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宙易)
글 수 47
“걸오 실력 여전하네. 피해상황 보고해.”
미카는 오랜만에 본 전우의 실력에 감탄하면서도 곧 벌어질 근거리 전투에 대비해 편대상황을 확인했다.
-2기 중파. 실드가 회복되는 대로 후위에 투입시키겠습니다.
“안돼, 귀환시켜.”
걸오가 먼저 돌격하여 적진을 유린한 덕분에 불리했던 장거리 미사일 전투는 엇비슷하게 흘러갈 수 있었다. 게다가 적기 중에는 다수의 무인기가 있어서 근접전투로 가면 오히려 이쪽이 유리해질 것이다. 무인기는 중장거리전에서 미사일을 쏠 때는 꽤 성가시긴 해도 근거리전에서는 결국 스타파이터들의 표적이기 때문이다.
“말라니안, 걸오가 만들어 놓은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상투스는 나를 따라서 폭격조로 향하는 놈들 옆을 친다.”
-10-4
미카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면서도 자신의 상대를 찾았다. 지금부터 벌어질 근접전은 인공지능이나 깔나리가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백 키프스 속도의 스타파이터들끼리 얽혀 싸운다면 그 상대속도는 말할 것도 없다.
“온다. 상투스, 앞쪽부터 긁어줘라.”
-10-4
미카의 명령에 부하들이 즉시 응전 대형으로 헤쳐 모였다. 이것은 서로의 공격범위를 겹치고 다시 그 안에 아군을 배치하여 고속기동 집단전시에 사각을 최대한 줄이는 진형이다. 물론 선두에 선 것은 미카다.
-삐삐삐삐삐
“산지니 둘! 산지니 둘!”
헬멧 속으로 울리는 익숙한 미사일 조준음에 미카는 즉시 영상인식 미사일을 발사했다. 동시에 저쪽에서도 미사일이 날아왔으나 미카는 미끼를 뿌리며 날렵한 회피기동으로 피한 다음 근접전으로 돌입했다.
한 바톨이 역삼각형의 기체를 비스듬히 놀려 미카를 지나친 뒤 그녀의 뒤를 잡으려 했지만 이미 수가 읽혀진 뒤였다. 미카는 반격을 위해 기체의 에너지 밸런스를 다시 잡았다. 화기 에너지 공급 전면 중단, 실드 충전기 비활성. 반면 추진력과 관성제어력 최대로. 덕분에 기본성능 이상으로 급선회할 수 있었던 얼룩불꽃은 녀석의 머리 위를 덮쳤다.
“가라.”
에너지 밸런스를 원래로 되돌린 미카는 적기의 궤도 예측선에 조준점이 맞춰지자 지체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얼룩불꽃의 양 어깨에서 쏟아져 나간 플라스마건과 포톤건에 명중 당한 바톨은 기체 상부의 실드 전부와 장갑의 태반을 잃어버린 채 잽싸게 꽁무니를 빼려 했다. 허나 그 뒤를 잡고 있는 자는 연방의 에이스 중의 하나인 오미크론이었다. 놈은 가속해서 일단 위기를 벗어나려 했으나 미카 쪽이 더 빨랐다. 포톤건이 연사 되자 간신히 재생되던 기체보호 실드는 갈가리 찢어졌고 이를 뚫고 들어온 광자는 장갑을 부수고 그 안의 내부 구조와 기기들을 맘껏 유린했다. 이윽고 격추. 우주 공간에서의 폭발은 번쩍이는 섬광에 반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광경이다.
적기를 격추한 미카는 즉시 다른 사냥감을 찾아 나섰다. 근접전용 3차원 센서의 입체 모니터는 붉은 색으로 적, 푸른 색으로 아군을 표시하고 있었는데 붉은 점들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었다.
“화아, 이 아이 정말 멋지다.”
치두남의 마이너 개선판인 ‘얼룩불꽃’의 성능에 미카는 홀랑 반해 버렸다. 물론 이전의 시험비행 때도 감탄하긴 했지만 실전에서 느낀 감상은 또 달랐다.
비록 자기장 시스템은 없지만 동력로와 추진기의 이원화 덕분에 연방의 전투기 클래스 중에서 유일하게 플라스마건을 장비한 얼룩불꽃. 이 얼룩불꽃은 무장 외의 측면에서도 치두남의 여러 장점들을 피드백 하여 기존의 스타파이터와는 차별화된 성능을 가진 차세대 기종인 것이다.
“흠~흠~, 이런 분위기로 나간다면 우리 쪽에 피해가 전혀 없이 끝나겠는걸?
말라니안, 3시 방향에서 2대. 상투스와 협공해.”
-10-4!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말라니안과 다른 부하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놈들을 도륙했다. 1대1로 맞붙었을 때 나머지 동료들이 사방팔방에서 덤벼들어 격추시킨다는 전법은 단기 결투를 즐기는 낭만파(?)들에겐 사도로 통했지만 확실한 승률 덕분에 대중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물론 걸오는 혼자서 노는 게 훨씬 효율이 좋지만 말이다. (반면 적들이 걸오에게 이딴 전법을 사용했다간 전멸시간만 앞당겨질 뿐이다.)
“우앙, 어느 새 내 뒤에 붙었어.”
미카는 자신의 뒤에서 덤벼오는 한 대의 바톨을 떨치기 위해 회피기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적탄 두어 발이 후미 방어막에 명중한 듯 했다.
“와와와! 얘 제법 하잖아?”
미카는 얼룩불꽃의 속도를 갑자기 높이면서 급선회하는 척 하더니 갑자기 관성제어력을 최대로 하면서 기체를 반전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쫓던 적이 앞으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요격한 다음 애프터버너를 켜서 잃어버린 속도를 만회했다.
“얏호오, 치두남 흉내 성공! 이거 옛날 것들하곤 차원이 다른데?
관령님이 걸오한테 뭔가 약점잡고 뽀리친 거라도 있나?
이거로 한 분대 짜면 치두남을 상대로도 시간을 끌어볼 수 있겠어.
아냐아냐, 우리전대를 이 녀석으로 무장시키면 에헤헤헤...”
신이 나서 이런저런 망상을 하던 미카는 문득 떠오른 현실에 금방 시무룩해졌다.
“그치만 이건 제루님 관령님이 수제로 만드는 시험기이니까 당여언히
정식배치는 안될 테고, 몇 대 더 만들어 달라고 졸라 볼까나?
후엥, 이럴 줄 알았으면 예산회의 할 때 반대 안 하는 건데…
지금 말 바꿨다간 아으으~.”
미카는 자신의 비행편대에 얼룩불꽃이 5대 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실망해 하며 다시 적 진영 사이로 뛰어 들었다.
“크아! 걸오 자식. 멋진데! 좋아! 그럭저럭 궤도 확보됐다.
공격준비! 날파리들은 신경쓰지맛! 목표는 적함이다.”
공격조가 선전을 한 덕분에 폭격조와 엄호조는 비교적 느긋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도리볼을 선두로 한 폭격조가 공격준비를 하자 재빨리 엄호조가 따라 붙었다.
“내가 선방 날릴 테니까 잘 봐라.”
-도리볼 소령님, 위험합니다. 먼저 주변영역의…
“폭격기한텐 이미 안전하단다, 새대가리. 뒤 잘 봐라.”
도리볼은 테테루의 말을 씹으며 퇴치함 한 척을 목표로 잡고 돌입했다. 대공포화가 퍼부어지는 상황이었지만 돌입궤도 근처에 적기는 없으니 절호의 기회. 사냥감을 노리는 갈규스의 실드는 정면으로 집중되었고 이어서 어뢰의 실드도 작동되면서 두 개의 실드가 서로 동화 되었다.
-삐삐삐삐삐삐
“이무기! 이무기!”
어뢰의 목표조준을 확인한 도리볼은 발사신호를 외치면서 방아쇠를 당겼고 동시에 어뢰 추진기도 점화되었다. 그러나 도리볼은 어뢰를 분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갈규스와 어뢰는 함께 적함으로 돌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것은 폭격기 특유의 돌입투하방식으로서 기체와 어뢰의 실드를 동화시켜서 방어력을 강화하고 또한 두 개의 추진기로 속도를 높여 어뢰의 명중률을 높이는 방식이다. 다만 이탈시기가 늦어지기 때문에 격추당할 확률도 높아지지만 이를 무서워하는 갈규스 스타파이터는 없었다.
“얼씨구, 절씨구, 신이 나서 쏴대는구나.”
이 돌입순간이 갈규스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어뢰를 확실하게 명중시키기 위해서 진입해 들어가는 만큼 적의 공격도 거세어지기 때문에 제아무리 두툼한 갈규스의 실드와 장갑이라 해도 안심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실드는 거의 무력화 되었고 운동에너지 탄은 이미 갈규스의 장갑을 때리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충격은 지금부터였다.
“그윽.”
갈규스가 퇴치함의 방어필드에 충돌하는 순간 엄청난 충격파가 기체를 휩쓸었고 도리볼은 잇소리를 내었다. 필드의 억제력을 어뢰의 필드돌파장치가 상쇄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그전에 어뢰를 적함에 꽂아야만 하는 것이다.
“담프사에 잘 왔다. 잘 가라.”
필드를 뚫고 들어간 도리볼은 마침내 어뢰를 분리하면서 최고속도로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리하면서 최종점화를 한 어뢰는 고속으로 쏘아져 나가 퇴치함에 명중하면서 큰 폭발을 일으켰다.
“끼이이~얏호!”
도리볼은 신나서 머리를 뒤흔들면서도 실드를 후방으로 돌리고 기체상황을 체크했다. 실드장치에는 피해가 없으니 조금 있으면 충전이 될 테고 장갑도 두들겨 맞긴 했지만 각도를 바꿔 돌입하면 두세 번은 더할 수 있을 것이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은 도리볼은 자신의 부하들을 돌아보았다.
-이, 이무기! 이무기! 이무기!
마침 부하들이 공격할 차례였다. 허나 전원이 적에게 총 한 번 겨눠본 적 없는 선량한(?) 놈들인지라 도리볼은 머리가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야이 자식들아, 그냥 먼데서 쏘고 말어. 실력도 없는 놈들이 뭔 놈의 돌입투하냐.”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다. 어리버리한 실력과 담력을 동시에 가진 폭겨조원들은 소대장의 멋진 모습에 뻑 가서 냅다 돌입투하 흉내를 냈다가 본전도 못 찾고 있었다. 적의 대공사격과 자신의 어뢰발사 둘 다를 신경 써가며 비행하는 것은 베테랑 스타파이터들에게도 힘든 일이다. 잠시 뽕 맞은 기분으로 어찌어찌 될게 아닌 것이다. 벌써 한 놈이 반파되어 빌빌거리며 아둥바둥 도망치고 있었다.
“걸오새낀 지금 뭐 하는 거야!”
칭찬한지 얼마 됐다고 쌍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온다.
“야이 씨댕아! 니 부하가 뻘짓한 걸 왜 나보고 그러냐!
그리고 이 병신들아! 니네 말대가리 소대장들이 그렇게 가르치던!”
걸오도 걸오 나름대로 열이 받아 죽기 일보 직전인 폭격조들을 바라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미 적 스타파이터들이 전멸했으니 아이사타호의 공격조도 적함 공격에 가담하고 있었다.
저쪽에선 도리볼이 이미 한 척을 대파시킨 반면 걸오가 엄호하고 있는 폭격조는 생각 없이 돌격했다가 거리와 속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허겁지겁 이탈한 다음 다시 쳐들어가는 바보짓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으아아 소령님! 제발 어떻게 좀 해주십시오!!!!!!
폭격조원 한 놈이 걸오에게 애걸복걸을 했다. 어찌 저런 실력으로 스타파이터라고 하는지 한심해지는 걸오였다. 걸오는 문득 테테루조도 걱정이 되었으나 치두남은 이미 퇴치함을 향해 돌입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뢰를 들고 나오는 건데 말이야.”
어뢰는 없지만 치두남에겐 플라스마 램 모드(Plasma Ram Mode)가 있었다. 걸오가 치두남의 플라스마 캐논을 충각 모드로 바꾸자 포신에서 흘러나온 고열의 제4 상태 물질이 기체 정면을 휘감아 나갔다. 이렇게 응집된 플라스마 램의 파괴력은 통상사격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는 자기장 날개와 필드 덕분에 가능한 묘기지만 치두남에도 큰 무리를 주기 때문에 충각을 유지하는 것은 2, 3초가 고작이다. 하지만 그 정도 시간이라면 저 퇴치함을 들이받기에 충분했다.
퇴치함은 수만 도의 고열이 되어 돌격하는 치두남을 보고 발작적으로 대공포화를 뿌려댔지만 그딴 공격에 상처 입을 치두남이 아니었다. 곧 고열의 충각이 퇴치함에 격돌하자 방어필드는 순식간에 상쇄되었고 장갑판이 녹아 내렸으며 이어서 내부구조와 기기들이 증발해나갔다. 다음 걸오는 충각을 해제하면서 그 상처 속으로 미사일과 레일캐논을 퍼부었고 퇴치함은 곳곳에서 폭발을 일으키며 침몰해갔다.
걸오는 폭발하는 적함에서 고속으로 빠져나오면서 테테루를 불렀다. 폭격조가 이렇게 삽질을 해대니 엄호조는 대체 무슨 뻘짓을 했을지 걱정되는 것이다.
“어이, 테테루. 니네 쪽은 어떻냐?”
-아, 예, 소령님. 그게, 우리 쪽도 임무 완수했습니다.”
그런데 통신화면에 나타난 테테루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약간 꾸물거리고 있었다.
“그래? 아군의 피해는?”
-예..그게 저....
버벅대는걸 보니 뭔가가 꼬이긴 꼬인 모양이었다.
“왜 그러나…몇 명이 당했나!”
걸오는 낮게 으르렁대며 자신의 추측이 틀렸기를 바랬다. 근데 갑자기 울상이 된 듯한 테테루의 모습이 화면에서 사라지더니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미카의 얼굴이 나타났다.
-캬하하~내가 어뢰 하날 들고 오길 정말 잘했나 봐. 안 그랬음 니네 부하들은
모두 이계급 특진했을걸? 걔네 들은 조금 다쳤을 뿐이야.
“미카 니가 도와줬구나. 정말 고마워.”
-헤헤, 뭘 이걸 가지구. 예상보다 적 전투편대가 일찍 전멸해서
끙끙대는 폭격조를 좀 도와준 것뿐이야. 나중에 한턱내야 돼.
“하하 물론이지.”
통신화면에 미카의 모습이 사라지자 다시 테테루의 모습이 떴다. 테테루는 걸오의 얼굴에 남아있는 미소를 보곤 약간의 안도감을 가졌으나 그것은 오산...
“테테루. 너 나중에 나 좀 조용히 보자꾸나.”
-예에...
걸오는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안도했으나 대장된 도리로 어찌 마음이 편할까? 자신이 떠나고 나면 또다시 헬렐레한 깔나리로 돌아갈 부하들을 생각하니 장이 꼬이는 것만 같은 걸오였다.
-자! 이제, 항공모함 한 척만 남았다.
돌입의 선두는 걸오다. 도리볼은 폭격조를 통솔하여 공격하고
나머지 편대는 폭격조를 엄호한다. 알았나?
“또 나야?”
-이야, 중령님 화끈한뎁쇼.
미카의 명령에 따라 걸오는 다시 편대의 선두에 섰고 도리볼은 아직 어뢰가 남아있는 부하들 중에서 쓸만한 놈들만 추려 항공모함을 향해 날아갔다. 이제 적의 고속항모는 탑재기도 호위함도 없이 초라한 대공포만 가진 채 사기 등등한 연방군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걸오야, 넌 이상한 걸 못 느끼겠어?
“뭐가?”
통신채널을 통해 미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항공모함 말야. 아까 자꾸 이상한 기동을 하더라고.
“이상한 기동?”
폭격조 뒷바라지한다고 학을 떼던 걸오에겐 항모를 보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었다. 이것도 둘의 차이라면 차이다. 걸오는 눈앞의 적은 절대 놓치지 않지만 미카는 전체의 전황을 보는 것이다.
-뭐랄까…항공모함의 회피기동이 아니라 순양함이나 구축함들의
전투시 대응기동 같았는데...
어느새 적의 대공사격이 편대를 향해 쏘아져 오고 있었다.
“미카, 폭격조를 대기시켜. 함포는 전부 내가 부술게.”
-좋아.
걸오는 말을 하자마자 폭격기의 방어력과 요격기의 기동성을 지닌 괴물 치두남을 이끌고 적을 향해 돌진했다.
“얼마 안 되는군.”
걸오의 말대로 고속항모는 자기방어 시설을 약간 갖추고 있을 뿐이었다. 원래 대함 공격용 함포였던 플라즈마 캐논이 방어 필드를 꿰뚫으며 곳곳의 대공포들을 작살냈고 치두남은 다시 선회하면서 빠져나가더니 다른 포들을 노렸다.
“어?”
그런데 그때 걸오는 고속항모의 스타파이터 사출기가 작동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중형 항공모함 이상의 활주로는 함선 장갑판으로 사면이 둘러싸여 있지만 소형 항공모함들은 크기문제 때문에 활주로와 사출기가 선외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런 활주로에서 지금 전투기들을 발진시키는 사출기가 작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쳇! 이제 와서 발진이냐?”
걸오는 사출기에 스타파이터가 올려지길 기다리며 활주로 쪽을 선회했다. 지금 활주로를 쏴서 사용불능으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스타파이터가 올려졌을 때 격추시킨다면 그 유폭으로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서 와라.”
발진위치까지 당겨진 사출기에는 곧 스타파이터가 올라올 것이다. 그러나 이건 또 무슨 일인지 사출기는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은 채 작동되었다.
“뭐? 뭐야?”
걸오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오라는 스타파이터는 안 나오고 빈 채로 작동되는 사출기라니. 바로 옆에 있던 사출기 역시 아무것도 싣지 않은 채 작동되었다.
“이건 도대체?”
걸오가 의아해 하고 있을 때 사출기는 다시 뒤로 당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더니 사출기에 뭔가를 싣는 듯 했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지만 엘리베이터의 슬라이드라던가 사출기의 고정 후크는 확실히 작동하고 있었다.
걸오는 이번엔 상대방이 뭘 하든 상관하지 않고 날아들었다. 그리고 적 고속항모의 방어 필드와 치두남의 자기장 필드가 서로 직접간섭을 일으킬 만큼 달라붙어서 활주로를 향해 플라스마 캐논을 갈겼다. 자기장 필드로 고속항모의 필드를 무력화시킨 다음에 쏜 근접 사격이었기 때문에 전자와 원자핵으로 갈갈이 흩어져 미친 듯이 뛰노는 고온의 무희들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활주로에 안착해 합금 갑판을 무대로 고열과 방사능 폭풍을 주제로 한 원무곡을 추어댔다. 이 폭발로 인해 활주로는 끊어졌지만 빈 사출기는 그대로 앞쪽으로 쏘아져 나갔고 방금의 사격으로 인해 일어난 플라스마 폭풍에 충돌했다.
그리고 고속항모를 송두리째 집어삼킬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우앗!”
엄청난 대폭발이었다. 중단된 활주로에서 대함 어뢰 이상의 폭발이 일어나더니 근접비행 하고 있던 치두남을 덮친 것이다. 걸오는 요동치는 치두남을 다잡으며 간신히 폭발 속에서 빠져 나왔다.
-꺅, 걸오야!
-야! 걸오!
-소령님!
통신채널을 비집고 들어오는 음파들이 앞 다투어 걸오의 상태를 물어왔다.
“난 괜찮아. 그보다 방금 건 도대체 뭐지? 누가 어뢰를 쐈나?
아니면 아이사타호에서 함포사격을 한 거야?”
“아냐! 우리 애들은 여기 있는데.”
미카의 걱정해 하는 모습이 치두남의 통신화면에 떴다. 치두남의 상태를 점검해보니 자기장 필드는 송두리째 날아갔고 하부 장갑판도 반쯤 떨어져 나가 있었다. 플라스마 램 모드를 견뎌내는 제로리타늄 장갑이 이렇게 될 정도면 어지간한 고열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
“니기미, 그렇담 방금 터진 건 뭐야?”
미카는 오랜만에 본 전우의 실력에 감탄하면서도 곧 벌어질 근거리 전투에 대비해 편대상황을 확인했다.
-2기 중파. 실드가 회복되는 대로 후위에 투입시키겠습니다.
“안돼, 귀환시켜.”
걸오가 먼저 돌격하여 적진을 유린한 덕분에 불리했던 장거리 미사일 전투는 엇비슷하게 흘러갈 수 있었다. 게다가 적기 중에는 다수의 무인기가 있어서 근접전투로 가면 오히려 이쪽이 유리해질 것이다. 무인기는 중장거리전에서 미사일을 쏠 때는 꽤 성가시긴 해도 근거리전에서는 결국 스타파이터들의 표적이기 때문이다.
“말라니안, 걸오가 만들어 놓은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상투스는 나를 따라서 폭격조로 향하는 놈들 옆을 친다.”
-10-4
미카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면서도 자신의 상대를 찾았다. 지금부터 벌어질 근접전은 인공지능이나 깔나리가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백 키프스 속도의 스타파이터들끼리 얽혀 싸운다면 그 상대속도는 말할 것도 없다.
“온다. 상투스, 앞쪽부터 긁어줘라.”
-10-4
미카의 명령에 부하들이 즉시 응전 대형으로 헤쳐 모였다. 이것은 서로의 공격범위를 겹치고 다시 그 안에 아군을 배치하여 고속기동 집단전시에 사각을 최대한 줄이는 진형이다. 물론 선두에 선 것은 미카다.
-삐삐삐삐삐
“산지니 둘! 산지니 둘!”
헬멧 속으로 울리는 익숙한 미사일 조준음에 미카는 즉시 영상인식 미사일을 발사했다. 동시에 저쪽에서도 미사일이 날아왔으나 미카는 미끼를 뿌리며 날렵한 회피기동으로 피한 다음 근접전으로 돌입했다.
한 바톨이 역삼각형의 기체를 비스듬히 놀려 미카를 지나친 뒤 그녀의 뒤를 잡으려 했지만 이미 수가 읽혀진 뒤였다. 미카는 반격을 위해 기체의 에너지 밸런스를 다시 잡았다. 화기 에너지 공급 전면 중단, 실드 충전기 비활성. 반면 추진력과 관성제어력 최대로. 덕분에 기본성능 이상으로 급선회할 수 있었던 얼룩불꽃은 녀석의 머리 위를 덮쳤다.
“가라.”
에너지 밸런스를 원래로 되돌린 미카는 적기의 궤도 예측선에 조준점이 맞춰지자 지체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얼룩불꽃의 양 어깨에서 쏟아져 나간 플라스마건과 포톤건에 명중 당한 바톨은 기체 상부의 실드 전부와 장갑의 태반을 잃어버린 채 잽싸게 꽁무니를 빼려 했다. 허나 그 뒤를 잡고 있는 자는 연방의 에이스 중의 하나인 오미크론이었다. 놈은 가속해서 일단 위기를 벗어나려 했으나 미카 쪽이 더 빨랐다. 포톤건이 연사 되자 간신히 재생되던 기체보호 실드는 갈가리 찢어졌고 이를 뚫고 들어온 광자는 장갑을 부수고 그 안의 내부 구조와 기기들을 맘껏 유린했다. 이윽고 격추. 우주 공간에서의 폭발은 번쩍이는 섬광에 반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광경이다.
적기를 격추한 미카는 즉시 다른 사냥감을 찾아 나섰다. 근접전용 3차원 센서의 입체 모니터는 붉은 색으로 적, 푸른 색으로 아군을 표시하고 있었는데 붉은 점들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었다.
“화아, 이 아이 정말 멋지다.”
치두남의 마이너 개선판인 ‘얼룩불꽃’의 성능에 미카는 홀랑 반해 버렸다. 물론 이전의 시험비행 때도 감탄하긴 했지만 실전에서 느낀 감상은 또 달랐다.
비록 자기장 시스템은 없지만 동력로와 추진기의 이원화 덕분에 연방의 전투기 클래스 중에서 유일하게 플라스마건을 장비한 얼룩불꽃. 이 얼룩불꽃은 무장 외의 측면에서도 치두남의 여러 장점들을 피드백 하여 기존의 스타파이터와는 차별화된 성능을 가진 차세대 기종인 것이다.
“흠~흠~, 이런 분위기로 나간다면 우리 쪽에 피해가 전혀 없이 끝나겠는걸?
말라니안, 3시 방향에서 2대. 상투스와 협공해.”
-10-4!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말라니안과 다른 부하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놈들을 도륙했다. 1대1로 맞붙었을 때 나머지 동료들이 사방팔방에서 덤벼들어 격추시킨다는 전법은 단기 결투를 즐기는 낭만파(?)들에겐 사도로 통했지만 확실한 승률 덕분에 대중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물론 걸오는 혼자서 노는 게 훨씬 효율이 좋지만 말이다. (반면 적들이 걸오에게 이딴 전법을 사용했다간 전멸시간만 앞당겨질 뿐이다.)
“우앙, 어느 새 내 뒤에 붙었어.”
미카는 자신의 뒤에서 덤벼오는 한 대의 바톨을 떨치기 위해 회피기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적탄 두어 발이 후미 방어막에 명중한 듯 했다.
“와와와! 얘 제법 하잖아?”
미카는 얼룩불꽃의 속도를 갑자기 높이면서 급선회하는 척 하더니 갑자기 관성제어력을 최대로 하면서 기체를 반전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쫓던 적이 앞으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요격한 다음 애프터버너를 켜서 잃어버린 속도를 만회했다.
“얏호오, 치두남 흉내 성공! 이거 옛날 것들하곤 차원이 다른데?
관령님이 걸오한테 뭔가 약점잡고 뽀리친 거라도 있나?
이거로 한 분대 짜면 치두남을 상대로도 시간을 끌어볼 수 있겠어.
아냐아냐, 우리전대를 이 녀석으로 무장시키면 에헤헤헤...”
신이 나서 이런저런 망상을 하던 미카는 문득 떠오른 현실에 금방 시무룩해졌다.
“그치만 이건 제루님 관령님이 수제로 만드는 시험기이니까 당여언히
정식배치는 안될 테고, 몇 대 더 만들어 달라고 졸라 볼까나?
후엥, 이럴 줄 알았으면 예산회의 할 때 반대 안 하는 건데…
지금 말 바꿨다간 아으으~.”
미카는 자신의 비행편대에 얼룩불꽃이 5대 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실망해 하며 다시 적 진영 사이로 뛰어 들었다.
“크아! 걸오 자식. 멋진데! 좋아! 그럭저럭 궤도 확보됐다.
공격준비! 날파리들은 신경쓰지맛! 목표는 적함이다.”
공격조가 선전을 한 덕분에 폭격조와 엄호조는 비교적 느긋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도리볼을 선두로 한 폭격조가 공격준비를 하자 재빨리 엄호조가 따라 붙었다.
“내가 선방 날릴 테니까 잘 봐라.”
-도리볼 소령님, 위험합니다. 먼저 주변영역의…
“폭격기한텐 이미 안전하단다, 새대가리. 뒤 잘 봐라.”
도리볼은 테테루의 말을 씹으며 퇴치함 한 척을 목표로 잡고 돌입했다. 대공포화가 퍼부어지는 상황이었지만 돌입궤도 근처에 적기는 없으니 절호의 기회. 사냥감을 노리는 갈규스의 실드는 정면으로 집중되었고 이어서 어뢰의 실드도 작동되면서 두 개의 실드가 서로 동화 되었다.
-삐삐삐삐삐삐
“이무기! 이무기!”
어뢰의 목표조준을 확인한 도리볼은 발사신호를 외치면서 방아쇠를 당겼고 동시에 어뢰 추진기도 점화되었다. 그러나 도리볼은 어뢰를 분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갈규스와 어뢰는 함께 적함으로 돌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것은 폭격기 특유의 돌입투하방식으로서 기체와 어뢰의 실드를 동화시켜서 방어력을 강화하고 또한 두 개의 추진기로 속도를 높여 어뢰의 명중률을 높이는 방식이다. 다만 이탈시기가 늦어지기 때문에 격추당할 확률도 높아지지만 이를 무서워하는 갈규스 스타파이터는 없었다.
“얼씨구, 절씨구, 신이 나서 쏴대는구나.”
이 돌입순간이 갈규스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어뢰를 확실하게 명중시키기 위해서 진입해 들어가는 만큼 적의 공격도 거세어지기 때문에 제아무리 두툼한 갈규스의 실드와 장갑이라 해도 안심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실드는 거의 무력화 되었고 운동에너지 탄은 이미 갈규스의 장갑을 때리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충격은 지금부터였다.
“그윽.”
갈규스가 퇴치함의 방어필드에 충돌하는 순간 엄청난 충격파가 기체를 휩쓸었고 도리볼은 잇소리를 내었다. 필드의 억제력을 어뢰의 필드돌파장치가 상쇄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그전에 어뢰를 적함에 꽂아야만 하는 것이다.
“담프사에 잘 왔다. 잘 가라.”
필드를 뚫고 들어간 도리볼은 마침내 어뢰를 분리하면서 최고속도로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리하면서 최종점화를 한 어뢰는 고속으로 쏘아져 나가 퇴치함에 명중하면서 큰 폭발을 일으켰다.
“끼이이~얏호!”
도리볼은 신나서 머리를 뒤흔들면서도 실드를 후방으로 돌리고 기체상황을 체크했다. 실드장치에는 피해가 없으니 조금 있으면 충전이 될 테고 장갑도 두들겨 맞긴 했지만 각도를 바꿔 돌입하면 두세 번은 더할 수 있을 것이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은 도리볼은 자신의 부하들을 돌아보았다.
-이, 이무기! 이무기! 이무기!
마침 부하들이 공격할 차례였다. 허나 전원이 적에게 총 한 번 겨눠본 적 없는 선량한(?) 놈들인지라 도리볼은 머리가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야이 자식들아, 그냥 먼데서 쏘고 말어. 실력도 없는 놈들이 뭔 놈의 돌입투하냐.”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다. 어리버리한 실력과 담력을 동시에 가진 폭겨조원들은 소대장의 멋진 모습에 뻑 가서 냅다 돌입투하 흉내를 냈다가 본전도 못 찾고 있었다. 적의 대공사격과 자신의 어뢰발사 둘 다를 신경 써가며 비행하는 것은 베테랑 스타파이터들에게도 힘든 일이다. 잠시 뽕 맞은 기분으로 어찌어찌 될게 아닌 것이다. 벌써 한 놈이 반파되어 빌빌거리며 아둥바둥 도망치고 있었다.
“걸오새낀 지금 뭐 하는 거야!”
칭찬한지 얼마 됐다고 쌍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온다.
“야이 씨댕아! 니 부하가 뻘짓한 걸 왜 나보고 그러냐!
그리고 이 병신들아! 니네 말대가리 소대장들이 그렇게 가르치던!”
걸오도 걸오 나름대로 열이 받아 죽기 일보 직전인 폭격조들을 바라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미 적 스타파이터들이 전멸했으니 아이사타호의 공격조도 적함 공격에 가담하고 있었다.
저쪽에선 도리볼이 이미 한 척을 대파시킨 반면 걸오가 엄호하고 있는 폭격조는 생각 없이 돌격했다가 거리와 속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허겁지겁 이탈한 다음 다시 쳐들어가는 바보짓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으아아 소령님! 제발 어떻게 좀 해주십시오!!!!!!
폭격조원 한 놈이 걸오에게 애걸복걸을 했다. 어찌 저런 실력으로 스타파이터라고 하는지 한심해지는 걸오였다. 걸오는 문득 테테루조도 걱정이 되었으나 치두남은 이미 퇴치함을 향해 돌입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뢰를 들고 나오는 건데 말이야.”
어뢰는 없지만 치두남에겐 플라스마 램 모드(Plasma Ram Mode)가 있었다. 걸오가 치두남의 플라스마 캐논을 충각 모드로 바꾸자 포신에서 흘러나온 고열의 제4 상태 물질이 기체 정면을 휘감아 나갔다. 이렇게 응집된 플라스마 램의 파괴력은 통상사격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는 자기장 날개와 필드 덕분에 가능한 묘기지만 치두남에도 큰 무리를 주기 때문에 충각을 유지하는 것은 2, 3초가 고작이다. 하지만 그 정도 시간이라면 저 퇴치함을 들이받기에 충분했다.
퇴치함은 수만 도의 고열이 되어 돌격하는 치두남을 보고 발작적으로 대공포화를 뿌려댔지만 그딴 공격에 상처 입을 치두남이 아니었다. 곧 고열의 충각이 퇴치함에 격돌하자 방어필드는 순식간에 상쇄되었고 장갑판이 녹아 내렸으며 이어서 내부구조와 기기들이 증발해나갔다. 다음 걸오는 충각을 해제하면서 그 상처 속으로 미사일과 레일캐논을 퍼부었고 퇴치함은 곳곳에서 폭발을 일으키며 침몰해갔다.
걸오는 폭발하는 적함에서 고속으로 빠져나오면서 테테루를 불렀다. 폭격조가 이렇게 삽질을 해대니 엄호조는 대체 무슨 뻘짓을 했을지 걱정되는 것이다.
“어이, 테테루. 니네 쪽은 어떻냐?”
-아, 예, 소령님. 그게, 우리 쪽도 임무 완수했습니다.”
그런데 통신화면에 나타난 테테루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약간 꾸물거리고 있었다.
“그래? 아군의 피해는?”
-예..그게 저....
버벅대는걸 보니 뭔가가 꼬이긴 꼬인 모양이었다.
“왜 그러나…몇 명이 당했나!”
걸오는 낮게 으르렁대며 자신의 추측이 틀렸기를 바랬다. 근데 갑자기 울상이 된 듯한 테테루의 모습이 화면에서 사라지더니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미카의 얼굴이 나타났다.
-캬하하~내가 어뢰 하날 들고 오길 정말 잘했나 봐. 안 그랬음 니네 부하들은
모두 이계급 특진했을걸? 걔네 들은 조금 다쳤을 뿐이야.
“미카 니가 도와줬구나. 정말 고마워.”
-헤헤, 뭘 이걸 가지구. 예상보다 적 전투편대가 일찍 전멸해서
끙끙대는 폭격조를 좀 도와준 것뿐이야. 나중에 한턱내야 돼.
“하하 물론이지.”
통신화면에 미카의 모습이 사라지자 다시 테테루의 모습이 떴다. 테테루는 걸오의 얼굴에 남아있는 미소를 보곤 약간의 안도감을 가졌으나 그것은 오산...
“테테루. 너 나중에 나 좀 조용히 보자꾸나.”
-예에...
걸오는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안도했으나 대장된 도리로 어찌 마음이 편할까? 자신이 떠나고 나면 또다시 헬렐레한 깔나리로 돌아갈 부하들을 생각하니 장이 꼬이는 것만 같은 걸오였다.
-자! 이제, 항공모함 한 척만 남았다.
돌입의 선두는 걸오다. 도리볼은 폭격조를 통솔하여 공격하고
나머지 편대는 폭격조를 엄호한다. 알았나?
“또 나야?”
-이야, 중령님 화끈한뎁쇼.
미카의 명령에 따라 걸오는 다시 편대의 선두에 섰고 도리볼은 아직 어뢰가 남아있는 부하들 중에서 쓸만한 놈들만 추려 항공모함을 향해 날아갔다. 이제 적의 고속항모는 탑재기도 호위함도 없이 초라한 대공포만 가진 채 사기 등등한 연방군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걸오야, 넌 이상한 걸 못 느끼겠어?
“뭐가?”
통신채널을 통해 미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항공모함 말야. 아까 자꾸 이상한 기동을 하더라고.
“이상한 기동?”
폭격조 뒷바라지한다고 학을 떼던 걸오에겐 항모를 보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었다. 이것도 둘의 차이라면 차이다. 걸오는 눈앞의 적은 절대 놓치지 않지만 미카는 전체의 전황을 보는 것이다.
-뭐랄까…항공모함의 회피기동이 아니라 순양함이나 구축함들의
전투시 대응기동 같았는데...
어느새 적의 대공사격이 편대를 향해 쏘아져 오고 있었다.
“미카, 폭격조를 대기시켜. 함포는 전부 내가 부술게.”
-좋아.
걸오는 말을 하자마자 폭격기의 방어력과 요격기의 기동성을 지닌 괴물 치두남을 이끌고 적을 향해 돌진했다.
“얼마 안 되는군.”
걸오의 말대로 고속항모는 자기방어 시설을 약간 갖추고 있을 뿐이었다. 원래 대함 공격용 함포였던 플라즈마 캐논이 방어 필드를 꿰뚫으며 곳곳의 대공포들을 작살냈고 치두남은 다시 선회하면서 빠져나가더니 다른 포들을 노렸다.
“어?”
그런데 그때 걸오는 고속항모의 스타파이터 사출기가 작동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중형 항공모함 이상의 활주로는 함선 장갑판으로 사면이 둘러싸여 있지만 소형 항공모함들은 크기문제 때문에 활주로와 사출기가 선외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런 활주로에서 지금 전투기들을 발진시키는 사출기가 작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쳇! 이제 와서 발진이냐?”
걸오는 사출기에 스타파이터가 올려지길 기다리며 활주로 쪽을 선회했다. 지금 활주로를 쏴서 사용불능으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스타파이터가 올려졌을 때 격추시킨다면 그 유폭으로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서 와라.”
발진위치까지 당겨진 사출기에는 곧 스타파이터가 올라올 것이다. 그러나 이건 또 무슨 일인지 사출기는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은 채 작동되었다.
“뭐? 뭐야?”
걸오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오라는 스타파이터는 안 나오고 빈 채로 작동되는 사출기라니. 바로 옆에 있던 사출기 역시 아무것도 싣지 않은 채 작동되었다.
“이건 도대체?”
걸오가 의아해 하고 있을 때 사출기는 다시 뒤로 당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더니 사출기에 뭔가를 싣는 듯 했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지만 엘리베이터의 슬라이드라던가 사출기의 고정 후크는 확실히 작동하고 있었다.
걸오는 이번엔 상대방이 뭘 하든 상관하지 않고 날아들었다. 그리고 적 고속항모의 방어 필드와 치두남의 자기장 필드가 서로 직접간섭을 일으킬 만큼 달라붙어서 활주로를 향해 플라스마 캐논을 갈겼다. 자기장 필드로 고속항모의 필드를 무력화시킨 다음에 쏜 근접 사격이었기 때문에 전자와 원자핵으로 갈갈이 흩어져 미친 듯이 뛰노는 고온의 무희들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활주로에 안착해 합금 갑판을 무대로 고열과 방사능 폭풍을 주제로 한 원무곡을 추어댔다. 이 폭발로 인해 활주로는 끊어졌지만 빈 사출기는 그대로 앞쪽으로 쏘아져 나갔고 방금의 사격으로 인해 일어난 플라스마 폭풍에 충돌했다.
그리고 고속항모를 송두리째 집어삼킬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우앗!”
엄청난 대폭발이었다. 중단된 활주로에서 대함 어뢰 이상의 폭발이 일어나더니 근접비행 하고 있던 치두남을 덮친 것이다. 걸오는 요동치는 치두남을 다잡으며 간신히 폭발 속에서 빠져 나왔다.
-꺅, 걸오야!
-야! 걸오!
-소령님!
통신채널을 비집고 들어오는 음파들이 앞 다투어 걸오의 상태를 물어왔다.
“난 괜찮아. 그보다 방금 건 도대체 뭐지? 누가 어뢰를 쐈나?
아니면 아이사타호에서 함포사격을 한 거야?”
“아냐! 우리 애들은 여기 있는데.”
미카의 걱정해 하는 모습이 치두남의 통신화면에 떴다. 치두남의 상태를 점검해보니 자기장 필드는 송두리째 날아갔고 하부 장갑판도 반쯤 떨어져 나가 있었다. 플라스마 램 모드를 견뎌내는 제로리타늄 장갑이 이렇게 될 정도면 어지간한 고열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
“니기미, 그렇담 방금 터진 건 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