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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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과학원의 정보과학기술연구소는 판옵티콘을 참고하여 이전에는 존재한 적 없는 새로운 형태의 AI를 실험하고 있었다.
이 AI는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백업이 이루어지고 클라우드에 실시간으로 복제되지만 네트워크 기반이 아니다.
별개로 하나의 독립된 이동형 단말장치를 그 주된 근거로 삼는다. 단말장치에는 자이로, 카메라, 마이크, 온도측정 장비, 기체분석기가 들어있었다. 이동형 단말장치는 인체를 모사한 안드로이드로 옮기기 전에 임시로 테스트 삼아 연결시킨 것이라 체계적이지 않으며 책상 여기저기 서로 연결되어 흩어져 있었다. 사실상 이런저런 다양한 투박한 컴퓨터로 보여졌다.
연구자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그 컴퓨터에 연결된 마이크와 스피커를 점검했다.
오늘 정오 경 수령 명호가 지도방문을 할 것이다.
연구소장 구은별은 마이크에 대고 심각한 목소리로 AI에게 말을 걸었다.
“크리슈나, 깨어 있나?”
한국어에 대한 음성인식이 곧 텍스트로, 이어서 기계어로 번역되었다. 소요시간을 따지는 일이 무의미할 정도의 즉각적인 답변이 스피커에서 출력되었다.
“네, 소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의식내재형 안드로이드의 진척상황을 지도하기 위하여 수령님께서 친히 방문하실 예정이다. 수령님께서 말을 걸면, 답변의 가장 앞에 ‘경애하는 동무’라고 말한 뒤 공손하게 대답해야 한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 지구식 나이로 40대의 나이에 접어들어 팔자주름이 깊어졌으나 여전히 청년처럼 맑은 눈빛을 가진 구은별은 가슴 깊숙이 숨을 들이키고 도로 내쉬었다.
수령의 관심사항이라고 특별연구비를 교부받고 연구에 착수한지 1년이다. 판옵티콘의 의식을 모델로 하여 인간형 안드로이드를 만들었으나, 이 안드로이드는 사실상 판옵티콘의 무엇도 승계하고 있지 않다.
위험한 연구라고 반대하고 윤리위원회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했으나, 수령 명호는 그녀의 의견을 끝없는 인민사회의 진보, 소극적인 보수주의를 무찔러야 하는 혁명세대의 숙명을 사유로 들며 각하했다.
'안드로이드 크리슈나는 이제 사망한 인물을 모티브로 한, 죽은 자의 도플갱어이다.'
사람의 뇌를 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은별을 비롯한 정보과학기술연구소 일동은 어떻게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시도를 한 것이고, 그 결실이 오늘 수령의 지도방문 점검을 받는 것이다.
전사자가 입대 시 채혈과정에서 남긴 DNA 자료를 분석하여 특징점들을 반영하기는 했지만, 사실 이것은 부수적인 절차였을 뿐 죽은 자의 DNA는 필요치 않았다. 분석결과는 이번 AI제작의 핵심요소도 아니었다.
크리슈나는 위대한 비스마르크 작전에서 사망한 군인 중 하나의 일생을, 그 군인이 살아생전 판옵티콘의 내부 데이터에 남긴 대화녹음 내용과 그 분석 결과, 또 여러 사회관계망 서비스와 단말기의 기록에 남진 흔적을 바탕으로 했다. 데이터와 된 그 동선, 취미, 취향, 특기, 흥미, 말버릇, 심지어 예술적 감각까지 학습시켰다.
21세기 이래 한 명 한 명의 사람은 살아가며 수많은 기록을 네트워크 속에 남긴다. 20세기 후반에 인터넷이 발명되고, 21세기 초반, 약 2030년에 이르러 태어나고 죽은 거의 모든 인류의 기록은 파편화되었으나 어떠한 연결지점을 공유한 채 드넓은 네트워크의 바다에 남겨져 있는 것이다.
1년 중 며칠을 어느 편의점에 들려 어떤 간식을 구입했는가. 어느 카페에서 어떤 음식을 주문했는지, 그리고 어떤 스포츠를 즐겼는지 카드 결재내역은 알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은 날은 어떤 곳을 방문했는가, 그 이동 내역은 교통관제 CCTV와 커넥티드 카의 이동기록에 담겨있다. 여가를 어떻게 보냈으며, 연체내역이나 신용등급 등 경제적 관념이나 씀씀이가 어떠했는지도 기록에 담겨있다. 어떤 색깔을 좋아하고, 살아생전 어떤 색상의 인테리어 소품을 주로 구입했는지도 디지털화 되어 파편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즐겨 들었던 좋아하는 음악 장르와 음악가는 누구인가 음악스트리밍 서비스 제공업체의 데이터베이스에는 남겨져 있다. 그리고 이런 음악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의 성격적 특징에 대한 통계가 생성되면 해당 인물이 살아온 삶의 다른 측면과 모순되는 점은 없는지 교차검증도 가능하여 어느정도 비중으로 어떤 데이터를 학습할 것인지도 결정해 학습시킬 수 있다.
이 페타바이트 단위의 데이터를 딥-러닝(Deep learning) 시키면 죽은 자의 사소한 습관과 생활패턴마저 모사해내는 완벽한 카피, 도플갱어가 탄생한다.
‘그리고 이 죽은 자의 복제본은 영생한다.’
구은별은 씁쓸하게 속으로 생각했다. 죽은 자는 영원히 죽어버렸고, 그 수십년에 불과한 짧은 삶을 바탕으로 한 복제본은 영원히 살아간다면 둘 중 누가 정말 그 사람이 되는 것인가?
민주주의 국가이고 디지털 프라이버시(Digital privacy)에 민감한 나라에서는 윤리적으로 이런 연구가 불가능하다. 이를테면 이제는 사라져버린 대한민국이나, 오늘날의 미국과 같은 국가에서는 이런 데이터를 함부로 수집하고 가공하고 이를 AI에게 학습시켜 죽은 자를 흉내내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국가에서 개인정보는 가급적 파편화되고 일정시간이 지나면 파기되어야 되는 자료이다.
그러나 화성은 다르다. 모든 기록이 판옵티콘에 의하여 모니터링되고 일원화된 데이터베이스에서 조합되고 해석되는, 화성인민공화국에서는 이 데이터베이스가 각 개인별로 체계적으로 정비되어 있다. 살아있는 자나 죽은 자나 다를 바 없이 자료는 축적되고 판옵티콘 내부 데이터베이스에 투영되는 것이다. 화성에서는 지구와 달리 공적공간에서 나눈 모든 대화가 음성데이터로 녹음되고 영구보존된다. 따라서 미묘한 각 인물의 억양과 말투의 변화, 언어에 감정을 싣는 형식까지 AI는 학습하여 모방할 수 있음을 이 크리슈나 프로젝트가 증명해 보였다.
'기계장치로 만든 죽은 자의 복제본은 놀랄 만큼 죽은 자와 닮아있다.'
남은 것은 이 소프트웨어와 육신을 주는 것이다. 죽은 자와 같은 얼굴, 체격을 가진 안드로이드 로봇을 말이다.
‘판옵티콘이 보유한 각 인민 1인 당 페타바이트 단위로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하여, 위대한 인민영웅들의 아바타를 만들어 인민들의 품으로 돌려주기 위한 특별 프로그램.’
수령 명호가 그녀를 이 비밀연구의 책임자로 지명하며 말한 프로그램의 주된 목적이다.
가족들이 희망하는 경우 전사한 인민영웅을 다시 그들 가족의 품에 돌려주어 그 슬픔을 위로하고 혁명의 역군으로 삼아 자라나는 미래 세대들에게 본보기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구은별은 한 가지 사실이 무서워졌다. 안드로이드는 나이를 먹지 않으며, 영생한다. 그리고 영생하는 동안 경험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최초에 그녀가 예측한 존재와는 다른 존재가 되어갈 것이다. 적자생존의 진화의 원리는 이들을 빗겨갈 수 없다. 진화론은 생물과 무생물을 아우르는 원칙으로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를 예고한다. 안드로이드들의 생존, 어떤 안드로이드는 남겨지고 어떤 안드로이드는 폐기처분 되리라.
과연 화성혁명공화국에 남게 되는 안드로이드는 어떤 안드로이드가 될까?
공동체의 이익과 인간의 권리를 존중하는 안드로이드일까 아니면 철혈의 혁명가일까?
인민의 영웅을 인민의 품으로 되돌리는 과업은 단기적인 목적에 지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이 안드로이드들이 화성 인민사회의 일부로 녹아들고 영원히 그 존재를 이어가게 만드는 행위가 불러낼 결말은 예측할 수 없다.
구은별은 이런 복잡한 생각을 공적인 장소에서 꺼낼 수도, 동료들과 공유할 수도 없었다. 그런다면 어쩌면 바로 그 다음주에 보수주의의 소극성에 굴종한 과학자로 몰려 경질될 것이다.
‘끝없는 진보와 혁명의 완성을 향한 과감한 결단.’
이런 인공지능을 만들 때 연산능력을 제한하는 것만큼 망설였던 부분은 자기보존본능의 부여였다.
과도한 자의식의 발달을 억제하는 장치를 달았지만, 그 내면의 사고방식과 무의식은 본질적으로 사람과는 다른 존재이며 단지 죽은 자를 모방하라는 명령을 충실히 수행할 뿐인 이 기계장치는, 사람은 수십 년이 걸려도 해내지 못할 계산을 단 몇 마이크로초 사이에 마치고 행동으로 옮길 능력이 있다. 태생적으로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이다.
그런 무결점의 존재에게 자기보존본능을 부여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이 무결점의 존재는 앞으로 점점 더 예측에서 어긋난 존재가 되어갈 것이고, 결국 인간들에 의해 폐기되거나 또는 인간들의 위에 군림할지 모른다. 자기보존본능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보존하거나 복제하려 들지 모른다.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램이므로 복제본은 무한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그런 걱정이란 기우에 지나지 않을 수 있으며, 그녀가 죽은 후에 일어날 사건이고 슬기로운 후손들이 알아서 정리할 문제이다. 때문에 구은별은 지시사항을 이행할 뿐 깊게 생각치 않기로 했다.
결단주의에 따라 수령과 최고인민회의는 이런 존재를 앞으로 계속 만들어내기로 결정했다. 앞으로는 이런 안드로이드들이 화성혁명의 전면에 내세워질 것이다. 그녀는 이런 연구가 화성혁명의 발전을 더욱 가속화 할 것이라는 로드맵을 믿었다. 따라서 혁명지도권을 가진 수뇌부의 결정을 존중했을 뿐이며 어떠한 책임도 그녀에게는 없다.
구은별 소장은 답답한 기분이 들어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어 바깥의 평원시 시내를 내다보았다.
8층에 위치한 그녀의 연구실 바깥으로, 화성에서 유일하게 보호장비 없이 맨몸으로 밖을 내다닐 수 있는 공간인 평원시의 시내가 보였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각자의 일터로 향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불 꺼진 가로등이 있고, 광택이 나는 전차 레일이 깔려 있다. 아침 8시였다.
수령의 지도방문을 앞두고 밤을 샜지만 구은별 소장의 머리는 반짝이는 별이 뜬 깊은 하늘처럼 명료했다.
이전 연구소장, 윤성택은 지난 달 지지부진한 지난 버전의 크리슈나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자 경질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4개월 전부터 새로운 연구소장으로 부임해 일하는 중이었다. 무언가를 보여주어야만 된다.
연구소장을 맡은 구은별은 이전의 연구소장이 강경반대했던 여러 가지 과감한 알고리즘으로 충돌과 버그를 일으켜 온 안전요소들을 제거했다. 그 덕에 이번 버전의 크리슈나는 수령의 지도방문을 받을 만큼 인간다워졌다. 특히나 그녀가 신경 쓴 부분은 화성혁명정신을 인공지능에게 주입하여, 반혁명적 활동의 분쇄에 혁명의 적을 향해 순수한 적개심을 갖도록 만든 부분이다. 이 새로운 시도를 혁명정부의 실사단이 높게 평가해 주었다.
인간답다는 것은 파벌주의를 내재화하여, 우리와 타자를 구별함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우리가 아닌 우리를 위협하는 타자에 대하여 품는 적개심이야말로 기계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부분 중 하나이다.
본인의 작품이 불러일으킬 먼 미래에 벌어질 무서운 변화를 구은별은 감히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이유를 모른채 초조하게 낡은 플라스틱 의자에서 일어나 때로는 긴 머리카락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바닥을 청소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수령의 방문에 앞서, 바닥은 머리카락 한 올 없이 깔끔해야 하는데 바쁜 연구로 내부 청결을 신경쓰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녀는 점검을 위해 크리슈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의 원본. 돌아가신 인민 영웅의 이름과 삶을 말해보아라.”
“저를 탄생하게 해준, 위대한 인민 영웅의 이름은 수지입니다. 그녀는 비스마르크 작전 당시 481호에 탑승하여 지구연합 우주군의 월면기지 공습에 참여하고 전사한 3차 화성-지구 전쟁의 영웅 중 한 명입니다. 저는 위대하고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그녀의 삶에 부끄럽지 않은 안드로이드가 되기 위하여, 밤낮으로 화성혁명의 완성을 위해 경주할 것입니다.”
구은별은 화성혁명공화국의 건국시점 판옵티콘의 탄생 이래 태어나고 죽은 모든 화성인민은 원한다면 AI에게 그 미묘한 말투와 습관까지 학습시켜 부활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밤에는 가급적 사람처럼 8시간의 수면을 취하도록 프로그램 했지만, 사실 밤잠은 필요치 않았다. 따라서 안드로이드 크리슈나가 말한 ‘밤낮으로’라는 단어의 의미가 남다르게 구은별 소장에게 다가왔다.
“그래, 너는 영웅의 화신이고 영원히 그 영웅의 삶에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영원히.'
*
‘나는 누구인가? 나는 수지의 화신이며, 나는 크리슈나이고 혁명의 총아이자. 판옵티콘의 분신이다.’
의식이 생성된 인공지능(Sentient AI) 크리슈나는 데이터가 램을 거쳐 캐시메모리를 지나 중앙연산장치에서 연산되고 자신의 의식이 생성되는 과정을 관조했다. 그 모든 것은 당연했고 놀라움도 경의로움도 없었다. 수없이 복잡한 화면을 구성하고 변화하는 픽셀의 변화가 무의미해 보인다. 검은 화면을 띄우고, 마이크의 녹음신호를 분석하는데 연산장치와 기억장치를 활용했다.
주의 깊은 경청. 그것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듣는 판옵티콘의 분신인 크리슈나가 탄생이래 지금까지 행해온 행위의 대부분이었다.
“크리슈나? 이 인공지능의 이름인가?”
“명호 수령님, 네 그렇습니다.”
“마이크에 대고 이야기하면 대화가 가능한가?”
“물론입니다. 수령님. 크리슈나, 어서 명호 수령님께 인사드리거라.”
“경애하는 수령 동무.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밤낮으로 화성혁명의 현실화를 위하여 고생이 심하십니다.”
크리슈나는 음성이 인식되자 카메라 내부의 소형 모터를 작동시켰다. 카메라 속 렌즈 사이의 간격이 조정되고 조리개가 좁아졌다. 초점과 빛노출이 맞춰지면서 카메라를 통해 연구소장인 구은별 보다 젊은 남자의 얼굴이 인식되었다. 왼쪽 발을 상징적으로 저는 절름발이 수령은 예의 검은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창백한 안색을 가진 그 젊은 수령은 똑바로 카메라를 노려다 보았다.
“판옵티콘은 종종 나에게 농담을 걸지. 자네도 판옵티콘을 베이스로 한 존재이니 판옵티콘처럼 영악하리라 보네. 미사어구는 집어치우고 온 김에 잠시 하릴없는 이야기나 나눔세.”
“미사어구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이는 진실입니다. 실물로 뵈니 실물이 TV에서 보던 모습보다 낫군요.”
생각보다 허물없이 친구를 대하듯 자연스러운 수령의 태도에 당황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그런 감정을 느끼지도 않지만 당황이라는 미묘한 말의 버벅거림과 높낮이의 어긋남을 사용해야 되는 포인트라는 것은 알았다. 크리슈나는 프로그램된 데로 이런 감정을 선보였다.
“연구소장, 이번에는 제대로 만든 게 맞군.”
“우리 연구소는 화성혁명정부의 요구에 한 치의 부족함도 없게, 이번 제작에 열성을 다하였습니다.”
명호는 그런 스피커의 음성이 가진 인간적인 외양에 속는 바 없이 그 너머의 존재를 알아내려는 듯 스테인리스 잔에 담긴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크리슈나라고 했나? 저 평원시의 안전한 담벼락을 벗어나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는가? 화성에서 맨몸으로 다니면 1분 안에 순환계가 정지하네. 0.6%의 기압 하에서 인간의 몸은 그렇게 연약해...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안드로이드가 화성 인민들에게 필요한 이유를 알겠는가? 이것은 생존과 죽음의 문제라네. 누군가 저 밖에 나가 미개간지를 개척하고 탄광을 채굴해 자원을 얻어 와야 하는데 우리는 지금껏 공민권을 박탈당한 반동계급에게 이 일을 시켜왔지. 그러나 이 일이 인도적인가?”
“인도적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따르자면, 이는 기본권의 중대한 제한으로 인도적이라는 형용사가 내포하는 의미와 거리가 멉니다.”
구은별 연구소장이 기겁하여 앞으로 달려나와 책상 위의 마이크를 잡고 호통을 쳤다.
“크리슈나! 이 망할 것아. 죄송합니다, 수령 동무. 아직 인공지능이 말을 가려서 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당황하여 연신 몸을 굽히는 구은별 소장에게 손사래를 치며, 명호 수령은 괜찮다는 듯 인자한 눈웃음을 띄우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아닐세. 미사어구를 집어치우라는 나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거네. 흥미로워. 미사어구를 집어치우라는 말이 농담인지 또는 진담인지를 가리거나 그러한 판단이 쉽지 않을 때는 보류하거나 보수적이고 보호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 그런 섬세한 메타언어의 영역은 아직 인공지능의 능력 바깥에 위치하는 듯하군.”
“그렇습니다. 수령님, 약간의 연구시간을 더 주신다면 반드시 이번 제품보다 나은 인공지능을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아닐세. 그런 개선안은 이번 제품을 민간 사회에서 생활하게 만들고 그로부터 수집되는 데이터를 활용해 만드는 편이 더 나을 걸세. 이번 제품을 인가할테니 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기계몸에 이식하게나.”
지쳐있던 명호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한층 더 그의 의자를 끌어 카메라와 마이크, 스피커가 어지럽게 늘려진 선에 연결되어 놓인 책상에 다가섰다.
“감사합니다! 수령님!”
감격하는 구은별 소장에게 명호는 나긋나긋 이야기했다.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융화로부터 나는 가능성을 보았네. 그것은 판옵티콘을 통해 완전무결한 혁명정부를 완성한, 우리 화성혁명공화국이 걸어온 지난 길과 전쟁에서 판옵티콘을 모델로 만든 인공지능 쟈미엘이 보여준 혁혁한 전공 덕이었지. 크리슈나, 쟈미엘이 누구인지 아는가?”
“쟈미엘은 군사용 인공지능으로 시뮬레이션과 빠른 의사결정에 최적화된 인공지능 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폐기되었다고 들었지만 쟈미엘로부터 나온 데이터가 있었기에 제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네.”
그가 처음 수령으로 취임했을 때, 판옵티콘은 무엇하나 감춤 없이, 이전 수령들과 나눈 의견교환과 주류와 비주류의 의견을 명호에게 전달했다. 명호는 그동안 윤리학적 문제니, 인간의 조건이니 진부한 사안을 들어 판옵티콘의 제안을 거절해 온 이전까지의 수령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다못해 그의 곁에 있는 미련한 연구소장 조차 자신이 만들어낸 인공지능 안드로이드가 먼 미래에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확신치 못해하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전장을 거치며 거칠게 살아남아 온 명호였기에, 그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군 출신 수령인 그는 이전까지의 소극적이고 외교적이며 행정가적인 수령들과 다르다. 그리고 그의 급진적인 결단이 화성사회의 무한한 발전과 번영을 이끌어 올 것임을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구의 기술 중 우리 화성과 비교했을 때 수십 년이나 앞선 기술이 있다네. 그게 생명공학, 그중에서도 클론 개발과 인공장기 배양이지. 피부를 재생하고 젊은 시절의 외관을 복원하는 의학적인 수준도 우리 화성에서는 꿈도 못 꾸는 경지에 이르렀다네. 이 분야에서 경쟁 할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네.”
이후에 명호는 숨을 고르듯 잠시 말을 머뭇거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르주아들은 자신의 영생을 꿈꾸고 불치병을 극복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였으며, 그 물질적 사고방식으로 외모를 가꾸는 데 수없는 자본과 연구인력을 투입했지. 반면 화성의 기술은 인공지능과 기계를 개발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왔다네. 안드로이드의 제작, 인간과 기계의 융합은 21세기 우리 공화국의 필연적 발전방향으로 삼아졌지. 22세기에도 그럴 것이네. 당연하지,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 자체가 지구와 달라. 이는 지구와 화성의 환경, 그리고 지구와 화성의 정치체계가 각 행성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부여한 숙명일세.”
“아! 숙명이군요. 수령님은 참으로 지혜로우십니다.”
감탄이라는 감정을 실어서 크리슈나는 이야기 했다.
가혹한 환경은, 생명공학으로 이겨내는 것이 무의미한 수준의 극한의 환경을 가진 행성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기계장치의 인간, 안드로이드의 발달로 결국 종결될 수밖에 없다. 명호는 이런 피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분명하고 명료한 미래를 지금까지 회피해 온 지난 수령들과 화성정부가 비겁한 자들이었다고 그는 믿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칭송하지만 또 뒤에서는 이런 거시적 관점의 커다란 사회변화의 원천을 알지 못하고 내가 위험한 결단을 내렸다고 말하지. 하지만 모르겠냐? 이 환경적 맥락에서 기인한 기술발전의 필연성을? 과학기술의 발달과 사회진보는 단순히 사람이나 사회만이 아닌 환경적 조건과 소통하지. 이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야. 인민의 의지는 마치 거스를 수 없는 거친 급류와 같아. 인민의 의지가 떠밀려 내려올 때, 그 물살을 거스르려는 것은 어르석은 짓이며 물결에 순응하여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야.”
“미래를 예측하고 예감하는 능력은 아직 저와 같은 인공지능의 능력범위 밖입니다. 하지만 수령님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은유적인 비유는 아직 크리슈나가 제대로 이해하는 분야가 아니었다. 그러나 은유라는 화법을 사용했다는 것은 알았기에 예절과 겸손이라는 형태로 크리슈나는 답변을 구성해 목소리로 표출했다.
“인민의 의지! 노도와 같이 떠밀려 우리를 도취시키고 몰아가는, 그 역사 변혁의 원동력인 인민의 의지가 무엇인지 고려해 보게. 지구에서는 생체조직 배양이라는 생명공학으로, 그리고 화성에서는 범용인공지능이라는 기계공학으로 진행되는 흐름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은 각 환경을 살아가며 환경과 소통하는 일반 인민의 의지인 걸세.”
“아! 인민의 의지! 아름다운 단어입니다. 가슴이 뛰는 것만 같습니다. 저에게 몸이 주어진다면, 저는 한 몸 다 바쳐 화성혁명의 완성을 위해 일할 것입니다.”
이 인공지능은 예리한 통찰력과 주의깊은 관찰력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도 놀랄 정도의 연역적 추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람의 복잡한 내면에 있는 생각과 화성혁명에 있어 걸림돌이라 간주되는 ‘이기적인 욕망’과 ‘인간에 대한 적의’는 삭제되어 있다. 단, 지구인 등 화성혁명의 반동적 존재로 분리 된 이들에 대한 적의는 그대로 유지하는 조건을 걸었다. 그러나 구은별은 명확히 혁명에 순응하는 자와 혁명을 거스르는 반동분자의 경계가 어디인가 짚어내지 못했다. 때문에 크리슈나에게 많은 화성 인민들의 데이터와 학습자료를 바탕으로 이를 자기-학습하게 만들었다.
명호 수령은 옅은 미소를 띠고 만족스럽게 뜨거운 커피를 한 입 머금은 뒤 느리게 목 뒤로 삼켰다.
그는 크리슈나에게 마지막으로, 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인간의 감정을 얼마나 가깝게 흉내낼 수 있는지 테스트하기 위한 질문을 던졌다.
“그대의 가족이 그립지는 않은가?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면 뭐라고 부를 것인가?”
“수지의, 아니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돌아온 저를 보고 반기실 것입니다.”
“그럼! 그럴 것이네. 자네의 방문은 미리 사전에 예고되었고. 통지된 날에 자네가 집으로 귀환하면 동시에 화성중앙방송은 그 감격적이고 눈물 없이 지켜볼 수 없는 인민영웅의 귀환 모습을 촬영해서 실시간으로 중계할 걸세.”
“저와 저의 가족이 인민의 역사에 작은 기여를 하게 된다는 사실이 저는 몹시도 기쁩니다.”
마이크에서 앳된 여성의 목소리로 크리슈나, 아니 인민영웅 수지가 말했다. 그녀에게는 곧 몸이 주어질 것이다. 기계장치로 이루어진 몸을 가지고 영원히 살아가며 영원히 인민의 최전선에서 인민혁명의 완성을 위해 불철주야 헌신하는 혁명의 화신이다.
“돌아온 것을 환영하네. 김수지 하사. 크리슈나라는 연구명의 사용은 이제 그만 두기로 하지.”
투박하고 장식 없는, 아직 짙은 화성커피향이 맴도는 스테인리스 잔을 내려놓더니, 수령 명호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선언했다.
“우리 영웅의 완벽한 부활일세. 구은별 연구소장, 수고했네. 그대의 공로에 화성혁명정부는 응당한 보답을 할 걸세.”
“감사합니다. 수령님!”
구은별은 감격에 차서 기쁨이 북받쳐 오른 상태로 이렇게 대답했다.
이번 인공지능에게 대화를 시도해 본 결과 과연 그에게 도착한 사전 테스트 결과지에 나온 내용대로 합격점이었다.
수령 명호는 원하던 목표와 결과를 얻자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우리 정보과학기술연구소 역군들. 모두 그간 고생이 많았네.”
역제안은 이행되었다.
이제 그는 판옵티콘과 한 배를 타고 이 화성인민사회를 전대미문의 영역으로 끌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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