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양영순씨의 플루타크 영웅전을 재미있게 보고 있었습니다.

  웹툰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길게 이어지는 내용의 작품으로 플루타크 영웅전이라는 작품을 양영순씨 독자적으로 재해석한 것이 참 흥미를 끌었지요.


  특히 신화나 플루타크 영웅전에서는 단순한 악당에 지나지 않았던 시니스를 숲의 현자라는 위치로 바꾸면서 당시의 힘든 상황을 충실하게 보여준 것이 또한 눈에 띄는 부분이었지요.


  왕이 왕 답지 못한 아테네의 상황 등도 흥미를 끄는 부분이었지만, 테세우스가 크레타로 향하는 부분에서는 괴물인 미노타우로스를 크레타의 장군으로 바꾸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플루타르코스가 쓴 원작에서도 등장하는 부분이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 한가지 걱정되었던 것은 역시 양영순씨의 전력이랄까... 이야기를 시작하고 도중에 중단한 일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었지요. 여하튼 웹툰이라는 시스템은 양영순씨처럼 길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작품에는 그다지 맞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웹툰 쪽의 원고료는 그다지 대단치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웹툰으로서 포탈 사이트에 올라가고 있지만, 한편으로 스포츠 신문에서 연재하고 있으니 계속 나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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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드디어 큰 싸움이 벌어지는구나.'라는 상황에서 이렇게 끝나버리다니요.

양영순씨가 또 저지른 것일까요?


하지만... 한편으로 이것은 우리나라의 슬픈 현실을 대변하는 듯 해서 아쉬울 뿐입니다.


사실, 얼마 전 현재 '국민 만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허영만씨의 식객이 도중에 끝날 뻔한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허영만씨의 식객은 포탈 사이트에서 연재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동아일보에 연재하면서 원고료를 받아왔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동아일보에서 식객의 연재를 중단하기로 했고 그 결과 식객은 연재할 곳이 없이 사라질 운명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포탈 사이트에 하면 되지 않겠냐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식객 정도의 작품, 허영만씨 정도의 만화가 분이 포탈 사이트에서의 고료 정도로 활동할수는 없는 일이지요.)


결국 어찌어찌하여 무료 신문인 시티뉴스에 연재를 계속하기로 했지만, 사실 동아일보 쪽에 비해 대우는 훨씬 못할 수 밖에 없겠지요.



양영순씨는 그보다 운이 없는 상황이라고 해야 겠습니다. 스포츠 신문에서 연재를 하고 있었지만, 결국 연재할 곳을 찾지 못해서 중단하는 셈이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양영순씨 역시 작품을 도중에 그만두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플루타크 영웅전은 -작품을 가볍게 보기만 해도 느낄 수 있듯- 상당히 심혈을 기울여 기획하고 준비한 작품이니까요.)



이렇게 도중에 끝나버린 일에 대해서 양영순씨를 비난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저는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을 대변하는 슬픈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만화는 공짜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공유로 충분'이라고 여긴 결과라고 말이지요.



여하튼 양영순씨의 플루타크 영웅전은 여기서 중단되었고, 앞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는 기약이 없는 상황입니다. 당연히 단행본이 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만일 일본이었다면, 아마 이런 일은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작품의 수준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식객이나 플루타크 영웅전 정도의 작품이라면 충분히 연재할만한 잡지가 있었을테니까요.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우리나라에서보다 몇 배의 고료를 벌고 단행본 수익도 훨씬 많이 기대할 수 있었겠지요.)


일본에서도 물론 잡지가 폐간되어 사라지는 아쉬운 작품들이 있지만, 그것은 전체로 볼때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꾸준히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고, 다양한 작품들이 계속 선보이고 있지요. 이른바 침체기라고 하는 현재도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이런 상황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만화의 수요를 대부분 대여점에 빼앗기고 그 대여점마저 사라져 가는 현실에서 말입니다.


대여점이 생기기 전, 만화는 -얼마 안 되는 만화 대본소에서 보는 것을 빼면- 대부분 사서 보는 것이었습니다.

만화 잡지도 많고 다양한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지요. 일본 만화보다는 우리나라의 만화가 훨씬 많았고, 그 수도 늘어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대본소 만화(공장 만화)를 빼면, 출판되는 단행본 중 우리나라 만화는 10%도 될까 말까... 대원과 학산, 서울 문화사가 사실상 3분한 단행본 시장에서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을 찾아보기는 힘든 일이지요.


그런 와중에 웹툰에서는 -극소수의 작품을 빼면- 시리즈가 아닌 일회성의 웃음을 주는 작품이 대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웹툰도 나름대로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고작해야 몇 작품만이 단행본으로 나올 수 있는 현실에서 웹툰이 작가들의 생활 터전이 될 수는 없지요.



어찌되었듯, 이번 플루타크 영웅전의 연재 중단 역시 공짜를 좋아하고, 저작권을 무시하며 공유만 내세운 결과의 하나라는 것을 생각하니 정말로 슬플 뿐입니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창작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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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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