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무협 포럼
판타지, 무협 세계의 정보나 설정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그 다채로운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곳.
( 이 게시판은 최근에 의견이나 덧글이 추가된 순서대로 정렬됩니다. )
[존 호가 그린 스마우그. 아마 이게 영화에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은 중간계의 괴물을 구현하기 위해 톨킨 삽화가로 유명한 존 호와 알린 리의 그림을 토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삽화가의 그림이 원작 내용보다 우선시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나즈굴이 타고 나다니는 날짐승이 그렇습니다. 새처럼 보인다는 책 묘사와 달리 존 호의 삽화에 따라 검은색 와이번에 가깝게 등장했습니다. 영화 <호비트>도 존 호가 작업하는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면 스마우그도 그런 식으로 나오겠죠. 존 호의 그림을 참고하자면, 일단 용을 뱀처럼 길다랗게 그리는 편입니다. 주둥이도 부리처럼 툭 튀어나왔고 마르고 길쭉한 느낌이죠. 머리부터 꼬리까지 지느러미가 잔뜩 돋아있고, 이게 제멋대로 휘어집니다. 희한하게도 용의 상징인 뿔은 없고, 가시나 돌기 역시 하나도 돋아나지 않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낭창낭창해서 날개 달린 뱀과 비슷해 보입니다.
피터 잭슨 감독이 존 호의 그림을 반영한다면, 영화 속 스마우그는 저렇게 생겼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김새는 원작 내용이랑 다릅니다. <반지전쟁>과 달리 <호비트>에는 삽화가 있고, 그걸 다른 누구도 아닌 톨킨 본인이 그렸기 때문입니다. 소설에 나온 지도, 풍경, 괴물, 글씨 등을 손수 만들었죠. 저는 그래서 이 소설의 영화 버전이 나온다면, 원작 내용만이 아니라 그림까지 반영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림과 비슷한 구도로 촬영하고, 그 분위기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거죠. 장르 소설에는 그런 식으로 삽화를 존중하는 사례가 더러 있습니다. 가령, <셜록 홈즈> 시리즈는 코난 도일의 글 솜씨만큼이나 삽화가들의 그림이 정전(canon) 대접을 받습니다. 홈즈 팬들에게 삽화가인 시드니 파젯은 작가만큼이나 홈즈를 구축한 장본인으로 추앙 받아요. 그래서 홈즈 영화나 드라마는 원작 그림대로 영상화를 시도하곤 합니다.
아마 피터 잭슨도 원작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삽화를 반영하려 노력할 겁니다. 그리고 원작을 존중한다면 스마우그 모습도 삽화처럼 표현해야 하겠지만, 글쎄요. 책에 나온 스마우그 그림은 딱히 멋있다거나 위협적이라고 할 만한 게 못 됩니다. 그림 스타일이 둥글둥글하고 유려한 쪽이거든요. 무섭다기보다 해학적이라고 해야 하나. 요즘 판타지 독자들이 흔히 생각할 전형적인 레드 드래곤과는 거리가 있어요. <던전스 앤 드래곤스> 그림에 익숙한 독자가 보면 우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톨킨도 어느 정도 개그 분위기를 노린 것 같긴 합니다. 저 그림이 묘사하는 게 빌보 배긴스와 스마우그의 대화인데요. 서로 잔머리를 굴리며 속고 속이는 내용이라 익살이 넘치거든요. 톨킨이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게 바로 그 익살이었을 겁니다. 거대한 용과 작은 호비트가 만담을 주고 받다니, 유쾌하지 않습니까.
허나 영화 <호비트>는 유쾌하기보다 진중한 내용일 거고, 톨킨의 삽화를 그대로 반영하는 건 힘들 듯합니다. 그나마 독수리 그림처럼 극화에 가깝다면 영상화가 더 쉬울 텐데, 스마우그 그림은 너무 동화적이지요. 그러니 톨킨 삽화는 어디까지나 ‘참고 자료’에 불과하고, 존 호나 알란 리의 그림이 영상으로 나오겠죠. 어쩌면 이걸 원작 파괴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작가 본인이 그린 삽화와 영 다르게 생겨먹은 용이 나오니까요. 그것도 엑스트라가 아니라 작중 가장 중요한 악당 용이니. 개인적으로는 존 호의 그림 스타일을 좋아하는 터라 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존 호가 톨킨 삽화가로 명성을 떨친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말이죠. 영화 작업 이전에도 꾸준히 활동했는데, 이제 와서 원작 파괴니 해 봤자 뒷북일 겁니다.
[톨킨 본인이 직접 그린 스마우그. 하지만 영화에는 이대로 못 나오겠죠.]






톨킨의 그림실력도 상당히 좋았네요. 분위기라던가 색감이라던가 꼭 동화같은것이 저런 분위기로 나와도 좋을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