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핸드폰을 들어 당장 원에게 전화했다. 19초의 신호가 갔을 때 그녀가 받았다.

“아직 할 말이 남았어?”

“그 타이! 니트 넥타이! 놈을 알고 있었던 거야! 그렇지? 클론을, 그 고깃덩어리를!”

“그래서?” “인간도 아닌 그 놈을! 그 놈과 사귄 거야?”

“사귀었든 아니든 간에 이제는 그럴 수도 없어. 그는 소멸해버렸어. 회사 최고의 요원, 조가 말살했으니.”

“다 알고 있었으면서 모른 척 하다니!”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내게 솔직하지 않았어. 말은 많았지만 항상 겉돌았지. 실속이 없었어.”

“그 가짜와, 짝퉁과 사귀었다는 건가?”

“누가 누구보고 짝퉁이라는 건지 모르겠어. 똑같은 짝퉁 주제에.”

숨이 막힐 듯한 충격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뭔가 할 수 있는 말을 생각해내려 했지만 아득해져서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신음소리 같은 것이 입 밖으로 나올 때까지 한참이 걸렸고 그제야 나는 원이 이미 전화를 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시 다섯 번을 전화했지만 전화가 꺼져 있다는 안내뿐이었다.

류와 처음 만났던 신입생․복학생 환영회, 제이와 처음 만났던 훈련소 앞, 원과 단 둘이서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 날의 기억은 어제 일처럼 또렷했다. 그때 내가 입었던 옷과 상대가 입었던 옷차림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어느 가을날 수업이 끝난 뒤 교회 앞에서 원과 두유를 마시며 이야기하다 제이의 전화 때문에 금세 자리를 뜨며 아쉬움을 달랬지만 그때 원에게 남자친구가 없음을 확인하고 기뻐했던 순간은 지금도 또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