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아이리스가 손을 튕기자 변화가 찾아왔다.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듯 서서히 공간이 이지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기이한 모습에 김진이 순간 이채를 띄었으나 그것도 잠시.
곧 완전히 변모한 공간을 본 김진이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

“격납고입니까?”

한눈에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다관절 프레임과 고장력 와이어가 창고 전체를 뒤덮고 있는 장소. 플랫폼으로 올라서기 전에 기체들이 대기하는 격납고였다.

“예. 튜토리얼용 양산기. Mig-140이 있는 곳이죠.”

김진의 물음에 답한 그녀가 자연스레 걸음을 옮겼다.
아이리스를 따라 걷자 곧 잠들어있는 철제 거인을 볼 수 있었다.
다소 둔탁한 모습의 회색 기체.
양산형이라더니 한눈에도 내구성을 중점으로 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탑승하는 방법은 알고 계시나요?”

두말하면 잔소리.
김진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증명이라도 하듯이 능숙하게 크레인을 타고 올라가 가슴께 부근에 있는 외부 개방 장치를 열어젖혔다.
코크피트 내부로 진입한 김진이 자리를 잡고 외쳤다.

“이것도 음성 인식 제어장치입니까?”
“예. 양산형의 기본 OS(Operating System)는 프로젝트W의 여느 기체들과 같은 모델입니다. 무중력 전술 변환 시스템(Zero Gravity Maneuver Convert System)이죠.”

운영체제도 같다니 나야 편하긴 한데, 어째 전작과 바뀐 게 하나도 없는 거 같다?
그러한 의문이 잠깐 들었으나 곧 내려놓았다.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김진이 코크피트를 닫고 나지막이 시동명령을 내렸다.

“마스터 스위치 파워 온, 시스템을 가동한다.”

그 명령에 기체의 눈빛이 번쩍하며 타올랐다.

[휴면 모드 해제, 운용 프로그램 가동, 중력 제어 장치 가동]

전원이 들어오자 내부 조명이 켜지기 시작하며 김진의 몸이 떠올랐다.
중력 제어 장치가 그의 몸을 띄운 것이다.
이내 구형의 코크피트 중심에 위치한 김진.
그를 기점으로 사방에 노란색 홀로그램들이 점차 시야를 뒤덮어갔다.
아직 가동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글자들의 무수한 향연이 그의 시선을 어지럽혔다.
그에 살짝 인상을 찌푸린 것도 잠시.
김진은 이미 홀로그램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목록들을 미리 외우기라도 한 듯이 보지도 않고 능숙하게 패널들을 조정하기 시작하는 그의 손.
마치 피아노 선율에 몸을 내 맞긴 것처럼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의 손가락을 따라 노란색 점멸등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초록색 점멸등이 대신 자리를 잡아갔다.

[에너지 벨브 연결, 점화장치 파워 온, 연료 펌프 가동, 사이오닉 제네레이터 개방, 트랜스폰더 체크 확인, 스로틀 1단계 개방, 4채널 트림 정위치(승강타 : elevator, 방향타 : rudder, 보조익 : aileron, 고양력장치 : flap) 원점 기어 복귀, 컨트롤 락 해제, 기능 정상화 올 그린.]

이내 모든 패널이 초록색으로 변환되자 김진이 작게 미소 지었다.

“완벽해.”

[Mig-140 기동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김진이 콘솔을 잡고 일어서자 미그가 그 거체를 일으켜 세웠다.
마치 거대한 산이 우뚝 솟아오르는 모습.
둔중한 중저음이 격납고를 울렸다.

“탑승 완료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불과 1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이루어진 상황.
그야말로 순식간이라 할 수 있는 모습에 아이리스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느끼기엔 파일럿이 들어가자마자 기체가 움직인 것과 거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설마 이토록 빠를 줄은 짐작조차 못 한 모습이었다.
바이져 너머로 토끼 눈의 그녀를 본 김진이 피식 웃었다.

“다음 절차를 설명해 주시죠.”

통신기를 통한 김진의 목소리가 아이리스의 멍한 정신을 일깨웠다.

“아? 아! 그렇죠. 다음 절차는 테스트 필드로 이동하는 겁니다. 이제 곧 레일이 움직일텐데 그를 따라 승강장에 진입하면 되는 일입니다. 자동으로 옮겨지게 되어있으니 따로 조종간을 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구우웅-.
말하기가 무섭게 발밑에 설치된 레일이 움직였다.
화살표 모양의 점멸등이 깜빡깜빡하며 미그의 이동방향을 유도하고 있었다.
레일에 달린 궤도가 그 거체를 싣고 비명을 내질렀다.

“곧 승강장에 진입할 거예요. 충격에 미리 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통신기로 전해오는 아이리스의 친절한 설명에 김진이 자세를 다잡았다.
레일의 끝에 도달하자 다관절 프레임이 기체를 들어 올려 승강장에 그대로 메다꽂았다.

투웅!

그 인정사정없는 취급에 기체가 덜컹대며 심하게 뒤흔들렸다.
코크피트 중심에 있던 김진의 몸도 단번에 뒤로 쏠리며 후방 바이져에 부딪혔다.

“큭!”

미리 대비했는데도 불구하고 예상외의 충격에 자못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양산형 기체다보니 탑승감이 말도 못하게 저급했다.
더군다나 자신이 입고 있는 복장도 평범한 저가 파일럿 슈트였으니 충격에 취약한 점도 한몫하였다.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애써 억누르는 와중에 아이리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곧 테스트 필드로 향하는 엘리베이터가 움직일 거예요. 본격적인 튜토리얼 진행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무리 훈련용이라지만 정말 이런 기체로 튜토리얼을 진행해야 하나 싶었다.
프로젝트W에서 사용하던 자신의 전용기. 스타시커와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 아니, 태양계와 안드로메다와의 차이라 할 수 있었다.

띵-!

알림음이 울리며 미그를 태운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상승했다.
승강장에 달린 조명등이 기체를 비추고 사라지길 반복하여 끝없이 솟아올랐다.
잠시 후. 상층 갑판이 열리며 밝은 빛을 토해냈다.

[테스트 필드인]

갑판의 틈에서 튀어나온 김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허허벌판.
그야말로 황야지대를 그대로 본뜬 듯한 지형이 김진의 시야에 들어왔다.

-테스트 필드에 도착하셨나요? 그럼 파일럿님의 조종 숙련도부터 차근차근 검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른바 적성 검사라고 불리는 테스트인데요. 주어진 목표를 얼마나 정확하고 빠른시간 안에 클리어하는지 알아보는 실험입니다. 할 수 있으시겠어요?

통신채널을 통한 그녀의 물음에 김진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마치 생초짜를 대하는 모습이지 않은가.
이 베타테스트가 A급 파일럿을 대상으로 하는 것임을 이미 알고 있던 김진으로써는 초보자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까지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가 싶었다.

“이게 사측에서 요구한다는 부가 조건입니까?”
-지원금 말씀 하시는 건가요? 원하신다면 신청해드리겠습니다.
“계산은 철저히 했으면 합니다만.”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녀의 확언에 찌푸렸던 미간을 다림질한 것 마냥 빳빳하게 폈다.
돈의 위력이 현재의 언짢음을 내리누른 것이다.
김진의 머릿속엔 예전부터 돈 > 기분 > 귀찮음의 부등호가 성립되어 있었기 때문.
노골적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오래전부터 그에게 게임이란 존재는 단순한 가상현실이 아닌, 먹고살게 도와주는 일종의 동반자와 같았으니 말이다.
솔직히 돈이란 요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니겠나.
겸사겸사라는거다.
뭐, 재미로 뛰어든 테스트에 쪼잔하게 돈, 돈 하는 것도 약간 우습긴 하지만 말이다.

-대신 확실하게 테스트에 임해주셨으면 합니다.
“라져 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