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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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클릭(Click) 전방에 배회하는 쿠쿨자 2개체 발견. 좌표는 9-1-4.
“……라져.”
뒤늦게 광학조준경으로 상대를 발견한 김진이 혀를 쯧 찼다.
이번에도 역시나 바루스가 먼저 발견해 낸 것이다.
자신은 조준경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적의 형체를 흐릿하게만 포착할 수 있었는데, 바루스는 적이 보이는 족족 발견해대고 있었다.
“마세라티의 시야 범위가 대체 몇 클릭입니까? 기체 성능만 따지고 보면 도저히 5티어 기체로는 보이지 않는데요.”
프로젝트W에서 사용하던 자신의 전용기체.
스타시커조차도 최대 시야가 고작 8클릭인 것을 감안하면 바루스의 기체성능은 실로 비상식적이라 할 수 있었다.
김진이 툴툴거리며 스나이퍼 라이플을 꺼내 발사하였다.
한두번 해본 솜씨는 아닌 듯한, 깔끔한 조준사격.
소리소문없이 단 두 방으로 쿠쿨자를 섬멸한 김진이 다시 속력을 높였다.
-원오프모델이니까. 양산형기보단 단일기종이 더 우수한 건 당연하지. 게다가 세로이져는 고작 4티어잖나. 마세라티와 성능이 같다면 오히려 안 될 말이지.
당연하다는 듯 한 바루스의 어조에 김진이 내심 입술을 삐죽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차이가 너무 현격하지 않은가.
마세라티와 비교하자면 세로이져는 눈 뜬 봉사와 다를 바 없는 처지였다.
아무리 기체성능이 차이 난다고 하지만 평상 시야와 조준 시야가 거의 동일한 거리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싶었다.
PvP였다면 마세라티를 조준키도 전에 융단폭격 당해 침묵 당했을 터.
말로는 1단계 차이라지만 실상은 거의 2티어 차이가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나마 김진이 조준사격 면에서 더 뛰어나지 않았다면 아예 활약할 기회조차 없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오히려 자네의 사격 실력이 더 신기하다네. 딱히 유도탄도 아닌데 이 거리에서 쏘아 맞히다니 말이야. 여기서는 자동조준장치도 인식하지 못하는 거리지 않은가. 자네 혹시 전용 병과가 스나이퍼인가?
바루스가 감탄한 듯이 물었으나 김진은 별 감흥도 없는지 덤덤하게 답했다.
“딱히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기체가 기체다 보니 사격 위주의 무장일 뿐입니다. 오히려 사격술보다는 근접전투를 선호하는 편이죠.”
스타시커였다면 적들 베는 맛을 만끽하며 종횡무진 누볐겠지만, 현재 타고 있는 기체는 그 무엇도 아닌 세로이져였다.
살짝만 스쳐도 최소 반파에 이르는 종이 장갑으로 일선에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상황을 일부러 자처하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포트레이트 너머로 바루스가 의미심장하게 턱을 쓸어 넘겼다.
“그보다 적과 조우하는 간격이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이 정도 수치면 거의 접경지역과 맞먹는 분포도인데요.”
사이오닉을 채취하는 수집 장치를 쏘아 보내며 김진이 말을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주정거장이 무사하겠습니까?”
-……무사하길 바라야겠지.
바루스가 진중하게 답하였다.
하긴. 임무를 위해서라도 제발 그래 줬으면 좋겠다.
첫 번째 임무부터 실패한다면 보상은 물 건너가니까 말이다.
-속력을 더 높이세.
그 순간 통신패널에서 한차례 비프음이 울렸다.
삐빅-!
[식별 코드 메이데이]
패널에 떠오른 한줄기 붉은 글자.
“이건!”
외치기가 무섭게 바루스가 부스터를 가동하며 쏘아져 나갔다.
김진도 따라 부스터를 내뿜으며 급히 바루스를 뒤쫓았다.
-10클릭 전방. 적과 교전하는 수송선 발견! 먼저 돌입하겠다!
2단계 부스터까지 개방한 마세라티가 쏜살같이 전장으로 난입하였다.
그 빠르기에 혀를 내두른 김진은 일단 침착하게 상대 측 수송선을 향해 통신망을 연결하였다.
“통신 코드 전송. 코드 번호 세로이져. 통신을 요청한다.”
[통신 코드 전송. 수신 중-. 통신망이 연결되었습니다.]
반응은 즉각 왔다.
“메이 측 파일럿입니다. 긴급구조신호를 보고 왔습니다. SS-412 승무원 맞습니까?”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예, 맞습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았다는 기쁨 때문인지, 상대가 격하게 반응하였다.
일단 SS-412측 승무원임을 확인한 김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도 적들이 우주정거장을 점거하기 전에 빠져나왔나 보다.
이대로라면 첫 번째 임무는 무사 클리어로군.
“신원 확인 완료. 상황이 위급한 관계로 구조 활동부터 수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귀선 측은 방어에만 전념하시길.”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통신을 끊은 김진이 양손에 대인용 캐니스터 산탄총과 60mm 가변형 개틀링을 나란히 들었다.
어깨에 달린 볼트 미사일까지 모조리 개방한 뒤 속력을 높인 김진.
마세라티와 수송선이 있는 곳을 제외한, 전 방위를 타겟으로 잡은 뒤 세로이져가 가진 화력을 모조리 꺼내 보였다.
사탕수수에 모여든 개미 떼를 잠재우기 위해선 물 한 동이가 즉빵인 법이다.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최초 격발을 신호 삼아, 양손을 높이 든 김진이 산탄총과 개틀링을 연신 쏘아대기 시작했다.
새까맣던 우주가 예광탄 불빛에 의해 순식간에 색색들이 물들었다.
볼트 미사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우주를 수놓았다.
끼에엑-!
급작스런 측면 공격에 뒤통수를 허락한 쿠쿨자들이 점액을 뿌리며 우후죽순 떨어져 나갔다.
굳이 조준할 필요도 없는 상황.
어디를 향해 쏘던 반드시라고 할 만큼 적들이 명중하고 있었다.
그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숫자에 기겁할 만도 했건만 김진은 오히려 현 상황에 대해 기뻐하고 있었다.
“이게 다 내 포인트라는 거지!”
그에겐 이미 쿠쿨자란 존재는 포인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수송선의 보호는 바루스에게 내맡긴 체, 김진은 적들만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였다.
어차피 적의 섬멸이 곧 승무원의 보호로 직결되는 상황이었으니 굳이 탄을 아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이목을 끌면 끌수록 상대적으로 수송선의 안전은 더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기저 밑에 깔려있었다.
김진이 활개를 치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쿠쿨자들이 자극을 받았는지 세로이져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쿠쿨자들이 김진을 향해 집중포화를 쏟아냈다.
수만 개의 산성 구슬이 세로이져 하나만을 노리고 발사되었다.
푸슛,푸슈슛-!
산성 포자가 유성우마냥 떨어지며 세로이져를 에워쌌다.
당하는 입장만 아니었더라도 필히 장관이라 감탄했을 일제 공격.
그러나 막상 대상이 된 김진에겐 그런 감상조차 허락지 않았다.
쿠쿨자들이 세로이져의 퇴각로를 원천봉쇄하며 길을 막았다.
도망칠 장소조차 허용치 않는, 적들의 대공세.
위기라 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김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그에 굴할 김진이었다면 A급 파일럿이라 할 수조차 없는 일!
전장을 훑어보는 김진의 눈이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였다.
어느 공격이든 찰나의 틈새는 있는 법.
뇌내 시뮬레이션을 가동하여 포자와 포자 사이의 딜레이까지 계산에 집어넣은 김진이 허용치 이내의 회피루트를 물색하였다.
“여기다!”
연산을 끝낸 그가 곧장 행동에 돌입했다.
조종간을 끌어올린 김진이 80mm 빔 캐논을 발사해 전방 시야를 확보하였다.
그야말로 순식간.
빔 캐논이 만들어준 찰나의 틈 세를 노리고 세로이져가 쏘아져 나갔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포위망을 뚫기가 힘들 것임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화려한 조종술.
진로를 방해하는 산성 포자들을 산탄총으로 제거함과 동시에, 덮쳐드는 쿠쿨자를 피해 회피기동 하며 개틀링을 난사했다.
심지어 쿠쿨자가 쏜 산성 포자를 되려 적군 쿠쿨자를 방패로 삼아 공격을 무마시키기도 하였다.
최대한 피격 각을 줄이기 위해 쿠쿨자 무리로 들어간 김진이 지그제그로 기동하며 사방으로 개틀링을 휘둘렀다.
일부러 난전을 유도해서 포위망을 흩트려놓은 것이다.
물론 적진의 한복판이었으니 안전하였을리는 만무!
그럼에도 세로이져는 단 한 차례의 피격조차 허용치 않으며 쿠쿨자들을 되려 압박하였다.
불과 한기의 기체가 만들어낸 활약이라고는 쉬이 믿기 힘든 장면.
덮쳐드는 쿠쿨자의 등 갑판을 잡아 뜯어내 방패로 삼은 김진이 포화속을 뚫고 직진돌파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쿠쿨자의 등갑판 조차도 수십에 이르는 산성 포자를 버텨내진 못하였다.
금방 너덜너덜해진 방패의 모습에 서둘러 다른 쿠쿨자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한 손에는 게틀링을, 다른 한 손에는 새 등갑판을 쥔 세로이져가 적진을 뚫고 날아올랐다.
“좋았어!”
이내 쿠쿨자의 포위망을 완벽하게 벗어난 김진이 희열을 담아 내뱉었다.
전세역전.
김진이 무리의 외곽을 빛살과도 같이 선점하였다.
지금껏 쥐새끼처럼 몰이 당한 것을 앙갚음삼아 김진이 화풀이하듯 볼트 미사일을 개방했다.
“죽어버려!”
수십 발의 볼트미사일이 분무기 뿌리듯 사방으로 비산했다.
끼에엑!
여기저기서 붉은 화염구가 터지며 쿠쿨자들의 수가 점차 줄어가고 있었다.
삑! 삑!
순간 코크피트 내부에 비프음이 울리며 무기 패널에 경고등이 떠올랐다.
[볼트 미사일 잔탄 수 : 0 ]
어느덧 400여발에 달하는 볼트 미사일 두 박스를 모두 소모했음을 깨달은 김진이 낮게 혀를 찼다.
전투에 열중한 나머지 탄약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신기에 가까운 전투술로 반수에 달하는 수를 제거하였으나, 아직도 그만큼의 쿠쿨자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진절머리 날 정도로 많은 수에 김진이 일순간 안색을 찌푸렸다.
이제 사용 가능한 잔탄은 가변형 개틀링 240발과 캐니스터 산탄총 60발이 끝이었다.
그 외에 남은 것은 80mm 빔 캐논과 스나이퍼 라이플 한 정, 접근전을 대비한 빔 소드 한 개가 전부.
물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쿠쿨자를 상대할 수는 있었으나, 조금 전처럼 대량 학살이 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포인트는 이미 많이 획득하였으니 이제부터라도 수송선 보호에 집중할까 고민하던 참에 바루스 쪽에서 거대한 파동이 감지되었다.
“뭐지?”
의아함에 마세라티를 쳐다보는 순간.
쿠와아아앙!
거대한 사이오닉 빔이 쿠쿨자들을 휩쓸었다.
태양빛에 그림자가 삼켜지듯, 마세라티가 쏘아낸 섬광이 쿠쿨자들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거대한 일격.
지직-,지지직!
저릿한 감각이 여기까지 전해져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쟁터를 방불 캐 하는 공간이었건만, 이제는 태풍이 한바탕 휩쓸고 간 지역처럼 고요함만이 감돌았다.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적의 존재에 김진이 입을 떡 벌렸다.
맙소사. 저건 대체 무슨 무기지?
김진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마세라티를 바라보았다.
저런 위력의 무기는 프로젝트W에서조차 본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