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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잠자고 있는 거인을 깨워 전의를 북돋워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64년 전인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태평양 저 멀리를 바라보며 이렇게 회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일본 제국을 자처하며 뽐내던 그들  같은 시간. 그곳에서 수천km 떨어진 미국령의 한 섬에서는 화약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수많은 불길과 강철의 잔해 너머로 처참한 참상이 펼쳐져 있었다. 일방적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처참한 전투의 결과로서... 그것은 그 누가 보아도 패망의 조짐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 장면이었지만, 당시 그 공격 작전을 시도한 나라에서 유일하게 전략적 식견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은 이것이 결코 그들의 성공이 아니라고 깨닫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던 듯, 그로부터 4년도 채 지나기 전에 "비겁한 기습 공격을 감행했던 악당 국가"는 전면적인 항복을 선언하고 무너졌다. 바로, 그들 자신이 일으켜 세워 전의마저 북돋워준 "거인"의 손에 의하여...

  그렇게, 한때 아시아 일대를 장악하며 패권국가임을 자부하던 대일본제국.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영원하리라 선언했던 그 국가의 몰락. 그것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기습 작전의 하나로 손꼽히는 전투, 암호명 "니가타산 등반"에서 비롯되었다.

(* 12월 7일이라 하고 있지만, 하와이 서쪽에선 8일. 여기서는 공격당한 미국의 입장에서 7일로 표기하고 있다.)


니카타산 등반을 준비하라!

  1941년. 제국주의 일본은 큰 어려움에 처하고 있었다. 1941년 6월 독-소 개전 이래 일본은 동맹군인 독일에 편승하는 형태로 네델란드와의 경제 단절을 선언하고, 7월에는 당시 독일의 점령하에 있던 프랑스와의 공동 방위 협정으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남부에 진주하였다.
일본의 주축국 동맹 가담. 그리고 그들은 고립되기 시작했다.
[ 일본의 주축국 동맹 가담. 그리고 그들은 고립되기 시작했다. (c) 21세기폭스 ]


  중국에 대한 침공에 이어 지속되는 일본의 행보에 대해 연합군과 이에 동조하고 있던 미국, 캐나다 등은 자국 내의 일본 자산을 동결, 8월에는 일본의 목줄이라 할 수 있는 석유에 대한 금수 조치에 나서는 등 사태는 점차 치명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어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 만만하던 진격과는 달리, 독-소전에 큰 진전이 없었기에, 일본은 북만주에 집결시킨 대 소련용 병력의 진격을 단념할 수 밖에 없었다.

  섬나라인 그들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자원이었다. 철광이나 석탄 등은 가까운 식민령 조선이나 만주에서 강제 징발로서 메우고 있었지만, 전쟁 수행 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 있어 절실하게 필요한 석유(그리고 주석, 고무 등의 자원과 전략적 중요지)의 확보를 위해서는 그들이 "남방 자원 구역"이라 지칭한 네델란드령 인도네시아 지역 일대를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그들의 진군에 장해가 배제될 필요가 있었다. 네델란드 따위는 거들떠도 보지 않은 그들이었지만, 그들 앞에는 태평양 일대에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방해물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태평양 건너편에서 강대한 국력을 키워나가고 있던 신흥국. 미국이라는 존재가...

 강경파 전범들의 득세.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 강경파 전범들의 득세.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c) 21세기폭스 ]

  중국에서 물러날 것인가? 아니면 남부 자원 지대로 진출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당시 고위층들은 수많은 논의를 거듭했고 결국 그들의 전략을 결정했다. 그리고, 어떤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그들의 전략은 매우 명쾌하고도 한편으로 자기 본위적이었다.

  “독일군이 진격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루즈벨트의 관심은 유럽에만 머물러 있는 상황. 게다가 영국 등은 동남아에서 물러나는 상황. 그렇다면 지금이야 말로 동남아로 진격할 때다. 미국은 결코 나서지 않을 것이며, 설사 나선다 해도 태평양 반대편에 있는 한 큰 위협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당시 일본의 기본적인 견해였고 특히 만주 지역 제압으로 기세등등하던 육군 지배하의 정계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57세의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그의 계획으로 세기의 기습전이 준비된다.
57세의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그의 계획으로 세기의 기습전이 준비된다.
[ 57세의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그의 계획으로 세기의 기습전이 준비된다.
(c) 21세기폭스/내셔널지오그래픽 ]


  하지만, 불과 2년 전 권력계에서 밀려나듯 연합함대 사령장관으로 취임한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버드에서 수학하고 주미대사관 시절의 경험으로 미국과 미국인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던 그들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만일 미국과 전쟁을 하게 된다면 가능한 강력한 힘으로 미군 함대를 박살내는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태평양 함대를 전멸시키기 위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1941년 봄 비밀리에 이 작전을 수립한 그는 촉망받는 조종사 중 하나인 미노루 겐다에게 기습 작전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속칭 천재 파일럿, 미노루 겐다. 그의 계획으로 진주만 침공은 다듬어져 갔다.
[ 속칭 천재 파일럿, 미노루 겐다. 그의 계획으로 진주만 침공은 다듬어져 갔다. (c) 내셔널지오그래픽 ]

  “펜실베니아까지 진격해 들어가더라도 미국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말하곤 했던 그는, 당시 일본 군 내에서 가장 합리적 판단력을 갖고 있는 인물로서 미국과 대결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지만, 싸울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에 이처럼 일찌감치 철저한 준비 태세를 갖춘 것이다.

야마모토 제독은 해군 내에서 깊은 신뢰를 얻게 되었다.
[ 야마모토 제독은 해군 내에서 깊은 신뢰를 얻게 되었다.
(c) 21세기폭스 ]

진주만... 작전 계획은 장기간에 걸쳐 검토되었다.
[ 작전 계획은 장기간에 걸쳐 검토되었다. (c)부에나비스타 ]

  그리고 미노루는 제독의 기대에 부족함없는 계획을 수립했다. 바로 공중 폭격과 어뢰를 사용한 공격으로 기습한다는 제안을 했다.

  1차 대전 당시의 거함거포주의에 물들어 있던 대다수 해군 장교들은 '양철쪼가리'에 불과한 항공기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지만, 항공 전대 사령관, 항공 본부 기술 부장을 거쳐 성장한 야마모토 제독, 그리고 천재 파일럿 겐다는 가장 탁월한 선택이라는데 이견을 갖지 않았다. 진주만의 바다는 얕아서 어뢰를 쓸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에 대해서는 불과 1년 전(40년 11월) 영국의 뇌격기에 의한 타란트항 공격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기에 문제는 없었다.(하지만, 당시 미군의 해군 정보부에서는 진주만의 깊이가 40피트(약 12m)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뇌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수천km를 지나 하와이의 태평양 함대 사령부를 두들겨 부순다는 암호명 "도라도라도라!" 작전이 계획된 것이다.


외교로부터 시작된 준비

  당초 일본으로서는 우선 교섭을 통하여 상황을 타개하고자 했다. 우선적인 협상 목표는 역시 석유의 공급. 그러나, 주축국으로서 대결 무드에 들어간 상황에서 교섭은 결코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11월 6일 어전 회의에서 일본은 미국, 영국, 네델란드에 대해 전쟁을 결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미국을 속이기 위해 그들은 11월 29일까지 협상을 계속한다는 지령을 내렸다.

  이들의 주목적은 “남부 자원 구역”. 바로 네델란드령의 인도네시아였다. 석유를 비롯한 막대한 자원의 보고이기도 한 이곳을 제압하는 것은 대동아 동맹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고, 무엇보다도 일본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

연합함대 작전 회의. 여기서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 연합함대 작전 회의.
(c) 21세기폭스 ]

북쪽으로 선회하여 진공. 최적의 기습을 위한 조건이었다.
[ 북쪽으로 선회하여 진공. 최적의 기습을 위한 조건이었다. (c) 내셔널지오그래픽 ]

  그리하여,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발안한 -미해군의 개입을 막기 위한- 하와이 원정 계획이 최종적으로 확정되고 일본은 전쟁 태세에 돌입했다.

당시 미국은 암호 해독에서 몇 발 앞서고 있었다.
[
당시 미국은 암호 해독에서 몇 발 앞서고 있었다. (c) 21세기폭스 ]

  한편,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에 대하여 미국은 일본과 미국 사이를 오가는 암호문을 해독함으로서 전쟁 가능성을 차츰 깨닫기 시작했다. 마술 작전이라 이름 붙여진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들은 일본 대사관보다도 빨리 해독하는 능력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그들은 일본의 결정을 먼저 알게 되었고, 11월 30일 침공해 올 것이라 판단했다.

타격대 지휘관 후치타. 당시 일본 해군조종사들은 사기가 넘치고 있었다.
[ 타격대 지휘관 후치타. 당시 일본 해군조종사들은 사기가 넘치고 있었다.
(c) 21세기폭스 ]

  그러한 상황은 모른채(아니 어떤 면에서는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일본 연합함대의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반면, 목표인 진주만에서는 -일부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가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사병들은 이 아름다운 해변에서 그야말로 휴가를 온 듯이 놀러 다녔고, 지휘관은 폭격보다는 일본인들(당시 13만)에 의해 사보타주를 더 걱정하여 부대를 집결시켜 두었다. 모처럼 새 레이더를 도입했음에도 ‘국립 공원’ 측의 허가를 받지 못하고 야생동식물보호협회의 반대에 부딪쳐서 결국 한참 뒤에야 설치되었을 정도.(그것도 최적지라 할 수 없는 장소였고 제대로 훈련된 인원도 충분하지 않았으며 초기엔 전화조차 준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4~7시. 정확히 3시간만 작동되었다.)

그리하여 진주만 공급이 결정되었다.
[ 그리하여 진주만 공급이 결정되었다. (c) 21세기폭스 ]

사보타지에 대비하여 비행기를 밀집시키는 미군. 이 결정은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 사보타지에 대비하여 비행기를 밀집시키는 미군. 이 결정은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c) 21세기폭스 ]

  날짜가 다가오면서 미군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리라는 것을 점차 확신하게 되었지만, 그들의 공격 목표가 어딘지에 대해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일본이 인도차이나로 진격한 이상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태국 등이 공격 범위에 들어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신경 써야 할 지역은 너무도 넓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의견 중에도 진주만을 노린다는 의견은 없었고, 소수의 의견은 묵시되는 가운데 각 지역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도 진주만은 무시되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진주만이 공격 지점이라는 것은
[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진주만이 공격 지점이라는 것은.. (c) 부에나비스타 ]

진주만의 장성들. 하지만 진주만에 대한 경고는 없었다.
[ 진주만의 장성들. 하지만 진주만에 대한 경고는 없었다.
(c) 21세기폭스 ]

  더욱이 사령부에서는 일본의 침공 가능성을 예측한 상황에서도 ‘시민을 놀라게 하지 않고 의도를 감추기 위하여’ 그들이 먼저 행동을 취하지 않고 일본의 행동을 기다리기를 기다리도록 명했다.


연합 함대의 출격

폭풍의 도래... 날씨조차 그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 폭풍의 도래... 날씨조차 그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c) 21세기폭스 ]

  그리하여 11월 26일 시시마의 히타코푸만에서 나구모 제독이 이끄는 6척 항모가 일본을 떠났다.

  “니가타 산을 올라라.” 12월 1일. 태평양 한가운데서 그들에게 내려온 전문. 그리하여 전쟁은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공격 일자는 12월 7일. 더 이상 후퇴는 있을 수 없었다.

  12월 3일. 동경 170도 지점에서 해상 급유를 받은 그들은 나쁜 날씨와 안개의 도움을 받아 일본 어선 1척을 제외한 어떤 존재도 만나지 않고 무사히 전진, 7일 새벽 북방275해리, 북위 26도, 서경 158도의 비행 발진점에 도착했다. 자그마치 5000km이상의 거리를 지나 완벽한 기습 태세에 돌입한 것이다.

드높은 사기. 농담을 할 만큼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 드높은 사기... 농담을 할 만큼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c) 21세기폭스 ]


* 역사의 갈림길? 7일 3시 40분

오하우 남쪽에 포진한 잠수정. 그러나 그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 오하우 남쪽에 포진한 잠수정. 그러나 그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c) 내셔널지오그래픽 ]

  앞서 말한 것처럼 이 공습은 완벽하기 이를데 없는 것이었지만, 사실 마지막 순간에 그 작전이 틀어질 우려가 있었다. 때문에, 기동 함대는 공격 전의 어떤 시점에서든 적에게 들키면 후퇴하도록 명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날씨와 운의 도움으로 목표에 정확히 도착할 수 있었던 기동 함대와는 달리, 정찰 및 지원 공격을 위해 출격했던 잠수함 부대는 그다지 운이 좋지 않았다. 30척의 이호 잠수함 중 5척에 실려 있던 소형의 특수 잠항정, 진주만으로 잠입하던 그들 중 하나가 7일 3:40 미해군 소해정 콘들에게 발견되고 구축함 워드의 폭뢰 공격을 받은 것이다.(후일, 탐험가에 의해 조사되긴 했지만 그 종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적 잠수함 출현” 이것은 진주만 전역에 비상을 걸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지만, 그들의 보고는 복잡한 체제 속에(무엇보다 구축함 함장이 초짜라는 이유로) 6시 40분이 되어서야 본부에 전달되었고, 결국 이는 기습을 막는데 큰 도움을 주지 않았다.

카미카제를 연상시키는 소형 잠수정. 하지만 별 활약을 하지 못했다.
[
카미카제를 연상시키는 소형 잠수정. 하지만 별 활약을 하지 못했다. ]

  그렇다면, 나머지 4척의 잠수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그들은 적의 공격으로 파괴되고 마지막 1척 마저도 해류에 밀려 나포되지만, 진주만의 수많은 사진 중, 잠수정에서 발사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어뢰의 흔적을 통해서 그들이 무용으로 끝나지만은 않았으리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 이것은 가능한 모든 것을 동원하고자 한 야마모토의 노고에서 나온 것이지만, 이 선택은 그다지 옳았다고 할 수 없다. 운이 좋지 않았다면 이로서 작전은 실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12월 6일 일본은 마지막 통첩을 위한 전문을 발송했다. 13개 항을 먼저 발송하고 14항은 남겨둔 채로...(그러나 이런 조치로 인해 대사관 측의 작업이 늦어졌고, 결국 선전포고는 공격 후에야 전달될 수 있었다.)

토요일 저녁. 사람들은 흥겹게 놀고 있었다. 그들의 노래 소리를 적군이 듣고 있다는 것을 모른채
[토요일 저녁. 사람들은 흥겹게 놀고 있었다. 그들의 노래 소리를 적군이 듣고 있다는 것을 모른채.
(c) 21세기폭스 ]

  한편 그 무렵 미국 정보부에서는 일본에서 남쪽으로 출격시킨 수송함의 종적을 추적하고 일본의 침공이 임박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주말인데다 늦은 시간, 모처럼의 정보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결정은 늦어지고 만다.

  진주만에서는 모처럼의 토요일 주말을 맞이하여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최종 선언. 등반이 시작되었다.
[ 최종 선언. 등반이 시작되었다.
(c) 21세기폭스 ]

  그리고 7일 6:00. 좋지 않은 날씨 속에서도 항공기는 출격했다. 러일전쟁 당시 동해 해전에서 도고 제독이 계양했던 역사적인 Z 신호기를 뒤로 하고...

일본군의 출격. 지금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일본군의 출격. 지금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일본군의 출격. 지금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c) 부에나비스타 ]



도라! 도라! 도라!

진주만의 포진. 운이 좋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 진주만의 포진. 운이 좋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c) 내셔널 지오그래픽 ]

  1차 부대는 전투기 43대, 뇌격기 40대, 급강하 폭격기 51대, 대형 폭격기 41대.

  한편, 아침 4시부터 작동을 시작한 진주만의 레이더는 그들을 향해 접근하는 대량의 항공기들을 발견했지만, 경험이 부족한 판독관은 이를 잘못 생각했고 상관은 B17 편대라 생각하고 무시함으로서 마지막 경고의 가능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B17 편대의 접근. 이로 인해 마지막 가능성도 사라져 버렸다.
[ B17 편대의 접근. 이로 인해 마지막 가능성도 사라져 버렸다. (c) 21세기폭스]

  그리고, 워싱턴의 아침. 일본의 14번째 전문이 도달했다. 12월 7일 정확히 1시. 전문. 다시 말해 선전 포고를 전달하라는 메시지가...(그러나, 여러 문제로 인해 마지막 전문은 11시에야 도착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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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내각에서는 정상 회담에 대한 제안을 묵살했다.
(c) 21세기폭스 ]

  일요일 아침. 평소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워싱턴에서 정보부만이 빠르게 움직이며 정보를 쏟아내었다. 일본이 전쟁을 벌인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각지에 정보가 전달되었지만, 날씨가 좋지 않았기에 하와이에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으며, 결국 진주만의 상황이 끝난 이후에야 전보로서 도달되었다.

도라!도라!도라! 기습은 완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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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도라!도라! 기습은 완전 성공했다. (c) 부에나 비스타 ]

  그리고 7시 50분. 짙은 구름으로 고생하면서도 일본의 항공기들은 하와이 상공에 도착했다.(마침 진주만에서는 그곳으로 향하던 B17을 유도하기 위해 방송을 밤새 틀어주고 있었는데, 짙은 구름으로 목표를 찾기 어려웠던 일본군에 있어 그것이 등대와도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는 설도 있다.)

  때맞추어 맑은 날씨가 그들을 맞이했고, 조용한 진주만에 폭음이 울려퍼졌다. 8시를 맞이하여 국기 계양식과 군악단의 연주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폭탄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뒤늦게 선원들과 장교들이 이리저리 뛰기 시작하고 폭탄과 어뢰가 수없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소총 한발 발사되지 않는 황당한 상황.

아군기인줄 알고 경례를 붙이는 가운데, 폭격은 시작되고...
[ 아군기인줄 알고 경례를 붙이는 가운데, 폭격은 시작되고...
(c) 21세기폭스 ]

수라장 속에...
[ 수라장 속에... (c) 부에나 비스타 ]

뇌격기. 그 시선의 끝에 전함이 보인다.
[ 뇌격기. 그 시선의 끝에 전함이 보인다. (c) 부에나 비스타 ]

  당시 생존자의 표현대로 ‘돌을 던지면 맞을 정도로 낮게 날아다니는’ 일본 항공기의 공습에서 수분, 주력함 대부분은 이미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었고, 그 무렵, 하와이의 비행장에서는 급강하 폭격기와 전투기의 공습으로 처참한 피해를 맛보고 있었다. 사보타지를 예상하여 밀집되어 있던 항공기들은 한 대도 출격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전투기의 참상. 뒤늦게 이륙하려는 전투기는 그대로 가라앉았다.
[ 전투기의 참상. 뒤늦게 이륙하려는 전투기는 그대로 가라앉았다.
(c) 21세기폭스 ]

  1차 공격대가 거의 공격을 끝낼 무렵에서야 비로소 대공포대가 활동을 시작하지만, 제1차 공격대는 전투기 3기, 뇌격기 5기, 급강하 폭격기 1기라는 매우 경미한 피해를 보았을 뿐 아무런 문제없이 이탈했다.
(공격 와중에 툴랜드 대령이 이끄는 B17 편대가 진주만에 도착했지만, 연료도 무기도 없는 채 공격당하고 불과 일부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식사 도중에야 소식을 들은 조종사들. 이미 진주만은 화염에 물들어 있었다.
[ 식사 도중에야 소식을 들은 조종사들. 이미 진주만은 화염에 물들어 있었다.
(c) 21세기폭스 ]

웨스트버지니아의 취사병, 도리 밀러. 훈련조차 못 받은 그가 선장을 구하고 기관총으로 적기를 2대나 격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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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버지니아의 취사병, 도리 밀러. 훈련조차 못 받은 그가 선장을 구하고 기관총으로 적기를 2대나 격추시켰다. (c) 내셔널 지오그래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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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하는 애리조나. 순식간에 기울어져 가라앉았고 그대로 관이 되었다. (c) 부에나비스타 ]

제 2차 공격 경로. 그러나 미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 제 2차 공격 경로. 그러나 미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c) 내셔널 지오그래픽 ]

  8시15분. 2차 공격대가 진주만에 들어섰을때 4척의 전함이 가라앉고 있었고, 3척은 파손된 상황이었다. 2차 공격대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캘리포니아에 쇄도하는 가운데, 전투기와 폭격기들은 살아남은 미군기의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1차 공격대가 물러난 후 겨우 출격하여 대기하고 있던 P-40 2대의 반격으로 수대의 급강하 폭격기가 격추되었다.(영화 <진주만>, <토라!토라!토라!> 등에서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주역들의 활약은 바로 이기들을 모델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활약도 잠시, 호위를 맡고 있던 제로기가 돌입하여 벌어진 공중전에서 -영화와는 달리- 이들은 모두 격추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용감한 조종사. 하지만, 실제로는 둘다 살아남지 못했다.
[ 용감한 조종사. 하지만, 실제로는 둘다 살아남지 못했다.
(c) 21세기폭스 ]

  일본군은 수로를 향해 나아가고 있던 전함 네바다에 공격을 집중시켰다. 만일 이 함이 수로 한가운데서 침몰한다면 항구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선장의 침착한 지휘 아래 네바다는 결국 호스피탈 포인트라는 지점으로 대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10:00 일본군은 드디어 항모로 돌아갔다.

  제 2차 공격대가 돌아설 무렵. 진주만에는 목표라 할 것이 남아 있지 못했다. 제 2차 공격대는 대공포화와 소수의 전투기에 의해 전투기 6기, 급강하 폭격기 14기를 잃었지만 역시 피해는 경미했고, 나구모 제독은 3차 공격을 진언하는 장교들의 의견을 거절하고 재빨리 침로를 돌려 벗어났다.

  이는 항모라는 1차 목표를 발견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함대에 대한 반격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취할 수 있었던 최적의 전술적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파괴할 수도 있었던 연료 탱크를 파괴하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항구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던 항모를 찾아 격침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공격이라 할 수 있을까?


잠자는 거인의 포효

  "선전 포고 직후 미국 함대 및 그 기지를 철저하게 때려 부숨으로서 그들의 전의를 소실시킨다."

  그것이 바로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전략이었으며, 당시 연합 함대의 기본 방침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기본 생각은 암호가 노출됨으로서 이미 미국에 알려져 있었고, 반면 지나치게 보안에 신경 쓴 나머지 마지막 문서의 전달을 늦춤으로서-무엇보다도 암호문 해독기의 개발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에- 선전 포고 문서가 늦게 전달되고 마는 황당한 사고로 인하여 그의 과감한 작전은 깨어져 버렸다.

  결국, 일본으로서는 철저한 대비와 수많은 행운에 힘입어 거의 완벽한 기습을 성공시켰지만, 이는 불법 침공으로 인식되어 미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옴으로서 전의를 소멸시키겠다는 중대한 목표를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외교 상의 실수. 이것이 완벽한 작전의 오점으로 남았다.
[ 외교 상의 실수. 이것이 완벽한 작전의 오점으로 남았다.
(c) 21세기폭스 ]

승전을 기뻐하는 병사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 승전을 기뻐하는 병사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c) 21세기폭스 ]

  이 작전으로 인하여 미국은 태평양 함대의 상당 부분을 손실하고 좌초된 함선으로 인해 항구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만, 침몰한 애리조나에 의해 파이프가 끊긴 상태에서도 최선을 다했던 수많은 소방사들의 희생적인 노력 끝에 연료 탱크를 보호하여 섬이 통째로 날아가 버리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더욱이, 당시 순찰 중이던 항모 3척은 손상을 입지 않았기에 후일 미드웨이 해전이라는 대승으로 역전의 가능성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미드웨이 해전은 무엇보다도 일본의 암호를 완전히 해체함으로서 얻은 정보의 승리였는데, 같은 이유로 암호가 누설되어 행방이 드러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 역시 1943년 4월 18일. 솔로몬 상공에서 암살되고 말았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이 할 일을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결국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는 사례라고 할까?

  하지만, 아무리 일본에 운이 따라주었다고 해도 해전에서의 항공기의 가능성을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과 철저한 준비가 없었다면 진주만 공습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며, 한편, 아무리 미군에 운이 따라도 막대한 생산력과 암호를 통한 정보 확보의 이점을 얻을 수 없었다면 미군은 결코 태평양 해전을 승리로 끝맺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언뜻 운이 따르는 듯 보이는 그 상황에서도 결국 운이 아닌 노력과 진보된 능력이 모든 것을 가늠한다는 것을 이 전투는 진정으로 보여주고 있다.


* 도쿄폭격대
두리틀 폭격대. 실질적인 편도편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다.
[ 두리틀 폭격대. 실질적인 편도편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다. (c) 부에나 비스타 ]

  이렇듯 완벽하게 치르어진 작전에 대해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즉각적으로 일본에 반격을 할 것을 명했다. 그리하여 항모에서 B-17 폭격기를 출격시켜 도쿄를 폭격한다는(그리고 귀환하지 않고 중국에 불시착한다는) 너무도 황당 무개한 전술이 세워진 것이다.

  그리하여 1942년 4월 2일. 두리틀 대령의 지휘 아래 그 작전이 시행되었다. 전략적으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이 작전. 그러나, 언뜻 불가능으로 여겨지던 이 작전은 피해 자체는 거의 없었지만, 일본에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결국 전략적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했다.



영상으로 즐기는 진주만

[ 격전의 현장을 충실하게 재현한다. ]
[ 격전의 현장을 충실하게 재현한다.
(c) 부에나 비스타 ]

  진주만에 대한 영상이라면 역시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한 동명의 작품, <진주만(Pearl Harbor)>를 손꼽을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은 한편으로 진주만에서의 기습 그 자체의 영상, 그리고 주역 두 사람의 억지 드라마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측면이 있다.

  더군다나 일본 측의 준비나 진행 과정 등이 거의 묘사되지 않기 때문에 이른바 객관적으로 진주만 전역을 바라보기에는 어렵다고 할까? 대서양 상공의 공중전이나, 진주만 전투 등은 2차대전 팬으로서 놓칠 수 없는 장면이지만, 세 주역의 우정이나 로맨스 등은 어설픈 느낌이 강하고 무엇보다도 초반을 지루하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

질서있고 엄숙하기 이를데 없는 일본군. <도라도라도라 />는 당시 연합 함대의 위용을 충실히 보여준다.
[ 질서있고 엄숙하기 이를데 없는 일본군. <도라도라도라>는 당시 연합 함대의 위용을 충실히 보여준다.
(c) 21세기폭스 ]

2차대전으로 점프 아웃. 더 파이널 카운트 다운.  그런 면에서 35년 전(1970년)에 20세기 폭스사에서 만든 영화 <도라!도라!도라!>는 -비록 3D 영상이 없다는 면에서 눈앞에서 폭탄이 터치는 박력을 느낄 수는 없지만- 야마모토 제독의 연합함대 사령장관 취임을 시작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결국 야마모토의 독백으로 마감한다는 점에서 진주만에 비해 보다 공정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다큐멘터리를 보듯 하나하나의 사건을 충실히 느낄 수 있게 해 준다.(개전 당시 일본 연합 함대의 질서정연한 모습과 미군의 들뜬 모습을 비교해 보면, 진주만 작전의 성공 원인을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다고 할지? ^^)

  진주만 전투의 전모를 보다 명확하게 보고자 한다면, <도라!도라!도라!> 쪽이 보다 충실하다고 할까? CG로는 느낄 수 없는 묘미 역시 하나의 특성.(다만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그만큼 흥미가 떨어진다는 것은 아쉽다.)

  그 밖에도 진주만 전투는 여러 작품에서 묘사되곤 했는데, 국내의 TV에서도 방송했던 <사랑과 전쟁>이라는 전쟁 드라마에서도 부분적이나마 이 상황을 느낄 수 있다.(단, <사랑과 전쟁>은 영화로는 그다지 그려지지 않은 미드웨이 쪽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2차 대전을 전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특히 유태인 학살 등))

  조금 다르지만, SF영화 <파이널 카운트 다운>에서는 갑자기 시공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니미츠급 원자력 항모가 당시의 하와이 근해에 도착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나구모 제독의 연합 함대를 발견하고 역사를 바꾸는가, 마는가 하는 상황에서 다시 현대로 돌아온다는 어찌 생각하면 상당히 유쾌한 작품이라 할까?(중간에 잠깐 펼쳐지는 제로기와 F-14의 대결부터가 재미있다.)


게임으로 즐기는 태평양 해전

국내에서도 발매되었던 1942. 미드웨이를 중심으로 한 수많은 공중전이 펼쳐진다.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바다에서 항모를 주역으로 항공기에 의한 대결이 중심이 된 태평양 해전. 무엇보다도 미국이 참전했던-그리고 당연히 승리했던- 가장 중요한 전쟁 중의 하나. 그런 태평양 해전은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게임 작품으로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94년 시뮬레이션 게임의 명가, 마이크로 프로즈에서 발매한 <1942:태평양 공중전(The Pacific Air War)>을 주축으로 한 비행 시뮬레이션들.

  공중전 만이 아니라 전략 모드로서 즐길 수 있는 이 게임을 시작으로 수많은 비행 시뮬레이션들이 2차 대전의 공중전.
  특히 와일드캣이나 헬캣과 제로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데, 진주만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면, 놀랍게도 액티비전, 위저드웍스, 사이몬&슈스터 등의 회사에서 나온 "액션(슈팅?)" 게임 뿐.(아무래도 일방적으로 당해 버린 진주만 전투를 비행 시뮬로 낼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즉, 미군 병사의 입장에서 공격해오는 일본군 공격기나 뇌격기를 격추시키는 포슈팅(^^) 게임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공중전이 아닌 해전 그 자체를 즐기고 싶다면, SSI에서 발매되었던 <위대한 해전(Great Naval Battle> 시리즈도 있다.

SSI의 위대한 해전. 함대전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 SSI의 위대한 해전. 함대전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

  총 4개의 시리즈가 발매된 이 작품(동서게임채널을 통해 국내에도 전부 출시되었는데, 특히 1,2편은 플로피로 되어 있고 그 케이스가 왠만한 가방보다 크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에서 플레이어는 소형의 구축함에서부터 항모에 이르는 다양한 함선들을 지휘하며 전술, 혹은 전략 시나리오를 체험할 수 있는데 전함끼리의 포격전에서 항공기를 이용한 뇌격전까지 다채로운 전투를 즐길 수 있다.
(프린스오브웨일즈 같은 전함으로 야마토나 비스마르크와 대결하면 도대체 거함거포주의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전함이 얼마나 튼튼한지-를 느낄 수 있다. 그야말로 서로 수백발의 포탄을 날려 포탄이 다 떨어졌음에도 상대가 건재할 때 한숨 밖에는 안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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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비 필드. 현재도 인기리에 서비스 중이다. ]
[ 강철의 포효.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게 아쉬울까? ]

제독의 결단. 역시 우리에겐 이게 익숙할까?  물론, 함대전으로 보자면 현재 서비스 중인 온라인 게임 <네이비 필드> 역시 빼놓을 수는 없겠지만, 액션성으로는 <삼국지> 시리즈로 잘 알려진 KOEI의 <강철의 포효> 역시 나쁘지 않다. "해상 전투 액션"을 내세우는 이 작품은 박력 넘치는 전투라는 측면에서 묘미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태평양 해전 전체를 전략적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헥스 스타일로 구성되는 미국의 전략 게임 <태평양에서의 전쟁(War in the Pacific)> 같은 작품도 있다. 하지만 역시 국내 게이머들에게 익숙한 건 -역사 왜곡이니 뭐니 말이 많지만- <삼국지>시리즈와 조금 통하는 면이 있는 KOEI사의 <제독의 결단>이 아닐까? 현재 4편까지 나와 있는데, KOEI팬이 많은 만큼 국내에서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작품.

  그렇다면, 보병의 입장에서 체험할 수는 없을까? 태평양 전쟁의 육상전은 정말로 끔찍한 것이었지만(죽창 부대가 등장하지 않나, 집단 할복에 투신이 비일비재하고...) 그래도 즐기고 싶다면 <메달 오브 아너:라이징선(Rising Sun)>을 플레이하면 된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 병사로서 얼마든지 싸울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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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