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왔을 때 원에게 전화해봤다. 지하철이나 도로의 소음 속에서 그녀와 통화하면 제대로 대화할 수 없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 통화 내용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목소리로 통화할 만큼 뻔뻔스럽지 못하다. 그럴 바에는 집에 들어갈 때까지 참는 편이 낫다. 원의 전화는 꺼져 있었다. 벌써 일주일이 되었다. 류에게 전화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류의 남편에 대한 기사였다. 류의 남편이 새로운 복제 기술을 발견했는데 이는 세계 최초라는 이야기였다. 류의 남편은 언론에 등장할 때마다 항상 새로운 기술을 발견해내는 것처럼 보였다. 원래 생물학 관련 지식은 전무한 데다 관심도 없어서 대충 훑어 넘기며 마우스의 휠을 내렸다.

다시 포털의 메인 페이지로 돌아오자 굵은 글씨로 상당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기사의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모골이 송연해졌다. ‘박문기 의원의 죽음에 관한 의문’.

진보 계열의 인터넷 언론사의 기획 기사였다. 의원의 죽음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보좌관도 없이 박 의원 본인이 직접 밤길을 운전한 점, 박 의원의 거주했던 주상 복합 아파트의 경비원이 박 의원이 주말에 집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던 점, 개가 동승하고 있었다지만 개에 관한 언급은 조서에 없었던 점을 들며 미심쩍은 면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사는 베테랑 기자가 썼다고 볼 만큼 세련되지 못했지만 집요함만큼은 돋보였다.

나는 그 기자가 작성한 다른 기사들이 궁금해 검색했지만 그 기자가 쓴 기사는 그것이 유일했다. 머릿속은 복잡해졌고 기분은 영 개운치 않았다. 제이와 마신 술기운이 완전히 달아나는 느낌이었다. 애써 잠을 청하려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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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린 눈을 비비며 정오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관자놀이는 쑤시는 것처럼 아팠고 속에서는 비릿한 알콜 기운이 치밀어 올랐다. 미리 끓여둔 콩나물국을 냉동실에서 꺼내 해동시켜 밥을 말았지만 드는 둥 마는 둥 했다. 온 몸에 기운이 없었지만 숙취나 몸의 피로보다는 마음이 문제였다. 나는 내 일상이 조개껍데기처럼 단단하다고 믿고 있었지만 사실 신문 기사 하나에 의해 쉽게 무너질 정도로 취약했던 것이다. 정오였지만 창 밖의 한강은 건너편의 코엑스와 그 주변의 강남 일대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올해 최악의 황사가 올 것이라는 일기 예보는 정확했다.

케이블 TV의 메이저 리그 경기를 켜둔 채 소파에 누워 비몽사몽 서너 시간을 보내다 오후 늦게 되어서 제이가 챙겨준 커다란 스포츠 가방을 들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강북의 외곽에 위치한 유흥가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환락에 눈을 뜨기 전의 오후로, 사람으로 따지면 새벽잠에 곤히 빠져 있을 시간이었다. 한 놈도 살려두지 않도록 성공한다면 내 차까지 따라올 녀석은 없었고, 실패한다면 차까지 돌아오지 못할 테니 차는 나이트클럽 입구에 대놓고 세울 작정이었다. 나이트클럽에 도착했을 때 차창은 모래로 까끌거렸다. 차 밖으로 나오자 코와 입이 매캐해졌다.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마스크를 썼다.

긴 칼집이 밖으로 튀어 나온 커다란 스포츠 가방을 메고 나이트클럽 정문으로 향했을 때 옆으로 퍼진 덩치의 깍두기 머리를 한 두 녀석이 나를 바라보았다. 광택이 나는 재질의 하얀 셔츠의 앞섬을 풀어헤친 사이로 보이는 살찐 목덜미는 두터운 체인 금목걸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녀석들도 나처럼 검정 정장을 입었지만 스타일은 판이했다. 두 깍두기는 설마 자신들 쪽으로 오겠느냐는 듯 방심하고 있었다.

나는 어깨에 멘 가방에 손을 집어넣었다. 두 녀석은 그제서야 심상치 않은 듯 품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 하고 있었다. 나는 샷 건을 꺼내 왼손으로 장전하고는 오른손으로 발사했다. 왼쪽 녀석은 가슴에, 오른쪽 녀석은 머리를 관통당했다. 왼쪽 녀석은 탄알의 힘 때문에 위로 조금 튕겨 올랐다가 등에서 흘러나온 피로 벽을 피칠갑하고는 앞으로 넘어졌다. 오른쪽 녀석은 힘없이 뒤로 무너졌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며 방독면을 꺼내 썼다. 아래에는 총소리에 놀란 몇몇 녀석들이 식칼이나 잭 나이프 등을 들고 계단을 뛰어 올라오려 하고 있었다. 나는 최루탄 두 개를 아래쪽으로 던진 후 샷 건을 남김없이 발사했다. 발사음 때문에 비명소리는 귀를 기울여야만 들을 수 있었다. 방독면을 썼기 때문에 내 입가의 비웃음은 보이지 않을 것 같아 아쉬웠다.

붉은 카펫이 깔린 계단을 거의 다 내려갔을 때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나이트클럽 안에서는 사방에서 기침소리가 들렸다. 또 하나의 최루탄을 다시 안으로 우겨 넣었다. 기침소리와 욕설이 뒤범벅되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탄창이 바닥난 샷 건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머신 건을 꺼내 닥치는 대로 사방으로 쏘았다. 이번에는 비명소리가 제법 컸다. 욕설도 덩달아 커졌다. 어딨어, 누구야, 라는 외침과 함께. 샷 건과 달리 머신 건을 맞은 녀석들은 튀어 오르지 않고 짚단처럼 쓰러져 갔다.

샷 건의 탄창이 바닥났을 때 가방 밖으로 튀어 나온 일본도를 꺼냈다. 팔로 눈과 코를 대충 가린 채 회칼을 들고 나오는 녀석들이 있었지만 내 털끝하나도 건드리지 못한 채 긴 일본도의 날카로운 칼날에 희생되었다. 나는 쓰러진 깍두기들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불쌍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비웃음은 가시지 않았다.

눈앞에는 연기가 자욱했다. 기침소리는 처음 나이트클럽에 들어올 때 비해 상당히 잦아들었다. 살아남은 녀석이 거의 없는 것이다. 숨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건조하게 방독면 안을 울리는 것은 나의 숨소리였다. 심장이 귀 바로 옆에서 뛰는 듯 거칠었다. 입가의 비웃음이 가셨다. 연기는 눈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코와 입, 기도를 거쳐 폐까지 느껴졌다. 극심한 갑갑함을 느낀 나는 의식조차 하지 못한 사이에 바튼 기침을 토하고 있었다. 나의 기침 소리를 알아챘는지 다른 기침 소리가 내게 다가왔다. 사력을 다해 일본도를 휘둘렀지만 칼을 쥔 손에 제대로 힘을 줄 수 없었다. 방독면을 벗어던졌을 때 왼 팔꿈치에 뻐근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기침 때문에 비명도 지를 수가 없었다. 어쩐지 쉽게 끝날 리가 없지, 라는 생각에 쓴웃음이 들었다. 각목은 다시 오른쪽 무릎 뒤를 공격해왔다. 나는 사력을 다해 쓰러지지 않으려 노력하며 힘없이 일본도를 그어대 놈을 쓰러뜨리려 했지만 빗나갔고 도리어 오른쪽 어깨를 맞아 일본도를 놓치고 말았다.

눈도 뜰 수 없었다. 제이가 준 최루탄의 재질은 무엇일까 고민하다 순간 고장 난 방독면을 준 녀석이 원망스러웠다. 왼쪽에서 쌍권총을 들고 절뚝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사내의 흐릿한 실루엣이 보였다. 죽을 때가 되어 헛것이 보이는 것일까.

방독면을 쓴 채 절뚝거리며 다가 온 사내는 제이였다. 조용히 걸어와 각목을 든 깍두기를 쌍권총으로 제압했다. 제이는 새 방독면을 건네주며 말했다.

“룸으로 어서!”

제이는 주변의 녀석들을 제압하며 룸 방향으로 손가락질 했다. 아직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나이트클럽 안쪽 깊숙이 숨겨진 룸을 향해 뛰었다. 새 방독면을 착용한 입가에는 쓰디쓴 침이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다. 제이가 와서 도와주니 몇 년 전 함께 일하던 시절이 갑자기 떠올랐다.

복도의 입구에는 깍두기 두 녀석이 콜록거리면서도 안간힘을 다해 쓰러지지 않으려 버티고 있었다. 가방에서 꺼낸 또 다른 샷 건으로 쓰러뜨리자 기침 소리는 잦아들었다. 복도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수류탄과 최루탄을 던져 넣은 다음 복도 벽에 몸을 붙였다.

폭음과 함께 피맺힌 살덩어리가 방독면에 강하게 부딪쳤다. 복도 안쪽의 룸에서는 절규에 가까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룸 안에는 여종업원 몇 명과 중간 보스가 양쪽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었고 가운데에는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보스 권중호가 있었다. 하지만 최루가스는 방독면 없이 정신력만으로 이겨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고개를 쳐들기 위해 애쓰는 권중호와 축 늘어진 몇몇은 내버려두고 무기를 손에 쥔 세 명을 샷 건으로 제압했다. 그러자 권중호는 나를 바라보며 콜록거리며 말했다.

“조, 자네가 직접 올 줄은...”

기침 때문에 미처 말을 마무리 짓지 못한 권중호를 향해 이마와 가슴에 샷 건을 발사하자 얼굴의 절반이 날아가 버렸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죽여야 하는 임무가 끝났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렸다. 그때 앞으로 쓰러져 있던 녀석들 중에 호리호리한 몸집의 녀석이 용수철처럼 일어나 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나는 샷 건을 쏘려했지만 탄창은 바닥나 있었다. 마지막 한 발은 자신을 위해 남겨야 한다는 원칙을 잊은 것이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고개가 오른쪽으로 꺾였고 제이가 준 새 방독면은 한참 저 멀리로 날아갔다. 녀석의 오른발이 내 왼뺨에 작렬한 것이다. 녀석의 체형과 몸놀림은 익숙한 데가 있었다. 얼굴을 떠올리며 방어 자세를 가다듬으려 했지만 재차 녀석의 왼발이 내 가슴팍을 강하게 때렸다. 방독면 없이 최루가스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기침을 내뱉고 있었는데 가슴팍을 맞고 나서는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정신이 몽롱해졌다. 나는 무릎을 꿇은 자세가 되었고 녀석은 권총을 꺼내 내 이마를 겨누었다. 타협의 여지가 없는 죽음. 언젠가 올 것이라 생각했던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 장전음이 들렸다. 아마 나는 발사음을 듣지 못한 채 죽을 것이다. 바싹 긴장한 내 이마에 닿은 것은, 그러나 총탄이 아니라 미지근한 액체였다. 나는 여전히 기침을 하고 있었고 살아 있었지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마에 닿은 액체를 손가락으로 찍어 눈앞에 갔다댔다. 노란색이었다. 살이 녹아 흘러내린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녀석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얼굴에는 머리카락과 살점, 눈알이 뒤범벅이 되어 흘러내리고 있었고 팔다리도 스멀스멀 녹아내리고 있었다. 제이는 왜 안 오는 걸까... 나는 정신을 잃었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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