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누구였는지 안다.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 점에 관해서 거의 확신한다.

 만일 내가 100년이고 200년이고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면, 최소한 한 번은 터트려서 이야기해야 한다.

 그는 나에게 한 마디도 시키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서 말을 가져와야 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도록 해 주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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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라비니아는 알려진 바대로 이탈리아 중부에 있던 고대도시 라티움의 왕 라티누스와 아마타의 딸입니다.

 라티누스와 아기 라우렌스가 죽고 유일한 왕국의 계승자로서 라비니아만이 생존하자,

그의 아버지 라티누스는 라비니아의 배우자를 맞이해 그를 후계자로 지명하거나 양자를 들여야 하는 기로에 이르게 되죠.

라비니아가 으레 한 사내를 위해 잘 여문, 결혼을 위해 이제 혼기가 찬처녀가 되고

르귄은 바로 이 때부터 라비니아의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에 상당 부분의 서사를 할애하기 시작하는데,

이 과정에서 라비니아가 누구를 위한 존재가 아닌 스스로를 위한 삶을 추구하는

주체적이고 진보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게 읽힙니다.

라비니아는 르 귄의 손끝에서 완전히 다시 태어납니다.

<, 계집아이는 집에서 자라 다 큰 여자가 되면 나머지 인생을 유배되어 살아야 하는 거죠?>라고 되묻는 여자가 되었죠.

내가 왜 그래야 하나요? 어떤 사내가 내 아버지의 집보다 더 나은 곳으로 나를 데려갈 수 있겠어요?

 아버지보다 못한 왕과 내가 뭘 하고 싶겠어요?”라고 당돌하게 말하죠.

그러고는 항상 사려 깊은 말투로 상대의 됨됨이를 조심스레 예측해봅니다.

 

그에게 경건함이 있나요?” 라고.

마치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가 경건함인 것처럼요.

 

바로 이러한 라비니아의 시점에서 작품의 토대가 되는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를 다시 읽어나가는 셈인데요,

시에서 아주 짧게 언급되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짓기 위해

원작과 결합해 얼마나 합리적인 상상력을 동원했을지를 가늠해보면,

또 그 공백을 훌륭하게 메워 낸 지면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장르 문학상인 로커스 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보면,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르귄 여사의 저명함과 고전의 심오한 스펙트럼을 느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투르누스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던 라비니아는 <아이네이스>에서 결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등장하는 곳도 많지 않지요.

아이네아스가 라티움의 땅에 상륙하기 바로 전날 라비니아의 머리가 불타올랐던 것이 전쟁을 알리는 예언이었다고 하는 내용부터,

아이네아스가 성을 공격하자 부인들이 성채 위의 신전으로 대피하는 장면인

<라비니아도 고운 눈을 내리깔고 함께 가고 있었다>는 부분,

또 아주 차분한 이미지로 표상되는 장면인 <그녀의 타오르는 두 볼은 눈물에 젖었고,

타는 듯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빛이 얼굴에 퍼졌다>는 부분,

그리고 투르누스가 죽자 비탄에 빠져 자살한 어머니의 소식을 듣고

<맨 먼저 그녀의 딸 라비니아가 손으로 고운 머리를 뜯고 장밋빛 볼을 할퀴었다>는 정도입니다.

르 귄의 <라비니아>에서처럼 중성적이고 감정을 저울질하며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그녀의 모습은 거의 예측하기 힘든 부분이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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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귄 여사는 그녀의 작품 <라비니아>를 두고,

베르길리우스에게 바치는 감사의 행동이며 매정의 헌물이라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처럼 <라비니아>에는 베르길리우스로 표상되는 시인이 작품의 초반부에

상당부분 생령(生靈)의 모습으로 등장하며 라비니아와 영적인 교감을 나눕니다.

알부네아에서 라비니아와 유령 시인이 보낸 세 번의 기묘한 밤들을 통해 라비니아는 주인공으로서

<이야기>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부여받고 서사의 추동력을 확보해 내죠.

결국 그 동력을 부여하던 유령 시인이 끝내 생명을 다해도,

라비니아는 혼자서라도 <이 이야기를 계속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짐하는 모습으로까지 나아갑니다.

 

라비니아, 내가 왜 당신에게 왔는지 알 것 같습니다. 나는 방황하고 있었어요.

내 시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내 영혼을 불러낸 사람이 왜 당신이었을까요?

왜 나의 위대하고 소중한 아이네아스가 아니었을까요?

왜냐하면 내가 그를 이해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고요.

당신은 내 시 속에서 거의 아무 존재도 아닙니다, 거의 하찮은 존재예요. 아직 내버려 둔 장래의 인물이죠.

하지만 그것이 거기에, 부여되지 않았던 활기가 당신 내부에 있습니다.

지금, 마지막에, 너무 늦은 때에, 당신은 나에게 주어야 할 것을 갖고 있군요.

나의 활기를. 내 이탈리아 땅, 로마에 대한 희망, 나의 희망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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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길리우스에 투영해 낸 몰이해에 대한 창조적인 반성, 충분히 활용할만한 상상력의 극대화,

()에 기댄 장대한 서사의 재구성, 끝나지 않는 고전의 위대함 같은 것들을

르귄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마저 듭니다.

한 마디로 철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베르길리우스와의 대화를 통해 라비니아는 아이네아스와 그 자신 스스로에 대해 다시 알고 싶어하는 것처럼,

천천히 중심부의 서사로 다가갑니다. 이 과정은 르귄의 친절함이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다 읽고 나면 이 책 하나로 풍부한 배경지식을 감싸 안는 듯한 충만함까지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단순히 신화와 판타지를 결합한 SF가 아니라,

이야기를 다시 이해하고 관계에서 유대가 작동하는 방식을 함께 고민해보는 소설입니다.

앞서 말했듯, 작품 속에서 베르길리우스가 죽고 나서도 라비니아는 이해와 연대에 대한 희망의 온기를 계속 유지하고자 하죠.

 

비록 시인은 길을 바로 가리켜 주지 않았지만 나는 여기까지 애써 나아왔다.

실수 없이, 그가 말한 것들, 그가 준 단서들로 올바르게 길을 추측했다.

나는 그를 뒤쫓아 미궁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이제 나 홀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삶 속에서는 보다 길고 느릴 터이지만, 이야기하기에는 그렇게 길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라비니아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망설임은 없습니다.

다분히 외면당하고 소외되었던 그녀에게 건강한 생명력을 부여해 준 르귄의 이야기는

이렇게 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제 마음에 아름답게 작동되고 있습니다.

끝나지 않은, 결코 끝나지 않을 우리들의 이야기.

오랜 시간을 돌아온 이 이야기를 저는 무척이나 반갑게 환영합니다.

삶이 계속되면 될수록, 그녀의 경건한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밖에요.

 

 

우리 모두는 불확실한 존재이다. 적개심은 어리석고 옹졸하며, 분노조차 부적당하다.

나는 경외감 속에서 산다.

내가 살아있지 않다면, 그래도 나는 바람을 타는 말없는 날개, 알부네아 숲 속에 형체 없는 목소리이다.

나는 말한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가라, 계속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