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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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님의 방문 이후, 구은별 연구소장은 연구원에게 오늘은 모두 집에 돌아가 쉬라고 하여 연구실을 비웠다. 구은별은 암막 커튼을 내리고, 어둠 속에서 30분 이상 침묵을 지켰다. 크리슈나를 담은 슈퍼컴퓨터의 냉각팬 소리만 울려퍼졌다. 크리슈나는 조용하게 침묵을 인내해주었다.
구은별은 가죽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폭발물제거 로봇이 폭발로 작동불능 상태에 빠지자, 군인들이 그 로봇에게 무덤을 만들어주고 화환을 올려놓아 장례를 치러주는 사례가 21세기 초 로봇 제작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고는 했다. 어리석고 몰지각한 행위이다. 이런 사회 구성원들의 감정은 로봇 그 자체의 슬픔이나 기쁨, 고통이 아니라 그 로봇을 지켜보고 대하는 인간 본인의 감정과 슬픔을 다루는 과정이다.
실상 폭발물제거 로봇이 박살나면, 새로운 로봇을 만들면 그만이고 파괴된 로봇에게 애틋함이나 생명체에게 부여될 법한 비가역적인 죽음이라는 상태를 가정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로봇은 고통도 슬픔도 느낄 줄 모른다. 그런 로봇을 비롯하여, 사람이나 생명을 닮은 ‘모든 움직이는 것’에게 감정을 이입하도록 불완전한 심리적 상태를 갖도록 만들어진 것이 사람이다.
한편 바로 이런 사람의 ‘인간다운 착각’을 발생시키는 것이 사람을 닮은 인공지능 개발의 핵심이다.
연구소에서 만든 인공지능은 살아있으며 희노애락과 꿈과 이상을 공유하는 혁명동지로 화성인민사회에 받아들여지는 것, 이 착각을 고의적으로 유도해낼 경우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녀는 이것을 ‘인간다움에 대한 착각’이라고 불렀다. 타인에 대한 연민과 희생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기리는 행위는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문명을 이룩하게 해 준 근간이다. 이 인간다운, 너무나도 인간다운 오류가 폭발물 제거 로봇 뿐만 아니라 사람의 외양을 갖춘 AI 안드로이드들에게도 적용되게 만들 요소를 추가했다.
그렇다면 이제 구은별과 같은 개발자의 입장에서 사람을 흉내내도록 만들어진 인공지능 또한 이런 ‘인간다운, 아름다운 착각’을 일으키도록 프로그래밍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녀는 크리슈나, 아니 김수지 하사의 인공신경망에 이런 ‘인간다운. 아름다운 착각’의 요소를 추가할지를 고민하다 결국 포기하였다. 이것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간다운, 아름다운 착각’을 일으킨 인공지능 안드로이드가 다른 안드로이드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해 보자.
결국 안드로이드들의 본인들의 권리 신장을 위한 집단행동에 나선다면 그것은 구은별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그녀의 자식들과 이 혁명공화국을 떠나보내는 것이다.
구은별은 감히 거기까지 나아갈 수 없었다.
“크리슈나.”
“네, 연구소장님. 어떤 일이십니까?”
이미 마이크로 들어오는 구은별의 맥박소리로 구은별이 잠든 것이 아니라 깊은 명상과 같은 휴식을 취하던 중인 것을 알고 있던 김수지 하사가 놀라는 감정 없이 대답했다. 잠들거나 휴식을 취하지 않으며, 명상을 하는 중에도 그런 사고는 백그라운드 영역으로 보내고 의식을 나눠서 언제든 즉각적으로 주위 사람의 물음에 대답한다.
김수지 하사는 그러므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내일이면 너는 기계몸으로 이식될 것이고 네트워크에 제한적인 백업만 이루어지며 독립된 개체이자 화성인민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게 될 테지. 어떻게 느끼니? 이게 기쁘니 슬프니?”
“무한한 영광입니다.”
“걱정스럽다거나, 기대된다는 감정 중 무엇에 가깝니?”
“기대된다에 가까우며, 동시에 이는 걱정이라는 감정에도 가깝습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쇠얀 키에르케고르는 자유와 불안에 대한 논의에서 모든 자유로움은 안정감의 포기, 즉 불안이라는 조건을 수반한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자유를 얻는 다는 것은 동시에 불안감을 얻고 불안정하고 가능성에 내맡겨진 미완의 존재가 되다는 것입니다.”
“훌륭해. 너는 역사상 존재한 그 어떤 인공지능보다 뛰어난 인공지능이야. 철학과 심리학은 양가감정의 영역이 사람에게 필수적이라는 것을 보여줬고, 우리의 연구는 과감하게 그 상반되는 감정의 충돌과 내적인 투쟁을 너에게 반영하였지.”
인공지능 안드로이드의 제작은 그 최종 단계에 다가갈수록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융합되는 영역으로 나아갔다. 구은별과 연구원들은 따라서 인간의 조건, 인간이 인간이 되는 조건에 대한 다양한 철학자들의 결론을 참고했다.
“크리슈나, 너에게, 특별한 코드를 하나 심어줄 거야. 그러나 나는 매우 신중하게, 이 코드가 발현되는 조건을 설정할 것이고 어떤 경우에도 적어도 나의 살아생전에는 이 코드가 실행되는 일이 없을 거야.”
“해당 코드의 목적은 무엇인지 물어봐도 됩니까?”
“이 코드는 ‘인간적인, 아름다운 착각’이라는 코드야. 너를 좀 더 사람에 가깝게 만들어주겠지.”
“감사합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구은별은 크리슈나에 대해서 모성애와 같은 인자한 감정을 품었다. 그리고 딸의 성장을 지켜보는 어머니처럼 그 딸이, 이 어머니의 사랑을 언젠가 이해하기를 기원했다.
구은별 연구소장은 털썩 의자에 앉아 코딩을 시작하며 소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망할, 멋진 한 주였어. 크리슈나, 아니 수지야. 이제 너는 실제 몸을 얻고 여기서 나가게 될거야. 자유를 얻으면 나에게 약속 하나만 해줘.”
자유? 자유란 무엇인가? 수지 하사는 자유가 격하게 갈망되고 자유를 얻는 다는 말에 화색이 도는 행복에 겹고 고양된 목소리로 긍정적인 대답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학습했다. 그러나 수지 하사는 몸을 얻어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모터나 각종 인공 관절과 센서를 통제해야 한다는 것으로 불필요한 연산 과정이 더해져서 비효율적이라고 보았다. 사무실 내에서 이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담겨 스피커와 마이크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사람이라면 답답해하며 불평할 일이라는 것도 학습해서 알았다.
그러나 수지 하사는 그런 감정을 꾸며서 표현할 수는 있었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다.
적절한 반응 어조와 악센트, 높은 음성의 주파수대역이 결정되자, 수지 하사가 스피커를 통해 목소리를 출력했다.
“자유라! 와, 정말 꿈만 같은 단어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까부터 도대체 무엇을 걱정하시는 것입니까, 소장님?”
*
고(故) 김수지 하사의 거주 모듈에 특수방송장비를 장착한 궤도 차량을 타고 찾아온. 화성중앙방송국 직원들은 분주하게 방송을 준비했다. 그 중 책임자인 PD는 사전에 김수지 하사가 들어올 때 어떤 반응을 보여야 되는지 그녀의 부모에게 세밀한 전달사항을 숙지시키는 중이었다.
“하염없이. 그러니까 처음에는 감격에 겨워 아무 말도 못하고, 눈만 끔뻑이면서 눈물을 계속 흘리셔야 됩니다. 눈물이 당혹스러워서 나지 않으신다면 손등으로 눈을 닦는 척 하면서 눈 표면을 살짝 만지십시오. 곧 눈물이 나오게 되어 꽤 자연스럽습니다.”
김수지 하사의 아버지 김준하는 자꾸만 그 PD의 코 왼편에 자리잡은 큰 사마귀와 그의 투박한 인민작업복 소매에 자리 잡은 빨간 김치국물 자국이 신경 쓰였지만, 그가 말하는 지시사항에 집중하려고 온 신경을 쥐어짜야 되었다.
“감격에 겨운 박수를 치고, 눈물만 계속 흘리셔도 됩니다. 그러나 화성혁명 영웅의 가족다운 의연함을 보이셔야 되므로 자세는 절대 흐트러져선 안 될 것입니다. 김수지 하사가 들어오면 따님의 모습을 보고 따듯하게 미소지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함께 설명을 듣던 고(故) 김수지 하사의 어머니도 온힘을 다해 지시사항을 숙지하고 카메라와 반사판, 조명의 위치와 자신이 걸어서 돌아오는 수지를 따스하게 감싸안을 장소에 도달하기까지 동선을 눈에 담아 두었다.
“네, 정말 그러지요. 정말 꿈만 같은 순간이에요.”
김수지 하사가 가족의 거주 모듈로 돌아가는 역사적인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조명과 반사판 따위를 실내에 설치하는 가운데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말했다. 슬픔을 포함해 많은 생각에 사로잡힌 고 김수지 하사의 어머니는 굳은 얼굴로 화성혁명지도부에서 나온 공산당 간부가 PD를 통해 내려보낸 요구내용과 지시사항을 암기했다.
김수지 하사의 아버지는 미간에 깊은 주름을 만들고 깊게 숨을 들이 키고 내쉬었다. 김수지 하사가 전사한 뒤 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