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함대를 이룬 프리깃 32척이 머리를 반대로 돌렸다. 앞과 옆의 모든 분사구에서 플라즈마가 뿜어나왔다. 다그다-텔의 호위함인 파이어랜스 한 척의 상갑판에 빔이 꽂히자 추진관이 압력을 견디지 못해 부서졌고, 피해가 가벼운 다른 벤전스가 제국군의 포선을 막아섰다. 다시금 집중된 빔과 플라즈마 탄, 매스드라이버 세례를 받아내야 했지만, 이 16번함은 동료의 상처가 느리게 회복되는 동안 자리를 비키지 않으면서 무시차 포격으로 적 프리깃의 포탑 둘을 부순 후에야 물러났다. 이미 몇 척은 2차 장갑마저 녹아내리고, 함번 10번을 새긴 하얀 벤전스는 네 개의 회전포탑 중 단 하나만이 살아서 탄을 쏘고 있었다.
  온 함체에서 에너지가 새어나오는 파이어랜스가 항법등을 짧게 네 번 밝히자 지원함들의 매직 빔 수리가 멈췄고, 그 배는 추진구를 하얗게 태우며 적에게 돌격해 들어갔다. 양편의 포화마저 뜸해진 다음 순간, 자침하는 파이어랜스가 일으킨 폭발에 제국군 프리깃 두 척의 함수가 망치로 내리친 듯 우그러들었다. 폭발광이 다그다-텔의 함교를 감쌌고, 이미 흔들리던 외시창에 생긴 큰 금에서 파편들이 무수히 쏟아져내렸다. 번쩍이는 비상등에 온 함교가 핏빛에 잠겼다. 제 3함대 사령관은 마이크를 잡았다.

  "피해가 심한 순서대로 화력을 집중한다. 모든 포술수는 시차 없이 쏘면서 적함의 포탑을 노려라. 1분만 버티면 9함대가 온다! 함께 모선과 8함대를 지키자!"

  갈라진 외시창의 뒤편으로 모선이 보였다. 제 8함대의 모함 셋과 네 부대 가량의 코르벳들이 거기 있었다. 약 백 정도 되어보이는 검은 제국군 타격함들에 둘러싸여 불을 뿜는 그 모습에서, 이지도르 나바알은 지난 전투에서 운석과 마주하던 임퍼레이터 크리슈나-락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만약 제 3함대가 뚫려서 눈앞의 적이 모선으로 향하고, 그래서 원하지 않는 마지막이 온다면, 저 배들은 추진구를 빛내며 적 타격함부대의 기함과 지원함들을 차례차례 들이받고, 그런 다음 불타 부서져 가겠지. 크리슈나가, 베레고스트 마난이, 용감한 승무원들이 그랬듯이.
  '그러나 그런 식의 희생은 더이상 일어나서는 안 된다. 마난이, 그리고 먼저 죽어간 다른 놈들이...'

  "각하!"

  별안간 함교 통신사의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나바알을 감상에서 잡아 이끌어냈다. 한 하사가 부들부들 떨며 사령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1년간 언제나 침착한 태도로 모두에게 기억되어 온 그가, 이번에는 앳된 두 눈가에 눈물마저 머금고 있었다. 다급한 순간이었음에도 잠시나마 함교원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나바알은 입술을 깨물었다. 저 어린 녀석이 평정을 잃은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건만...

  "침착해라. 무슨 일이야?"
  "제 9함대가 적 주력부대에서 발진한 다른 타격함들에게 가로막혔습니다!"
  "우리 함대의 한계 시간에 비추어 어떠한가?"
  "...불가능합니다."

  함교를 흔드는 탄식 속에, 이지도르 나바알은 방금 자침한 파이어랜스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조금 더 기다려주면 안 되겠나? 아직 동료들을 위해 할 일이 많은데.'


  상대방은 이제까지 만난 적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제 8함대의 코르벳들을 압박했다. 현란한 기동이나 사격술보다도 압도적인 숫자로 짓쳐들어오는 모양이 그러했다.
  데네브 쓰젯은 자신의 기함 샤말-락을 포함한 임퍼레이터 셋을 둘러싼 코르벳 편대의 광점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 불과 몇백 미터 앞에서, 얼마 안 되는 쾌속정들이 한꺼번에 수십 척의 소형 타격함을 상대로 맞아 싸우고 있다. 중순양함의 매스드라이버 앞에서조차 물러서지 않던 해머의 조종사들도, 한번에 피르칸 셋을 잡는 사격술을 가진 템페스트의 승무원들도 수적 열세 앞에서는 회피 기동을 우선해야만 했다. 쓰젯은 통신장을 호출했다. 그의 기억에, 함교의 절반만큼 컸던, 십여 명이 근무하는 기함의 통신부가 이미 고함과 비명, 그리고 다른 배에서 전해져 오는 폭발음으로 가득 차 있음을 수화기 잡음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방해전파와 신호음이 뒤섞인 속에 젊은 사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함교. 통신장."
  "사령관이다. 제 2, 4함대로부터의 교신은?"
  "아직 없... 방금 들어옴. 임퍼레이터 샤말-락에게. 현 귀함 작전지역 이동중. 2함대 기함 페린-텔로부터임."
  "선발대의 도착예정시간을 내는 즉시 함교 전송하라."
  "알겠음. 이상."

  쓰젯이 마이크를 내려놓자, 거대한 임퍼레이터 모함의 함교가 별안간 죄어들어오는 듯 작고 갑갑하게 느껴졌다. 지난날 코르벳의 에이스이자 편대 지휘관으로서 명성을 가져다 준, 함대 전체에 '관'으로 유명한 해머의 조종석보다도 더 좁은 느낌에 그는 몸서리쳤다. 격납된 자기 코르벳과 함께 눈앞의 부하들에게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죽은 베레고스트 마난이 돌아와 함대의 지휘를 대신해주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널찍한 새로운 관 속에 남아서 쾌속정 부대와 모함들을 다함께 지켜내야 한다. 그때야말로 이 곳이 함교요, 관이 아니게 될 것이다. 누가 뭐래도 이 초주력함 세 척은 마지막 순간까지 저 작은 배들을, 자식들을 품어 주어야 할 어머니가 아니던가.
  그러나 그 따뜻하고 자애로운 역할만으로 끝나서는 곤란하다. 보라. 제 3함대가 이 보잘것없는 최후 방어선을 뚫으려는 또 하나의 큰 적 세력을 막아서지 않았는가. 제 2함대의 소반 족 전사들조차 넘어설 만큼 투쟁심에 불타는 그들은 항상 힘에 부치는 적,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라도 정면으로 칼끝을 들이대 왔다. 1년 전 카락의 장례식 때부터 줄곧 모선을 지켜 온, 그 승무원들의 고결하고 위대한 무모함은 보답받아야 한다. 어디까지나 그들이 살아 있을 때 보답받아야만 한다. 그것을 위해 이 모함들은 즉각 복수자로 변신해서, 감히 동료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앗아 간 적의 배들을 몸으로 들이받아 짓이겨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다. 빨리 소반 인들이 와서 저 저주받을 제국군 모함을 두동강내 준다면!'

  "통신장. 함교. 제 2함대는 지금부터 57초 후 주전장 구역에 도착 예정. 적 모함을 호위하는 별도 세력은 없으므로, 곧바로 빔 포격을 가하겠다고 함. 제 4함대는 1분 30초 후 도착. "
  "알았다. 통신장. 제 8함대원 총원에 전한다. 제 2함대 도착까지 앞으로 1분이다. 함대 모함들은 주전장 구역으로 나아가면서 동시에 포격을 시작하라. 각 승무원은 자신을 잃지 말고 싸우도록."

  쓰젯은 두 주먹을 부르쥐며 다짐했다. 적 모함이 산산조각나는 동시에, 아니 제 2함대의 빔이 그 멋없는 상갑판에 닿아 불타오르자마자 우리는 제 3함대에 향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 용감한 이들을 지켜내리라고.


  이지도르 나바알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방금 올려다본 천장의 외시창으로 제 9함대의 타격함들이 비슷한 숫자의 적에게 둘러싸여 고전중이었고, 제 8함대는 세 척의 모함마저 전장에 뛰어들어 사방으로 기총을 난사하고 있었다. 이는 곧 그의 마지막을, 즉 한계 시간 내에 구원이 오지 않을 것임을 말해 주었다. 이제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제 3함대의 주력함들 중 회전식 포탑을 유지하고 있는 배는 이미 단 한 척도 없었다. 척추형의 빔 포대나 완전수납식 플라즈마 포대만이 살아서 힘에 부치는 반격만을 해나가고 있었다. 기함인 다그다-텔의 여덟 개에 달하는 포탑 또한 모조리 뿌리뽑혀, 이제 적을 전투불능으로 하기는커녕 저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함이 누구의 눈에도 확실해 보였다.
  더 늦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
  그는 진형의 분리를 명령하고, 낮은 목소리로 방금 전의 하사를 불렀다. 눈물 젖은 얼굴이 지휘석을 향했다.

  "총기함을 연결하도록."

  그 명령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아는 하사는 작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패널에 손을 가져갔다. 나바알은 다시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전투함들에게 알려라. 각 함은 전진 기동에 필요한 최소 인원을 뺀 나머지 병력을 탈출시키라고. 이 명령은 기함에도 적용된다."

  이내 전함 반다르아바슈-샤의 거대한 함교를 배경으로, 지휘에 여념이 없는 직속 상관의 모습이 나타났다.


  적함에게 따라잡히거나 추격을 허용하는 일은 훗날 히가라의 대에이스로 남게 될 슈오 나바알에게 물론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새롭게 전장에 다다른, 사기와 전의가 넘치는 수많은 적 앞에서 그런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제 9함대의 사령관이라는 '감투' - 본인은 자신의 직위를 그렇게 낮춰 불렀다 - 를 함장 소질이 출중한 2인자에게 맡기다시피 하고 올라탄 애로우의 조종석이건만, 제국군은 그와 그의 부하들이 격추해야 할 적들을 끊임없이, 질리도록, 끝을 모르게 쏟아냈다. 이대로라면 9함대의 엘리트 조종사들은 실력이 아닌 숫자에, 적과의 대결이 아닌 자신의 피로에 먼저 지고 말 것이다. 그것은 곧 제 3함대, 8함대가 차례차례 적에게 압도당함을 의미한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었다. 나바알은 이를 부드득 갈며 통신회선을 켰다.

  "각 편대. 미리 가르쳐준 대로 두 개 이상의 소집단으로 분산해. 그리고 르붐바시-락은 예비 병력까지 전부 내보내고, 여기로 빨리 와서 데크 건이든 뭐든 쏴제껴. 이 귀찮은 놈들을 없애지 않으면 밑의 제 3함대가 전멸하니까!"
  "전부 내보냈습니다. 템페스트와 해머들이 50초 후에 도착합니다. 놈들은 자기 뜻대로 안되는 걸 알면 곧 물러갈 겁니다. 형님. 조금만 더 버티세요."

  임퍼레이터 르붐바시-락의 함장이자 실질적인 제 9함대 사령관인 오란 팍투의 전술력은 이미 상관의 시야를 넘어 발휘되었다. 그는 호위용의 템페스트와 해머 코르벳을 미리 출격시켜, 슈오 나바알이 예상한 조종사들의 한계가 다가오기 직전에 전황을 돌려놓을 수 있었다. 지칠 대로 지쳐 모선을 지키는 호위 세력만이 적의 목표이므로 자신의 배처럼 주전장에서 떨어진 모함이 감수할 위험은 이미 사라졌음을 그는 간파했던 것이다.


  펜리스 썸타우가 이때만큼 자신의 기함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동시에 저주해 본 적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적 제 6함대의 주력인 중순양함 집단과 한창 전투중임에도 지휘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이 대형전함의 위력이지만, 그만큼 자신은 다른 약한 배들에 몸을 맡긴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응당 마주해야 할 위험에서 한 발짝 비켜서 있는 것이다. 얼마나 비겁한가? 일선 총지휘관이라는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변명이 될 수는 없으리라.
  일년 전 출항 때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혀 온 그 느낌에서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어서 이 멋없는 '고통의 신'들을 무찌르고 제국군 기함에게로 달려가 항복을 받아내든, 아니면 조각조각 부수든 해서 귀향길을 재촉할 수밖에.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의 모든 실책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 전투 지휘관의 자리가 허락된 이유이기도 하다.

  "리빌레이션 16번함, 18번함, 퍼디션 6번함, 아바타 4번함은 물러나서 지원을 받아라. 나머지는 적진 선두에 있는 순양함에 화력을 집중해서 적 지원 프리깃의 재생력을 무시해라!"
  "지휘관님. 제 3함대 사령관입니다. 화상통신을 청하고 있습니다. 연결하겠습니다."

  펜리스는 눈을 감았다. 전투 한가운데서 이런 직접보고를 받는 경우는 단 두 가지이다. 이겼을 때 적 패잔병의 처리문제, 그리고···.

  "제 3함대 사령관이다. 이제 우리 함대의 전투력은 다했다. 마지막 작전을 허가하기 바란다. 지휘관."
  "곧 제 9함대가 내려간다. 코르벳들이 끼어들었으니 앞으로 4분이면 된다. 함대 주력을 보존할 수만 있으면 아직 승산은 있다!"
  "물론 모두 끌고들어갈 생각은 없다. 기함을 포함한 모든 배에서는 전진 기동에 필요한 인원을 제외한 모든 병력이 탈출중이고, 전투 불가능한 함과 지원함은 이미 진형에서 분리시켰다. 인원이 없는 구획에서부터 양자 입자를 살포하고 있다."
  "제독! 부탁이다. 제발 함수를 돌려. 모선의 장갑 상태는 아직 충분하다. 제 8함대도 있고, 곧 2함대가 적 모함을 공격할 텐데 그 쪽에서 희생하면서까지 지켜낼 필요는 없지 않나!"
  "본래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슈오 나바알의 9함대가 시간내에 오지 못한 이상, 맡은 적을 최대한 저지하는 게 이제 우리 임무야. 그리고 여기서 다시 뱃머릴 돌린다 치자. 그동안 적이 가만 있겠는가? 추진구에서 빔이라도 내뿜어야 되겠나?"
  "······"
  "저 동면실에 13년째 잠든 사람들이 따뜻한 땅바닥 흙을 발에 묻히고, 오르내리는 해와 달을 보며 살다 가게 해주는 게 우리 모두의 존재 이유였으니까. 그래서 제 3함대원은 다른 누구나 그랬듯 원망이나 후회 없이 죽을 수 있다. 이제 우릴 잊어라. 대신 희생을 헛되게 하지 마. 모선을 지키고, 다른 함대원들 목숨도 우리 것으로 대신해! 알겠나?"

  이지도르 나바알. 사병으로 입대한 이후 함장 후보로 임관했으므로 군 경력이나 특기면에서 조종사 출신의 자신보다도 전투 지휘관이나 제 2함교장으로 훨씬 뛰어났을 테지만, 상부의 보직 지정에 항의하는 일 없이 지난 항해 동안 계속 일선 전투부대장의 자리를 지켜왔다. 카르-쎌림과 그 승무원들의 희생 이후 불탄 카락의 고궤도에서, 냉동수면 상태로 무방비인 60만명을 공격하는 제국군 잔당을 선두에서 물리치는 등 분전했으며, 부사령관인 그렘 쓰젯을 잃은 후에도 그 유연하고 신속한 전술에는 변함이 없었다. 새로 만들어진 배들을 분배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무조건 자기 함대만을 앞세우는 대신, 언제나 순수한 전술적인 평형을 중시해 왔다. 이후 계속되는 큰 피해에 단독 작전이 불가능할 만큼 전력이 감소해버렸지만, 이번 싸움에서도 망설임 없이 적을 막아서서 객관적인 전투력 이상의 힘을 내어 모선을 지켰다.
  그런 그와 부하들에게도, 아니 그들에게야말로 다른 이들처럼 고향 별의 하늘과 바다와 땅을 산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이건만. 어쩌면 이렇게밖에 하지 못할 상황으로 그들을 몰아넣었는가!
  그러나 상대방은 펜리스의 죄책감을 싹 무시하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작은 화면 속 나바알의 표정에 먼저 죽어간 자들의 모습이 이내 겹쳤다. 스스럼 없이 밝게 미소짓는 얼굴. 붉은 성운에서 동족의 광란 한복판에 선 자원 채집선의 세 승무원도, 제국 함대를 맞아 물러서지 않은 크리슈나-락의 베레고스트 마난도, 이스크라-텔의 그렘 쓰젯도 그렇게 사라졌다.
  더 이상 말을 거는 건 그와 제 3함대원들에게 방해가 된다. 아니, 차라리 불경하다.
  펜리스는 입술을 깨물며 경례했고 나바알이 인사를 받았다. 3함대 사령관의 그 웃음 속에, 마지막 각오라든가 죽음을 맞이하는 비장함은 없었다. 단지 '사관학교 나온 상관에게 경례받다니 군생활 오래 하고 볼 일이군' 따위의 장난스런 감정만이 가득해 보였다.
  폭발광에 그의 왼편이 환히 빛나며, 뒤이어 날아온 금속과 유리 조각이 살갖을 찢고 박혀 얼굴 군데군데 굵은 핏줄기를 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잘 싸워라. 나의 모자란 지휘관. 그렘 쓰젯이 기다리고 있다. 사죄는 나중에 자네가 오거든 받겠지만, 부디 그게 먼 훗날의 일이기를."


  제 9함대의 예비대인 재빠른 템페스트 코르벳들이 먼저 똑바로 제국군의 편대 대형을 찔렀고, 각 함마다 여섯 개씩의 자기부상식 포탑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제국군 타격함들의 반격은 뒤미처 날아온 해머들의 공세로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제 9함대의 조종사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이 흐트러진 적의 큰 대형을 두들겼고, 숫자로써 실력과 경험을 만회하겠다는 듯 끈질기게 공격해 오던 제국군은 결국 기함으로부터의 발광 신호가 있자마자 최고 속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전장에는 이내 도망자들의 항적만이 파편처럼 어지럽게 남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듯 자기 뒤를 쫓던 피르칸 한 척이 쾌속정의 고속탄에 명중되어 부서지며 희고 또 붉은 빛을 토해내자, 슈오 나바알은 안도하며 조종석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령관이 전한다. 고생들 많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지원집단은 피해 심한 순서대로 매직빔을 방사하고, 함을 잃었거나 표류하는 승무원들을 구조해라. 나머지는 나와 함께 재편성해서 즉시 제 3함대를 구한다. 그 녀석들 입으로 우리 공적을 칭송하도록 해 주자!"

  조종사와 승무원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에이스는 자기 일족이자 사병 출신으로서 함대 사령관에까지 오른 이의 옅게 주름진 얼굴을 떠올렸다. 타격함을 이끄는 입장에서 언제나 보호받아 왔지만, 이제는 그가 선배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이다. 기함에서 재편성이 끝났음을 알려 오자 그는 회신 없이 즉각 이동 명령을 내렸다.
  '제독. 부탁합니다. 단 한 척도 잃지 말고 기다려요. 지금 갑니다. 앞으로 백이십 초만 주십시오.'


   적 구축함의 함수가 빠르게 가까워져 왔다. 이지도르 나바알은 뒤를 돌아보았다. 우주 공간에 내던지다시피 뿌리고 온 승무원들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 거리에서라면 양자 입자로 가득한 배가 폭발하더라도 그들에게까지 피해가 가지는 않으리라. 또한 병력을 구조하는 나머지 지원함들을 공격할 만한 적 세력도 없었다. 그제서야 나바알은 고개를 돌리고, 함교의 큰 화면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마지막이 이런 식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군. 자네들에게 미안하다. 누구도 우리가 이렇게 죽는 것을 원하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래. 옛 논법이지만 우리가 죽음으로써 뒤의 저 녀석들이 살고, 앞의 벌레들이 감히 모선을 범하지 못하는 것이다. 뒤에 있는 우리 함대원들이, 특히 내 배의 함교에서 가장 유능했던 한 꼬마 하사놈이 우리가 어떻게 싸웠는지를 모두에게 알려줄 것이다."

  나바알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리고, 창조주 옆에서 기다릴 그렘 쓰젯과 그 얼간이 부하들에게 가서 말하자. 우린 적어도 너희들보다 멋지게 여기 올 수 있었다고."

  화면에 나타난 네 척 프리깃의 함장들이 미소지었고, 함교의 남은 모든 승무원들이 따라 웃었다.

  대형의 맨 앞자리에서 전속력으로 앞서나가는 에이스의 타격함에서, 가까워진 전투 구역에 수십여 개의 빛무리가 보였다. 간간이 이어지는 폭발광이 슈오 나바알의 눈을 자극했다. 그것은 모선 쪽의 집단에서 보다 자주 생겨났으며, 그로써 이미 함대로서의 전투력을 잃어 가고 있음을, 아니 완전히 잃었음을 보여주었다. 이윽고 그 무리의 광점이 둘로 나뉘는가 싶더니, 앞의 다섯 개가 순식간에 상대편에게로 나아갔다.
  오래지 않아 그 다섯 개는 밝은 빛이 되어 사라졌다.

  그것은 슈오 나바알이, 데네브 쓰젯이, 다른 모두가 구해내리라 다짐한 제 3함대의 마지막 주력이었고, 그 기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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