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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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원작자에게서 직접 연락하여 허락을 받은 것은 아니므로 문제가 될 시에는 자체 삭제하겠습니다.
원작자 :
알렉산드르 이바노비치 아브라모프,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아브라모프
황제의 그림자
2
바딤은 마치 음악을 듣는 듯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주 훌륭한 직업을 가지고 있구만, 크리스"라고 그가 질투심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크리스는 한숨을 쉬었다 :
"너한테는 그렇겠지. 하지만 난 아니야"
"힘든 척 하고 있네"
"무슨 소리야? 이제 한계라고. 이미 나한텐 다른 생각이 있어"
"어떤 생각?"
크리스가 잠시 머뭇거린다.
"너는 강신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갑자기 그가 묻는다.
바딤은 그가 지금 농담하는 건지 아니면 심각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눈 깜박이지 마" - 크리스가 미소짓는다.
"엥겔스가 했던 말을 다시 들려줄 수는 있는데" - 바딤이 어깨를 으쓱거린다.
"그럴 필요 없어. 강신술은 모든 미신들 중에서도 가장 야만적인 미신이다, 맞지?
다른 버전도 있어. 돌팔이, 영매들의 사기, 바보들을 속이기 위한 산업, 회전하는 접시와 저승 세계에서 온 허구의 손님들 등등.
하지만 넌 아냐? 몇몇 진지한 사람들이 강신술에 관심을 가졌었다는 거. 예를 들면 크룩스라든지.
당시 그는 대물리학자였잖아"
"야, 그 시절 과학계에는 유신론자들과 신비주의자들이 적지 않았어. 아직 중세 시대였다고"
"크룩스는 중세 시대 사람이 아니잖아. 코난 도일도 마찬가지고. 거장은 아니었지만 꽤 이성적인 작가였지.
그런데 영혼 부른답시고 탁자를 돌렸단 말야. 왜 그랬을까?"
"너 지금 탈진 상태지?" - 조심스럽게 바딤이 묻는다.
"요즘 강박관념 같은 건 쉽고 빠르게 제거할 수 있어. 중추 신경 자극제 한 방이면."
크리스는 여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바딤의 질문과 전혀 관계 없는 대답을 했다.
크리스는 자료 저장소의 버튼을 눌러 어떤 숫자를 입력했고,
옆 방에 있는 녹화용 크리스탈을 소리 생성 네트워크에 연결시켰다.
"잘 들어둬," - 크리스가 말했다.
"이 음성 자료는 1901년 상트 페테르부르그, 발드볼 공작의 집에서 있었던 강신술 집회를 녹화한 거야.
음질은 아주 깨끗해. 또 황제 전용 극장에서 근무하던 몇몇 배우들도 여기 참여했다는 점에서 너한테도 꽤 흥미로운 자료일테지.
게다가 영매는 합창대 총 지휘자였던 알렉산드린키 휘비흐야. 비록 그렇게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하지만 강신론자들에게 있어서는 꽤 중요한 인물이었고,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도 좀 특이한 점이 있었어.
이 집회가 열리기 5년 전 그는 질투심으로 자기 아내를 죽였는데, 배심원들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단 말이지.
그런데 그의 아내는, 그와 동일한 극장에서 근무하던 카렐리나 벨스카야였고.
그녀에 대해서는 역사책에도 내용이 있을 거야. 아마도 기억은 나겠지.
얼굴 좀 찡그리지 마라. 모두 검증된 내용이야. 내가 직접 디코딩을 했다고."
그가 소리를 켜자 사람들의 목소리와 웃음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처음에는 거의 들리지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소리가 커졌는데,
아마도 어떤 사람들이 방으로 들어오면서 내는 소리인 듯 싶었다.
약 30초 정도가 지나자 바딤은 또렷이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자, 여러분. 모두 자리에 앉으십시요"
"어머나 촛불이 이렇게나 많네! 심지어 일곱 갈래 촛대도 있어"
"꼭 교회에 온 것 같다"
그리고 뒤따르는 누군가의 속삭임.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류바"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지금 그들은 방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것이다.
"이 탁자로 오십시오, 여러분"
"각하, 접시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번에는 접시 없이 합니다"
"그러면, 오늘은 뭔가 특별한 건가요?"
"설마 영혼들과 대화?"
"어머!"
그리고 방 구석 어딘가에서는 비웃는 듯한 속삭임이 들려온다.
"각하의 정신이 좀 이상해졌나봐. 넌 이걸 믿냐?"
"뭐, 자선가니까 별 무리도 아니겠지"
"저녁은 주나?"
다시 탁자가 있는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휘비흐는 어디 계시나? 아르카디 뤼보비츠!"
"저는 여기 있습니다"
"당신은 그 소파에 앉아 계실겁니까? 그렇게나 멀리?"
"생자와 망자의 세계 간에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억양이 변조된 그의 음성은 비단 같이 부드러웠다.
"근데 촛불을 계속 켜두면 안 되나요? 무서운데"
"절대로 안 됩니다. 오직 하나의 촛불만 남겨두세요. 그것도 가능한 한 먼 곳에 말입니다.
귀족다우면서도 주인인 듯한 음성이 탁자에서 흘러나온다.
"당신의 말은 곧 법입니다, 아르카디 뤼보비츠. 지금 집사에게 전화하도록 하죠"
"각하,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가 하겠습니다. 자, 빨리"
"로디온, 촛불 꺼"
누군가가 방 안에서 걸어다니기 시작한다. 구두 뒷굽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비명.
"윽! 손가락 데였어"
"앉으세요, 말괄량이 아가씨"
다시 억양이 변조된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진다 :
"탁자에 위에 손을 올리십시오.
쇠사슬. 제가 명상 중일 때는 쇠사슬을 분리하지 마세요.
그리고 조용히 해주십시오.
1, 2분 정도 있으면 저는 잠이 들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방 안에 있다고 느껴지면 질문을 던지셔도 됩니다.
또 하나, 농담하지 마세요.
불신은 초월적인 연결선을 파괴합니다.
자 여러분,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는 누군가의 기침 소리, 의자가 비꺽거리는 소리, 무겁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린다.
바딤은 눈을 감은 채 회색빛 수염과 흐리멍텅한 눈을 가진 집 주인과 그 손님의 모습을 상상한다.
분장이 아직도 덜 지워진 배우들, 뺨이 새파래져 입술을 꿈들거리는 영매.
그는 심지어 이 상류 사회의 사기꾼이 어디에 앉아 있으며 유일하게 켜져 있는 촛불의 위치까지 추측하고 있었다.
"손 꽉 쥐지 마세요, 아프잖아요..." - 어떤 여성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조용히!"
그리고 다시 기침 소리와 의자 삐꺽거리는 소리.
"이건 대체 뭐하자는 거야?" - 바딤이 묻는다.
"잠깐 기다려봐, 계속 들어 보라고" - 크리스가 경고한다.
크리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공작이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방 안에 있다. 그는 우리 가운데 있어"
"누가요, 누구?"
"아이쿠!"
"조용!"
침묵 속에서 또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는 여성의 것이었으나, 마치 음소거가 된 듯한, 무엇인가에 의해 가로막혀 있는 듯한 목소리였다.
"여기가 어디죠?"
"당신은 지금 우리 손님으로 와 있습니다. 저는 발드볼스키 공작입니다"
웅웅거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단조롭고 죽은 듯한 억양으로 응답한다.
"내 공작님...아주 좋은 분이죠. 절대 화를 안 내시고...심지어 지그에 대한 나의 애정도 용서해 주셨어요...
그리고 제 생일날에는...아주 아름다운 펜던트를 선물로 주셨죠...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마노석을 말예요.
아르카디는 심지어 화도 내지 않았고..."
"오 이런, 나 저 여자 알아요!"
"캐트린!"
"그 분께서는 각하를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오 하나님, 너무 무서워..."
"예카테리나 페트로브나, 여기 당신의 친구들이 있습니다..."
다시 웅웅거리는, 단조로운 목소리.
"나한테 친구가 있었나요? 모두, 모두가 나를 미워했는데...모두가 아르카디한테 속삭이고 있어요. 나와 지그에 대해서..."
"지그가 누구냐?"
"시기즈문드 모르냐?"
"시기즈문드는 또 누구야?"
"코르넷 비쉬네볘츠키, 이 바보야! 그 때문에 그녀를 죽였잖아"
"누구, 아르카디가?"
"그럼 또 누군데? 내가 했냐?"
"조용히! 그녀가 또 다시 말하고 있어요. 들리세요?"
"...어제 아르키디는 녜브스키 거리에서 우리를 보았어요...그 때 우리는 마차에 타고 있었죠...
지그가 의자를 똑바로 하려고 일어났을 때, 나는 아르카디를 알아보았어요...그는 옐리세예브 상점가에 서 있었어요...
그에게 말하지 마세요... 그는 공작님에 대해서도 모르고, 지그가 누군지도 모르니까요...
멍청한 사람, 그는 우리가 공작님과 함께 비쉬로 봄 휴가를 간다는 것도 알지 못해요..."
탁자 주변에서 소란이 일어난다.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여러분"
"영혼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각하"
"저희는 비밀을 지킬 거예요, 존경하옵는 공작 씨"
"또, 그는 지금 자고 있잖아요"
"하지만 이건 거짓입니다! 나는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예카테리나 페트로브나!"
침묵.
"캐트린, 계십니까?"
침묵.
그리고 의자 옮기는 소리.
"박사님, 사슬을 끊으셨는데요."
"그냥 나 없이 다시 연결하세요. 나는 그한테 갑니다"
"하지 마세요, 박사님! 그녀가 놀라면 어떡해요!"
"상관 없어요. 나는 확인을 해야만 합니다. 그는 잠을 자고 있지 않아요. 믿을 수 없어."
걸어가는 소리, 잠시 동안의 침묵.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놀란 목소리 :
"여러분, 이거 보십시오. 정말 자고 있어요. 심장 박동이 느립니다"
크리스가 다시 버튼을 누른다.
"여기서 내용이 끊겨. 잡음이 심해서 그냥 껐어"
바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 어떻게 생각해?"
"아무 생각도 안 들어"
"그래도 뭔가 소감을 말해본다면?"
"완전 헛소리야"
"영매도?"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당연 사기꾼이지"
"박사는?"
"똑같은 사기꾼이야"
"흠...그런데 휘비흐가 공작과 그녀 간의 관계를 전혀 몰랐다는 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심지어 비쉬로의 소풍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고 있었고"
"누가 알겠냐" - 바딤이 말했다.
"이미 옛날 이야기잖아"
크리스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그럼 그한테 직접 물어보지"
'뭐라고?' - 바딤은 생각했다.
하지만 크리스가 벌써 설명을 해주었다.
"또 하나의 강령 집회를 여는 거야. 내가 영매가 되고, 너는 질문자가 되는 거지"
"누구를 부를 건데?"
"곧 알게 될거다. 정상적인 강령 집회에서 하는 것처럼 나도 방의 불을 끌게."
바딤은 웃기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으나 크리스는 이를 보지 못했다.
곧 방 안은 어둠에 잠겼다.
단지 크리스의 패널에서 나오는 녹색, 빨강색 불빛들만이 켜져 있을 뿐이었다.
"미친 놈" - 바딤이 생각했다.
"확실히 미친 놈이야. 이미 신경 자극제 같은 건 먹히지도 않겠구먼"
"누가 날 기다리나요, 여러분?" - 어둠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방금 바딤은 바로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극장 무대에서 사랑 받았던 바로 그 비단과 같은 목소리를.
하지만 어떻게?
새 녹화 자료인가?
"대답해. 지금 너한테 말 걸잖아" - 크리스가 속삭인다.
"영매가 말을 해도 돼냐?" - 바딤이 투덜댄다.
그는 크리스에게 말을 걸었으나 크리스 대신 방금 전 들은 목소리가 응답했다 :
"난 지금 명상 중이 아닙니다. 그냥 생각할 뿐이지요. 혼자 있을 때면 나는 항상 그녀에 대해 생각합니다"
바딤은 잠시 움찔했다.
"대체 누가 미친 거지? 만약 내가 정말로 그에게 질문을 한다면? 정말 대답을 할까?"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
"왜 당신은 그녀를 죽였습니까?"
"그 코르넷인가 뭔가 하는 자 때문에 나를 괴롭게 하잖아" - 목소리가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바딤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질문을 한다 :
"공작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나요?"
"아, 펜던트? 물론이지"
"펜던트 말고요. 예를 들자면, 비쉬로 소풍을 가려 했다든가"
"뭐라고?"
"그들은 외국으로 갈려고 했단 말이예요. 프랑스로요"
"헛소문이야"
"당신은 이에 대해 몰랐나요?"
"처음 듣는데"
"이상하네요. 강령 집회에 당신이 이에 대해 말했잖아요" - 바딤이 말한다.
"어디서?"
"발드볼 공작의 집에서요"
목소리는 마치 반대편에 앉아 있는 사람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강령 집회 때 나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아. 초월적인 연결은 명상에 들기 전 강한 집중력을 필요로 하니까"
"그럼 명상 중에는요?"
"물론 잠에 들지"
'내가 그를 거짓말쟁이로 여긴다고 말해도 돼나? 젠장, 상관 없지. 어차피 이건 크리스가 쇼하는 것일 테니까' - 바딤이 생각한다.
"비쉬로의 여행은 당신 아내의 영혼이 말했습니다만, 미안하게도 난 영혼을 믿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지" - 상관없는 투로 목소리가 대답한다.
"비르제브카에서는 심지어 이에 대해 기사를 썼더군. 내가 왜 강령 집회에서 아내의 영혼만 불러내는지 아나?
왜냐하면 나는 지금도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기 때문이야.
어떤 사람들은 내가 자기 자신과 대화한다고 하는데, 이건 사실이 아냐. 나는 아무도 속이지 않았어.
물론 난 카쨔(캐트리나의 애칭)에 대해서 생각하곤 하지: 과연 나는 그녀를 죽여야만 했을까?
나한텐 지금 불면증이 있어서 밤에 잠을 잘 못자...
누워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그녀와 대화를 하지.
물론 영혼이 아니라 그저 내 상상 속의 아내와 말야.
그리고 강령 집회에서는 그냥 잠을 자.
그래서 누군가가 나한테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고 말하면,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야 : 난 그 때 잠자고 있었으니 알 리가 없잖아. 정말로 기억을 못해.
혼자 있을 때 몇 번 카쨔의 목소리를 흉내 내보려고도 했지만, 잘 안 됐어.
근데 강령 집회에서는...그런 일을 왜 하겠나?
나는 사기꾼도 아니고 이걸로 돈을 받은 적도 없는데..."
크리스가 어둠 속에서 바딤을 슬쩍 팔꿈치로 밀었다.
"어때?"
"아무래도 거짓말인 것 같은데. 아니면 너가 거짓말하거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거짓말하는 거겠지!"
이 때까지 쌓인 바딤의 짜증이 폭발했다.
"여러분. 나는 지쳤습니다" - 목소리가 대답한다.
무엇인가 어둠 속에서 딸칵한다.
아마도 크리스가 소리를 끈 모양이다.
곧바로 불이 켜진다.
"이게 다야" - 크리스가 말한다.
"영혼이 세상 밖으로 떠났어"
처음으로 바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충격에 빠졌다.
불이 켜진 방에는 목소리가 나올 만한 그 어떤 물리적 원인도 없었다.
그는 예전에 여기 없었던 것이나 무엇인가 새로 생겨난 것 : 장치, 화면, 조작 장치, 혹은 스피커가 있나 찾아보았지만 허탕이었다.
어쩌면 말하는 로봇이었을 수도?
아니다, 모든 것이 전과 똑같았다.
새로 추가된 것도 없었고 위치가 바뀐 것도 없었다.
저장소에서 목소리가 나왔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저장소에는 오로지 음성 녹화를 위한 크리스털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목소리가 나왔을까? 녹음 자료에서?
하지만 그리 보기엔 너무 이상했다.
어떤 질문이 언제 나올지 미리 예상하고 그에 맞추어 대답을 녹화했다고?
하지만 바딤은 스스로 자기가 할 질문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이미 그의 마음 속에서는,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반항심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거 뭐였냐?" - 그가 물었다.
"영혼과의 대화"
"뻘소리 하구 있네. 새 녹화 자료냐?"
"녹화 자료하고는 대화할 수 없어. 오직 들을 뿐"
"어쨌든 난 안 믿어. 이건 기계적인 쇼에 불과해"
"뭐, 로봇 복화술사?" - 크리스가 웃었다.
"시끄러워. 너가 범인이지?"
"어떻게? 내가 영매라는 걸 인정해. 이건 진짜 강령 집회였잖아"
"이건 심령주의적 사기야!" - 바딤이 소리쳤다.
"신비주의가 좋으면 맘대로 해. 나는 이런 걸 믿기엔 너무 늙었으니까"
그는 화난 상태로 자리에 일어섰다.
여전히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앉아" - 크리스는 친절하게 그를 소파로 밀쳐낸다.
"너가 지금까지 투덜거린 것들 중에 맞는 것은 오직 하나야. 이게 기계적이라는 거. 하지만 이건 쇼도 아니고 사기도 아니야.
이건 과학이지. 그리포놀로지가 아닌, 전혀 새로운 과학. 우리는 지금 새로운 과학의 문턱에 서 있는거네, 노인 양반.
바딤은 말 없이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지금 크리스가 하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정신이 나갔거나 멍청이인가 보군" - 마침내 바딤이 말을 꺼냈다.
"하지만 미안한데, 나는 아무 것도 이해 못하겠어"
"너는 정신이 나간 것도 아니고, 또 멍청이도 아니야 - 크리스가 미소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이 과학에는 아직 자신만의 이름이 없어. 그리고 지금 너가 여기서 경험한 것은 이 분야에 있어서 첫 공개 실험이라고 할 수 있지.
지금까지는 나는 혼자서 실험을 진행해 왔거든"
"어떻게?"
"영혼을 불러내고 있었어. 화내지 마, 친구. 이건 그냥 긴장을 풀기 위한 거야.
이미 말했듯이 이 과학에는 이름이 없어. 아직 생각해 낸 게 없거든.
하지만 이 과학은 심령주의에 근거하고 있지. 눈 좀 크게 뜨지 마라. 난 지금 농담하는 게 아냐.
나는 지금 지난 백 년 동안 속임수와 사기로 뒤범벅된 심령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뉴턴의 사과처럼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한 자극으로서의 심령주의를 말하는 거야.
그냥 잠깐 내 말을 끊지 말아봐, 안 그러면 내 결론이 뒤죽박죽 될테니까.
자, 직업의 특성상 내가 직접 자료를 디코딩하거나, 오래된 자료실을 뒤져야 할 때가 자주 있어.
그러다가 우연히 잡지 '레부스'를 보게 되었지.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그에서 활동했었던 강령술사들에 대한 잡지였어.
그 다음엔 재미로 영국의 "강신주의 저널"을 읽어 보았는데, 재밌는 건 이거야.
오로지 소수의 영매들만이 자신의 손님들을 사후 세계와 연결시켜 주려고 했는데,
가끔씩 강령 집회에 나타난 자칭 위대한 고인의 영혼들이, 그들의 직업과 직위와 살던 시대에 비추어 볼 때,
꽤 신빙성 있는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거지.
물론 심령주의 신봉자들을 빼놓고는 여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아주 당연하게도 과학은 이걸 그냥 지나친 거야.
하지만 나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어.
'만약 여기에 진실이 있다면, 만약 영매들이 아무도 속이지 않았다면?
정말로 명상의 상태에서 과거의 정신적 잔영들을 인식할 수 있었다면?"
"아주 죽여주는 가설이구먼," - 바딤이 말했다.
"완전히 교황을 위한 이론 아냐"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별로 중요한 게 아냐. 중요한 것은 내가 이것에 성공했다는 거야.
이해불가능한 과학에 대해 햄릿이 했던 말은 지금까지도 사실이야.
오늘날까지도 과학은 센 제르멘이라 칼리오스트로를 인정한 적이 없고,
그들의 행동들은 최면이나 사기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어.
하지만 만약, 깊이가 무한한 시간의 강 속에서는 소리 뿐만 아니라 정신도 소멸되지 않는다면 어떻까?
소리도 파장이고, 정신도 일종의 파장이잖아.
소리는 역학적 진동으로 인해 생겨나고, 정신은 뇌세포의 전기 임펄스로 인해 생겨나지.
만약 음파의 비소멸성에 대한 그리쉰의 법칙이 텔레파시에도 적용된다면,
과거의 정신적 잔영들을 기록할 수 있는 장치도 역시 만들 수 있는 거야."
"하지만 인간은 생각할 때 이미지로도 생각하지 않나?" - 바딤이 의심스러워한다.
"이건 어떻게 기록할 껀데?"
"그건 불가능해. 하지만 말로 표현된 생각은 기록 가능하지. 생각해 봐, 이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야.
지금 쓰고 있는 증폭기의 원리를 그대로 사용하면 돼.
이 경우 장치는 뇌의 활동으로부터 생성되는 거대한 생각의 집합체, 다시 말해서 일종의 정신적 은하계와 연결되는 셈이지.
웃지 마, 나는 시인이 아니니까. 이 표현은 여기에 딱 들어맞는 것 같아.
인류가 의식적인 삶을 살면서 이용하고 교환했던 그 모든 정보들이 있는 은하계.
이러한 '은하계'들은 창조적 활동의 과정에서, 혼자 있거나 혹은 감옥에 갇혔을 때, 병에 걸려서 장기간 격리되었을 때
만들어지는 거야.
시력을 잃은 밀턴이나 귀가 먹은 베토벤 같이 강제적으로 고립될 수 밖에 없었던 천재들의 정신적 '은하계'를 상상해보라고.
나는 아직 그것들을 보지 못했어. 아직 장치가 그 정도로 세밀하지 못하거든.
하지만 로마의 산 안젤로 성에 갇힌 어느 이름없는 죄수를 기록하는데 성공했고, 그 다음에는 휘비흐,
그리고 최근 6개월 동안은 나폴레옹을 발견했지. 한 번 들어봐"
바딤은 항상 다양한 색깔과 형태의 금속 및 플라스틱 패널들로 뒤덮인 크리스의 책상을 좋아했다.
정말 거기에는 갖가지 기호들이 있었다 : 로마, 아랍, 라틴, 그리스의 문자들, 수학적 기호들!
하지만 이번에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소형 패널이 밖으로 튀어나온 상태였다.
"자료가 좀 알아듣기 힘들더라도 놀라지 말아," - 크리스가 말했다.
이건 아직 문장이 아니야.
종종 생각이란 건 혼란스럽고 서로 뒤엉켜 있는데, 이건 오로지 생각하는 본인만 이해할 수 있지.
그가 녹음 자료를 재생시켰다.
"...물론 그루시가 잘못했지...프러시아인들을 따라잡지 못했으니...웰링턴 한 명만 있었더라면 개미처럼 짓밟았을 텐데...
우측에는 우구몬 성이 있고...좌측에는 셍 잔, 왼쪽으로 가면 갈수록 고도가 높아져...수안이 숲에서는 후퇴할 데도 없다...
네이는 정말 공격을 잘 시작했어...하지만 그루시는 명령을 기다렸지...멍청한 놈...시골 촌놈이나 명령에 복종하는 거지,
지휘관이라면 생각할 줄 알아야 하잖아...마렝고에서의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건 바보 천치도 알 수 있었는데...
만약 그 놈한테 데제 같은 용감함이 있었다면 곧바로 상황을 알아차리고 제 시간에 왔을 텐데...
부르몬은 완전히 쓰레기야...왜 이렇게 위가 아프지...내가 뭘 먹었지...? 그래, 그래 부르몬...
네옘에서는 다섯 말들 중 한 마리가 죽어나가는데, 이 늑대는 황제를 배신하고 있어...
그 다음에는 내가 포격 속에서도 잠잘 수 있다면서 비웃었지...하지만 나는 그 때 엄청나게 졸렸었어...
자야 되는데, 자야 되는데...그런데 역사적 결정을 내리라고...."
"확실히 저혈압 증세를 보이고 있어" - 크리스가 말했다.
"크세노긴 한 알이면 워털루 전쟁이 다르게 끝날을 수도 있었을 텐데. 끌까?"
그는 질문을 하면서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 버튼을 누른다.
"이 다음에는 완전히 뒤죽박죽이야"
"근데 이게 워털루 전쟁하고 무슨 관계가 있냐?" - 바딤이 물었다.
"지금 얘가 그걸 떠올리고 있잖아. 데제 장군은 마렝고에서 그를 구했어. 그러니까 제 시간에 온 거지.
하지만 워털루 전쟁 때 그루시는 즉각 출발하지 않았어. 명령을 기다렸으니까. 전술적인 실수였지.
그 때 나폴레옹은 이미 병에 걸려 있었고 이를 잊어버릴 수 없었어.
이런 녹음 자료가 자그마치 수 천개, 아니 수 만개가 있어.
보나파르트 한 명의 뇌세포만 하더라도 수 백만 가지의 전기 신호가 방출된다고" - 크리스가 한숨을 짓는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단순히 나폴레옹 위인전을 다시 고쳐쓰기 위해서?"
크리스의 말은 바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아무래도 얘는 이게 얼마나 큰 일인지 모르는 것 같군. 의식을 기록할 수 있는 기술 하나만으로 굉장한데.
아 참, 그런데 휘비흐는?' - 문득 그에게 기억이 떠올랐다.
"그럼 어떻게 녹화 자료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지?" - 바딤이 말했다.
"물론 안 되지" - 크리스가 대답했다.
"대화는 없었고 대화할 가능성도 전혀 없어"
"그렇다면 영매들은?"
"안 됐어. 심지어 가장 정직한 영매들도 마찬가지야. 뇌는 마치 증폭기처럼 일방적으로 작동했던 거야.
텔레파시적 잔영을 받아서 그걸 언어로 표현했던 거지. 그게 다야! 나머지는 상상 혹은 연극에 불과해.
사기와 자기 암시가 결함된 셈이지.
"그리고 휘비흐가 바로 그 예란 말이지" - 바딤이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어떻게 니가 그로 하여금 대화를 나누도록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단 말야. 이건 녹화 자료에 불과하잖아"
"물론 아니지. 그냥 의식의 심리학적 모델링을 거쳤을 뿐이야.
수 백만개의 신경 신호를 기록하고 이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일종의 신경 패턴 생성기를 만들어낼 수 있어.
그러니까 너는 영혼이랑 대화한 것이 아니라, 카이르 공업 단지에서 만들어지는 '닐' 같이 확률적 전자 장치와 이야기한 셈이지.
난 아직 만족스럽지 않아. 왜냐하면 휘비흐는 좀 제한된 성능을 보이고 있거든. 녹음 자료가 부족해서 말이지.
하지만 황제의 경우에는 훨씬 더 성공적이야.
이건 최초의 진정한 사고 패턴 모델일거야. 심지어 감정까지 전달하는 데 성공했어.
좀 편향된 부분이 있긴 하지.
왜냐하면 모델링에 사용된 모든 자료들이 그가 죽기 6년 전, 그러니까 성 헬레나 섬에 유배되었을 당시의 자료들이거든.
너는 그와 대화를 나눌 수는 있겠지만, 이 대화는,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인지적인 성격을 띄게 될 거야.
실제로 살아 있는 사람은 대화할 때 진심으로 무엇인가를 말하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솔직하거나 솔직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일부분만 말하거나, 아예 거짓말을 하거나,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말을 할 수도 있잖아.
하지만 여기에 있는 것은 순수한 정신이라서, 그 어떤 충동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또 하나 더. 이 모델은 이미 감정이 입력된 상태이고 놀라움 같은 건 느낄 수 없어.
그러니까 너는 현 시대인처럼 위장할 필요 없이 그냥 미래에서 온 사람처럼 그와 대화를 나누면 되는 거야.
하지만 이걸 잊지 마. 이 성 헬레나에 유배된 죄인은, 비록 옛날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황제라는 거.
"그게 지금 여기 있냐?" - 바딤이 물었다.
"당연하지" - 크리스가 대답했다.





옛날에 러시아 고전문학들을 좋아해서(바보 이반 이라던가.) 많이 봤었는데, 일반 소설이라니 새로운 느낌이 드네요.
잘 보고 갑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