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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 : 2016.12.06
아이작 아시모프는 <과학소설 창작백과>에서 실망하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SF 소설 지망생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출판사가 소설가 지망생의 원고를 거부해도 지망생들은 실망하지 말고 계속 투고하라는 뜻입니다. 사실 많은 기성 작가들은 소설가 지망생에게 인내와 끈기를 요구합니다. 출판사들은 소설가 지망생의 원고를 쉽게 수용하지 않으며, 종종 아무리 뛰어난 작품도 빛을 못 볼 때가 있습니다. 비단 SF 소설만이 아니죠. 창작 관련 서적을 읽어보면, 대부분 기성 작가들은 소설가의 길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소설가 지망생의 책이 출판사의 문턱을 통과해도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작가가 책을 출판해도 그게 팔리지 않는다면 말짱 헛고생이죠. 소설가는 꿈을 가득히 품고 책을 썼겠지만, 결국 소설도 시장의 상품에 불과합니다. 팔리지 않는다면, 그 소설가는 더 이상 소설가의 삶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잘 팔리지 않는 소설들도 많고, 기성 작가들은 이런 점도 경고합니다.
스티븐 킹은 소설 <11/22/63>에서 '모든 문학 선생들의 꿈은 소설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 한 말이지만, 작가의 생각이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그만큼 스티븐 킹은 소설가 혹은 소설가 지망생 주인공을 잘 써먹죠. 그런데 왜 문학 선생들은 소설가 대신 선생의 길을 선택했을까요. 그만큼 소설가의 길이 어렵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스티븐 킹 본인도 고등학교 선생이었죠. 어떤 기성 작가는 소설가가 먹고 살 방법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누구였는지 까먹었는데, 아마 어슐라 르 귄이 아니었을까 싶군요. 이렇게 '투 잡을 뛰는 작가들'이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사설 투고로 먹고 사는 작가도 있고, 철학 강연으로 먹고 사는 작가도 있고, 문학 수업으로 먹고 사는 작가도 있다고 합니다. 어떤 작가는 아예 소설 쓰기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 SF 장르는 자연 과학과 밀접하기 때문에 이쪽 분야에서 일하는 작가들도 있죠. 그런 작가들은 소설을 쓰지 못해도 자연 과학 분야에서 일을 합니다. 오직 소설로만 먹고 사는 작가들도 있지만, 그런 작가들은 그야말로 축복을 받은 인재라고 할까요.
예전에 소설가 김영하가 모 TV 프로그램에서 "작가가 되지 말아라. 먹고 살기 힘들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김영하는 헬조선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작가가 생존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헬조선 상황이 아니라도 소설가의 삶은 그리 찬란하지 않겠죠. 소설가는 어딘가 구석진 골목에서 끈덕지게 좋은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묘사가 훨씬 어울릴 겁니다. 설사 기라성 같은 천재 작가라고 해도 소설이 팔리지 않는다면 한 순간에 몰락할 수 있습니다. 알프레드 베스터는 <타이거! 타이거!>와 <파괴된 사나이> 덕분에 SF 소설 역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이후 소설들은 독자에게 실망을 안겼고, 그래서 소설가로서 먹고 살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잔지바르에 서다>를 쓴 존 브러너의 사례는 더욱 불행합니다. 존 브러너는 지나치게 작가주의 소설을 내세웠고, 그래서 대중성을 크게 잃었다고 합니다. 출판사는 존 브러너의 소설을 원하지 않았고, 결국 브러너는 몰락하고 맙니다.
소문에 따르면, 존 브러너는 어느 SF 컨벤션에서 자기 처지를 하소연했다고 합니다. 소설가로서 먹고 살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허드렛일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죠. 불행히도 존 브러너는 그 컨벤션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소설가 지망생이 자기 인생을 소설 창작으로 밀어붙여도 과연 괜찮은가 싶습니다. 물론 존 브러너의 사례는 아주 특별합니다. 브러너가 SF 소설가의 평균적인 삶을 대변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소설가의 삶은 쉽지 않고, 이런 일화도 생각해 볼만하죠. SF 소설가 스프레이그 캠프는 아주 대놓고 '먹고 살기 위해 SF 작가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캠프는 겸손을 표현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겠지만, 이게 SF 소설가의 진짜 삶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 SF 소설가는 어느 허공에서 유유자적하는 신선이 아닙니다. SF 소설가도 사람입니다. 피어스 앤서니 같은 SF 소설가는 전업 작가가 꼭 직장에 다니는 반려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설사 작가가 돈을 벌지 못해도 반려자의 월급으로 먹고 살 수 있으니까요. 작가는 책으로 먹고 살 수 없을 경우를 대비해야 합니다.
SF 소설가가 되는 관문은 비좁고, SF 소설가가 성공하는 관문은 훨씬 비좁을 겁니다. 저기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 일본처럼 SF 소설 시장이 거대한 곳에서도 SF 소설가가 성공하기 힘듭니다. 우리나라는 말할 필요가 없겠죠. 저는 우리나라의 SF 시장 상황을 잘 모릅니다. SF 소설이 얼마나 팔리는지, 그 중에 얼마나 한국 SF 소설의 비중이 차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출판사는 SF 소설들을 연이어 쏟아냅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죠. 어떤 출판사는 몇 번씩이나 출판을 그만 두었습니다. 듀나, 배명훈, 장강명 같은 작가들은 꽤나 유명하지만, 이들은 정말 상위 1%에 해당할 겁니다. 그리고 인터넷 연재 소설로 먹고 사는 작가들도 많겠죠. 저는 인터넷 SF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고, 이런 작가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잘 모릅니다. 어쨌든 SF 소설가가 되겠다면, 아예 길이 없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은 길일 겁니다. 소설은 필수품이 아닙니다. 취미입니다. 그리고 소설은 만화나 영화, 비디오 게임처럼 비교적 대중적이지 않습니다.
뭔가 좀 암울한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놨습니다. SF 소설가가 되고 싶다면,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종 '소설가도 입에 풀칠할 수 있도록 사회가 바뀌면 어떠한가'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어떤 SF 소설가가 있습니다. 소설을 출판했지만, 벌이는 시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돈벌이를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문학 수업이나 철학 강연 자리는 한정적입니다. 소설가라면 문학 수업이나 철학 강연을 원하겠지만, 모든 소설가가 그런 자리에서 돈을 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합니다. 뭔가 전문적인 기술이 없다면, 보다 평범한 일을 해야 합니다. 길거리에서 청소를 하든,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든, 택배 상품을 배달하든, 슈퍼마켓 창고를 정리하든…. 이런 일거리를 병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거리의 보상은 그리 많지 않고, 게다가 노동 강도가 가혹할 수 있습니다. 택배 아르바이트나 창고 아르바이트를 몇 번 하면, 허리가 부러지는 게 예사일 수 있습니다. 소설가가 저런 일에 매달리기 시작하면, 아마 소설 창작은 뒷전이 될 겁니다.
소설가가 저런 일에 좀 덜 매달리고 좀 더 많은 보상을 받는 방법이 없을까요. 좀 더 급진적으로 생각하죠. 소설가가 자기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조금 같은 걸 받을 수 없을까요. 음, 한 가지 방법이 떠오릅니다. 요즘 몇몇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점차 화제가 되는 방법이죠. 바로 기본 소득입니다. 최근에 기본 소득이 화제가 되었는데, 사실 기본 소득은 꽤나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이미 수많은 철학자, 경제학자, 사상가들이 기본 소득을 이야기했죠. 비단 사회주의자나 생태주의자만 아니라 보수 우파 인사들도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론 좌파와 우파의 기본 소득 논의는 다릅니다. 좌파는 '권리로서의 소득'을 이야기합니다. 시민은 마땅히 기본 소득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시민이 공평하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처럼요. 우파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소득'을 이야기합니다. 보상이 존재한다면, 노동자들이 좀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파들은 항상 인센티브를 강조하는데, 기본 소득이 그 인센티브가 될 수 있죠. 대신 우파들의 기본 소득은 굉장히 짭니다.
기본 소득을 둘러싼 논의는 상당히 다양하고, 이 게시물에서 그걸 다 정리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기본 소득이 무슨 사회주의나 생태주의 정책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회주의자들과 생태주의자들의 생각도 저마다 다릅니다. 사회주의자도 기본 소득을 반대하거나 혹은 찬성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당과 녹색당이 (좌파적) 기본 소득을 주장하고, 기존 정치권도 (우파적) 기본 소득에 관심을 보이는 듯합니다. 성남시의 청년 수당도 그런 종류의 일환이고요. 개인적으로 좌파적 기본 소득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 소득도 계급 투쟁을 거치지 않으면 실행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좌파적 기본 소득이 실행되도 대기업이 시장을 좌우하는 이상, 기본 소득의 의의가 흔들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경제 민주화를 실현하고 싶다면, 결국 인민들이 시장 권력을 장악해야 할 겁니다. 어쨌든 이건 복잡한 논의이기 때문에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점은 기본 소득이 SF 소설가에게 기회가 될 거냐는 물음입니다. 만약 SF 소설가가 매달 50~60만 원씩 받는다면, 소설 창작에 전념할 수 있을까요. 소설 창작에 도움이 될까요.
50~60만원은 평균적인 생활 비용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액수입니다. 한 달에 50만 원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겠죠. 하지만 이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한 달 원고료가 40만 원이 된다고 가정하죠. 어쩌면 한 달 원고료 40만 원도 많은 액수일 수 있습니다. (제가 한국 소설 시장을 잘 모르기 때문에 대충 저렇게 가정했습니다.) 어쨌든 소설가는 이것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식당 설거지로 50~60만 원을 벌고, 여기에 기본 소득 50만 원을 추가하다면…. 소설가는 한 달에 대략 150만 원을 벌 수 있겠군요. 150만 원이 너무 부족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래도 근근이 먹고 살 수 있는 돈입니다. 소설가가 가정이 없고, 딱히 소비를 많이 하지 않고, 그럭저럭 먹고 살기 원한다면, 150만 원은 나쁘지 않은 생활 비용이라고 봅니다. 물론 최저 임금도 올라가고, 노동 강도와 시간도 줄어들고, 이런 변화가 계속 생긴다면, SF 소설가의 삶은 좀 더 나아질 겁니다.
여기에서 전부 설명할 수 없지만, 기본 소득은 논란이 많은 사항입니다. (좌파적) 기본 소득이 SF 소설가에게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번쯤 생각해볼 사항이라고 여깁니다. 사람들은 사회주의 정책이 굉장히 뜬금없고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크고 작은 사회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나라들은 많습니다. 그리고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반대하겠지만, 기본 소득은 앙드레 고르나 알렉스 캘리니코스 같은 마르크스 계열 인물도 주장한 바 있습니다. 어쩌면 기본 소득은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사전 단계일지 모르고, 우리 눈 앞에 다가온 정책일 수 있습니다. 몇 십 년이 지난다면, 기본 소득은 기본적인 사상으로 자리잡을지 모르죠. 그러면 한국의 SF 소설가도 먹고 살기 위해 아둥바둥하지 않고 좀 더 소설 창작에 전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개인적인 망상일 뿐입니다. 누가 미래를 장담하겠어요. 하지만 사회학자들도 이런 문제를 가볍게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SF 소설가도 이런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겠죠. 다른 작가도 아니고, SF 작가라면 말입니다.
슬프지만... 기본소득 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한 제도를 가진 레x 이라는 회사의 작가들이 올해에 벌인 일을 생각해보면 그냥 이 한마디만 해두고 싶습니다. 덕분에 대한민국에서 작가라는 이름이 굉장히 욕먹는 계기가 되었죠.
"머리 검은 짐승은 믿는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