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한편, 아이리스는 디스플레이에 떠오른 그래프를 보고 경악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테스트를 기반으로 파일럿의 능력치를 나타내는 스테이터스 수치에 아이리스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파일럿 : 김진
일련 번호 : PLATINUM 19
등급 : A급
대표 타이틀 : 자일리언의 대적자
사용 기체 : Mig-140

근접 전투술 : 1,930 / 6,500
원거리사격술 : 2,160 / 6,500
순간 집중력 : 1,820 / 6,500
예측판단력 : 1,960 / 6,500
감각능력 : 2,110 / 6,500
인지능력 : 1,900 / 6,500
반응속도 : 2,510 / 6,500
한계기량 : 6,500 / ----

스테이터스 총합 : 14,390 / 45500

인간의 능력치라고는 도저히 납득 할 수 없는 수치.
아니, 이건 한계기량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기본 스텟만으로도 피테쿠스 종족의 평균값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할 수 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수치에 아이리스가 서둘러 다른 유저들의 스테이터스들과 대조해 보았다.

일반 평균 스테이터스 총합 : 1819 / 3,251
A급 평균 스테이터스 총합 : 8,211 / 13,821

가장 뛰어난 파일럿들 조차도 스테이터스 총합이 9,000을 넘지 못했던 것을 확인하자 아이리스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타인과의 비교 자체를 불허하는 능력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걸까.
A급 파일럿들의 한계 수치를 기본 보유 수치만으로 짓눌러 버린 사내.
그런 존재가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던 아이리스는 상부에 보고하는 것조차 잊고 멍하니 디스플레이만 바라보았다.

게임이었다면 명백하게 벨런스를 무너트릴 수 있는 플레이어.
프로젝트W에서 자일리언 지휘관 카잣두르를 단신으로 잡았다는 게 단순한 허명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아이리스였다.

“자일리언의 대적자라, 어쩌면 정말 가능 할지도…….”

그녀는 감탄한 듯이 김진의 대표 타이틀을 작게 읊조렸다.

-부르셨습니까?

그때 아이리스의 혼잣말을 들은 김진이 대답했다.

“어…? 아? 예?!”

그러고 보니 아직 통신채널이 열려있었던 상황!
그녀가 눈에 띄게 당황하였다.

“아, 저, 저기.”

뭐라 대답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은 아이리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도화 빛으로 물들었다.
좀처럼 평정을 잃지 않는 그녀였으나, 이 순간만큼은 어떤 변명 거리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부디 그가 듣지 못했기만을 빌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고민이 다 부질없다는 듯, 김진이 간단히 화제를 돌렸다.

-그럼 끝났으니 이만 귀환하도록 하죠.

김진이 제 맘대로 테스트의 종료를 선언한 것이다.

“아, 예! 그러고 보니 모두 처리하셨군요.”

아이리스가 반색하며 김진에게 맞장구를 쳤다.
배려 없는 그의 행동이 이처럼 반가울 수가 없었다.
결과가 하도 충격적이었기에 테스트 여부조차 잠시 잊고 있었던 그녀에겐 때마침 내려온 동아줄과 같았다.

“테스트 완료입니다. 이제 그만 돌아오셔도 좋습니다.”

뒤늦게 아이리스가 복귀명령을 내렸다.
김진이 순순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테스트 필드를 떠나자 그녀가 나지막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들키긴 않은 것 같아.”
아이리스는 두근반, 세근반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고는 배웅을 위해 통제실에서 걸음을 떼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후에 추가시킬 보상 관련으로 과연 어떤 것이 좋을까 고민했다.
잠시나마 김진이란 인물을 겪어본바, 주로 물질적인 것들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 보상은 금전적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일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또각- 또각.
사라지는 아이리스의 뒤로 통제실의 디스플레이가 홀로 김진을 비추고 있었다.
의미심장한 단어.
[특별 관리대상]이라는 글자와 함께 말이다.

*     *     *

“수고하셨습니다. 파일럿님.”

격납고에서 미리 마중 나와 있던 아이리스가 수건을 건내 주었다.
그녀의 행동에 김진은 아이리스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곤 이내 덤덤하게 받아들여 땀을 닦아내었다.
김진의 얼굴에서 땀이 후드득 떨어졌다.

확실히, 저급 파일럿 슈트는 불편한 게 너무 많았다.
팔라딘슈트만해도 진공면역에 기압조절, 산소공급과 방사능 차단, 내부 수분흡수는 물론이고 내열, 단열은 기본인데다 생명유지장치와 더불어 충격흡수까지 되는 마당에,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파일럿 슈트는 그저 우주에서 겨우 견딜 수 있을 정도로만 만들어진 천 쪼가리에 불과했다.

지금만 해도 땀 같은 것은 모두 파일럿 슈트가 흡수했어야 할 판인데, 저급 슈트에는 그런 기능조차 없어서 일일이 수건으로 닦아야 하지 않는가.
그나마 아이리스가 수건이라도 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찐득찝찝 불쾌함을 내내 지고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가상현실이 뛰어나도 안 좋아.”

현실 고증이 너무 뛰어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대표적인 불편함이라 할 수 있었다.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김진이 고개를 내젓고는 파일럿 슈트를 반쯤 벗어젖혔다.
대충 상체라도 닦기 위함이었다.
옷을 벗자 훅-하며 더운 기운과 함께 오밀조밀 짜임 세 있는 흉부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리스는 그런 김진의 모습에서 애써 눈길을 돌리고는 걸음을 바삐 옮겼다.

“따라오세요. 보상 관련해서 몇 가지 이야기 할 것이 있으니까요.”

보상?
그녀의 말에 김진의 귀가 쫑긋했다.

“그거 좋죠.”

땀으로 인한 찝찝함은 이미 뒷전이었다.
얼른 목에 수건을 두르고 아이리스를 따라나섰다.
그들이 걸음을 멈춘 곳은 마치 인공수조관 같은 형태의 캡슐이 덩그러니 위치해있는 방이었다.

“메가FX?"
“비슷하게 생겼지만 아니에요. PMD(Psionic Metastasis Device)라고 불리는 일종의 사이오닉 전이 장치입니다. 파일럿의 능력치 향상을 도와주는 스페이스 왈츠의 핵심 기기죠. 뭐, 일종의 세이브 포인트라고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한결 편하실거예요.”

아이리스의 설명에 김진이 놀란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사이오닉 전이 장치? 그럼 저에게 모르지크의 에너지를 주입하려는 겁니까?”

적에게서 나오는 사이오닉 에너지를?
경험치 대신에?

“상당히 똑똑하시네요. 아직 설명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저와 상관없는 기계를 일부러 소개해줄 리가 없잖습니까.”

김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까지는 기체에만 사용되던 에너지 원이었기에 적에게서 나온 것이라도 거부감은 덜했지만, 직접적인 방법으로 체내에 주입하는 것은 이야기가 완전 다른 것이었다.
그게 설혹 게임이라도 말이다.

“상상도 못 했습니다. 설마 이런 짓까지 해야하는 겁니까?”
그러다 지글러마냥 흉측하게 변하면 어찌 되겠는가.
“안심하세요. 이미 여러 차례 검증된 기기입니다. 안정성은 확실합니다. 다른 파일럿분들도 모두 경험하셨는걸요.”

그래도 찝찝함이 가시지는 않는다.
간단히 비교해보자.
누군가가 느닷없이 나타나서 바퀴벌래의 체액을 수혈하라고 한다면 당신은 얼씨구나 좋다 하며 수혈하겠는가?
생리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그런 건 거부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으음…….”
김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내젓자 아이리스가 한걸음 다가왔다.

“6등급 사이오닉 크리스탈을 드리겠습니다. 프로젝트W에서 거래가 가능한.”

순간 김진의 머리 위로 계산기가 뿅하고 나타났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가동되는 뇌내 시뮬레이션.
전투시에만 발동하던 뇌내 풀가동을 지금 이 순간 작동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도출된 결과는…….

“바로 하도록 하죠.”
급격한 태세전환.
김진이 인공수조관에 들어가자 아이리스가 싱긋 웃었다.

“그럼 이번 튜토리얼 보상으로 지급된 사이오닉 크리스탈을 사용해보도록 하죠.”
그녀가 홀로그램을 공중에 띄워 김진에게 보여주었다.
“지금 이 스테이터스가 김진님의 현 상태입니다. 설명을 읽으시고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여 올려주세요.”

근접 전투술 : 1,930 / 6,500
원거리사격술 : 2,160 / 6,500
순간 집중력 : 1,820 / 6,500
예측판단력 : 1,960 / 6,500
감각능력 : 2,110 / 6,500
인지능력 : 1,900 / 6,500
반응속도 : 2,510 / 6,500
한계기량 : 6,500 / ----

사이오닉 크리스탈 보유 수량 : 1804 PC
변이 가능한 포인트 현황 : 18.04 Pt

“이게 제 능력치입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고개를 끄덕인 김진이 능력치들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적의 공격에 대해 직접적인 대응력과 저지율을 보여주는 근접 전투술.
대상에 대한 원거리 타격의 정확도와 치명타를 가늠하는 원거리 사격술.
특정한 상황이나 행동에 대해 얼마만큼의 집중도를 보일 수 있는지 나타내는 순간 집중력.
변수를 미리 헤아리고 짐작하여 앞으로의 상황마저 내다보는 예측판단력.
육감을 사용하여 주변 사물과 상황에 대해 정보를 습득하는 감각능력.
사물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고 그것을 응용, 이해하는 인지능력.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따라 얼마나 빨리 대처할 수 있는지를 보는 반응속도.
지닌바 재능을 가늠하고 일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한계기량.

모든 스텟을 확인한 그가 아이리스에게 물었다.

“포인트 변환율은 100분의 1입니까?”
“예. 본래 사람에게는 없는 이형생명체의 기운을 PMD를 사용해 억지로 주입하는 거니까요. 다수의 손실율은 어쩔 수 없습니다.”

뭐, 게임 내 설정이려니 한 김진은 고민할 것도 없이 모든 포인트를 예측판단력에 욱여넣었다.

“배분 끝났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이제 설정된 포인트를 실적용 시키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번 테스트는 완료될 것이오니 미리 축하드리겠습니다. 김진님은 이제 스페이스왈츠의 튜토리얼을 모두 완료하셨습니다.”

빵빵-하며 팡파레가 공중에서 터져나갔디.

“잠깐, 이게 끝입니까? 보상 이야기는요?”

“보상은 해당 세계의 화폐로 치환하는 걸로 결정하였습니다. 설혹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프로젝트W의 사이오닉 크리스탈로 변환하여 드리는 것도 고려해보겠습니다.”

음? 돈으로 준다고? 그럼 문제 될 건 없지.

“아니요. 굳이 크리스탈로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김진님이 거주하시는 해당 세계의 통상 화폐로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수령 방식은 김진님 전용 크레딧 카드가 파일럿님의 주거지로 전달되오니 수령하시면 되겠습니다.”

허, 전용 카드까지?
역시 거대기업은 배포부터가 남다르군.
감탄에 젖어있는 김진 앞으로 아이리스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고생하셨습니다. 파일럿님.”
“아, 예. 수고하셨습니다.”

김진이 마주 인사하자 아이리스가 옅게 미소 지으며 캡슐의 입구를 닫았다.

“그럼 사이오닉 전이 장치. 가동하겠습니다.”

그녀가 시스템을 조정하자 메가FX 때처럼 푸르스름한 용해액이 인조수조관에 서서히 차올랐다.
이내 캡슐의 반수를 채운 액체.
용해액이 목 언저리까지 이르자 김진이 눈을 감고 숨을 멈췄다.

꼬르륵-.
용해액을 따라 몽글몽글 맺혀 떠오르는 기포.
애써 숨을 참는 김진의 얼굴이 무척이나 애처롭게 보였다.
결국 1분도 버티지 못한 김진이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곤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푸핫-! 어?”

그러나 숨 막힘 같은 것은 없었다.
이미 인공호흡기가 김진의 얼굴에 부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이오닉 전이 장치가 아닌, 바로 메가FX에 있던 산소호흡기 말이다.
김진은 어느덧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