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편 ]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은 곧 틀어지고 말았다.

5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 흐른 후였다.

- 키버릭 직접 통제 구역 진입. 하강을 시도합니다.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남자는 답지 않게 신경질 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의 계산대로라면 분명 이십 여분의 여유는 있을 터였다.

그런데 벌써 본부에 접근했다는 알림이 들려오니 기분이 안 좋을 만도 하였다.

그는 살짝 눈을 찌푸려 기체 내부 전방에 위치한 속도계를 확인해보았다.

은은한 초록색 글자로 ‘1333’이라고 적혀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남자는 손등으로 눈을 문지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초속 1333m분명 마하 2이하로 비행하라고 맞추어 놓았을 텐데

어떤 문제때문인지 속도제어기가 고장 난 것 같았다.

남자는 작게 반군 놈들나중에 보면 제 팔을 뜯어서 먹게 해야겠어.’라는 끔찍한 말을

마치 피곤한데 잠을 자야겠어.’같은 말투로 중얼거리고는 다시 머리를 젤 의자에 파묻었다.

하강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약 1분가량, 그동안만이라도 쉴 요량이었다.

그 자세로 십 여초 지났을까, 감질나게 누워있는 것보다는 그동안 무언가를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인지

남자는 몸을 일으키고는 비상용 반중력장 벨트 제어기를 눌러 몸을 자유롭게 풀었다.

비상용 제어기는 전자시스템이 오류가 나서 완전한 착륙이 이루어졌음에도 자동으로 벨트가 풀리지 않을 때나 사용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이런 짓을 많이 해본 듯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가벼운 짐을 정리할 뿐이었다.

- 착륙 완료. 차폐막을 개방합니다.

완전히 착륙이 이루어졌을 즈음엔 이미 남자는 모든 준비를 다 갖춘 후였다.

귀환. S123 섹터.”

그는 몸을 비행정에서 빼낸 후 뒤를 돌아 그렇게 말을 하고는 몸을 돌려 잿빛 잔해로 가득한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의 말이 끝나자 비행정은 다시 천천히 부상을 하더니 이내 점이 되어 사라졌다.

남자는 그 모습을 힐끗 쳐다보고는 서서히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간간히 옆에서 고압의 전류가 방전되는 듯 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으나 그는 옆 한번 쳐다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만 하였다.

그의 걸음걸이는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아온 듯 현대 예법에 맞게 흔들림이 없고 보폭이 일정했지만,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양 간간히 서두름이 배어나왔다.

-

남자는 기계처럼 놀리던 자신의 발을 멈추고는 앞만 바라보고 있던 자신의 시선을 천천히 위로 들어올렸다.

반구半球 형태의 투명한 돔이 남자가 선 곳을 기준으로 약 2~3km일대를 뒤덮고 있었다.

이 거대한 돔형 반구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볼거리라 할 수 있겠지만 이 반구의 정체가 사실은 요충지를 보호하는 목적으로 설계된

500만 볼트가 넘는 고압 에너지장막이라는 것을 안다면 누구나 그곳에서부터 50m는 멀찍이 떨어져 걸으리라.

에너지장막에 닿는 신체부위는 바로 잿빛 재가 되어 소멸된다는 것은 이 일대에 사는 대부분의 인구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 누가 이 남자처럼 거의 붙다시피 걸을 수 있을까싶었다.

걸음을 멈춘 그의 발 앞에는 거대한 톱니제어식 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 4~5명이 지나갈 수 있을 만한 작은 문이었지만 뭔지 모르게 주는 위압감이 풍겨와 쉽게 다가갈 수는 없을 듯하였다.

그는 아까 방전음의 주인이었던 엑자이어 ( Exire : 고압의 전류가 응집된 에너지볼이 응집최대한계치까지 확장되다가 터지는 순간

발생하는 초고압 전류. 태양의 폭발과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다. )를 무신경하게 바라보더니

사람하나가 겨우 설 듯 한 작은 발판 위에 올라섰다.

그러자 레이저 한줄기가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가더니 굳게 다물고 있던 문이 입을 서서히 벌리기 시작했다.

톱니제어식 문의 특징이기도 하였지만 확실히 이 문은 육중한 것 같았다.

언뜻 봐도 두께가 60cm는 넘어 보이는데다가 그토록 값비싼 뉴트론 코팅만 5cm는 되 보였다.

-

메인 톱니가 다 회전을 마쳤는지 육중한 타격음이 내부 가득 울리며 내부로 진입할 수 있는 출구를 드러내었다.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외관과는 달리 내부 인테리어는 꽤나 깔끔했다.

오히려 도가 지나칠 정도로.

어떤 방법을 쓴 것인지 타일이 아닌 통으로 된 대리석으로 벽과 바닥,

그리고 천장이 덮여 있고 하이그로스 코팅을 해놓아서 눈이 부실 듯한 빛을 바랬다.

이런 분위기는 보통 쉽게 경박해 보이는 것이 대부분인데,

여기는 직접 내치비추는 것이 아닌 카본 반사경을 통해 은은한 하얀빛이 좁은 복도 안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누가 디자인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하얀색과 광택을 좋아하는 사람 같아보였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얼룩 한 점만 묻어도 확 눈에 뛸 정도로 새하얀 곳임에도, 전혀 얼룩 따윈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냥 관리를 잘하는 정도로 이렇게 유지될 수 는 없었다.

보통 이렇게 완벽하게 깔끔한 무언가를 보면 사람들은 두 가지의 심리를 가지게 된다.

한 가지는 이 상태를 계속 보존하도록 하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철저히 그것을 망쳐버리려는 심리이다.

예술작품을 부수고 싶게 부추기는 다비드 신드롬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아무래도 밀란은 그 후자인 듯 했다.

지금 그의 발은 천천히 얼룩하나 없이 깨끗한 복도위로 가져가지고 있었다.

지금 밀란의 복장은 한눈에 봐도 누구든지 더럽다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신발 가득이 있는 잿빛 모래와 검붉은 얼룩이 잔뜩 묻은 옷.

게다가 씻지 않은 지 꽤 오래된 듯 온몸에는 비릿한 피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런 밀란이 지금 이 복도를 밟게 된다면 결과는 뻔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자신의 발자취를 복도 그득히 남기게 될게 분명하리라.

- 터벅터벅

하지만 결과는 그런 예상을 충분히 뒤엎고도 남았다.

밀란이 복도 위에서 보행을 하고 있는 중임에도 검은 얼룩 따위는 남지 않았다.

지문하나 묻은 것 없이 반들반들한 대리석 바닥은 여전 빛이 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의 발과 바닥 사이에 그림자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발과 바닥 사이에 어떤 물체가 발을 떠받들고 있다는 말이다.

육안으로 식별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하게 투명하며 얼룩이 묻지 않는 물질

그런 신비의 물질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옛날에 비하면 발전했다라 칭할만한 과학기술을 보유했지만, 과거 사람들의 상상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기술이었다.

특히 신물질 분야의 경우 진보는커녕 쇠퇴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인비지블 티타늄,

티론 외에는 외부 행성에서 채취한 금속이나 물질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런 실정에 가히 마법의 신물질이라 불릴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복도는 99.99% 순도의 인비지블 티타늄에 비가시광선을 고밀도로 응집한 것을 흘려보낸 것으로,

에너지장막에 의존하여 종횡운동을 반복하는 레일 로드를 응용한 것이었다.

가끔 띄는 빛의 왜곡을 보면 이 특이한 레일 로드 또한 그 이름에 맞게 꾸준히 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밀란도 그것쯤은 알고 있는 듯싶었지만 어쩐지 가만히 멈추어 복도 벽을 바라보고 있는 짓은 하지 않았다.

- 따각 따각

구두와 운동화를 반쯤 섞어놓은 듯한 독특한 외형의 신발이 투명한 금속에 맞부딪히며 시끄러운 소리를 자아냈다.

소리만 듣는 다면 21세기 말에 사라진 구두, 하이힐을 신고 걷는 여인의 발소리쯤으로 생각해버렸을 것이다.

- 쿵 쿵

복도 저 끝에서 누군가 또한 이 레일 로드를 이용하는 중인지, 빠르게 뛰는 듯한 소리가 들려져왔다.

그리고 소리의 진행 방향을 보아 이곳으로 다가오는 듯하였다.

그럼에도 밀란은 그저 묵묵히 걷기만 할 뿐이었다.

딱 보면 참 재미없는 남자쯤 으로 치부할 만큼 시종 같은 자세였다.

마치 감정의 기복이나 예외 같은 것은 모르는 사람처럼.

저 멀리서 검정색 점이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점은 점점 커지더니 이내 한 사람의 형상을 갖추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밀란을 보았는지, 무어라 외치고 있었다.

비켜, 비켜!”

……

-

전자서류를 왼쪽 겨드랑이에 낀 후 바쁘게 뛰어오던 어떤 남자는, 결국 자신의 말을 무시한 한 청년, 밀란과 몸을 부딪쳤다.

그리고 그 바람에 남자의 겨드랑이에 잘 끼워져 있던 서류는 저만치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밀란은 그런 상황에서도 사과조차, 안부조차 묻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갈 길만 갈 뿐이었다.

밀란의 그런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니면 그냥 누군가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만만해 보이는 청년에게 해소하려고 하는 심산인지,

남자는 몸을 돌려서 밀란의 어깨를 잡아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다.

너 뭐야? 부딪혔으면 사과를 해야지! 저 서류 당장 나한테 주워다 대령해. 빨리! 내가 누군 줄 알고건방지게 말이야.”

자신이 잘못을 한 것을 시인하려다가도 사과의 말이 도로 들어가게 만들 만한 거만한 말이었다.

이 정도 되면 누구라도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거나, 아니면 못 마땅한 듯 사과를 하고 주워다 주리라.

하지만 밀란의 그 다음 행동은 또한 예측 외였다.

상대하기도 귀찮다는 몸짓으로 몸을 돌려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발을 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잠시 당황하더니, 밀란보다 더 빠르게 앞질러 가서는 살짝 발뒤꿈치를 들며 불쾌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이게너 어디소속이야? 피 좀 묻히고 돌아다니는 것 보니 기껏해야 페리터스 정도 되 보이는구만. 어디서 고위 계급에게 대들어?”

이 말을 마치고 잠시 숨을 가다듬은 남자는 다시 또 열변을 토했다.

내 이름, 들어는 봤으려나? 미스켈라 요원 데브 카스탄. 지금 트라페로 요원 분의 명령을 전해주러 가던 중이다.

그런 자료를, 안 주워 오겠다? 좋아. 그러면 내 직접 트라페로님께 네 놈의 낯짝을 그대로 신상보고

아이렉스 키버릭 본부 내에 요원 개정 법안. 35.

임무를 완수 또는 보고하러 가는 요원은 방해가 되는 요소가 있을 시 상부에 보고를 올려 그 자를 탄원 시킬 수 있다.”

밀란의 고저 없는 메마른 목소리가 남자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남자의 말이 나오기 전 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아이렉스 키버릭 본부 내에 요원 개정 법안. 17. 2등급 이상의 요원은 방해 요소를 상부보고 없이 즉결 처분할 권한을 갖는다.”

그 순간 한참 얼굴을 붉히던 남자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즉결 처분이 뜻하는 바는 처형이라는 것과 2등급 이상의 계급이라면

적어도 자신의 직속상관이 트라페로 이상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등급 이상의 요원 중에서 전투 요원은 1등급 요원, 퍼펙터스가 유일했다.

남자는 자신이 대체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했을까 후회를 하며 저자세로 나오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몰라 뵈고 그런 망발을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제발

밀란은 갑자기 비굴해진 남자의 모습을 보고도 별 감흥이 없는 듯, 공허한 시선만 던졌다.

네 놈 같은 부류쓰레기다. 그렇다고 그런 쓰레기에게 내 총을 겨누는 것은 내 애총에 대해 실례가 되겠군.”

처음 말을 듣고 더욱 얼굴을 굳히던 남자는 그 뒤에 말을 듣고 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때였다.

-

아악! 제기랄!”

그는 그답지 않은 싸늘한 눈초리로 다리에 난 구멍을 부여잡고 신음을 토하는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말 그대로 길거리에 버려진 폐기물을 내려다보는 듯 한 시선이었다.

하지만쓰레기가 더 많아지면 귀찮거든.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