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미래. 모성 지구를 잃은 인류는 거대 아크(방주)에 몸을 의탁하고 신천지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영겁의 우주에서 인류의 새로운 안식처는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수백이 넘던 이민 선단은 수십으로 줄어들었고, 지구의 기억은 사람들의 추억에서조차 아득해졌지만, 인류가 쉴만한 오아시스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인류를 태운 아크들은 무한의 우주로 흩어졌고, 각각의 아크들은 서로 협력 대립을 반복하며 하나의 국가를 형성해 나갔다.

그리고 광활한 우주의 저편, 그곳에서 인류가 조우한 끔찍한 악몽. 규소계 기생 생명체 통칭 레비아단’. 인류는 더 이상,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대항주력(大航宙曆) 521, 프록시마 섹터 인근.

 

그그그그그구


수백 아니 수천 년 이상 적막만이 감돌던 이 공간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한다. 진공 상태에서 소리가 전해지지 않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 하지만 전장 10km가 넘는 우주모함이 전속력으로 돌진 중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랐다.


“4번 추진기 다운! 6번 추진기 추력 감소 중!”

동력체계 이상 발생. 사격통제 장치 침식 확인. 침식률 47% 위험합니다!”

 

인류가 17번째 만든 아크급 우주모함 솔롱고스의 브릿지(함교)에서 승무원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지금 그들 앞에 펼쳐진 공간 투영식 다중 입체영상통칭 윈도우는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솔롱고스와 그리고 그 뒤를 바짝 뒤쫓고 있는 붉고 거대한 무언가를 실시간으로 비추고 있다.

 

젠장! 뿌리칠 수 없는 건가?”

 

저것이 무엇인지는 함장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축함급 전함과의 전투에서도 끄덕 없던 솔롱고스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할지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미 함의 기능중 30%가 정지된 상황. 녀석과의 첫 조우가 있은 지 겨우 10분 만에 주포인 양전자포’ 마저 먹통이 되어버렸다. 남은 무기라고 해봤자 잡다한 미사일 터렛과 고출력 레이져포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런 무기로는 놈의 두터운 외피에 조그마한 상처조차 줄 수 없다.


역시 독은 독으로 막을 수밖에. 유소위!”

 

함장의 외침과 동시에 브릿지의 윈도우보다는 훨씬 작은 윈도우가 함장의 정면에 펼쳐진다. 그리고 윈도우의 푸르스름한 영상에 등장한 것은 아직은 앳돼 보이는 검은 머리칼의 소년이었다.


더 침식당하면 뒤는 없다. 당장 불러와, 어서!”

할 수 있음 벌써 했죠! 그러게 왜 레비를 화나게 하셨나요? 나도 이제 몰라요!”

뭣이! 지금 항명하는 건가?”

아뇨! 반항하는 겁니다. . . .”

 

검은 머리칼의 소년은 함장을 매섭게 노려보며 소리쳤다. 함장의 얼굴에 잠시 당황의 표정이 스쳤지만, 그것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의 분노는 그대로 사그라질 수밖에 없었다. 소년을 밀치고 윈도우에 그것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참 가관이야. 이런 걸 부전자전이라 하나?”

“...”

 

그것의 말에 둘은 순간 입을 닫는다. 하지만 여전히 이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그것은 그런 함장과 소년을 바라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말한다.


좋아, 상관없겠지. 그래 말해봐라, 인간. 내 특별히 들어주도록 하지.”

 

윈도우의 화면은 천천히 아래로 움직이며 그것의 모습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팔짱을 낀 채 도도한 표정으로 서 있는 그것은 일단은 여성, 더 정확히는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칼은 무슨 네온사인 마냥 붉은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눈동자 역시 붉은 안광을 희미하게 흩뿌리고 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소녀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보다시피 상황이 나쁘다.”

 

함장의 안색은 전보다 더 좋지 못하다. 이런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지만, 이미 선택의 여지 같은 것은 없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인간사에 관여하지 말라고 한 건 바로 함장 너이지 않나?”

지금 쓸데없는 말장난 할 때가 아니야! 이 배가 끝장나면 레비 너는 몰라도 네가 마스터라고 떠받드는 내 아들놈도 모두 죽은 목숨이라고!”

 

핏대까지 새우며 함장은 소리쳤다. 우연이라면 우연, 필연이라면 필연, 악연이라면 악연이었지만 그것아니 레비는 현재 솔롱고스의 마지막 남은 카드였다.


뭐 좋아. , 조건이 있다, 함장.”

그래도 살인은 안 돼.”

 

함장은 그것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을 잘랐다. 레비는 순간 발끈해 살기로 번뜩이는 붉은 눈으로 함장을 뚫어지라 노려본다. 그러나 함장은 미동도 않고 굳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쿠르르- 쿠쿵

 

브리지가 또다시 상하로 심하게 요동친다. 지금 이 순간도 솔롱고스는 맹공을 받고 있다. 영상을 전송하던 윈도우 역시 이에 따른 노이즈로 정상적인 화면을 출력하지 못했다. 일렁이는 윈도우에서 레비의 목소리는 잡음까지 섞여 희미하게 들려온다.


치직- 치지익. 이해할 수가 없군. 선악을 논할 생각은 없다. 마스터, 아니 네 아들을 죽이려 했던 놈들이라 해도 죽이지 말아야 하나? 지지직-”

물론. 우리에겐 우리가 정한 법이 있다. 그 누구도 함부로 사람을 죽이게 내버려 둘 수 없다.”

, 역시 부전자전이 틀림없어.”

 

레비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윈도우는 사라졌다. 함장은 쓰러지듯 털썩 주저앉는다. 십년은 감수한 기분. 일단 레비가 움직였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뭔가는 될 것이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운을 비는 것이 다였다.

 

 

 

 

솔롱고스의 후미 B-12구역 외부갑판

 

지금 이곳에선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절대 은유적 비유 같은 것이 아니다. 우주는 기본적으로 공기가 없다. 그래서 아무리 강력한 폭발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소리를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소리만 없다 뿐이지 그 치열함은 거함 거포가 난무하던 2차대전의 격전지만큼이나 처절했다.


망할!”

 

리프트를 타고 솔롱고스의 외부 갑판으로 나온 소년은 저도 모르게 욕부터 나왔다. 급하게 만든 터라 내부 골격까지 훤히 보이는 파워드 슈트를 입은 덕에 밖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두께 1m가 넘는 복합장갑으로 이루어진 갑판은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고, 그나마도 침식당해 붉은빛을 띠는 수정처럼 변해 있었다.


정말 먹성 좋은 녀석이네. 복합장갑은 별로 맛없을 텐데.”

 

뒤이어 들려온, 아니 정확히는 느껴진 목소리에 소년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레비가 붉게 빛나는 머리칼을 휘날리며 서 있다.

이곳은 우주공간. 보통의 사람이라면 맨몸으로 단 1분도 생존할 수 없는 곳이었지만,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이라곤 몸에 착 달라붙는 군청색 슈트가 고작이다.


널 닮아서 그런가 보지 뭐.”

난 복합장갑은 먹지않아. 티타늄이나, 지르코늄 정도 된다면 또 몰라도.”

그 별난 취향 좀 바꿀 수 없어? 네가 먹어버린 티타늄 때문에 정비반에서 난리라고.”

이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아 그러세요. 근데 지금 당장 그 생존을 하려면 저것부터 좀 처리해야 할 것 같은데...”

 

소년은 당장이라도 머리 위에서 쏟아질 것 같은 거대한 붉은 바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레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푹 내쉰다.


역시 믿음이 부족하군 소년.”

"헛소리 말고 저것 좀!”

 

소년의 외침에 레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붉은 바위를 향해 오른팔을 든다. 그리고 그 직후, 돌덩이는 관성의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부서져라!”

 

레비의 목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붉은 바위 덩이는 문자 그대로 분쇄됐다. 외부로부터 그 어떠한 충격도 가해지지 않았지만, 바위덩이는 거짓말처럼 산산 조각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휴 살았다... 가 아니군.”

 

소년은 바로 코앞에서 부서져 내리는 조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돌조각은 이내 그 빛을 잃고 평범한 암석으로 바뀐다. 돌덩이가 사라지자 뒤이어 소년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붉고 거대한 인류의 적 레비아단이었다.


생각보다는 크네. ‘드론치고는 말야.”

 

이것의 모습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붉게 빛나는 돌덩이바로 그것이었다. 그 크기는 솔롱고스에 필적할 정도로 거대하다. 물론 모든 레비아단이 저런 형태는 아니다. 따지고 보면 지금 소년 앞에 서 있는 저 소녀도 레비아단이니 말이다.


이길 수 있겠어?”

태산이 높다 한들 결국 일개 산일 뿐이지.”

무슨 뜻인지 알면서 하는 말이야?”

높은 산일수록 부수기 쉽다는 건 상식이다.”

“...”

 

언제나 그렇듯 레비의 상식은 소년이 따라갈 수 없었다. 소년은 그런 레비와의 대화를 포기하고 자신의 적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정말 끝이 보이지 않아.”

 

녀석은 또다시 한 무더기의 조각들을 솔롱고스를 향해 쏘아냈다. 조각들은 선명한 붉은 빛줄기를 흩뿌리며 곧장 솔롱고스를 향해 날아왔다. 솔롱고스의 방어시스템은 즉각 이에 반응해 미사일과 레이져포로 응사했지만, 요격에 성공한 것은 극소수였다.


언제까지 이런 전쟁을 계속해야 할까?”

전쟁이라.”

 

레비는 점점 다가오는 레비아단의 조각을 노려보며 말을 끊었다. 자의 반 타의 반이긴 하지만, 동족을 배신하고 인류의 편에 서서 싸워온 레비. 아무리 호전적인 그녀라 할지라도 동족과 싸우는 것이 유쾌한 일일 수만은 없었다. 그러나 레비는 그것을 선택했고, 그것이 이 기나긴 전쟁의 시작이었다.


어차피 삶이란 것은 전쟁과 동의어 아니었나? 어깨를 펴라 마스터. 죽느냐 사는냐. 승자냐 패자냐. 결국 선택은 자기 자신이 하는 법이다.”

난 두려워, 레비.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어. 또 얼마나 더 죽어야만 할까?”

 

고개를 떨구는 소년. 레비아단과의 퍼스트 콘택트이후 모든 것은 변해버렸다. 끊임없이 추격해오는 레비아단. 절망은 넘쳐났고 희망은 줄어갔다. 이미 수많은 아크들이 레비아단에 의해 침몰했고, 어쩌면 이 솔롱고스도 오늘이 마지막일지 몰랐다.


“마지막? 그런것은 물리적으로 있을 수 없다. 나 레비가 있는 한!"

 

레비의 사념파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레비는 두둥실 떠올라 소년의 우주복 헬멧 위에 살짝 키스한다.


그럼 시작해볼까?”

 

바닥으로 내려온 레비는 천천히 무릎을 꿇는다.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머리칼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빛은 진한 청홍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녀의 온몸은 가늘고 붉은 줄이 수없이 생겨나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눈을 떠라 근원의 힘이여.”

 

레비의 사념파가 기묘한 파문을 퍼져간다. 레비 몸을 뒤덮은 줄무늬는 곧이어 솔롱고스의 갑판을 따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것은 레비아단 최상위 계급 라 레비아단의 권능, 침식을 넘어선 융합. 그렇게 레비와 솔롱고스는 하나가 되어 갔다.


하아- 루비콘강 앞에 서버렸나?”

 

소년은 시작하기도 전에 한숨부터 나왔다. 레비가 공격 태세를 갖추는 데 필요한 시간은 3분 남짓. 소년의 임무는 그 시간 동안 레비를 지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솔롱고스의 뒤를 쫓아오는 레비아단은 이미 레비의 존재를 눈치채고 공격을 시작했다.


젠장 너무하잖아!”


본체에서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레비아단의 조각들. 그 수는 눈으로 헤아리기 불가능 정도로 많았다. 목표는 말할 것도 없이 레비와 소년이 있는 곳. 힘의 차이는 명확했다. 하지만 얌전히 죽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소년은 이를 악물고 외친다.


이판사판! 이딴 곳에서 당할쏘냐. Missile launcher full open!”

 

그의 외침과 동시에 갑판 아래 숨겨져 있던 미사일 포트들이 일제히 솟아오른다.


“Target Lock-on!”

 

소년의 파워드슈트에 장착된 레이더엔 새하얗게 표시되는 레비아단의 조각들로 가득하다. 굳이 조준할 필요조차 없었다. 적은 이미 솔롱고스의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다.


“Fire!”

 

수백기에 이르는 미사일이 섬광을 흩뿌리며 일제히 발사된다. 지금껏 솔롱고스에서 발사된 미사일 대부분 레비아단에게 유효한 타격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이 미사일은 달랐다. 이 미사일의 뇌관에는 고성능폭약 대신, 미량의 반물질이 장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미사일은 먹이를 노리는 맹금류처럼 레비아단의 조각들에게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공식, ‘E=mc^2’의 에너지로 적을 유린한다.


크으윽!”

 

그 가공할 열량은 수십개의 태양이 동시에 나타난 것처럼 맹렬하다. 눈부신 섬광에 소년은 한동안 눈을 뜰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빛이 사라지자 솔롱고스의 하늘을 가득 메우던 레비아단의 조각들 역시 말끔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 본체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레비아단은 여전히 솔롱고스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이제 부터가 본론인가? 좋아,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게 있지. 포격모드 전환.”


소년의 목소리에 파워드슈트와 솔롱고스의 전투지원 시스템은 즉시 반응했다. 파워드슈트의 하체는 솔롱고스의 갑판에 단단히 고정되고, 갑판 하부에 거치 되어 있던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음에 들었음 좋겠네.”

 

소년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감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솔롱고스의 주포 양전자포의 코어를 뜯어 급조한 이동식 하전입자포(Charged Particle Beam)였다.

급조한 탓에 파워나 연사력이나 모든 면에서 주포인 양전자포 보단 떨어지긴 했지만, 시간벌기용으로는 충분할 것이다.


“CPB full charger!”

 

솔롱고스의 전체동력 중 70%를 순식간에 끌어온 하전입자포는 천천히 가열되기 시작한다. 하전입자포의 엄청난 전력소모를 견디지 못한 솔롱고스는 일순간 암흑천지로 변했다.


지옥으로 꺼져버렷!”

 

소년의 외침과 함께 눈부신 섬광과 함께 충격파가 터져 나온다. 그 엄청난 힘에 솔롱고스 전체가 충격파 반대 방향으로 튕겨지 듯 밀려난다. 하전입전자포에서 발사된 에너지의 폭풍은 진행경로 상의 모든 것을 증발시키며 빛의 속도로 레비아단을 덮친다.


끼아아아아아그-’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는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사념파, 레비아단만이 낼수 수 있는 초자연적 현상이었다. 너무나 강렬한 울림에 소년은 저도 모르게 귀를 막았다. 그리고 잠시 후 소리는 사라졌다. 하전입자포의 눈부신 빛 역시 사라졌다. 하지만 레비아단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 거짓말.”

 

소년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서도 이를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급조한 거라지만 하전입자포의 파괴력이라면 아크급 우주모함조차 반파시킬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저 레비아단은 타격 자체를 받지 않은 것 같다.


설마!”

 

바로 그때였다. 붉은빛을 뿜어내던 레비아단의 본체가 갑자기 푸른 색으로 뒤바뀐 것이다. 푸른 빛은 곧 새하얀 색으로 바뀌었고 공간 자체가 울릴 정도로 진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소년의 설마는 현실이 되었다.


그그그 키아아악!’

 

레비아탄의 강력한 사념파가 솔롱고스를 뒤흔든다. 회백색의 시릴 듯 차가운 빛은 순간 한 점으로 모이더니 하전입자포 보다 두 배는 더 거대해 보이는 빛줄기를 솔롱고스를 향해 뿜어냈다.


- 내가 그렇지 뭐.”

 

소년은 쏟아지듯 다가오는 빛의 파도를 보며 실소했다. 이 거리라면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소년은 두 눈을 감았다.


포기가 너무 빠르다. 마스터.”

 

갑작스레 들려온 레비의 목소리에 소년은 눈을 떴다. 레비는 소년의 앞에 서 있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전과는

사뭇 달랐다. 레비의 흐릿하게 빛나는 머리칼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일렁이고 있었고 슈트 밖으로 드러난 몸은 붉게 빛나는 기하학적인 무늬로 가득했다.


진정한 위험은 보이지 않는 법.”

 

레비아단이 뿜어낸 시릴 듯 차가운 빛줄기를 향해 래비는 가볍게 팔을 휘두른다. 그러자 빛줄기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가로막혀 허무하게 튕겨 나간다. 소년은 자신의 두 눈으로 본 광경이었지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레비는 그런 소년을 향해 다시금 사념파를 전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놀라워하지도 마라. 마스터가 가지고 있는 힘에 비한다면 저건 아무것도 아니다.”

 

레비의 몸은 방금 전 빛줄기를 막은 여파로 새하얀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다. 소년은 넋을 잃고 이를 바라볼 뿐이다.


잘 봐둬, 우리 일족의 힘. 곧 나의 힘이자, 마스터의 힘을 지금 여기에 구현할 테니.”

 

레비는 레비아단을 노려보며 송곳니를 드러낸다. 바로 그 직후, 레비의 온몸은 타오르는 듯한 붉은 기류가 솟구쳐 오른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뒤덮다시피 한 기하학적 무늬는 마치 살아있는 양 꿈틀거렸다. 그녀는 양손을 레비아단을 향해 천천히 들어 올린다.


드론 주제에, 제법 한다마는 그래 봤자 드론은 드론!”

 

레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빛은 시릴 듯 차가운 회백색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빛은 흡사 한 쌍의 날개처럼 그녀의 등 뒤에 선명한 형상을 갖췄다.


, ‘라 레비아단의 이름으로 명한다. 열려라! ‘허수의 문’!”

 

주먹을 불끈 움켜지는 래비, 그녀의 사념파는 강력한 파문을 일으키며 우주를 진동시킨다. 그것은 태초로부터 시작된 약속된 힘이자, 우주를 움직이는 근원적 진리를 깨운다.

 

치이잉-

 

공간을, 아니 차원을 진동시키는 파열음. 그것은 사념파가 아니다. 진공상태에서 소리란 있을 수 없었지만, 소년은 분명히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변은 시작됐다. 묵묵히 솔롱고스를 향해 다가오던 레비아단의 거체가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변화의 시작은 레비아단의 중심. 그곳에는 칠흑처럼 검은 파멸의 구멍이 생겨났다.


, 저건 설마 브, 블랙홀?”

 

소년은 눈을 부릅뜬다. 블랙홀은 레바아단의 모든 것을 천천히, 하지만 그 무엇도 놓치지 않고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녀석의 암석질 본체는 물론 하며, 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빛조차도 그 검은 구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키에에에에에-’

 

녀석의 찢어질 듯한 사념파가 다시금 울려 왔다. 레비아단은 필사적으로 블랙홀로부터 탈출하려 해 보았지만, 그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블랙홀이란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극한의 초중력이 존재하는 공간. 레이아단이 물리세계에 존재하는 한 녀석의 소멸은 필연이었다.

 

치이잉-

 

또다시 들려온 파열음, 거대한 레비아단이 완전히 소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탐욕스런 검은 구멍은 레비아단의 작은 조각 하나조차 남기지 않고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그리고 남은 것은 칠흑 같은 어둠, 우주 그 자체만이 공허의 기운을 흩뿌리고 있다.


끝난 건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적막에 소년은 주변을 경계한다. 레비아단이 뿜어내던 빛에 가려 보이지 않던 별들이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소년은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안심할 때가 아니다. 함장에게 전해,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레비는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과, 그리고 기하학 무늬들은 어느 듯 사라져있었다.


이제 괜찮은 것 아냐?”

안 괜찮을걸? 허수의 문을 닫지 못했다.”

, 그럼 블랙홀이 아직도 저기 있단 말야?”

있고말고. 드론을 통째로 먹어치웠으니 더 커졌을걸?”

맙소사!”

 

솔롱고스의 거구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자력으로 움직인 것은 아니다. 레비가 소환한 블랙홀은 다음 목표로 솔롱고스를 선택한 것이다.


그럼 부탁해. 난 여기까지다.”

레비, 정신 차려! 레비, 레비! 아놔! 브릿지 들립니까?”

또 뭐냐? 통신상태가 불량하다.”

 

함장은 당황한 소년의 목소리에 답했다. 브릿지의 상황도 그리 좋지만은 못했다. 레비가 멋대로 솔롱고스와 융합해 동력을 마구 끌어쓴 덕분에 시스템 대부분이 다운되어 버렸던 것이다.


“12시 방향, 블랙홀! 당장 여기서 이탈해야 합니다!”

블랙홀!? 정말인가?!”

레비가 또 저질렀어요. 빨리!”

젠장할! 1급 비상사태다. 출력 최대로! 즉시 이곳을 벗어난다.”

 

함장의 비명과 같은 외침이 브릿지에 울려 퍼진다.

대항주력(大航宙曆) 521, 인류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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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지르고 보는 센스.

담편 언제 업뎃 될지 모름.

분위기는 가디언즈 겔럭시 정도 될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