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핸드폰을 들어 당장 원에게 전화했다. 19초의 신호가 갔을 때 그녀가 받았다.

“아직 할 말이 남았어?”

“그 타이! 니트 넥타이! 놈을 알고 있었던 거야! 그렇지? 클론을, 그 고깃덩어리를!”

“그래서?” “인간도 아닌 그 놈을! 그 놈과 사귄 거야?”

“사귀었든 아니든 간에 이제는 그럴 수도 없어. 그는 소멸해버렸어. 회사 최고의 요원, 조가 말살했으니.”

“다 알고 있었으면서 모른 척 하다니!”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내게 솔직하지 않았어. 말은 많았지만 항상 겉돌았지. 실속이 없었어.”

“그 가짜와, 짝퉁과 사귀었다는 건가?”

“누가 누구보고 짝퉁이라는 건지 모르겠어. 똑같은 짝퉁 주제에.”

숨이 막힐 듯한 충격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뭔가 할 수 있는 말을 생각해내려 했지만 아득해져서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신음소리 같은 것이 입 밖으로 나올 때까지 한참이 걸렸고 그제야 나는 원이 이미 전화를 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시 다섯 번을 전화했지만 전화가 꺼져 있다는 안내뿐이었다.

류와 처음 만났던 신입생․복학생 환영회, 제이와 처음 만났던 훈련소 앞, 원과 단 둘이서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 날의 기억은 어제 일처럼 또렷했다. 그때 내가 입었던 옷과 상대가 입었던 옷차림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어느 가을날 수업이 끝난 뒤 교회 앞에서 원과 두유를 마시며 이야기하다 제이의 전화 때문에 금세 자리를 뜨며 아쉬움을 달랬지만 그때 원에게 남자친구가 없음을 확인하고 기뻐했던 순간은 지금도 또렷했다.

놀라운 것은 도대체 원이 어떻게 클론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을까, 라는 점이었다. 원은 대학을 다니다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학원에서 중학생을 가르치게 되었다. 즉, 매우 평범한 스물여섯의 여자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원이 회사와 관련되어 있을 리 만무했다.

나는 옛 기억을 되짚기 위해 일기를 꺼냈다. 한동안 쓰지 않았지만 일기는 언제나 책상 서랍 속을 지키고 있었다. 일기 옆의 멈춰진 손목시계를 보며 일기를 쓴 것이 언제였던가 더듬어 보았다. 군 복무 시절 휴가를 나와서도 썼고 아마도 원과 처음 만났을 때에도 썼을 것이다. 따라서 류, 제이, 원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일기가 증명할 것이었다. 나는 갈색 하드 커버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일기를 펼쳤다.

하지만 일기 안에 있는 모든 종이에는 아무 것도 씌어진 것이 없었다. 남극대륙의 끝없는 빙하처럼 새하얬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낙서는커녕 점 하나 찍혀있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일기를 거칠게 뒤적댔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일기를 내동댕이쳤다. 누군가 내 일기장의 원본을 가져가고 표지만 똑같은 모조품으로 대체한 것이다. 아마도 클론에게 내 기억을 주입하기 위해 일기를 가져간 것 같았다. 세세한 부분까지 또렷한 내 기억이 틀렸을 리가 없다. 게다가 수업 시간에 원을 바라보곤 했던 손목시계도 내 것이었다. 나는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노인에게 전화했다.

“B4 계획이란 도대체 뭡니까? 누가 내 일기장을 조작한 것입니까? 회사가 원하는 것은, 클론을 만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영감님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중절모를 쓴 1940년대의 갱이 시카고 타이프라이터를 갈겨대는 것처럼 쏘아붙이는 나의 질문들에 노인은 잠시 침묵했다.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자네가 감당할 수 있을까? 때로는 거짓이 진실보다 더 나을 때도 있는 법일세.”

“아니, 제게 필요한 것은 진실뿐입니다. 회사가,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도대체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노인은 긴 한숨을 쉬더니 나를 당장 야구장으로 나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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