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의 말이 끝나자마자 십자가의 한쪽 끝이 길게 늘어났다. 어느새 두 개의 십자가는 두 개의 검으로 바뀌었다. 릴은 두 검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고개를 젓고는 두 검을 지면에 박았다. 가늘고 긴 검은 무언가를 베거나 찌르기에는 너무 약해 보였지만, 젤리라도 찌르듯이 가볍게 아스팔트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릴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검에 뚫린 구멍에 손가락을 걸고서는 방아쇠를 당기듯 부드럽게 당겼다.



아스팔트가 빨려들듯 검 속으로 사라져 간다. 릴의 옆에 있던 벽도 빨대에 빨려 먹힌 것처럼 쪼그라들기 시작한다. 공중전화가 찌그러들어 빨간 지붕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주변의 물질이 검에 먹혀들어가고 있다. 주변 물질이 먹혀들어가는 한편, 릴이 꽂은 검은 그 형상이 변해가고 있었다.



검의 외피처럼 하얀 물질이 실처럼 뿜어져 나와 릴을 감싼다. 마치 커다란 벌레 고치처럼 둥근 모양에서 붉은 사지가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가, 머리가, 체리처럼 붉은 몸뚱이가 움푹 들어간 땅을 짚고 일어섰다. 달콤하고 녹아 흐를듯한 향기가 공간을 메운다. 마침내 붉은 거인이 일어서자 거인의 몸에 난 구멍에서 처음에 나온 것과 같은 하얀 물질은 어느새 갑옷으로 변해 붉은 몸을 둘러쌓았다.



준비해 프라가 나하. 날아오를 거야.”



고치 안에서 검을 꽂은 자세로 계속 서 있던 릴은 마침내 고치 바닥에 꽂혀있던 검을 뽑았다. 릴의 검은 순식간에 칼날이 줄어들어 원래의 십자가로 변한 뒤였다. 릴은 십자가를 인형을 다루듯 들어올린 뒤 심호흡을 했다. 바닷새처럼 하얀 날개가 펼쳐졌다. 하얀 인공수는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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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려온 하얀 인공수를 본 인물들의 반응은 다 달랐다. 청소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쫄쫄이들은 격렬하고도 포근한 발작 상태로 되돌아갔다. 꼬맹이는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는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비즈는 살며시 웃었다.



뾰족한 새 부리 같은 형상을 한 머리는 검은 거미를 향하고 있다. 얼굴이라고 할 것이 존재하지 않아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 도리가 없었지만 그 인공수가 사람이었다면 분명히 음울한 표정을 하고 있을 것 같다. 하얀 인공수는 기묘하게 점잔을 빼는 걸음걸이로 건물 사이에서 사뿐 하게 걸어 나왔다. 하얀 외피나 군데군데 드러난 붉은색 본체 모두 더러운 곳 하나 없이 깨끗. 굳이 이 인공수를 새에 비견한다면 매보다는 두루미 쪽에 가까워 보일 만큼 무심하고 해가 없어 보인다.

 

늦었어. .”

 

비즈가 조용히 웃었다. 인공수의 손에 잡힌 채로도 비즈의 미소는 한 조각도 사라지지 않았다. 인공수의 외피는 마치 옷자락처럼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다. 커다랗고 검은 덩어리 사이에 나타난 불청객의 모습은 이질적이기 그지없. 하얀 인공수는 마치 커다란 트레일러 운전사로 가득 찬 땀 냄새 나는 고속도로 휴게실에 턱시도 차림으로 걸어들어온 젊은이처럼 어색해 보인다.



, 도련님아 저거 뭐임? 저거 설마 진짜 청소부 인공수임?”



도련님이 미치광이 난사광을 잡아내자 간신히 안심한 검은 쫄쫄이들은 난데없는 하얀 인공수의 출현에 기겁했다. 사람 하나가 그 정도로 난리를 피웠는데 인공수라니. 인공수라니!



, 저거! 저 인공수 저번에 은행에서 나왔던 그거 아니냐능?!”

, 우왕ㅠ끝장ㅠ”

그냥 청소부도 저렇게 센 데 인공수는 얼마나 강하겠냐능... 끝장이라능...(!)”



하얀 인공수를 알아본 쫄쫄이 하나가 무전기에 소리치자 쫄쫄이들은 다시 비즈가 잡히기 전의 공황상태로 돌아갔다. 모두가 이 하얀 인공수가 검은 코뿔소의 태클을 한 손으로 막아내는 모습을 뉴스로 지켜봤던 것이다. 다시 한 번 포근하고 아늑한 패닉 상태로 귀환한 쫄쫄이들은 재빨리 굳게 맺은 진형을 풀고 언제라도 총알같이 도망칠 수 있도록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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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인공수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검은 코뿔소들도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하얀 인공수는 검은 거미는커녕 검은 코뿔소에 비해서도 왜소해 보여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테러리스트 일당은 단지 두려웠을 뿐이었지만, 이들이 조종하는 인공수들은 본능적으로 다른 무언가를 느끼는 중이었다. 검은 인공수들은 마치 포식자를 만난 것처럼 필사적으로 도망칠 기회만 노리고 있다. 불행히도 뒤에서 자폭버튼에 손을 올려놓은 누구 때문에 그 주인에게는 도망갈 곳도 없었지만.



빨리 안가면 자폭버튼 누를 거임.”

, 우와아아아앙!”



검은 코뿔소들이 등 뒤에서 느껴지는 공포에 못 이겨 하얀 인공수에게 달려들었다. 개중 용감하게도 가장 앞장선, 아니, 도망치는 게 느려서 결국 가장 앞에서 달리게 된 검은 코뿔소가 하얀 인공수를 덮친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음 순간에 등장할 장면은 하얀 인공수와 검은 인공수가 같이 나뒹구는 장면이어야 했지만, 하얀 인공수는 여전히 삐딱하게 서 있고 검은 코뿔소만 저 멀리서 뒹굴고 있다. 하얀 실루엣과 검은 실루엣이 스쳐 지나가자 남은 것은 반 토막 난 검은 덩어리 두 개뿐이다.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엉덩이까지 깔끔한 호를 남겼다. 절개되어 꿈틀대는 검은 색 덩어리에서 조종사가 기어 나온다. 하얀 인공수의 왼쪽 어깨에서 뽑혀나온 검은 붕붕 울부짖으며 자기 외피에 묻은 찌꺼기를 떨어뜨렸다.



저놈을 잡아! 저 흰둥이를 빨리 잡아오란 말이야!”



우히이이이잉! 후힝!”



어느새 꼬맹이의 목소리는 어른인척하는 꼬마 목소리에서 부모에게 떼를 쓰는 꼬마의 목소리로 변해있다. 꼬맹이는 기판을 쾅쾅 두드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부하들을 밀어붙였다. 단숨에 반 토막 난 동료의 모습을 보고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주저주저하며 검은 코뿔소들의 움직임이 꼬마의 떼쓰기를 신호로 완전히 바뀌었다. 계기판의 빨간 등이 깜박거리고, 아무리 긍정정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해도 시한폭탄이 연상되는 째깍째깍 소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계기판에는 불길하기 짝이 없게도 100이란 시간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도살장에 끌려가던 소는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래밍처럼 미친 듯이 하얀 인공수를 향해 달려나갔다.



녀석의 이름은 흰둥이가 아니야.”



처음으로 하얀 인공수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직한 소년의 목소리였다. 하얀 인공수의 검이 다시 붕붕 울부짖기 시작했다. 날 끝이 앞을 향해 겨눠진 검의 끝이 소리없이 갈라졌다.



대신에 프라가 나하라고 불러.”



눈앞의 검은 물결에 비하면 너무나 왜소해 보이는 프라가 나하의 칼끝에서 화염이 터져 나온다. 갈라진 틈에서 기다란 못이 튀어나와 몇 개의 조각으로 갈라졌다. 조각들은 다시 조각으로 갈라진다. 조각은 다시 조각으로 갈라지고 더 작은 조각으로 갈라져 공간을 메워버린다. 어느새 파편은 새 떼처럼 폭풍을 이루었다.



, 뭥미!”



폭풍은 검은 금속 덩어리를 찢고 그 안의 완충재까지 마찰과 열로 증발시키며 쓸어내 버렸다. 파편들이 다시 검은 덩어리를 뚫고 대기 속으로 자유로워졌을 때 이미 그 뒤에 남은 것은 양 다리에 난 커다란 구멍뿐이었다. 이윽고 파편들은 자기 자신의 마찰열에 견디지 못하고 불타 사그라졌다. 눈을 감고 뜨면 모든 것이 끝나있을 만큼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다. 지금 막 플레솃 스캐터(Flechette scatter)의 폭풍을 맞이한 검은 코뿔소의 파일럿은 조종석 지붕 위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옆에 있던 검은 코뿔소가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인지하려고 해보았지만 이미 인공수의 하반신이 날아가 버린 뒤다.



, 저놈에게는 검은 코뿔소가 몇백 마리가 와도 소용이 없다라능! 도련님, 후퇴해야 할 듯!”



죽고 싶삼?! 어서 가지 못함?!”



프라가 나하의 플레솃 스캐터가 잘 드는 낫이 보리를 베듯 가볍게 검은 코뿔소들의 움직임을 앗아가 버렸다. 쓸데없는 동작은 거의 없었다. 기괴할 정도로 절제된 움직임, 마치 석상처럼 조용히. 겨울처럼 예리하게. 한 조각의 쓸데없는 움직임도 없이. 그러나 끔찍하게 무심한 폭력성을 띄며. 프라가 나하는 몰아치는 인공수들을 그렇게 산산조각 내버렸다. 부수 피해는 기이할 정도로 적었다. 가로수 하나 소화전 하나 부서진 것이 없다. 검은 인공수들은 차곡차곡 생명을 잃고 프라가 나하의 뒤에서 산을 이루었다. 마치 정원사가 잡초를 뽑는 듯, 살충제로 벌레를 잡는 듯, 프라가 나하는 적의 없이 기계적으로 적들을 부숴나갔다. 조종석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오로지 인공수의 움직임만 빼앗을 뿐이다.



하얀 인공수의 모습은 조용하고 무심한 표정으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그 본질은 완벽한 폭력이었다. 그것은 단지 그 목적 하나만을 위해 존재했다. 압도적인 폭력을 위해. 창이나 칼, 총이 아니라 건물을 부수는 중장비나 폭발물처럼 악의없고 무지막지한 폭력을 위해. 지금 하얀 인공수를 바라보는 꼬맹이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 끔찍한 힘이었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남아있던 인공수 들이 생명을 잃은 쇳덩어리로 변해버리는 데에는 그 짧은 시간으로도 충분했다. 이제 남아있는 것은 프라가 나하와 한 무더기의 쇳덩어리, 그리고 거대한 검은 거미뿐이다. 모두가 침묵하고 있었다. 릴도, 꼬마도, 정신없이 도망치는 조종사들도, 높은 곳에서 싸움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긴 침묵의 끝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은 묶여있던 비즈였다.



이제 슬슬 끝을 내줄래요? 아무리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지만 이런 자세로 있는 것도 꽤 힘들거든요.”



그 말이 신호였다. 플레셋 스캐터가 커다란 인공수를 겨누었고 동시에 커다란 인공수에 달린 수많은 화기가 일제히 프라가 나하를 향해 불길을 토해냈다. 미사일과 화포, 탄환이 빗살처럼 몰아치는 소리에 5층의 청소부들은 귀를 막았다. 비즈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간 듯 평온한 얼굴이다. 프라가 나하는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 그저 한 발의 플레셋탄을 발사하고 나서 자신이 만들어 놓은 금속성 쓰레기 무더기의 뒤편으로 튀어 나갔을 뿐이다. 이윽고 화염이 프라가 나하가 있던 곳을 덮치자 그 주변은 조그만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내가 이겼음!”



꼬마가 신이 나서 외쳤다. 네이팜 덩어리가 프라가 나하의 주변 10미터를 그대로 불구덩이로 만든 뒤다. 붉은 화염은 가운데에서부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불의 새빨간 빛은 빨아 먹히듯 빠르게 사라져 간다. 대신 불의 가운데 부분은 이질적인 색으로 채워져 갔다. 절인 체리처럼 보라색 기운이 도는 붉은빛이 조그맣게 명멸하다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 뭐야! 뭐하려는 거셈?!”



꼬마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남은 화기를 모조리 불꽃을 향해 조준했다. 탄환이 강선을 지나 공기 속으로 튀어나올 때, 그와 동시에 붉은 빛줄기를 꼬리에 단 하얀 형체가 탄환처럼 앞으로 튀어나왔다. 탄환과 죽음이 프라가 나하의 하얀 형상을 스쳐지나 사라져 간다. 프라가 나하의 왼손은 오른쪽 어깨의 뽑히지 않은 검에 닿아 있었다. 검은 거미가 퍼붓는 그 모든 것이 따라오지 못할 만큼 빠르게 적에게 날아간 프라가 나하가 오른손에 든 검으로 거미를 베어 나갔다. 검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꼬마는 숨을 멈추었지만 검은 거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다. 프라가 나하가 빛살처럼 날아오는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던 꼬마는 프라가 나하의 검이 검은 거미의 갑옷을 뚫지 못했다는 사실에 이내 마음이 놓였는지 웃기 시작했다.



하하... ... 뭐야? 약하잖음. 진짜 인공수라고 해봐야 이것뿐이셈? 최고의 화력 플랫폼이라며? 이제 진짜 시작인거셈?”



만일 꼬맹이가 조금만 더 주의력이 있었다면 청소부들이 이미 판이 다 끝났다는 듯 심드렁한 얼굴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조금의 주의력만 있었다면 청소부 사무실로 쳐들어온다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계획을 애초에 세우질 않았으리라.



아뇨, 끝난 거에요 꼬마 도련님.”



목 뒤에 서늘한 느낌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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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보이죠?]



영상장치에 환하게 웃는 비즈의 모습이 투영되었습니다. 조그만 꼬맹이의 목에 권총을 겨누고 웃는 것치고는 너무 밝은 감이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참으로 밝은 미소입니다. 반면에 꼬마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려 버렸군요. 하지만, 꼬마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인공수는 제 쪽으로 계속 무기를 퍼붓고 있습니다. 미안한데 비즈, 웃는 대신에 이것 먼저 처리 좀 해주면 안 될까?



[언제 도망친거셈?! 너 잡혀 있었잖음?!]



[언제냐고 여쭈신다면야 알려드릴게요. 아까 꼬마 도련님에게 달려든 릴이 왼쪽 검으로 절 묶은 촉수를 끊었을 때라고 하면 알겠죠?]



비즈는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즐겁게 웃고 있습니다. 위층에 있던 사람들도 1층과 2층으로 내려와 박살 난 물건 중에서 쓸만한 것을 주워가고 있습니다. 잠깐, 청소부란 것들이 저래도 되는 거야? 비즈는 조종석을 가방으로 두들기고 있었습니다만, 검은 거미가 여전히 저를 튀겨버리려고 탄환을 퍼붓는 걸 보면 그다지 효과가 없는 듯하군요. 일단 이것부터 해치워 달라니까. 꼬마는 비즈에게 잡힌 채로 버둥거리고 있었지만 비즈가 가볍게 꿀밤 한대를 먹이자 그대로 죽은 듯 조용해져 버립니다……. 가 아니라, 뭐야 정말 죽인 거냐?



[안 죽였어요. 그나저나 이건 자동조종인 것 같네요. 이런 꼬마 도련님이 인공수를 직접 조종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겠죠. 그러면 릴, 할 일을 해야 하지 않아요?]



저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습니다. 물론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프라가 나하가 고개를 끄덕인 것처럼 보이겠지만요. 검은 공격을 피하면서 적당히 치명타를 가할 기회를 노리는 동안, 갑자기 영상 창에 비즈의 얼굴이 다시 커다랗게 떠오릅니다.



[저기 릴, 이 조종간을 되는대로 눌러보았는데, 이상한 걸 건드린 것 같아요.]



뭐야 너, 또 무슨 짓 한 거야. 아무거나 막 눌러보지 마. 뭐냐. 설마 자폭버튼이냐.



[저기, 여기에 빨간색으로 자폭 2분 전이라고 깜박이는데요? 이 정도 크기의 인공수가 폭발하면 이 근처는 아무것도 남지 않겠죠?]



비즈는 살짝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뭐야, 그딴 걸 웃으면서 이야기하지 마. 좀 다른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 좀 해보라고.



젠장! 빨리 도망쳐! 한 방에 끝낼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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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가 나하가 오른쪽 어깨에서 다른 검을 꺼내자 청소부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모두가 안절부절못하며 검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릴이 타는 프라가 나하의 오른쪽 검은 재미있는 무기에요. 엄밀하게 따지자면 프라가 나하의 오른쪽 검을 무기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요. 날도 없고, 아무것도 쏘지 못해요. 단지 공간과 공간을 열어 문을 만들 뿐이니까요. 검은 기술이 살아있던 ‘대전쟁’ 이전부터 공간을 찢고 이지러지게 하는 기술을 실험하고 있었다지만, 프라가 나하를 제외하면 이제 그 기술이 적용된 무기는 남지 않았어요.



저는 꼬마 도련님의 목을 잡고 거미 바깥으로 끌어냈답니다. 오른쪽 어깨의 검은 섬세한 왼쪽 검에 비하면 약간 과격한 감이 있는 무기니까요. 아무리 버릇없는 도련님이라도 그런 것에 맞으면 안 되겠죠? 저는 다시 깨어났는지 바동거리며 재롱을 떠는 꼬마 도련님을 왼쪽 허리에 끼고서 될 수 있는 한 멀리까지 뛰어나갔답니다.



릴이 겨눈 오른쪽 검도 왼쪽 검처럼 끝이 갈라져 나갑니다. 두 갈래가 아니라 세 갈래로 찢어져 나가지만 그리 큰 차이는 아니겠지요. 사실 릴의 오른쪽 검도 그렇게 엄청난 공간 전이장치는 아니에요. 아주 작은 공간의 문만을 열 수 있거든요. 게다가 통하는 곳은 항상 똑같지요. 그런데 왜 사람들이 그렇게 프라가 나하를 두려워하는지 아세요?



간단한 이유랍니다 오른쪽 검의 이름은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 太陽門)이거든요. 저는 꼬마 도련님과 함께 뒤로 돌아섰습니다. 눈이 멀면 안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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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 거미야. 다음에 태어나면 좀 괜찮은 주인을 만나렴.”



태양으로 통하는 문이 검 끝에서 열렸다. 붉다 못해 하얀 화염과 빛. 모두가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에너지. 아무도 견딜 수 없을 압도적인 힘이 사슬을 끊은 야수처럼 풀려나왔다. 빛의 혀는 검은 거미를 핥고, 맛보고, 그대로 삼켜버렸다. 빛의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닫아놓은 눈꺼풀 속에서 찬란한 빛의 창을 보았다. 저 멀리 떨어진 곳, 태양의 화염이 가엾은 대기를 팽창시키며 굉음을 일으켰다. 얇은 막에 아로새겨진 빛줄기는 붉은 흔적을 남기며 찬찬히 사라져 간다.



모두가 눈을 떴을 때, 남아있는 것은 없었다. 검은 거미는 주저앉았다. 프라가 나하는 조용히 양손에 든 검을 다시 어깨에 끼워넣었다. 릴은 한숨을 내쉬며 손등으로 이마에 흐른 땀이 훔쳤다. 릴은 눈앞에서 무너진 거미를 올려다 보았다. 한가운데에 난 구멍으로 깔끔하기 그지없는 청명한 초여름 하늘이 보인다. 모두가 구멍을 바라보았다. 구멍 뒤로 보이는 하늘 바로 전에는 거미에게 난 것과 똑같이 깔끔한 구멍이 3층에 새로 생긴 청소부 사무실이 보였다.



3.

에…. 그리니까 3층에 구멍이 시원하게 난 거로군. 시원스러울 정도로 큰 구멍.



아마, 3층에 있던 건….”



릴은 고치 안에 주저앉았다.



 



삼치구이