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혁명공화국 긴급명령 제34-2호


① 화성혁명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② 화성혁명헌법의 개정철회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③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④ 전 1, 2, 3호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한다.

⑤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⑥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화성혁명헌법 제41조(수령의 긴급조치권)에 따라 국가 위기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위와 같이 긴급명령을 발한다.


화성혁명력 19년 10월 1일


수령 명호





*


 화성혁명력 10월 1일, 최종하는 아침부터 무기력하게 그의 집무실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의 공민권 카드가 먹통이 된 것은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잠금장치의 패드에 카드를 접촉시켜, 비밀번호를 입력해도 주홍빛 오류불빛만 들어올 뿐 열리지 않았다. 문이 고장난 것인가 싶어 관리실로 전화를 걸어 문을 열어줄 것을 요구해도 관리실의 동무로부터 온 대답은 기계장치에 이상이 없으며, 전산오류인 것 같으니 기다려 달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렇게 시간은 정오를 지나 점심시간이 절반 이상 지나가고 있었고, 항온항습장비도 작동하지 않아 최종하는 땀에 젖은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그의 동료들이 와서 자신들의 공민권 카드를 외부 개폐기에 인식시켜 문을 열어주려 했으나, 무엇도 동작하지 못했다. 서서히 폐쇄공포증인지 또는 또다른 최후에 대한 공포인지 모를 공황이 들이쳤다.


 그는 마지막을 예감하면서 자신의 집무실을 되돌아보았다.


 그의 판사 집무실 벽에는 쥴리앙 뒤프레의 농민 그림이 고해상도로 출력되어 전시되어 있었다. 파랗고 품이 넓은 작업복을 입은 농민 여인이, 품 안에 자신의 몸만큼 큰 건초 더미를 껴앉고 부산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얼굴에는 마치 감정이 없는 듯 즐거움도 슬픔도 명확하지 않은 묵묵한 고행자의 무감정함이 담겨있다.


 그는 이 그림이 좋았다. 미술전문가들의 평가가 박하더라도, 진정한 명화란 자신에게 감동을 주는 그림이라고 그는 믿었다.


 농민들 자신들에게 농사란 평범한 일상이다. 그리고 거기에 특별한 흥겨움이나 숭고함, 신성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전원생활에 덧씌워진 그 불명확한 낭만적 색체의 모습은 사실 룸펜과 사회주의 성향의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환영이다. 농민의 모습을 특별히 더 이상적이거나 특별히 더 추레하게 그리지 않은 점이, 동시대의 밀레 등 다른 인상파 화가들보다 쥴리앙 뒤프레의 그림을 그가 좋아하는 이유이다.


 판사란 이처럼 세상을 선입견 없이, 눈을 가린 법과 질서의 중재자처럼 있는 그대로 살펴야 된다고 그는 믿어왔다.


 그 생활이 이제는 끝장나는데, 그 끝장나는 것은 이런 소명의식을 가지고 현실문제로부터 거리를 두던 그가 처음으로 혁명가처럼 문제의 근원으로 뛰어든 이후 발생한 사안이다.


 처음으로 그가 자기 자신에게 세워둔 울타리를 넘어보았는데, 그 결과가 참으로 참담하다.


 최종하의 마음에 잠시, 오늘 0시 부로 발표되고 즉시 시행되었던 긴급조치안에 대한 안내문이 떠올랐다. 그의 단말기에도 그 메시지가 올라왔는데, 아직 어떤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지 않았고 행동도 없으며 동료도 모으지 않은 그에게 어떤 불이익이 가해질 것이라고 여기지 않은 자신은 머저리였다.

 그러나 지금와서 할 수 있는 조치가 무엇이 있단 말인가.


 따라서 그는 개폐되지 않는 문에 대해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왔다. 디스플레이에 띄워진 판결문 초안과 각종 사건자료를 대조해 보면서 잠시 몇 번 혀를 찬 뒤 따듯한 홍차를 들이켰다. 마음이 한 결 편해졌다.


 최종하가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자 곧, 콘크리트 벽 너머로 이어지는 좁은 복도를 타고 부산스러운 발소리가 들린 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는 문 너머에서 노크소리와 함께 그를 부르는 공손한 젊게 느껴지는 여성의 물음이 이어졌다.


 “최종하 법관님, 계십니까?”

 

 낯설고 사무적인 목소리였다. 그 때서야 비로소 최종하는 그가 거주모듈 밖으로 나갈 때 입어야 되는, 벽에 걸린 생명유지장치 슈트를 바라보았다. 생명유지장치 보관함과 충전장비는 붉은빛이 들어와 사용불가 표시가 나와 있었다.

 그의 공민권이 박탈된 것이리라.


 “네, 최종하입니다. 누구십니까?”


 “보위부입니다. 긴급명령 위반에 따라 판옵티콘의 지휘 아래 체포를 집행하러 왔습니다. 화성혁명헌법 제41조에 근거해 체포영장 심사는 생략되었습니다. 화성혁명력 19년 10월 1일 14:45 현 시간 이후 상황은 녹화되고 녹음됩니다.”


 거주모듈의 출입구가 열리자, 두텁게 턱수염을 기르고 흙빛의 보위부 모자를 눌러쓴 나이든 보위부 간부와 보위부의 젊은 장교로 보이는 머리를 뒤로 묶고 밤색 눈빛을 가진 선이 가느다란 여성이 경례했다. 그들 허벅지의 권총집에 매달린 신식 화성형 권총이 눈에 띄었다.


 “가족들에게 제가 어디 잠시 다녀온다고 말을 전해도 됩니까?”


 “안됩니다. 죄송합니다. 그 내용은 저희가 전달하겠습니다. 체포영장 집행과 수색에 협조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손을 내밀어 포승줄에 포박되면서, 최종하는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주현 수령의 어록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아, 이 죽음과 되살아남을 반복하는 지옥 같은 혁명가의 영혼.'

 

*



 명호 수령은 홀로 드넓은 수령 집무실에 앉아 마호가니 책상 앞에서 붉은 와인잔을 느리게 기울이고 있었다. 그의 앞에 펼쳐진 게오르그 유(George Yu)의 『21세기의 법철학』의 페이지는 다음과 같은 글이 담겨 있었다.


 ‘물질조건의 양적 상승은 마르크스 유물론적 변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질적 변혁의 계기가 된다. 그 시점이 언제일지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으며, 이 시기를 안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은 사기꾼이다. 그러나 이 물질조건의 특이점이 온다는 사실. 그 하나만큼은 누구도 뒤집을 수 없는 진실이다. 어쩌면 이는 핵전쟁을 두려워하며 이를 시한폭탄처럼 여기던 이전 시대에 전사해버린 과학자들과 국제정치 무대의 명사들의 걱정보다 더 필연적인 향방인 것이다. 그 날은 범용인공지능이 등장하는 날이다.’


 명호는 긴급명령을 발하기 전에 그 타당성을 판옵티콘에게 물어보았다. 사전검토에서 판옵티콘은 뜻밖의 역제안을 걸어왔다. 그것이 그가 지금 긴급명령을 진행하고도 마음을 편히 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였다.


 명호는 마호가니 책상에 내장된 마이크로폰을 통해 판옵티콘에게 물었다.


 “인민의 의지란 무엇인가?”


 화성에서는 공산당과 수령의 혁명지도권에 기반한 혁명정부로, 지구에서는 국민의 의지를 대리하기 위해 투표로 구성된 민주주의 정부라는 의사결정기관으로 나타나는 이념의 근간은 결국 인민의 의지이며 역사 변혁의 에너지가 인민으로부터 나옴을 뜻한다. 수많은 미사어구를 덧붙이더라도 결국 이는 인민의 의지에 대한 무한하고 경이에 찬 존중심을 근원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판옵티콘이라는 완벽한 존재, 범용 인공지능의 눈으로 볼 때에도 결함으로 가득차고 위선과 속임수로 하루 하루를 연명하는 인민의 의지에 그런 고귀함이 보일까.


 잠시 후 그의 휴대 단말기 위로 판옵티콘의 답변이 도착했다.


 [Panopticon: Dear Supreme Leader, the will of the people has hundreds of heads. I can show you a painting I created. All of them are beheaded. One of them was a head of a populist, another one was a head of a conscient inmate, and one was that of a cold blooded dictator like you.]

 [판옵티콘: 친애하는 최고수령 동지, 인민의 의지는 수백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네. 여기 내가 묘사한 그림을 보게. 그리고 그 모든 머리는 참수당했네. 그중 한 머리는 포퓰리스트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양심수의 목일세, 그리고 여기 이 머리는 당신과 같은 냉혈한 독재자일세.]


 판옵티콘의 그림에는 수백개의 뒤틀어진 입과 눈, 코, 그리고 머리를 가진 붉은 괴물이 그러져 있었다. 그 밑으로 역시 그 보다 많은 수의 머리가 떨어져 핏기 없이 창백하게 눈을 감고 있었고, 머리가 잘려나간 자리에서는 또다른 새로운 어린 머리가 자라나고 있었다.

 소름끼칠만큼 인간적이고 신랄한 이 판옵티콘의 답변에 놀란지도 이제 오래이다. 판옵티콘의 범용인공지능은 상상 이상으로 발전히여 수령의 자리에 취임하고 판옵티콘과 직접 교신이 가능해진 뒤 두려움과 공포도 이제는 없어졌다.

 와인을 다시 잔에 채우며 명호가 판옵티콘에게 말했다.


 “신화 속 괴물 히드라에 대해 알아보게나. 그림을 개선할 여지가 보이는군. 판옵티콘, 당신의 그림은 도형적이고 프렉탈적이지만 인간성은 결여되어 있어. 애초에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겠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히드라의 모습을 띄워 보게. 그래! 역시 인민의 의지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야. 그건 신화속의 괴물이지. 수많은 이름으로 등장하고 악당도 선한 사람도 자신의 행동의 근거를 인민의 의지에서 불러온단 말이지.”


 명호는 취기에 쌓여 즐겁게 중얼거렸다. 판옵티콘의 그림이 마음에 들어 그 그림을 다운받아 단말기에 저장해 두었다.


 판옵티콘은 마치 악마와 같이 정돈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절대적 객관화를 추구하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명호 자신과 닮은 측면이 있었다.


 현대 사회는 헌법상 권력집단이 대리하고 있는 감춰진 인민의 의지가 이런 괴물이 아닐 것이라는 희망적 전제하에 굴러간다. 혹여나 권력집단이 부패하고 추악한 일을 벌이고, 국익을 배신할 때조차 인민의 의지 만큼은 순수하고 아름답다는 환상을 간직한다.


 “‘인민의 의지는 사회주의적 세상의 진보. 보다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위대한 의지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인민의 의지의 이름으로, 나는 오늘 양심적인 법관 하나를 살해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자신의 내면을, 폭풍처럼 몰아치는 감정을 관조하는 사람과 감정의 부침에 휩쓸려 밖으로 스트레스를 표출하고 타자에게 해소하기 바쁜 사람. 대중은 후자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이며, 유능한 정치인은 인신공격으로 정적을 중상모략 하는데 능하여 이런 대중을 선동한다. 대중이란 끝없이 희생제물, 순결한 아이의 피를 요구하는 동굴 속에 사는 전설의 괴물과 같아 갈구하는 바에 맞추어 어린양의 경동맥을 그어 선물하면, 그 포만감으로 만족스런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날 밤 명호는 꿈을 꾸었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영상으로만 접해본 지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