까워요. 냅다 총만 갈겨서는 작금의 전쟁물 흐름을 못 따라갑니다. 대세는 분대 전술이죠. 소총수는 돌격을, 저격수는 지원과 견제를, 정찰병이 탐색을 맡아야 할 터인데,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무조건 들이댑니다. 군인이 없던 것도 아니고, 커다란 무장 조직에서 활동하던 인물이 네다섯은 되었는데도 누구 하나 분대 구성을 제안하지 않습니다.

 

뭐, 한편으로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자기 목숨 챙기기 바쁘긴 했죠. 마지막까지 서로를 믿지 못했으니 협동이 될 리가 없기도 하고. 분대 전술이란 게 분대원 각자가 특기를 발휘하고 서로 모자란 부분을 챙겨줘야 효율이 나는데, 이들은 워낙 굴러먹다 온 사람들이라 그게 안 됩니다. 그런 점을 보자면 공동의 적이 생겼다고 해서 금세 연합하지 않은 게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물이 꽤 많음에도 한 명마다 개성을 부여하고, 모자라지 않게 조명을 비춘 것은 칭찬할 점입니다. 등장인물이 많다 보면 다 챙기지 못해서 허둥대는 일이 많은데, 영화는 인물들은 안정감 있게, 한편으로는 긴장을 조성하면서 마지막까지 끌고 갑니다. 단, 야쿠자 출신 한조는 병풍 내지 공기에 가까운 캐릭터. 너무 가볍습니다. 이 인간은 그냥 카타나를 보여주고 싶어서 출현시킨 듯. 거기다 결국 중요한 일은 주인공 두어 명이 다 해먹습니다. 그 점은 뻔한 블록버스터의 한계를 못 벗어나죠.

 

중반에 우주선에서 나온 강간 대사는 도대체 왜 집어넣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 인물이 그만큼 쓰레기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살인보다 더 끔찍한 범죄라는 걸 고려하면, 그렇게 가벼운 농담으로 넣지 말아야 했습니다. 로드리게즈 영화에 인생 말아먹은 놈들이 나오는 거야 흔히 본 거지만, 굳이 거기서 그 대사를 했어야 했는지?

 

로드리게즈 영화에서 종종 나오는 인물 구도를 여기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인생 막바지에 다다른 군상들이 있는데, 더 큰 위험에 마주치고, 관객들은 어느 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죠. 그리고 이들은 지금껏 살아왔듯이 질펀한 액션을 펼칩니다. 좋은 비교 사례가 <황혼에서 새벽까지>입니다. 게코 형제는 한마디로 인간 쓰레기 같습니다. 특히, 어느 정도 이성이 있는 형 세스와 달리 동생 리치는 거의 사이코패스 수준. 하지만 이들이 술집에서 뱀파이어와 만나 싸우면, 어느 사이에 게코 형제가 범죄자라는 사실은 슬쩍 사라지죠. 그저 괴물과 맞서 싸우는 인간일 뿐. <프레데터스>에서 분대원들은 게코 형제에, 뱀파이어는 프레데터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상대 괴물이 괴물인 만큼 액션이 질펀하다기보다 화끈한 쪽에 속하지만요. 거기다 인간들도 대개 군인 혹은 용병 출신이기에 게코 형제들처럼 괴악한 무기로 상대하진 않습니다. (한조 빼고.)

 

• 캐스팅이 꽤 괜찮네요. 애드리언 브로디, 로렌스 피시번, 토퍼 그레이스 등. 그리고 그 외에도 어디서 봤다 싶은 조연들이 출현해주십니다. 대니 트레조는 이런 부류의 역할을 하도 많이 맡아서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다들 알지 싶기도.

 

• 전반적인 이야기 구성은 좋습니다. 인물간의 갈등, 점차 밝혀지는 미스터리, 각 인물들 간의 성격 차이 등 다 좋아요. 하지만 시나리오 자체가 좋다고 할 수는 없겠네요. 특히, 인간과 외계인이 서로 싸우는 영화임에도 액션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기에 종종 이야기 흐름이 축축 늘어집니다. 애초에 외계인과의 처참한 결투를 목적으로 하는 영화인데, 정작 싸우는 장면이 적어 곧잘 맥이 끊깁니다. 어떻게 보면 1편보다 프레데터와의 조우가 더 적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작 보고 싶은 프레데터는 잘 나오지도 않고, 말라 비틀어진 군상들이 서로 지지고 볶고 궁상을 떨고 앉아있으니 관객 입장에서는 하품이 나올 수밖에. 거기다 1편의 군인들은 상대를 잡기 위해 나름대로 함정도 파고, 진지도 구축하고, 작전도 짰는데, 이 영화의 인간들은 그것도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싸우려는 자세가 보이질 않아요. 프레데터와의 조우가 부족한 건 이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입니다.

 

액션 비중이 적은 것과 더불어 연출 자체가 쌍팔년도 영화랑 다를 게 없습니다. (<프레데터>가 개봉한 게 1987년이니까 진짜 쌍팔년도 영화 맞죠.) 도대체 이게 시각효과가 눈부시게 성장했다는 2000년대 영화라는 게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어디의 어느 감독은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크리쳐를 만드는데, 이 영화에서 사냥꾼들이 치고 받는 걸 보면 인형극을 보는 듯한 한숨이 나옵니다. 아직도 뻣뻣하고 어색한 슈트 액션만 고집하다 망하는 고지라 시리즈를 보는 기분이랄까요. 빛을 굴절하는 은폐 효과와 붉은 조준광선, 파충류를 연상키는 슈트 액션, 이런 거는 이미 옛날부터 지겹도록 써온 거잖아요. 뭔가 새로운 걸 보여주든가 아니면 액션의 비중이라도 늘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프레데터들이 제대로 나올 틈도 없이 비명횡사하면 오매불망 기다리는 관객은 뭐가 되나요. 거기다 이들은 초보도 아니고 나름대로 베테랑 사냥꾼들인데, 활약도 없이 골로 가는 걸 보면, 참. 아카데미를 노릴 듯한 시각효과까지 바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구닥다리 은폐 효과나 슈트 액션에 아직도 목을 매면 어쩌자는 건지.

 

한조가 카타나로 싸우는 걸 보면 뭐, 웃음밖에 안 나옵니다만. 이건 감독의 취향이니까 넘어가죠. 로드리게즈 영화라면 이런 거 한두 장면은 나와야 할 테니까. 다만, 가뜩이나 부족한 액션이 이것 때문에 헛짓이 되는 것 같아 애처롭기 짝이 없네요.

 

그럼에도 마지막 액션 장면에는 정신 없이 몰입해서 봤는데, 앞서 말했듯 1편 특유의 원초적인 감성을 잘 살려냈기 때문입니다. 이거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기분이네요. 그간 프레데터 시리즈에서 느껴보지 못한 야만적인 면모가 넘쳐 흐릅니다. 모든 영화가 이 마지막 대결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더군다나 배경이 우주선이나 인공 구조물이 아닌 야생 환경 그대로이기 때문에 사냥꾼의 야성이 배가 됩니다. 밀림에서 울려 퍼지는 포효를 듣노라면, 역시 프레데터는 밀림을 배경으로 해야 제맛입니다. 그 동안 도시로, 우주선으로, 피라미드로, 시골 촌구석으로 쏘다니느라 본 무대에 설 기회가 없었는데, 오래 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이에요. 사실 야성적인 사냥꾼이라면 도시나 우주선은 어울리지 않잖아요.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오지를 떠돌아야죠.

 

• 마지막까지 남았던 프레데터(별칭은 버서커.) 디자인이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파충류에 보다 가까워진 느낌? 이제까지 프레데터들이 갈색 점박이 위주였다면, 피부색이 울긋불긋합니다. 포효도 이전 프레데터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일부 프레데터, 가령 팔코너는 확실히 울음소리가 남들과 달라요. 이것도 개성이라면 개성인데, 별로 멋이 없다는 게 문제…. 무슨 감기 걸린 것도 아니고. 버서커는 밀림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울더니만.

 

• 결론을 내리자면, 액션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 어쩌면 2편이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이대로 감성을 유지하며 쌍팔년도 영화 찍지 말고 밀레니엄 영화를 찍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