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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헤젤 발리츠
이카루스의 의료팀에 있던 헤젤 발리츠는 메카닉팀으로 차출되었다. 외과 의사인 그의 최근 일은 클론들의 생체 신호를 분석하는 일이었다. 클론들은 심하게 손상을 입으면 치료 대신 파기를 하던 터라 그의 일상은 적당히 한가한 편이었다. 완전히 사람처럼 보이는 환자를 외면하는 것이 유일하게 힘든 일이었다.
앤슨 클라크는 몇 개의 같은 화면을 계속 돌려보고 있었다. ESP 기술로 빅화이트를 만들긴 했지만, 문제는 필요한 ESP 수치가 너무 컸다. 이카루스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조사하였으나 유일하게 헤젤 발리츠만이 가능한 후보가 될 수 있었다.
“헤젤 발리츠입니다.”
앤슨과 마주한 헤젤은 짧게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앤슨 클라크입니다.”
앤슨 역시 짧게 소개를 하고 살짝 웃었다.
“우리는 지금 빅화이트라는 머신을 만들고 있어요. 사실 거의 완성을 했는데…. 문제는 파일럿을 못 구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군인이시거나 특별히 이런 쪽으로 훈련을 받으신 분은 아니라서 망설이긴 했습니다만. 이번 경우에는 좀 특이한 경우라서요. 사실 선생님이 아니면 이 머신에 탑승할 수 있는 사람이 적어도 이카루스 안에는 없거든요. 그래서 부탁 아닌 부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헤젤은 미간에 주름을 만들고 앤슨을 응시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먼저 서류 쪽으로 눈을 피한 것은 앤슨이었다.
“그러니까 저희가 ESP를 측정하는 기계를 만들었다는 것은 아시죠? 의외로 모든 사람은 이 반응을 가지고 있더군요. 그 후로 저도 초능력을 쓸 수 있나 거울 보고 손바닥을 뻗어 보기도 했습니다만. 거미줄은 안 나오더군요.”
앤슨의 둘러대는 듯한 말에 헤젤은 미간의 주름만 더욱 깊게 할 뿐이었다.
“그래서 평균적인 사람의 수치를 1로 하고 모두를 측정해서 자료를 만들었는데…. 우리 중에서는 선생님만이 유일하게 11이라는 수치를 기록하였습니다. 이 정도 숫자는 뮤턴트 능력자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숫자입니다. 선생님은 정말 거울을 보고 거미줄을 쏘는 게 가능하실지도 모릅니다. 저는 정말 그런 슈퍼히어로가 있다고 어릴 적에 꿈을 꾸곤 했거든요.”
앤슨은 자기 말에 스스로 흥분하는 기미마저 보였다. 헤젤은 이야기가 터무니없게 흘러간다고 느껴져서 중간에 말을 끊기로 했다.
“그래서 저만이 빅화이트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앤슨은 손톱으로 책상을 두들기며 말을 했다.
“그렇지만 저는 전투에 대해서 모를뿐더러 더군다나 기계를 운행해서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건 상상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마치 우주선이나 전투기를 조종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요?”
헤젤은 그렇게 대답하다 실소가 살짝 터졌다.
“지금 시작하면 제가 환갑 때에는 가능하겠네요?”
헤젤은 진심으로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대답했다. 앤슨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그 점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가 만든 빅화이트는 기존의 기계와는 다릅니다. 저희가 사이키메탈 링크라는 것을 개발했거든요. 이것은….”
앤슨의 말은 빨라졌고 어려운 용어들이 난무했다.
빅화이트는 이카루스에 두 대 밖에 실려 있지 않은 ‘스페이스 로더’를 기초로 만들어졌다. 우주에서 이카루스의 손상을 수리하거나 화물을 운반하는 용도로 만들어졌던 이 로봇은 유사시에는 무장을 탑재하여 이카루스의 호위 임무를 겸할 수 있었다. 이미 한 차례 ‘배틀 로더’로 개조되었던 ‘스페이스 로더 마크1’은 ESP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각 부분의 관절을 싸이키메탈 링크로 대체하였다. 조종자는 이 싸이키메탈 링크를 통해서 빅화이트의 관절과 센스를 자신의 감각처럼 느끼며 조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랬다.
헤젤은 수다스럽기까지 한 이 과학자의 말이 신빙성 있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 외에 대안이 없다는 설명에 쉽사리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100, 메카닉팀이 계산한 빅화이트의 싸이키메탈 링크를 완전히 장악해서 움직이는 데 필요한 ESP 지수였다. 아무리 계량을 해도 현재로써는 그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런 지수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지금까지 측정했던 어떤 뮤턴트 능력자도 그 정도 지수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헤젤 발리츠는 메카닉팀의 부스트 실험 장치에 앉아 있었다. 둥근 금속의 방 가운데 덩그러니 의자가 놓여 있고 헤젤 발리츠의 팔과 다리는 의자에 결속되어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고문 장치처럼 보이기도 했다. 헤젤 발리츠의 지친듯한 표정이 더욱 그렇게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헤젤 발리츠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침을 한번 삼켰다. 둥근 방의 반 정도는 유리 벽으로 되어 있고 유리 벽 너머로 두 남자가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앤슨이었다.
“ESP를 부스트 하는 건 피드백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라서 이론적으론 무한히 증폭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도 2배 이상의 부스트는 안정화가 안 되는군. 여전히 부스트 후 생체신호들이 너무 불안정해.”
고어 하댄은 앤슨 클라크가 서 있는 공간 약간 앞쪽의 콘솔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앤슨 클라크와 헤젤 발리츠를 번갈아 한 번씩 보고는 모니터로 몸을 가까이하며 말을 이었다.
“같은 부스트 강도에서도 생체 신호가 다시 정상화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ESP 부스트가 발리츠의 신체와 정신에 누적되는 손상을 주는 것 같습니다.”
앤슨은 헤젤 발리츠의 숙어진 고개와 모니터를 쳐다보고 테이블에 팔을 짚었다. 그리고 힘없이 말을 뱉었다.
“우리는 그를 10배까지 견디게 만들어야 하는데….”
고어 하댄은 콘솔을 조작하며 말을 이었다.
“피드백에서 ESP 에너지로 이용되지 않는 파장 부분을 줄여보고 있습니다. ESP 피드백을 견디는 약물도 의뢰 중입니다만 이 일에 대해서는 생명공학팀의 협조가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그 녀석들은 클론 프로젝트를 지지하고 있으니까요. 지난번 약물도 크게 효과는 없었습니다.”
앤슨 클라크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클론쟁이 녀석들은 빅화이트를 실패시키려고 해, 클론을 만드는 건 쉬운 대안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 클론들의 정체성은 도대체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될지도 몰라.”
앤슨 클라크의 마지막 말은 혼잣말처럼 잦아들어 잘 들리지 않았다. 고어 하댄이 말을 이었다.
“클론 지지파 녀석들은 이미 광산에서 클론을 로봇이나 기계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클론 수가 늘어나면 전쟁을 시도할지도 모릅니다.”
앤슨 클라크는 잠시 숙였던 고개를 들어 고어 하댄과 눈을 마주쳤다. 이카루스는 클론의 생산을 허용하긴 했지만 그 숫자는 의회에서 제한하고 있었다. 군대를 이룰 만큼 대량의 생산은 매번 끝없는 논쟁으로 빠져들어 결론이 나지 않고 있었다. 빅화이트가 성공한다면 클론 군대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살자고 원주민과 전쟁을 하자는 건가?”
고어 하댄은 얼굴을 약간 굳히며 짧은 숨을 들이쉬었다.
“조금 불안정하더라도 한 번의 데모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 후로 보완을 하거나…. 아니면 다시는 쓸 일이 없기를 기대해 보는 거죠.”
앤슨 클라크는 눈을 깜빡이지 않고 고어 하댄을 잠시 응시하다 유리 벽 안의 헤젤 발리츠를 보았다.
“위험하기는 우리 쪽도 마찬가지야 기계덩어리 하나를 움직이자고 저 사람을 너무 괴롭혔어.”
헤젤 발리츠는 숙여 있던 고개를 들어서 목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앤슨 클라크와 눈을 마주쳤다. 앤슨 클라크는 자기 앞의 모니터에 눈길을 떨구며 혼잣말을 했다.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