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왼쪽의 작품 이름을 선택하면 해당 작품 만을 보실 수 있습니다.
10개 이상의 글이 등록되면 독립 게시판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창가에 선 오성은 말없이 맥주를 마시며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을 바라보았다. 주변의 야경과 어우러진 대성당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도저히 어제와 같은 참극이 벌어진 장소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물론 성당 내에서 사건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살인을 해 놓고 성당에 옮겨놓은 것일 테지만.
“뭘 그렇게 생각해?”
엉덩이를 툭 치며 영현이 물었고 오성은 이맛살을 구기더니 영현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움켜잡았다. 우아악 하고 비명을 지르는 그의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준 뒤 오성이 입을 열었다.
“너 변태냐? 왜 자꾸 남의 엉덩이를 치고 그래?”
“그것 참, 너도 앉아서 서 있는 사람 쳐봐. 손들어 올리면 치기 딱 좋은 장소가 엉덩이라는 거 알게 될 거다.”
“그럼 내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거시길 때리겠다?”
“뭐, 원한다면 해 주― 아아, 농담이야. 근데 무슨 생각해?”
“아까 식당에서 나눴던 얘기.”
“성령이가 흑마술사라는 거?”
오성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잘 믿기지가 않았다. 성령이 진짜 마술사, 즉 흑마술사라는 사실이. 그리고 그 사실을 오랜 친구였던 자신이 알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는 식당에서 나눴던 대화를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그러니까…… 자네는 진짜 마술사인 셈이로군.”
“그다지 특이할 일은 아니지요. 아마 협회 소속 회원들 중에서도 몇 명은 흑마술사일걸요?”
“그런데 왜 흑마술사라고 하는가? 그 힘이 악마에게서 나오는 것도 아니면서?”
성령은 두 번 설명하는 건 너무 귀찮다는 듯 영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는 마시고 있던 차를 앞으로 좌악 뿜어내는 대형사고를 친 뒤―당연히 그의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오성의 옷에 그것이 튀었고 한바탕 포크와 나이프가 날아다녔다―험험 하고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성령이는 모든 마술은 다 흑마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신의 힘을 빌리는 것만이 참된 것이고 선한 것인데 마술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야 이해는 가지만…… 흑마술사라는 말은 아무래도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흑마법사랑 이미지가 같지 않겠나? 그냥 백마술사라는 말을 써도 상관없을 듯한데.”
“회장님께서는 흑마술사도 아니신데 관심이 지대하신 것 같군요.”
“지대할 수밖에! 내 협회의 회원이 진짜 마술사인데 어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겠나? 게다가 난 태어나서 자네처럼 강력한 마술을 사용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네.”
“그 말은 저 말고 다른 흑마술사들도 보셨다는 말이군요.”
“그래, 몇 번 보기는 봤네. 하지만 그들의 힘은 매우 미약했지. 고작 요만한 성냥불 크기의 불을 짜잔 하고 만들어 낸다든가 아니면 사이코키네시스(Psychokinesis, 염력)를 이용하여 작디 작은 물체를 옮긴다든가 하는 것이 전부였거든. 하지만 자네는 어땠나? 그렇게 커다란 얼음벽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니 분명히 자네는…….”
“머릿속의 상상은 자유로우나 그것이 입 밖으로 나올 경우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하는 법입니다 회장님.”
그만 좀 흥분하고 이성을 찾으시죠, 이 말을 부드럽게 돌려 말한 성령은 앞에 놓여 있는 물을 한 모금 먹었고 이내 부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회장을 향해 말했다.
“그나저나, 어제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그래 들어서 알고 있네. 신부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었다며? 그것도 거꾸로.”
“그래요. 아마도 사건은 한밤중에 일어났던 것 같아요. 대낮에 일어났으면 누군가는 알아차렸겠지요.”
“뭐, 그냥 단순한 살인사건 아니겠나? 평소에 가톨릭 교회에 억하심정이 있었거나 아니면 그 신부를 죽도록 미워하던 사람이었나 보지.”
회장은 그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마술사 세계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담력이 컸고 그랬기에 누가 죽었다는 말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더 화려한 마술일 뿐이었으니까―말하며 와인을 들이켰다. 하지만 성령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에요. 죽은 신부에게서는 반항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어요. 즉 그는 반항하기도 전에 죽어버렸다는 말이지요. 게다가 그에게서 흑마나의 기운이 느껴졌어요. 무슨 말 하려는 건지 아시겠죠?”
회장은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공연장에 나타났던 그 이상한 남자가 살인자라는 말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요. 우리가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올 때 그 이상한 신부를 비행기 안에서 봤었어요. 그런데 그는 공연장에 나타났지요. 그리고 흑마술을 펼쳤어요. 일반인에게는 불가능한 일을 흑마술사는 할 수 있어요. 특히 숙련된 흑마술사라면 희생자 본인도 모르게 죽이는 일이 가능해요. 제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회장님도 간단히 죽일 수 있을 거라는 데 제 손 모가지를 걸지요.”
그의 얘기를 귓등으로 듣던 회장은 성령의 마지막 말에 뜨악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냐는 듯이 그의 눈이 부르르 떨렸지만 성령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죄송해요. 뭐,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에요. 아무튼 공연장을 뒤집어 놓았던 그 신부는 사라졌고 우리는 그를 놓쳤어요. 진짜 마술의 존재를 사람들은 거의 믿지 않으니까 이런 일은 경찰한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일이지요.”
“그, 그러니까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은 뭔가?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가?”
“부탁하나만 드릴까요?”
“뭔가?”
“말할 때 침 좀 그만 튀기세요.”
“…….”
회상을 끝마친 오성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성령은 수상한 신부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믿고 있는 듯 했다. 물론 그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도 그의 말이 맞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건에 개입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사람 죽은 것도 난생 처음 보는 판에―부모님이 돌아가시기는 했으나 이것과는 경우가 달랐다―그것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싶지는 않았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고 오성은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있는 영현을 한번 째려본 뒤―전혀 움직이려는 생각이 없었다―문으로 다가갔다.
“짜잔!”
“우악!”
문을 열자 갑자기 웬 여자가 와락 하고 오성을 끌어안았다. 오성은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고 키스를 하려고 고개를 들어 올리던 여자는 끼약 하고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누, 누, 누구세요?”
“저기……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인데요.”
오성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잠시 당황하는 듯 했으나 그의 어깨 너머 뒤편을 바라보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며 오성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휘청하던 오성은 뒤로 자빠져 버릴 뻔 하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섰다.
“윤영현 이 자식! 되게 오랜만이다!”
“얼라리요? 여긴 어떻게 찾았― 우욱!”
여자의 주먹이 영현의 배를 후려쳤다. 켁 하며 비명을 지르던 영현은 이내 씨익 웃으며 여자를 덮쳤고 둘은 침대에서 나뒹굴며 낯 뜨거운 장면을 연출해 보였다. 그 모습을 참을 수 없었던―밀치고 사과 안 한건 둘째쳐도―오성은 눈에 불을 킨 채 침대로 다가갔다.
주변에 누가 있든 말든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던 영현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는 오성을 보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아, 인사해. 내 여자친구 나영이야.”
“안녕하세요, 민나영이에요. 아까는 죄송했어요. 워낙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보니, 헤헤. 죄송해요.”
전― 혀 죄송해 하지 않는 표정으로 활짝 웃는 그녀에게 오성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쪼잔하게 ‘날 밀쳤으니 너도 한번 밀침을 당해봐!’ 이런 식으로는 말할 수 없었기에 표정을 풀고, 그냥 어색하게 웃어 주었다.
“누구야?”
샤워를 마치고 나온 성령은 낯선 사람이, 그것도 여자가, 세 남자가 우글거리고 있는 방 안에 들어와 있자 의아하게 여기며 물어 보았고 영현은 그에게 나영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러자 성령이 손뼉을 탁, 치며 말했다.
“아, 네가 말했던 그 분? 반가워요, 김성령입니다.”
“네, 저도 반가워요. 그런데 영현이가 저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
나영은 눈을 빛내며 성령에게 물었고 영현은 뭔가가 떠올랐는지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성령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성령은 옆에 있던 베개를 집어던져 그를 쓰러뜨린 다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해 본 상대 중 최고의 잠자리 상대였다고 하더군요.”






데네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