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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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트헨 >>
Gretchen
1
"어떻게 된 일이야? 온통 헝클어졌잖아? 달리기라도 한 거야?"
엉망으로 흐트러진 사촌의 긴 금발을 단정하게 땋아주면서 그레타가 물었다.
"아냐, 그냥...... 정말 아무것도 아냐."
순진한 그레트헨은 황급히 얼버무리려 했지만 그레타의 눈썰미를 피할 수는 없었다. 촉촉한 그녀의 뺨은 눈에 띄게 붉어져 홍당무가 되어 있었고, 맥박도 어딘가 정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레타는 사촌의 시골 처녀답지 않게 고운 머리카락을 뽑히지 않을 만큼 슬쩍 잡아당기며 다시 추궁했다.
"나이드신 네 엄마는 그냥 넘어가실지 몰라도 내겐 안 통해. 살짝 말해봐. 왜 그렇게 흥분했어?"
"아야, 알았어, 잡아당기지 마. 실은 말이지......."
주저주저하며 그레트헨은 자기가 앉은 의자 뒤에 서서 솜씨좋게 머리를 땋아주는 사촌에게 얘기를 꺼냈다. 거의 소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묵묵히 듣고 있던 그레타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잘생긴 신사?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널 붙잡았다고?"
"글쎄 날 '어여쁘신 아가씨'라고 부르면서 집에 데려다 주겠다지 뭐니."
"그래서 넌 어떻게 했는데?"
"너무 놀라서 '난 어여쁘지도 않고 아가씨도 아니에요. 혼자 갈 수 있어요'라고 말하곤 냅다 달렸지. 근데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좀 후회되는 거 있지."
머리를 거의 다 땋은 그레타가 파우더를 집어들며 장난스럽게 이죽거렸다.
"왜, 네가 꿈에 그리던 왕자님이 나타났는데 모르고 걷어찬 것일까봐?"
"놀리지 마. 난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한번 흘낏 보기만 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굉장히 믿음직하고 잘 차려입은 분이었어. 분명히 좋은 집안 출신일 거야. 그 훤칠한 키에 널찍한 이마만 봐도 알 수 있다구.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대담하게는 못했을걸."
파우더를 사촌의 목덜미에 정성들여 뿌려주던 그레타의 손이 갑자기 멈췄다.
"얘가 이제보니 단단히 홀렸나 보네. 제발 정신차려라. 네가 예쁘고 착하니까 지나가던 아무 남자나 그렇게 수작을 걸어온 게 어디 한두 번이었니? 잘 차려입은 녀석일수록 사기꾼이 많은 법이라구."
그레트헨은 목을 쑥 내밀고 샐쭉한 표정으로 사촌을 돌아보며 불평했다.
"넌 너무 세상 일을 어둡게 보는 게 탈이야. 조금은 밝게 생각하는 게 어때?"
"내 말은 조심해서 나쁠 거 없다는 소리야."
"네이, 어련하시겠사옵니까."
이번에는 그레트헨이 빈정거리는 투로 말을 받았다. 그레타는 뭔가 한두 마디 더 하려 했지만 골이 난 그레트헨은 손질이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서서 뒷마당 쪽으로 나가버린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레타의 눈매가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뒤따라나가려고 하는 순간, 덩치 좋은 신앙인인 그레트헨의 어머니가 그녀를 불러 시장으로 보내는 바람에, 더이상 물어볼 수는 없었다.
2
하루 일과가 대충 끝나고 날이 조금씩 어둑어둑해지는 시간. 그레타는 심부름을 마치고 숙모가 사는 작은 집에 돌아와서 한숨을 내쉬며 현관문을 열었다.
그녀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아까의 이야기가 마음에 걸려서이기도 했지만, 자기가 한 말로 인해 그레트헨이 상처를 입은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집에 있다면 솔직하게 사과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다시 확인해야 했다. 이웃의 슈베르트라인 부인 말로는 요새 며칠 동안 외지에서 온 듯한 수상한 두 남자가 자주 이 근처에 얼씬거린다고 하니, 그녀가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숙모와 사촌도 일을 나간 듯,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아무도'라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었다. 주인이 없는 건 확실했으나 누군가 다른 자가 있었다. 그레타가 램프에 불을 붙이자 그들의 윤곽이 보다 또렷하게 드러났다.
"......................?"
그들의 거실이자 침실이고 주방이기도 한, 자그마하고 깨끗한 방 안에 처음 보는 두 남자가 서 있었다.
한 명은 30대쯤 되어보이는 잘생긴 얼굴의 훤칠한 청년으로, 옷차림은 제법 화려했지만 얼굴에는 낭패스런 표정이 떠올라 있었고, 또 다른 한 명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우울하면서도 짓궂어 뵈는 얼굴의 호리호리한 사내로, 손에는 기타를 들고 있었고 옷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두 번째 사내는 동행인과는 달리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은 특별히 없었다. 오히려 '이거 재미있게 되어가는군'이라고 말하듯이 장난스런 웃음까지 지어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들은 누구죠? 여길 어떻게... 허락도 없이?"
두 사람이 난감한 얼굴로 그녀 쪽을 바라보다가 뭔가 말하려 한 순간, 그들이 바로 장롱 앞에 서 있는 것을 알고 그레타가 소리질렀다.
"도둑이야! 강도야! 누가 좀 와 줘요!"
그녀는 두 남자가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알고 방 밖으로 재빨리 뛰쳐나가 문을 밖에서 잠그고 이웃집을 향해 더 크게 소리질렀다. 그 소리를 듣고 몇몇 사람들이 달려오자 그녀는 문을 열고 그들과 함께 힘차게 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집 안에는 쥐새끼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았다.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창문이나 뒷문으로 도망친 걸지도 몰라요!"
"하지만 전부 안에서 잠겨 있는데?"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바닥을 잘 보세요."
"어어 진짜네. 모래 위에 흙발자국이 나 있어. 두 사람씩이나."
집안을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바닥에 깔아놓은 하얀 모래 위에 확실히 그 집 사람의 것일 리는 없는 발자국이 두 개 나 있었다. 그러나 그 발자국들은 사방팔방으로 우왕좌왕하다가 갑자기 창 쪽으로 다가가더니 창 밑에서 뚝 끊겨 있었다. 물론 창문은 안에서 단단히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고 거기에 더하여 나무로 만든 작은 덧문까지 닫혀 있었다.
아무리 궁리해 봐도 제대로 된 해답이 나오지 않자 지쳐버린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집으로 돌아갔고, 그레타 혼자만이 그 의문의 발자국을 앞에 두고 이맛살을 찌뿌리고 있었다. 이윽고 숙모와 사촌이 돌아오자 그레타는 일단 그들에게 사실을 이야기하고 장롱 안에서 없어진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권했다.
"아니, 별로 없어진 건 없나본데.... 어라, 이게 뭐지?"
숙모가 집어든 것은 흑단[黑檀]으로 만들어진 작은 상자였다.
"세상에! 값진 보석이 잔뜩 들어있어요. 순금 팔찌, 루비 목걸이, 홍옥이 박힌 반지까지... 어떻게 된 일일까?"
"숙모님께서 돈을 빌려주면서 담보로 잡으신 건 아닌가요?"
"아니야 마기, 내 기억으로는 그렇지 않아. 이건 생전 처음 보는구나."
사실 두 소녀의 이름은 똑같은 마르가레테Margarete였지만, 구별하기 위해서 몇 가지 다른 이름을 쓰고 있었다. 이 집의 안주인께서는 금발인 자기 딸은 그레텔Gretel, 갈색머리인 조카는 마기Magi라고 불렀으나, 이웃들은 딸을 그레트헨Gretchen, 조카를 그레타Greta라고 불렀고, 본인들도 이쪽을 더 좋아했다.
이야기로만 듣던 보석이 눈앞에 한줌씩이나 쌓여있는 걸 본 그레트헨은 깡총깡총 뛰면서 자기가 갖게 해 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숙모는 엄한 얼굴로 말했다.
"마기의 말이 맞다면 이건 아까 여기 숨어들어온 수상한 자들이 놓고 간 걸게다. 장물이나 밀수품일지도 몰라. 게다가 왠지 이 상자에서는 무언가 사악한 기운이 넘실거리는 게 느껴진단 말이다. 적어도 그다지 축복이 깃들어 있지 않은 건 틀림없어. 그러니..."
"오, 엄마, 진심은 아니시겠죠? 설마..."
"왜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냐? 부정한 재물은 마음을 어지럽히고 육신을 좀먹는 법이다. 이것을 성모님께 바치도록 하자꾸나. 그러면 분명 한없는 축복을 내려주실 게다!"
걱정스런 얼굴로 그 물건들을 지켜보던 그레타도 동조했다.
"제가 내일 아침 신부님을 모셔오겠어요. 꺼림칙한 건 빨리 치워야죠."
그러나 그레트헨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얻는 것이라면 뭐든지 불평없이 받는 게 도리 아니에요? 이렇듯 친절하게 우리에게 물건을 가져다주는 분이 설마 주님을 배반했겠어요?"
숙모는 더욱 더 엄한 표정으로 딸에게 말했다.
"그레텔, 어떻게 그런 소릴! 이게 너한테 온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게냐 뭐냐?"
그레트헨은 움츠러들면서도 뭔가 말하려 했다.
"저는 다만......"
그레타가 사촌의 어깨를 잡고 제지했다.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한순간의 유혹에 눈이 멀어서는 안돼. 내가 본 그자들은 분명 좋은 의도로 이걸 갖다놓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 어머니 말씀 들어라."
그레트헨은 그녀의 눈을 피하여 시선을 내리깔고 입술을 깨물었다.
다음 날, 쏜살같이 달려온 신부[神父]는 보물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손을 싹싹 비비며 물건들을 챙겨넣고 안녕을 고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참 잘 생각하셨습니다. 오직 교회만이 부정한 재물을 소화시킬 수 있죠."
그레트헨은 그때까지도 미련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그녀는 반짝이는 거라면 다 좋아했다. 그레타는 그런 사촌이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신부가 돌아간 뒤에도, 보석을 두고 간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지지 않은 나머지, 며칠 동안이나 멍한 얼굴을 하고 앉아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흑단 상자가 장롱 안에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3
"그걸 어떻게 했니?"
"일단은 마르테 아주머니께 맡겼어. 엄마에게 드렸다간 또 교회에 갖다바칠 게 뻔하니까."
"슈베르트라인 부인한테? 잘하는 일일까, 그게?"
그레타는 의심스런 눈초리를 던졌다.
"안될 게 뭐 있어? 구경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래. 그 보석들을 달고 있으려니까 내가 왕족이 된 기분이던걸. 아주머니뿐만 아니라 오늘 그 집에 들른 어떤 손님도 나를 귀하신 몸으로 보더라구."
그레트헨은 기뻐 어쩔줄 몰라 했지만 그녀의 사촌은 전혀 엉뚱한 부분에 대해 반응을 보였다.
"손님? 그 집에 손님이 오는 일이 있어?"
"파두아에서 아주머니 남편이 돌아가셨나봐. 소식을 전하러 온 거래."
"그 할망구, 재혼하길 그렇게도 바라더니 소원 풀겠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내게 잘해주는 좋은 분이셔. 그러지 말고 너도 한번 찾아가서 멋지게 꾸며봐. 얼마나 좋은데."
"됐어, 너나 많이 꾸며. 내 얼굴로는 꾸며도 안돼."
그레트헨은 입가에 조소[嘲笑]를 띄우고 고개를 숙이는 사촌의 머리카락을 살짝 쓰다듬으며, 밝은 목소리로 위로한다.
"무슨 소리야! 몰라서 그렇지 네가 얼마나 이쁜데."
"그렇게 생각해?"
"나만 그런게 아냐. 어제 리스헨을 우물가에서 만났는데, 걔가 하는 말이 '역시 바덴에서 살다 오면 온천 덕에 피부가 좋은가봐?'였다구. 어때?"
"말만이라도 고맙다. 그건 그렇고, 간이 어떤지 맛 좀 봐."
그레타는 쓴웃음을 지으며 사촌에게 나무 국자를 건네주었다. 그레트헨은 미소지으며 기꺼이 그 부탁에 응했다. 그레타는 짠맛에 대해 약간 둔감해서 항상 사촌에게 자문을 구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흥겹게 국을 젓는 그레트헨의 태도가 어째 좀 이상했다. 마치 즐거운 꿈 속을 헤매는 사람 같았다.
"어째 기분이 좋아 보이네."
"으응, 그렇게 보여?"
무심결에 오래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으니 그렇게 보이지 않을 리가 없다. 그레타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분명 그 노래는 병악한 왕비와 귀중한 황금잔과 뒤에 남겨진 임금님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었다. 그렇게나 슬픈 이야기가 저렇게나 흥겨운 가락에 실려 전해질 수 있다는 게 뭔가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보석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 뭔가 또 있지?"
"그레타는 정말 속일 수가 없네. 그래. 또 있어."
"뭔데? 내게만 살짝 말해봐. 어서."
"만났어, 드디어."
"누구를 만났다고?"
그레트헨은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금발을 찰랑거리며 엉뚱한 소리를 했다.
"난 이제 충분히 '어여쁘신 아가씨'야. 그렇지?"
"너...설마?"
겨우 일주일 전의 대화를 기억해 낸 그레타는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슈베르트라인 아저씨의 사망증명서를 만드는데, 공증인이라며 찾아온 게 바로 그 사람이었어. 정말 멋진 우연 아니니?"
"......우연일까나......"
그레타는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았지만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4
그로부터 여러 날이 지났다. 그와 동시에 그레트헨의 태도도 점점 희한해졌다.
"사랑한다-안한다-사랑한다-안한다-..."
"그 꽃들 좀 그만 괴롭혀라. 벌써 열두 송이도 넘게 했잖아."
옆에 누워 있던 그레타가 베개로 머리를 감싸며 나지막하게 외쳤다.
"-사랑한다!"
그런 말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아스텔꽃의 마지막 남은 꽃잎을 뜯어내며 기뻐하는 그레트헨이었다. 그레타는 그런 그녀의 순진함에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 하인리히란 사람이 그렇게도 좋아?"
그레트헨은 대답 대신에 오른손을 그녀 쪽으로 내밀어 보였다.
"너도 알지? 내 손... 요리하고 청소하고 뜨개질, 바느질까지 하다 보니 언제나 더럽고 거칠잖아. 그런데 그사람은 내 손이 좋대. 키스까지 해주지 뭐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 내 손이 아름답대!"
"두번 아름다웠다간 뭔 일이 날지 모르겠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레타는 사촌의 심정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었다.
숙부가 약간의 재산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나서 굶주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엄격하고 신실한 그레트헨의 어머니는 딸에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일을 시키고 있었다. 전염병으로 일찍 부모를 여의고 숙부네 집에서 지내고 있던 그레타의 경우, 더하면 더했지 봐주는 일은 없었지만, 그레트헨과는 달리 너무나 일찍 세상의 혹독함을 알아 버린 그녀는 싫은 내색 없이 잘 버텨내었다. 오히려 친딸인 그레트헨 쪽이 그런 어머니에 대해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남들의 칭찬이나 아부에 놀랄 정도로 약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게다가 뭐랬는지 알아? 어떤 똑똑한 친구와의 대화보다도 내 눈길, 내 말 한마디가 훨씬 즐겁다고 했어. 정말 믿어지지가 않아. 그렇게 고귀한 신분에 배운 것도 많고 예의바른 사람이 나같은 애를 좋아한다니 말야!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그사람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서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는거 있지!"
은근히 골이 난 그레타가 쏘아붙였다.
"너, 이렇게 가다가는 내가 숙모님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될지도 모른다는 거 알지?"
그레트헨의 얼굴에 절박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옆에 누워있던 그레타를 붙잡고 소리죽여 말했다.
"오, 제발, 그레타. 엄마에게는 말하지 마. 아직은 안돼. 부탁이야."
"네가 조금만 더 자제하면 나도 이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아. 그나저나 네가 하는 말만 들으면 그 남자는 못하는 게 없는 것 같다? 병도 고치고 별점도 치고 주님의 가르침도..."
"그게... 약간 곤란한 얘긴데, 그이는 신학 공부는 많이 했지만..."
"무슨 소리야?"
"주님을 믿지 않는 것 같아."
"교인이 아니라는 말이야? 마법사나 집시 같은 족속이란 거야?"
그레타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은 뒤로는 신이고 나발이고 될대로 되라고 생각하는 편이긴 했지만, 교회가 중심이 된 생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도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신을 부정하는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나 다른 신앙을 가진 이교도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자들은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이상한 의식을 거행하고 어린애를 잡아먹는다는 흉흉한 소문이 퍼져 있어서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터였다.
"잘은 모르겠어. 하지만 이런 얘기는 했어. '누가 감히 자기는 신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게는 감정이 전부라오.'라던가 뭐라던가."
"어쩐지 위험하게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