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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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와서 살면서 자주 듣는 얘기가 있다.
“당신 야만인입니까?”
평범한 욕처럼 흘러들으면 육두문자가 남발하던 자랑스런 내 옛고향에서 기른 내성이 있어 웃어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나를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단색의 무미건조한 동공으로 쏘아보며 차분하게 입술을 움직이며 내뱉는, ‘야만인’은 내 가슴을 묘하게 후벼파는 데가 있다. 아마 내가 살고 있던 시대에서 비슷한 예를 찾자면 광화문광장 사거리에서 365일 눈이오나 비가오나 예수천국 불신지옥만을 부르짖는 아주머니를 응시하던 행인들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에게 자신이 신의 부름을 받들어 무지몽매한 속세의 죄인들을 회개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이나 신념만이 안중에 있었을지언정 내게는 그 어느것도 없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도대체 왜 동물을 ‘살해’하고 ‘분해’해서 먹는겁니까? 왜 굳이? 그래야만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회색 점퍼를 이슬람여자마냥 뒤집어쓴 흉악범을 인터뷰할 때에나 짓던 냉철하면서도 긴박한듯한 눈매를 그들은 내게 들이댔다. 고기를 먹는다는 것에 무슨 신의 섭리나 말씀 같은게 있을리 없으니 나는 그런 시선을 견뎌낼 수가 없다. 마치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발가벗겨놓은 다음, 몸 구석구석에 돋보기를 들이대며 존재 가치 자체를 하나하나 부정해나가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톡톡톡. 콰작.
치이이익---
그리고 오늘도 나는 그들에게 신랄하게 무시당하고 부정당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히 식사준비를 하고 있다. (달걀 깨지는 소리는 머릿속에서 떠도는 고민을 날려주는 것 같아 경쾌하다.) 여기에 와서 생긴 또 다른 변화는 중요한 가치관의 문제였다. 나의 정당성을 남들에게뿐만 나 자신에게도 납득시키기 위해 대항하고 반박하는 것은 이렇게나 압도당하는 상황에서 그저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약간은 염세주의적인 깨달음이다.
한 때에는 이곳에서 시사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육식을 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놓고 사회자와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언론사를 불러놓고 일부러 고기를 잡아먹는 모습을 과장스럽게 연출해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게 돌아왔던 조롱과 모욕을 똑같이 그들에게 돌려주었다. 그것이 하나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편견을 불식시키는데에 일조할 것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숨이 조금 죄여온다고 시도했던 무모한 반항은 곧 내 숨통을 완전히 잠가버리기에 이르렀다. 닥치는대로 방송에 나가 제멋대로 지껄이기 시작하며 수없이 테러를 당했다. 토마토나 달걀세례를 당하지는 않았다. 사실 이곳에서의 달걀은 동물원이나 펫 샵에서나 볼 수 있는 비싼 몸이지 결코 식료품점의 냄새나는 냉장고에 수십개씩 묶음으로 쌓여있던 시절의 취급이 아니었다.
괴한들이 망치로 내 뒷머리를 후려갈긴다거나 내가 묵고 있는 빌라 창문을 깨트리고 스프레이로 낙서를 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실상은 그 어떤 폭력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육식을 하지 않게된지 수 세대가 흐른 탓에 물리적인 폭력을 유발하는 유전인자를 완전히 잃어버렸는지도 몰랐다.
그들은 다만 나를 따라다녔다. X자가 크게 그려진 마스크를 끼고 내가 어디에 가던지 졸졸 따라붙었다. 평범하게 자기 일을 보던 시민들도 내가 나타나면 약속이라도 한듯 일제히 마스크를 꺼내썼다. 그렇게 생성된 동질감이 감도는 인파의 무심한 눈동자들은 오롯이 나만의 차지였다. 나의 충성스런 추종자들 가운데엔 프린트를 한 작은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내게 야만인이냐고 질문을 한다거나, 왜 그런 짓을 하느냐며 따져묻는 이들도 간혹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반적으로 차분함을 유지했다. 내가 그들을 무시하고 더 큰 목소리로 설치고 다닐수록 침묵시위를 벌이는 그들의 숫자는 불어났다.
그것은 무형의 테러였지만 내 빌라를 폭파시키는 수고를 들이는 것보다도 훨씬 효과적이었다.
이윽고 경찰당국이 나를 방문해 신변위협을 이유로 들며 수행(이라고 쓰고 감시라고 읽는다)용 드론 두 대를 파견해주겠다고 선심쓰듯 말했다. 물론 내 동의를 얻어야 했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 무렵 거의 미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외떨어진 이방인인데다 이곳에서 무슨 거창한 사회운동을 벌이려던 것도 아니었거니와 애초에 나 자신을 지킬만한 정신적인 방어구가 젼혀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들이 동의 서류를 꺼내들자마자 나는 해방감이 깃든 괴성 비슷한 것을 내질렀다. 뒤에서 뭔가에 홀린듯 사인을 기계적으로 해나가고 있는 나를 바라보던 직원 하나가 달콤한 제안을 하나 했다.
“적극적으로 보호 조치를 취해드릴까요?”
금발의 젊은 여성이었다. 온갖 국적의 유전자가 섞인 이 시대에서조차 한국인의 DNA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결코 금발벽안이라고 부를 정도까지는 못되었다. 그렇지만 푸른빛이 감도는 눈빛과 이국적인 생김새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고는 말할 수 있다. 자칫하면 차가운 느낌을 줄 수 있는 인상을 풍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서는 푸른 색조차 희석시킬 수 없는 따사로운 감정이 묻어났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의 제안이 순전히 측은지심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보호조치를 거절할 형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