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조금 더 힘 조절을 해!”

“집어던지지 말고 그냥 들어올린다 생각을 하라고!”

“가볍게 이쪽으로 옮기랬지 누가 부수랬냐!”

“집안 말아먹을 생각이야! 똑바로 정신 안 차려!”

“차라리 날 집어던져!!”

오성은 자신의 옆에 서서 격려는 못해줄 망정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해대는 영현을 원망어린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영현은 눈 하나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그를 응시했다. 평상시라면 당연히 영현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그럴 수 없었다. 성령에게 특명을 받은 이상―일주일 안에 오성이 염력을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시킬 것. 그렇지 못할 시는 추방―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완수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봄이 가까워 오고 있다고는 하지만 밤이면 여전히 추운 이런 날씨에 밖에서 노숙해야 할지도 몰랐다. 게다가 이제 기간이 하루 밖에 남지 않았고 따라서 영현의 닦달은 그 강도가 초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아 씨발, 그만 좀 재촉하라고!”

결국에는 열 받은 오성이 욕설을 퍼부었고 영현 역시 누군 좋아서 이러는 줄 아냐! 하며 같이 욕설을 주고받았다. 오성은 순간적으로 욱 하고 성미가 치미는지 영현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의 몸을 그대로 들어 바닥에 메다 꽂으려 했다.

그때였다.

“Laguz―!!”

갑자기 눈앞에서 빛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더니 오성과 영현의 머리 위로 물벼락이 쏟아졌다. 켁 하며 오성은 영현을 떨어뜨렸고 영현은 떨어지는 찰나 간신히 몸을 비틀어 머리부터 추락하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하는 짓들 하고는. 훈련시키랬지 누가 싸우랬어?”

고개를 돌리니 마악 집 안으로 들어서는 성령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들고 있던 종이가방을 내려놓은 뒤 일그러진 표정으로 리모콘을 들었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켰다.

“이거 좀 봐봐. 오면서 봤는데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그들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채 화면을 응시했다.

 

……서초경찰서 수사과장 노재한 씨가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살해되었습니다. 매우 참혹하게 살해되었는데요 괴한이 들어 온 흔적과 나간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어 수사에 애를 먹고 있는 듯 합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이재영 리포터 연결 합니다……

 

“으음.”

화면에는 목이 잘린 수사과장의 시체가 보이고 있었다. 물론 정말로 시체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그가 죽은 자리에 선을 그어 놓고 사인은 목 절단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었을 뿐이지만 사방으로 격렬하게 튀어 있는 붉은 피가 그 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듯싶었다.

“들어온 흔적도 나간 흔적도 없어. 게다가 저기는 경찰서 안이야. 일반인이 함부로 들어가서 경찰을 죽일 리 만무하고 털 곳이 아무리 없다고 해도 경찰서를 털 정도로 개념을 상실한 강도도 없어. 따라서 답은 하나지.”

“데빌리즘?”

“그래.”

성령은 거기까지 말한 뒤 사온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행이 먹을 반찬거리와 과자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던 성령은 흘끗 영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이코키네시스 훈련은 좀 어때?”

“후우― 글쎄.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어. 하지만 아직 가다듬어야 할 테크닉이 많이 남았어. 힘 조절이 좀 더 필요하거든.”

“당장 써먹을 수는 있을 것 같아?”

“뭐, 써먹을 수는 있을 거야. 제어만 잘 한다면 말이지.”

“어디까지 실험해 봤어?”

빙그레 아이스크림 포장을 훌렁 벗기며 성령이 묻자 영현은 아주 자연스럽게 숟가락을 가져와 한 술 크게 퍼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우물우물 거리며 삼킨 뒤 입을 열었다.

“자동차 하나는 들 수 있어.”

“두 개는?”

“가능할걸.”

“세 개는?”

“오성아, 해 볼래?”

영현이 소리치며 오성을 돌아보았으나 그는 여전히 뉴스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데빌리즘의 손에 죽은 수사과장의 모습 위에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이 겹치는 듯싶었다. 성령은 놔두라고 손짓을 한 뒤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입을 열었다.

“이것이 데빌리즘의 짓이라고 하면, 그들이 아무 생각 없이 저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닐 거야. 분명히 이유가 있겠지. 내가 며칠 전에 한 말 기억 나? 네 개의 흑술서에는 고대의 잊혀진 주문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 말.”

“응.”

“어쩌면 그들은 이제 그 계획을 실행하려 하는 것인지도 몰라. 저 수사과장을 죽인 것도 그 일환의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물론 왜 저 사람이어야 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지. 하나는 오성이의 훈련 완료. 다른 하나는 데빌리즘이 세우고 있는 계획의 파악.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그들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는 것. 일단 너는 오성이의 사이코키네시스 훈련을 마저 하도록 해. 난 서초경찰서에 다녀올게.”

“거긴 왜?”

“거기 형사과에 아는 사람이 있거든. 가서 도움 좀 받아보려고. 뭐,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있는거고.”

성령은 서랍을 열고 칼라 렌즈를 꺼냈다. 그것을 눈에 끼자 좌청우녹의 오드아이 대신 검은 색의 눈동자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옷을 챙겨 입은 성령은 우두커니 서 있는 오성의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영현은 임자 없는 아이스크림을 몇 숟가락 더 퍼먹다가 다 먹어버리면 성령에게 맞아 죽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아쉬운 표정으로 뚜껑을 덮어 냉동실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오성에게 말했다.

“좀 쉬다 훈련할까?”

“……아냐, 계속 하자.”

“괜찮겠어?”

오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 중에 힘들고 짜증나는 것은 그 때 뿐이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아버지를 죽인 저들에게 복수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힘을 키워야 했다. 그렇지 않고 멋도 모르고 덤벼들었다가는 저 수사과장처럼 비참한 몰골의 시체가 될 수도 있었다.

“뭐, 좋아. 대신, 이번에는 재촉한다고 뭐라 하기 없기다.”

오성은 말없이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서초경찰서에 도착한 성령은 형사과로 향했다. 수사과장이 죽어서인지 경찰서 전체가 시끌벅적 했으나 성령은 어렵지 않게 원하던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잘 지냈어요 상훈이 형?”

“어? 성령아, 여긴 어쩐 일이야?”

인상을 팍팍 쓰고 있던 형사 한명이 성령을 바라보더니 난처하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친한 동생이 찾아왔으니 뭔가 대접은 해야 할 텐데 지금 분위기가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령은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이 상훈에게 소곤거렸다.

“뉴스 봤어요. 수사과장님이 돌아가셨다면서요?”

“그래.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지금 서가 말이 아니다. 사망 시각은 대충 밤 12시 경인 것 같은데 그때는 경찰들도 서 내부에 많이 있었거든.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살인을 할 수 있었는지. 이거 아무래도 미궁으로 빠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마구마구 드는데.”

“살해 현장을 조금 볼 수 있을까요?”

“뭐?”

상훈은 어이없다는 듯이 성령을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야야, 지금 농담하는 거지? 일반인은 그런 거 볼 수 없다고.”

“알아요. 그래서 나도 무리한 방법은 쓰지 않을 거예요. 형은 다만 날 데리고 그곳에 갔다가 오기만 하면 되요.”

“아니, 그러니까 널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다니까.”

“잠깐 이리 좀 와 볼래요?”

성령은 상훈을 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상훈은 너 지금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그래? 나 아직 총각이라고, 하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헙 하고 입을 다물었다. 성령이 뭔가를 꺼내서 찢는 순간 빛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며 그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내 목소리 들리죠?”

“헛! 너, 너, 너 어디에 있는 거야? 윽!”

상훈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뭔가가 느껴지자 신음을 흘렸다. 누군가가 자신의 팔을 부드럽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여기에 있어요. 형 옆에 있을 테니까 그냥 아무 일 아닌 듯 잠깐 그곳에 다녀오기만 하세요.”

“그게…….”

“묻지 말고 일단 시키는 대로 해요.”

내가 지금 귀신에 홀린 건가? 상훈은 어안이 벙벙했으나 성령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빨리요, 하고 재촉하자 이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해 현장은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으나 이렇게 안 보이는 상태라면 상관없을 듯 했다.

“그런데 그건 왜 보려는 건데?”

“알아야 할 게 있거든요.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 시체애호증) 같은 건 아니니까 염려할 필요는 없어요. 자, 가요.”

성령에게 등을 떠밀린 상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수사과장이 죽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뭔가 특이사항이 없을까 하는 표정으로 주변을 스윽 둘러보던 그의 옆으로 동료인 김신규 형사가 다가왔다. 말없이 있으면 괜히 오해를 살 것 같아서 상훈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뭐 좀 찾아낸 거 있어?”

“아니 없어. 참 희한하지? 주변에는 발자국이나 지문 같은 게 전혀 없단 말이야. 들어온 흔적이나 나간 흔적도 없고. 정말 귀신이 들어왔던 것 같아.”

“그렇군. 뭐 내가 알아야 할 특이사항 같은 건 없나?”

“나도 제발 그런 게 있으면 좋겠다. 빌어먹을, 범죄를 저지르는 놈들의 머리가 나날이 좋아지니 우리만 고달파지잖아. 그 좋은 머리로 왜 자꾸 나쁜 짓만 일삼는지 모르겠어. 개 같은 것들.”

“그러게 말이다.”

잠시 대화를 나누던 상훈은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느낌이 들자 이내 김신규 형사와 작별한 뒤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가자 성령의 모습이 공기 중에서 스르르 나타났다. 상훈은 귀신을 보는 듯한 얼굴로 성령을 응시했다.

“너 도대체 어떻게 한 거냐?”

“형은 신비적이고 초자연적인 힘을 믿나요?

“뭐?”

뚱딴지같은 질문을 하는 성령에게 상훈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성령이 장난으로 묻는 것 같지는 않았기에 이내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글쎄. 뭐, 아주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기 같은 것이 있다고는 하잖아.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뭐 아기를 구하려고 자동차를 뒤집은 어머니 이야기나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 야생동물과 싸워 이긴 소녀 이야기 같은 게 들려오는 걸 보면 초능력도 있는 것 같고. 그런데 그건 왜?”

“이 사건에는 그 힘이 개입되어 있어요. 해리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 같은 거 읽어 봤어요?”

“응. 영화로도 봤다. 재밌던데?”

“거기에 나오는 마법사들 있죠? 그들은 실제로 이 세상에 존재해요.”

상훈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성령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점점 볼이 부풀더니 이내 크게 웃음을 터트렸고 마악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던 경찰은 이상한 거 본다는 듯한 얼굴로 상훈을 바라보았다. 신경 끄고 쌀 거나 싸, 하고 그들에게 말해 준 뒤 상훈은 성령에게 말했다.

“너 직업이 마술사라더니 너무 그런 쪽에 심취한 거 아냐?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방금 형이 말했잖아요. 그런 힘들이 있다는 걸 믿는다고.”

“하지만 마법사가 있었다는 기록은 지금까지 없잖아. 중세에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기록은 없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일 뿐이에요. 조작된 것일 수도 있으니 그 기록은 백 퍼센트 정확한 게 아니지요. 아무튼 초자연적인 힘을 사용하는 마술사는 고대에도 있었고 중세에도 있었고 현대에도 있어요. 나도 그 중 한 사람이고요.”

소곤거리던 성령은 볼일을 마친 경찰이 나가자 다시 정상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상훈은 이해가 안 간다는 식으로 성령을 응시하다가 조금 전, 그가 사라졌다가 나타난 것이 떠올랐는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아까 그것도 그래서 가능한 거였냐?”

“그래요. 난 마술사, 사람들이 말하는 마법사니까요. 그리고 수사과장을 죽인 자도 마법사예요. 물론 나랑은 다른 그룹에 있는 마법사죠. 그러니 일반인들의 힘으로는 풀 수 없어요.”

“그들이 누군데?”

“데빌리즘. 하지만 상부에 마술사들이 신비로운 힘으로 수사과장을 죽였다고 보고 하면 미친 놈 취급 받을 테니 그냥 모른 척 하고 조용히 있어요. 이 사건은 뭐, 알아서 미해결 사건 같은 걸로 마무리가 되겠지요.”

상훈은 뭐라고 한 마디 하려고 했으나 따지고 보면 그의 말도 맞는 말이었다. 수사과장을 죽인 건 초자연적인 힘을 쓰는 마법사들이었습니다, 이런 보고를 올렸다고 생각해 보자 수많은 욕설과 재떨이가 날아드는 결과가 비춰졌다. 이마에 맞아 박살이 나는 재떨이의 최후를 상상하며 상훈은 성령과 함께 바깥으로 나갔다.

“형도 이것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좋아요. 어차피 이번 싸움에서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싸움이라니? 어디서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거야?”

성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쟁이에요. 아주 엄청난 전쟁이 될 거예요. 그리고 그들이 승리하게 되는 날, 우리는 사라질 테죠.”

“우리라 하면?”

“제가 속해 있는 마술사 집단. 그리고 지구의 모든 인류.”

놀라움이 가득 찬 상훈의 눈과는 정 반대로 성령의 눈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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