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찾아뵙는 리뷰는 나름 최신작인 폴아웃 3입니다. 컴퓨터가 아직도 없는 고로 인터넷에서 퍼온 자료들에 의존하는군요. 저작권법 따위...하긴 최저옵으로도 못 돌려서 ini 파일에서 온갖 해괴한 걸 다 지우고 옵션을 날린 끝에 간신히 20프레임을 확보했었으니 스샷 봐봐야 뭔지 구별도 안 가실 터.


돌이켜보면 폴아웃 시리즈는 상당히 괴상한 세계관을 가진 게임이었습니다. 괴상하다...독창적이라고 하는 게 좋겠군요. 1950년대 미국 만화 풍의 일러스트에, 전자장비엔 죄다 진공관이 달려있고 장비 디자인도 역시 5, 60년대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구닥다리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류를 박살낸 핵전쟁이 2077년에 벌어졌고 그 직전에 트랜지스터가 발명되었다고 설정되어 있으니 근 120년간 기술 발전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태로 냉전의 공포에만 시달리며 살아온 거죠. 그러면서도 희한하게 연료전지 쓰는 자동차나 인공지능 로봇이나 광선총, 강화복 등을 개발해냈으니, 냉전 초창기의 시각으로 상상한 'SF' 21세기의 미래상을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역시 미래 세계에 집어넣은 겁니다.

늘 하곤 하는 동영상 도배를 시작해 볼까요. 전 말로 설명할 능력이 안 되니 멀티미디어로 갑니다. 냉전 초창기의 분위기를 잘 느껴볼 수 있는 유명한 Duck and cover입니다. 나이 좀 있는 미국인들에겐 학교에서 교육용으로 보곤 했던 추억의 물건으로 남아 있는 것 같더군요. 저기 나오는 자세야, 신교대에서 바닥에 엎드려 배 띄우고 입벌리고 있으라고 가르치는 것과 비슷한 효율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보시면 아시겠지만 볼트 개념부터 시작해 폴아웃 시리즈의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저는 학교에서 쿠바 위기의 긴급 뉴스를 들으며 저런 것을 배운 적이 없고 비행기 타고 가본 곳은 제주도밖에 없으며 1950년대는커녕 90년대를 추억해야 할 세대니 다분히 미국적인 이 세계관에 대해 상세히 말하긴 좀 그렇지만, (1950년대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은 핵폭탄보다 더 중요한 문젯거리가 많았죠) 최소한 독창적이고 다분히 아이러니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겠네요. 희화화된 만화 그림도 그렇고, 오프닝에 Ink Spots의 1940년 노래인 Maybe가 흘러나오고, 동시에 투박한 느낌의 인터페이스가 암울하면서도 아이러니하고 다분히 과거지향적인 미래 세계관(retro-futurism)을 잘 표현해 주었으니까요. 폴아웃 1에서는 거기에 당시로서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의 자유도가 들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될 명작 RPG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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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의 상징 중 하나인 볼트 보이. 폴아웃 1의 아트 디렉터는 확실히 상 하나는 쥐어줄 만 합니다. 블랙아일이 망하고 인터플레이가 폴아웃 라이센스를 베데스다에 팔아먹을 때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는 식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요.

어쨌건 폴아웃 1이 나온지도 벌써 12년이 지났고, 11년만에 발매된 세 번째 후속작은 처음 발표될 때부터 기존 시리즈의 팬들을 당황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미국 RPG 명가 블랙아일이 공중분해됐고 그들이 만들고 있던 폴아웃 3 역시 게임 엔진과 초반부가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에서 쓰레기통으로 직행해버렸으니 누군가 다른 데에서 만들어야 할 수밖에 없겠지만, 하필이면 오블리비언 시리즈로 명성을 높이던 베데스다가 라이센스를 나꿔챈 거죠. 세부 정보가 공개되면서 무늬만 폴아웃인 오블리비언을 만드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뒤따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그 말이 맞았습니다.

2편의 테마인 A kiss to build a dream on...블랙아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마크 모건도 충분히 훌륭한 작곡가였다고 생각하는데 인기는 별로 없었던 듯 싶군요. 토먼트도 메인 테마 정말 좋았는데.

사실 소소히 설명할 것도 없이 오블리비언 해본 사람이 폴아웃 3 잡으면 아하, 이거 똑같네 하는 구석이 줄줄이 튀어나오게 되어 있죠. 단순히 엔진이나 기본적 시스템만 따온 정도가 아녜요. 다분히 FPS/TPS스런 1인칭/3인칭 시점으로 되어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맵은 장소 들어갈 때만 부분 로딩이 있는 샌드박스식 구성에, 인벤토리니 오토맵이니 뭐니 인터페이스도 비슷하고, 캐릭터들과 대화하는 방법, 마을 내에서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밤에는 가게 문을 걸어잠그고 자러 가고하는 NPC에, 플레이어는 여관방 렌탈해서 잠 자서 체력 회복하고, 얼굴 커스텀이 가능하긴 한데 송혜교나 전지현은 죽어도 못 만드는 플레이어 캐릭터 제작 방법에, 튜토리얼 끝날 때 세이브하면서 캐릭터를 수정할 수 있는 초반부 진행 방식에, 열쇠따기에 미니게임을 쓰는 것도 똑같고, 죄다 음성 더빙된 대신 무지하게 짧아진 대사들이나, 심지어는 뻣뻣해빠진 NPC의 모션과 수많은 버그들까지도요. 물론 이 시리즈 처음 접하는 게이머에겐 아무려면 어떠냐겠지만, 저 같은 덕후라면 이쯤에서 이게 과연 옳은가를 고민해야 하겠죠.

사실 게임 시리즈에 있어서 후속작이란 나름 골아픈 문제입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지만 컴퓨터 게임계에 있어서 10년은 정말 엄청난 차이입니다. 현대 PC 기술이란 게 - 희한하게도 그 자체는 또 컴퓨터 게임 덕에 발전하고 있긴 합니다만, 게임 안 할 거면 내장 그래픽 쓰지 누가 그래픽 카드를 사겠어요? - 워낙 급박하게 발전하고 있고, 기술이 허락하는 한 게임이 구현할 수 있는 세계관은 계속 확장되어 갔습니다. 20년 전에는 컴퓨터 성능이 부족해서, 폴아웃에 많은 영향을 줬던 1988년작 CRPG 웨이스트랜드는 게임 내에 텍스트를 전부 넣지 못하고 긴 대화 장면이 나오면 매뉴얼에 상당부분을 수록했습니다. 게임 하는 도중에 화면에 '매뉴얼의 12번째 대화를 읽으시오' 하고 뜨는 거죠. 요즘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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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스트랜드의 표지. 물론 전 해본 적 없습니다만, 표지 하난 멋지군요.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오블리비언화된, 오블리비언의 '안경'을 통해 보여주는 폴아웃 세계관도 그리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폴아웃이 2차원 쿼터뷰와 턴방식 전투를 유지했던 건 물론 전통적 CRPG 게임 분위기와 제작진의 의도 탓도 있겠지만, 당시의 트렌드가 그랬고 당시의 PC로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이 그랬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만약 폴아웃 1이 처음 개발되었을 때 지금과 같은 하이브리드 게임이 넘쳐나는 시대에 고성능 컴퓨터가 있었다면, 과연 그런 식으로 만들었을까 하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되고, 결국 그런 시스템을 언제까지 계승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남는 거죠. 물리엔진 집어넣고도 도시 하나를 눈앞에 구현해내는 것도 어렵잖은 시대인데요. 사실 초기 CRPG 역사를 봐도 울티마나 마이트 앤 매직처럼 1인칭 RPG가 없는 것도 아니고요. 폴아웃 3을 RPG라고 부르는 건 조금 주저되긴 하지만서도요. 그 이유는 차차 설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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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아저씨, 그거 유통기한이 200년은 지난 물건일 텐데 먹을 거예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병뚜껑으로 돈을 대체해야 할 만큼 제대로 된 조폐 시설과 경제 체계조차 잡을 여력이 없는 세계관의 폴아웃 3에서 최소한 겉모습은 멀쩡한 자동차나 전쟁 전에 생산된 먹을 수 있는 음식, 작동되는 컴퓨터 콘솔 등을 아무도 챙겨가지 않아 수도 없이 남아있는 건 좀 많이 이상하지만, 다 게임 진행을 위해서니 케세라세라.

게임 시스템이 바뀜으로 해서 적어도 폴아웃 3에서는 - 물론 오블리비언에서도 그랬듯이 라는 전제가 붙어야겠지만 - 뉴욕 주변의 광대한 폐허를 플레이어의 눈 앞에 툭 던져놓고 자, 이곳이 폴아웃의 세계다. 맘껏 헤매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게임 시작하면 나오는 첫 화면부터가 기존 시리즈에서 많이 봐왔던 50년대풍 일러스트와 광고판들을 충실히 복제하면서 '안심해라, 이건 폴아웃 시리즈가 맞다' 하고 외치고요. 튜토리얼이 끝나고 볼트 밖으로 나섰을 때 딱 펼쳐지는 정경이 말하는 바가 그렇죠. 핍보이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날 팝송를 들으며 개 한 마리에 동료 하나 끌고 다니면서 슈퍼 뮤턴트 때려잡고 카르마 걱정해 가면서 물건도 훔치고 시비 붙어서 한 구역 NPC들 다 쓸어버리기도 하고...뭐 그런 것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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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공개됐을 때 꽤 유명세를 탄 이미지. 근데 왜 G3 계열 소총이 5.56mm 탄을 쓰고 미군 제식 소총인 거죠?뭐 아무렴 어때요.

지하철역을 조금만 헤매 보면 알 수 있듯이 방대한 맵에 재활용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특히 실험용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볼트들이라던가, 퀘스트와는 관련 없어도 특이한 곳들이 왕왕 튀어나와서 게임을 '탐험'에 초점 맞추게 해 주고 그 탐험 자체는 굉장히 재밌습니다. 오블리비언에 비해서도 흥미로운 장소들이 많고, 퀘스트들도 나쁘지 않고. 게임 시스템적인 개량은 꽤 있기에 완성도만은 장담해도 좋을 듯 싶습니다. 전투에서는 일반 FPS보다는 조금 뻣뻣하지만 그리 나쁘진 않고요. 캐릭터들의 성향에 따라 방식이 달라지니 전반적인 게임 분위기는 맵 넓은 데이어스 엑스를 연상하게 되더군요. 아까 이야기했던 1인칭 RPG들처럼, 하나의 세계관을 플레이어의 눈앞에 보여주고 돌아다니도록 하는 데엔 FPS만한 것도 별로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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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중에 스쳐지나가는 Gary들. 이런 자잘한 흥미 요소들이 많다는 게 게임의 재미에 큰 도움이 되죠. 조금 반복적이긴 하지만 둘러볼 장소는 굉장히 많습니다.

물론 완벽하다고 보진 않아요. 타인이 만든 후속작들이 상당수 그렇듯 폴아웃 3은 여전히 전작의 요소들을 계승 발전시킨다기보다는 그저 최대한 충실하고 안전하게 따라가려고만 하는 것에 가까워 보이긴 합니다. 볼트 보이 만화 그림도 나오고 SPECIAL에 이런저런 것들이 있긴 합니다만. 그리고 전작에서 넘쳐나던 마약도 매춘도 여전히 나오지만 성인용 컨텐츠의 비중은 많이 줄었고 욕설도 별로 없으며 폭력도 암울한 분위기도 확 사라져버렸죠. 대사량도 팍팍 줄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못 죽이죠. 음. childkiller perk이 좋다는 건 아닙니다만, 톤을 많이 낮춘 건 사실입니다. 만드는 데 돈 많이 들었고 그래서 좀 더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매드맥스마냥 핵전쟁 이후의 야만적 세계가 배경이란 건 radroach 몇 마리로 표현하긴 좀 그렇잖나 싶기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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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과 공포의 퀘스트, tranquility lane.

무엇보다, 스토리는 조금 아쉽습니다. Tranquility lane처럼 신경 꽤 쓴 부분이 있긴 하지만 메인 퀘스트는 다분히 짧고요. FEV가 또 나오고 인공지능 컴퓨터에 엔클레이브가 또 나오고 브라더후드 오브 스틸도 또 나오고 하는 건 반갑다기보다는 아쉬운 부분이라 생각했습니다. 폴아웃 1에서도 약간 그랬긴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바깥 세계에 적응하는 '어린' 주인공도 좀 이상하고, 엔딩도 정말 썰렁하고요. DLC 팔아먹으려고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게다가 샌드박스식 구성이라곤 하지만 전작에서처럼 막나가는 전개는 기대하기 조금 어려운 게, 하다 보면 한 가지 정해진 길을 쭉 따라가는 느낌이 많습니다. 중간중간 갈림길도 좀 있고 막다른 골목에서 되돌아와야 하긴 하지만 결정할 곳은 그리 많지 않고 결국은 갈 곳은 어디로 수렴하는지 뻔히 보이니까요. 그래서 반복 플레이하면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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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질, 총질, 그리고 또 총질.

사실 이게 전작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문제가 되는 부분이겠죠. 카르마가 있어서 좋은 선택/나쁜 선택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고 무력 대신 대화로 해결한다거나 Perk에 따라서 새로운 대화 분기가 생긴다거나 하는 게 종종 있긴 하지만 비중이 그리 거창하진 못합니다. 결국은 전작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 사방팔방을 헤매며 수많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대신, 어쨌건 적과 싸워야 하고 갈 길은 하나뿐이며 결국 이 게임이 역할 수행이라는 RPG의 가장 기본적 함의는 충족시키지 못한단 뜻입니다. 결국 따지고 보면 하이브리드, RPG적 요소를 조금 첨가한 샌드박스 FPS거나 끽해야, 디아블로 수준은 아니지만, A가 좀 많이 비중이 높은 ARPG로 분류됩니다. 전작과 가장 근본적 차이는 시점이나 열쇠따기 따위가 아니라 바로 이거고, 전작에서 기대할 수 있었던 걸 폴아웃 3에서 기대해선 안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이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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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의 상징 중 하나인 핍보이도  근사하게 구현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진공관 주제에 이 녀석 멀티태스킹이 되는군요. 하긴 CRT를 저렇게 얇게 만드는 것도 대단한 기술력인데. 어쨌건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그게 아니라 저 녀석 인터페이스가 문제란 겁니다.

여담으로서, 늘 하는 소리지만 사실 전 요즘 PC 게임의 대세인 '콘솔의 저해상도와 버튼 몇 개 없는 패드로도 돌릴 수 있어서 멀티플랫폼으로 발매해 돈 많이 버는' 인터페이스를 정말 정말 정말 싫어합니다. 뭐, 오블리비언이 그랬듯이 다양한 모드가 있고 인터페이스 확장도 가능하니 큰 불만은 없지만, 한 화면에 못 보여주고 번거롭게 스크롤해야 하는 그 대문짝만한 폰트 하며 키보드에 키가 100개가 넘는데 왜 허구헌날 마우스로 이거 누르고 저거 눌러야 하는 건지. PC판에선 장비에 숫자로 단축키를 지정해줄 수 있긴 합니다만, 왜 조금만 더 손보면 게임이 월등히 편해질 텐데 안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인벤토리에 I 할당해주고 미니맵에 M 할당해주고 전체맵에 U 할당해주는 뭐 그런 게 그렇게 어려울까요. 하긴 오블리비언도 역시 이런 면에선 마찬가지. 방대함의 반작용으로 넘쳐 흐르는 수많은 버그 문제라던가(폴아웃 2도 버그가 워낙 많아서 팬덤이 만든 패치로 잡은 것만 1천 개가 넘습니다!), 뻣뻣한 AI나 캐릭터 모션, 성우 문제, 뭐 이런저런 자잘한 것들이 전체적 평점을 더 깎아먹긴 하지만 그리 비중 있게 다룰 문제는 아닌 것 같군요. 모드는 오블리비언만큼 환장하게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있어서 M4 카빈으로 슈퍼뮤턴트에게 총질한다거나 해볼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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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axy News Radio. 1편의 오프닝에 나왔던 건데 3편에서는 퀘스트 주요 장소로 등장합니다. 최소한 폴아웃 3은 전작의 팬들을 그냥 무시하진 않았어요. GTA에서처럼 게임 중에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데, 게임 전개에 따라 플레이어의 활약을 말해주는 등의 요소가 돋보이긴 하지만 곡 수가 너무 작습니다. GTA 바이스 시티만 해도 몇 곡을 틀어주는데...

진부하기 그지없는 멘트로 결론을 내자면, 폴아웃 3은 충분히 완성도 높은 게임입니다. 터미네이터 1이 터미네이터 2로 이어지는 만큼의 전작을 소화하고 자신만의 것으로 뱉어낼 방법을 찾지 못했고 찾을 생각도 없었던 것 같지만 최소한 자기가 따라할 수 있는 장식들은 다 따라했고요, 세계관을 3차원으로 확장하고 새로운 (혹은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는) 게임 시스템으로 우수하게 구현했으며, 대작에 어울리는 방대한 스케일을 갖췄죠. 전작들과 확연히 달라졌지만, 어쨌건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히 잘 만든 게임입니다. 폴아웃 2가 1998년에 나온 고릿짝적 물건이란 걸 감안하면, 요즘 시대에 각광받는 물건은 이런 거고 베데스다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는 어렵잖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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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블랙아일이 끝내 완성하지 못한 폴아웃 3, 프로젝트명 Van Buren. 3D인 걸 제외하면 폴아웃 1, 2와 거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니 저런 Van Buren 같은, 결코 대중적이지 못할 게임이 나오길 기대하는 분이 (저처럼) 혹여 있다면, 폴아웃 세계관이 1950년대를 복고풍 SF로 그려낸 것 마냥 이젠 나도 저런 데 나올 만큼 늙었구나 하고 생각한 다음에 폴아웃 3을 재밌게 즐깁시다. RPG 대작이랍시고 나온 매스 이펙트가 3인칭 숄더뷰로 총질하는 세상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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